醴泉郡 ‘金塘室, 맛질(渚谷) 반서울길 十勝之地 一圓’ 探訪 案內
■ 병암정(屛巖亭)[반월당네거리에서 126km, 1시간 37분, 예천IC에서 14km, 24분]-경북 예천군 용문면 성현리. 예천권씨 병암정 및 별묘(別廟). 경북 문화재자료 453호. 병암정의 당초 명칭은 옥소정이었다고 한다. 조선 고종 때 楊州대감 경주 李裕寅이 창건하여 후일 병암정으로 개칭하였는데, 1920년 예천권씨들이 매입하여 그들의 선조로 戊午士禍에 慘禍를 당한 睡軒 權五福선생의 위패를 모셨다고 한다. 石假山을 설치한 운치 있는 연못에 연하는 암벽 병풍바위 위에 지어진 아주 멋스러운 정자로 입지 조건, 전통 조경, 구조 양식 등에서 조경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며 영화 황진이의 촬영 장소로 유명해졌다. 일제기에는 예천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였던 權元河와 관련이 있는 건물이기도 하였다.
■ 초정(艸丁) 권창륜(權昌倫) 서예연구원(書藝硏究員)-예천군 용문면 능천리. [병암정에서 3.3km, 7분], 서예가 권창륜이 세운 전통서예박물관 내지는 전통서예체험관
■ 중식-금당실마을 식당, 혹은 예천읍내 예천축협한우플라자.
-☏054-652-9289.
■ 금당실 마을 송림/(용문중학교)[병암정에서 2.1km, 4분]□금당실마을-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일대에 자리한 마을이다. 예천군청에서 928번 지방도를 따라 북서쪽으로 6km정도 되는 거리이다. 물에 뜬 연꽃을 닮아 금당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 주변에 고인돌 등이 산재해 있을 만큼 오래된 마을이다. 약 700여 가구의 큰 마을로 15세기 초엽에 감천문씨 문헌이 정착하여 그의 손서인 박종린과 변응녕 등이 금당실 마을에 들어와 살게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재 감천문씨는 거의 없고, 함양박씨, 원주변씨, 예천권씨 의성김씨, 안동권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정감록 십승지중 하나인데 태조 이성계가 도읍지로 정하려고 했다는 전설이 있어 ‘반서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마을 앞 금당천에서 사금이 생산되어 '금당실, 금곡' 등의 이름으로 불리웠다는 설과,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가 이곳을 지나면서 중국의 양양 금곡과 지형이 닮았다 하여 '금곡'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이 마을에는 양주대감 李裕寅의 99칸 저택 터를 비롯하여, 초간 권문해의 유적인 종택과 초간정, 용문사, 금곡서원, 추원재, 사괴당 고택, 조선 숙종 때 도승지인 김빈을 추모하는 반송재 고택 등의 문화 유적이 주변에 많이 남아 있고, 10여 채의 고택 사이를 미로처럼 이어주는 돌담길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천연기념물 제469호로 지정된 금당실 서북쪽의 소나무 숲이 유명하다.
■ 함양박씨 금곡서원(金谷書院)과 추원재(追遠齋)-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 복거(卜居) 함양박씨 입향조는 향오린(鄕五麟-巨麟/亨麟/洪麟/鵬麟/從麟)으로 유명한 중종조(中宗朝) 이조정랑(吏曹正郎) 박종린이다. 금곡서원은 이른바 함양박씨 육지공파(六之公派-少監 之文/文元公 之彬/咸陽君 之亮/密直 之秀/御史 之溫/中郎將 之潁)의 제이파(第二派)로 문원공의 장손(長孫)인 고려말의 대학자 문제공(文齊公) 치암(恥菴) 박충좌(朴忠佐), 오린의 부친인 찰방(察訪) 행정(杏亭) 박눌(朴訥), 대산(大山) 및 백불암(百弗庵)과 함께 영남 유림 삼로(三老)로 일컬었던 영조조(英祖朝) 남야(南野) 박경손(朴慶孫)을 향사(享祀)하며, 추원재는 입향조 정랑공(正郞公)의 재각(齋閣)이다.
■초간정(草澗亭)[금당실송림에서 4.3km, 7분]-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예천 초간정 원림(園林)-초간정(草澗亭)은 大東韻府群玉을 지은 학자인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소유했던 별서(別墅)로, 그의 호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예천 초간정 원림은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의 초간정을 비롯하여 정자 주변의 계류, 암석, 송림 등을 포함하며, 2008년에 명승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초간정은 조선시대 우리나라 고유 형식의 별서정원이다. 용문면 원류마을 앞 계곡의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계류는 암반 위에 세워진 정자와 정자 아래 형성된 바위 계곡 및 사면 위로 조성된 송림이 함께 어우려져 하나의 아름다운 문화경관을 이룬다.
■용문사(龍門寺)[초간정에서 4.2km, 7분]-예천군 용문면 신정리-용문사는 870년(신라 경문왕 10년) 두운선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정벌하러 내려가다 이 사찰을 찾았으나 운무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치 못했는데, 어디선가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 하여 용문사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 명종 때 ‘용문사 창기사’로 개명했으나 조선 세종대왕의 비 소헌왕후의 태실을 봉안하고 ‘성불사 용문사’로 다시 고쳤고, 정조 때 문효세자의 태실을 이곳에 쓰고 ‘소백산 용문사’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진왜란 시 승병들의 지휘소로 이용되었던 자운루가 용문사에 아직도 남아있어 호국불교의 기풍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윤장대(보물 684호)를 비롯 성보문화재 10여 점이 현존하며, 조선 숙종 때 조성된 목각탱화(보물 89호)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몽대(僊夢臺,仙夢臺)[용문사에서 27km, 42분]-예천군 호명면 백송리 소재 국가 명승 제19호. 예천읍지에 수록된 약 450여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으로, 선몽대와 선몽대 숲 그리고 그 앞을 흐르는 내성천과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어우러져 한국의 전통적 산수미를 보여주는 예천 내성천 유역의 대표적 경승지의 하나.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이며 문생인 우암(遇巖) 이열도(1538∼1591) 공이 1563년 창건한 정자로서 “선몽대”의 대호 세 글자는 퇴계 선생의 친필로 알려져 있으며, 정자 내에 당대 석학인 퇴계, 약포, 서애, 청음, 한음, 학봉 등의 친필시가 목판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곳으로 선인들의 유교적 전통공간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
■경북도청이전신도시[선몽대에서 11km, 18분]-경북 안동시 풍천면, 용문사에서 29km, 38분, 안동시청에서 21.5㎞, 예천군청에서 10.2㎞ 안동 예천 경계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