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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어휘 연구] 15. 칭의, 성화, 영화 | 남대극 교수
안녕하십니까? 또다시 에스라 성경 강단, 우리 함께 연구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에스라 성경 강단은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함께 공부합니다만, 특별히 성경에 나타나 있는 중요한 어휘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성경 어휘 연구를 하는 목적은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우리의 성경 이해와 신학 이해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15번째 시간으로 '칭의, 성화, 영화'라는 제목으로 공부를 하겠습니다.
이 세 단어는 이 단어 그대로 성경에 명시되어 나타나지는 않지만, 이 단어들이 갖고 있는 의미와 개념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그것을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칭의는 무엇이며, 성화는 무엇이고, 영화는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칭의는 '의롭다고 칭하는 것', 즉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칭함을 받는다는 개념입니다. 그다음 성화는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하나님을 닮아서 거룩하게 변해가는 과정을 성화라고 부릅니다. 그다음 끝으로 영화는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죄인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모습은 영광스럽지 못하며,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얼굴을 친히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점점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서, 나중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한다는 개념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칭의에서 성화되어 영화에 이르는 이 과정을 우리는 '구원의 성장 단계'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롭게 태어나 출생(침례)을 하고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하면 우리는 중생, 곧 거듭났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출생한 사람이 계속해서 자라나서 완성되는 과정을 이 세 단어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죄인은 의롭다고 일컬어지는 순간부터 매일 자라야 합니다. 출생한 아이가 그 순간부터 점점 자라나듯이, 우리는 자라나야 합니다. 마치 신생아가 출생하는 순간부터 날마다 쉬지 않고 자라듯이 그렇게 자라야 합니다. 육신의 성장이 멈추면 건강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이가 나이를 먹어 다섯 살, 아홉 살, 열 살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조그마하게 남아 있으면 참 문제인 것입니다. 지적으로도 개발되지 않으면 큰 근심 덩어리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병이 들고, 병이 깊어지면 죽음에 이르듯이, 영적으로도 성장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육신의 성장과 비교해서 말하면 그렇습니다.
먼저 칭의를 살펴보면 '의롭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영어로는 저스티피케이션(Justification)이라고 합니다. 'Just'라는 말은 의롭다는 뜻이고, 칭의는 의롭다고 일컬음, 즉 의롭게 여김을 뜻합니다. 타고난 죄와 지은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우리는 칭의라고 말합니다. 영적인 출생, 곧 새 출발을 하는 인생입니다. 여기에는 죄의 고백과 회개, 그리고 예수가 자신의 구주임을 인정하고 그의 명령을 따라 삼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것이 필요한 과정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받아들일 때 일어나기 때문에, 예수를 받아들이는 공식적인 의식적 표시가 침례라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서 지상 사역을 다 마치시고 이제 하늘나라로 가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주신 아주 위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흔히 지상 명령(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합니다. 지극히 높은 최고의 명령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마태복음 마지막 장, 마지막 세 구절인 28장 18절로 20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로 마태복음이 끝납니다. 마지막으로 위대한 사명과 명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사명은 무엇입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는 것인데,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명령에 따라서 우리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전도하고 선교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성경 공부를 통해 열심히 가르칩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 하면, 이렇게 함으로써 누가 큰 상을 주거나 돈을 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열심히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가서 일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자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명령이 마가복음 마지막 장인 16장 16절에도 나옵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역으로 말하면 믿지 않고 침례를 받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고 또 의롭게 되는 첫 관문은 믿는 것이고, 믿고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침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대단히 중요한 관문입니다.
성경 가운데 가장 널리 애송되는 한 구절인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 것은 우리가 그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인데, 그 영생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회개하고 주님께 나와서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여기 보시는 사진은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셨다고 여겨지는 요단강가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이 이곳에서 침례를 받으셨을 것이라 생각하여 이 장소를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사진은 갈릴리 호수에서 요단강 물이 내려오는 바로 그 입구입니다. 이런 시설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나가서 침례를 받습니다. 좀 더 넓은 전경을 보면 이렇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내려가는 요단강인데, 사람들이 와서 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물이 꽤 많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내려오는 입구 쪽 물은 강폭이 넓고 수량이 충분하여 언제나 침례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시는 장면이 나오는 마태복음 3장 13절로 15절을 읽겠습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은 우리의 모본이십니다. 인간으로서의 모본이십니다. 그분이 죄를 지었거나 우리처럼 죄인인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례를 받으신 것은 우리에게 모본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이와 같이 하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시지만 우리에게 모본을 보이시기 위해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여러분, 침례를 받는 것은 의를 이루는 일이며 합당한 일입니다. 우리가 아직 침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고자 노력하고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 역시 의를 이루는 합당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화나 그림을 보면 예수님이 계시고 요한이 침례를 주는 장면을 아름답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이어서 마태복음 3장 16절과 17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 장면은 대단히 중요한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실 때,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예수님이 인성으로 서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그분 위에 임하십니다. 동시에 하늘에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동시에 같은 공간에 계시는 아주 희귀하고 장엄한 장면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침례 장면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침례를 받으실 때, 비록 우리의 육신의 안목으로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성령님이 함께하셨을 것이며, 영의 귀로 들었다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 하나님의 선언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것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장면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물이 구원하는 표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씻기 때문입니다. 침례는 구원하는 표입니다. 침례를 받는다고 해서 육체적으로 갑자기 다 깨끗해지지는 않지만, 이는 "내가 주님께 내 죄가 씻기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하나님을 향해 선한 양심으로 간구하는 표시로서 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浸禮)의 '침' 자는 '물에 잠길 침' 자를 씁니다. 수해를 입었을 때 집이 물에 잠기면 '침수(浸水)되었다'고 하듯이 잠긴다는 뜻입니다. 물속에 잠시 잠기는 동안 과거의 죄된 나는 장사 지내고, 물 밖으로 나올 때는 영적인 부활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에 그것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굉장히 의미가 깊습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고 물 위로 막 올라오시는 장면을 그린 성화를 보면, 비록 그림이지만 당시의 감동적인 장면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의롭게 되는 방법, 즉 칭의를 얻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성경에서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칭의와 성화와 영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을 보면 참 좋은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행하거나 업적을 쌓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는 단지 죄를 깨달을 뿐이며, 율법적인 행위 그 자체로는 우리를 구원하거나 의롭게 만들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어서 24절에는 "크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십니다. 속량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몸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서 죄인에서 자유인이 되게 하신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예수 안에 있는 속량, 즉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속량 하시는 행위로 인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28절에도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의 행위, 즉 '이것을 해라, 저것은 하지 마라, 부모를 공경해라, 살인하지 마라' 하는 행위를 지킴으로써 내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위는 필요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의 삶 속에서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순종'이 바로 그 행위입니다. 순서와 인과관계가 다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절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우리가 죄인이었기 때문에 이전에는 하나님과 원수 되고 불화한 상태였지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음으로써 이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주 강력하게 강조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아주 강조하여 반복하는 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로우신 예수님을 우리가 믿을 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의를 우리에게 옷 입혀 주셔서 우리가 의롭게 여김을 받게 하십니다. 이것이 칭의입니다.
그런데 이 칭의는 인생에서 딱 한 번 일어나고 영원히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하여 자꾸만 다시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반복해서 죄를 짓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죄의 용서, 즉 칭의의 은혜는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주님의 보혈로 용서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날마다 의롭다 하심을 입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넘어져 죄를 짓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금방 회개하며 주님께 나아올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끊임없이 속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칭의의 경험이 매일 반복되는 동안, 우리의 내면에서는 '성화'가 함께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칭의와 성화는 별개의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고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칭의 없이 성화가 이루어질 수 없고, 성화의 과정 없이 영화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즉 칭의, 성화, 영화를 엄격하게 무 자르듯 구분하거나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합당하지 않습니다. 첫 단계가 칭의입니다.
이제 성화의 과정을 살펴봅시다. 성화는 문자 그대로 거룩하게 되는 것, 영어로는 생티피케이션(Sanctification)이라고 합니다. 성화라는 것은 성품이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이며, 삶 속에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처럼 거룩해져 가는 것입니다. 칭의, 즉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신생아와 같으므로, 그날부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계속 자라나야 합니다. 여기에는 성품의 변화와 신앙생활의 성장이 포함되며, 구원과 구주에 관한 깊은 지식과 체험이 뒤따릅니다. 참된 성화는 믿고 순종함으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초기에 칭의를 받아서 의롭게 여김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이후의 행실에 순종이 전혀 없고 영적 성장이 완전히 멈춰버린다면 그 신앙은 온전한 상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로움이 꼭 필요한 것처럼 거룩함(성화) 역시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경에는 이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이 있습니다.
레위기 11장 44절을 보십시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시는 분명한 명령입니다. 또한 레위기 19장 2절에도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하셨고, 20장 26절에도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하셨습니다. 신약의 로마서 6장 22절에도 참 좋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영생으로 가는 영적 여정 속에서 반드시 거룩함의 열매를 맺어야 하며, 그 궁극적인 결과가 바로 영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되는 성화는 구원의 필수적인 과정이자 하나님의 큰 명령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은 우리가 왜 성화가 필요한지 가르쳐 줍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십니다. 지혜도 되시고 의로움도 되시며, 성화를 위한 거룩함도 되시고 마침내 구원함이 되어 주십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 칭의와 거룩하게 되는 성화, 그리고 보혈의 씻음이 모두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이 은혜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성화는 하나님의 간절한 뜻이며,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디모데전서 4장 5절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이것이 바로 성화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늘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가까이하지 않고서는 거룩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내 힘과 의지만 가지고 행동해서는 거룩해지기 어렵습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로써 거룩해집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에도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그 피를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히브리서 12장 14절을 보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함을 이루지 못하면 주님을 뵐 수 없습니다. 영어 성경(KJV)으로 보면 의미가 더욱 확실합니다. "Follow peace with all men, and holiness, without which no man shall see the Lord." 거룩함(성화)이 구원의 필수적인 과정임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화되어 가고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성화의 가장 큰 증거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온유함과 관대함입니다. 영감의 기록인 <성화된 생애> 14~15페이지를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성화의 가장 귀중한 열매는 온유의 은사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오랫동안 성경을 연구하며 기도하고 살아갈 때, 우리의 심령이 참으로 성화되었다면 겉으로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성품이 바로 온유함과 관대함입니다. 늘 부드럽고 온유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은 지 20년, 30년, 40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성격이 거칠고, 사소한 일에 버럭버럭 화를 낸다면 그것은 성화의 삶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는 성령께서 성화되어 가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은혜이자 선물입니다. 스스로가 성화되었는지 살펴보려면 내가 이웃과 자녀들을 대할 때 얼마나 온유한지, 주님의 마음을 닮아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화된 모습입니다.
마지막 단계로 '영화(Glorification)'입니다. 영화라는 것은 영광스럽게 변하는 것, 즉 신의 영광스러운 성품에 온전히 참여하는 것입니다. 죄 된 인간이 모든 죄의 흔적과 허물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부활과 변화를 통해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최종 단계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얼굴과 얼굴로 친히 마주 대하며 보게 되는 것이고, 여호와의 찬란한 영광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죄와 허물이 있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광채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없지만, 우리가 마침내 주님을 온전히 닮아 영광스럽게 변화되면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영광화의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어떻게 영화에 이르게 됩니까? 로마서 2장 7절에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도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의 시련과 고난도 믿음으로 잘 참아내야 합니다. 대가 없는 영광은 있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에는 구원의 황금 사슬이 나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의롭다 하시는 칭의와 성화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영화롭게 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2절에도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여 우리를 최종적인 영광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은혜 안에서 날마다 자라나고 있으며, 마침내 영광스러운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얼마나 빛나는 영광인지 모릅니다. 디모데후서 2장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마침내 영광스럽게 변화(영화)되는 그날을 바라보며 바울은 온갖 고난을 참고 일했던 것입니다.
칭의와 성화, 그리고 영화는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거대한 청사진이자 핵심 개념입니다. 우리는 어느 한 단계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내 힘으로는 이 높은 단계에 도달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복음을 통해 이루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성령과 성경 말씀,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우리를 날마다 자라나게 하십니다. 그 자라남의 종착지가 바로 영생이요 영화라는 사실을 오늘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 날마다 영적으로 자라나고 성장하는 성화의 삶을 살아서, 마침내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귀한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 정리
구원의 성장 3단계 정의: 성경에 명시된 단어는 아니지만 구원의 성장 과정을 나타내는 핵심 신학 개념입니다.
칭의 (Justification):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고 일컬음을 받는 '영적인 출생(새 출발)'입니다. 회개와 믿음, 그리고 삼위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성화 (Sanctification): 영적으로 출생한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하나님을 닮아가며 거룩하게 변화하는 '영적인 성장'의 과정입니다.
영화 (Glorification): 죄 된 인간이 모든 허물을 벗고 부활·변화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찬란함에 동참하는 '구원의 최종 완성'단계입니다.
침례의 중요성과 삼위일체: 침례는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공식적인 의식이자 구원의 표(선한 양심의 간구)입니다. 예수님의 침례 장면은 성부(성성), 성자(인성), 성령(비둘기 모양) 삼위 하나님이 동시에 임하신 구속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칭의와 성화의 인과관계: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값없이 주어집니다(칭의).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서 나타나는 순종과 선한 행실은 칭의의 원인이 아니라 '칭의의 결과로 나타나는 영적 열매(성화)'입니다. 칭의는 매일 용서받는 경험으로 반복되며 성화와 연결됩니다.
성화의 방법과 증거: 성화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그리고 주님의 보혈을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성화된 삶의 가장 귀하고 확실한 증거는 성령이 주시는 성품의 열매인 '온유함과 관대함'입니다.
결론: 성도는 주님이 주신 복음의 은혜 안에서 매일 용서받고(칭의), 말씀과 기도로 온유하게 자라나며(성화), 마침내 고난을 이기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마주 대하는 최종 구원(영화)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