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시문학』신인상 심사기
강수니의
「펜트하우스, 혹은 안식의 집」은 강변의 펜트하우스⟶ 요르단 팔미라사막의 로마 석관⟶ 고비사막의 독수리로 펼쳐지는 이미지의 공간이 매우 넓고
시원하다. 그것은 시인의 의식이 선명하게 흐르는 영화의 몽타주 기법과 연관되는 영상의 변화로 이해된다. 이런 기법은 하이퍼시의 기법과도 연결되는
것이기에 주목된다.「아버지의 신발」도 신발을 바다의 배로 비유하여 펼치는 상상의 공간이 신선하다. 일상의 때를 닦아낸 맑은 이미지의 파생이
관념에서 벗어난 시의 탄력성을 엿보게 한다.「고등어자반」은 어물전 좌판 위의 고등어자반을 보며 지나온 생애를 떠올리고, 부부의 애환을 고등어의
등뼈, 가시로 치환하여 담아내고 있어서 시인의 시적 감수성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직설에 가까운 비유가 상투적 어법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유념하게 한다.
이철건의
「내 마음의 아프리카」는 슬픈 이웃에 대한 시인의 감성이 울림을 준다. 그리고 “붉은 물감으로 찍은 비명 하나 /불쌍한 죽음의 뼈다귀가 비에
젖습니다”라는 이미지, “비오밥나무들이 아프리카 아프리카/울고 있어요”라는 간결한 시어에 담긴 절실함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거의 울음에
가까운」은 생활의 무게에 눌리는 시인의 현실이 두보의 시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침몰하는 식탁‘이라는 사물화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평가되었다. 「겨울 소네트」는 시인의 담담한 일상이 한 폭의 맑고 투명한 수채화의 언어로 그려져 있다. 의식의 투명성이 무한한 허공을 인식하게
한다. 그 정신적 공간에 개성적인 형이상의 건축을 기대해 본다.
이준희의
「그녀는 허벅지부터 온다」는 제목부터 특이한 개성을 느끼게 한다. 휴대폰의 무선을 타고 오가는 채팅을 연상하게 하는 시의 이미지는 현대인의
감각적 삶의 현장을 감지하게 한다. 시인은 그런 삶의 행태를 어떤 관념도 들어있지 않은 단편적인 사건으로 생동하는 시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폐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에서는 사실적인 묘사가 동적 이미지와 결합되어서 생동하는 시적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묘사력이 시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시적 역량에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라면과 소면」도 특이한 소재가 눈길을 끈다. 대충 끓여도 목으로 슬슬 잘 넘어가는 라면과
까탈스런 시누이처럼 요구조건이 많은 소면의 대조를 통한 삶의 두 방식이 신선한 이미지로 부각된다. 실생활에서 새로 탄생된 비유가
싱싱하다.
강수니, 이철건, 이준희의 등단을 축하하며 신인으로서 신선한
바람을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김규화 신규호 심상운
(글)
신인 우수작품
(시)
강 수 니
펜트하우스, 혹은 안식의
집
강변 조망 권을 따라 칸칸이 쌓아올린 주상복합
펜트하우스
둘레의 현란한 불빛이 세속의 안식을 짐작케
한다
요르단 팔미라
사막아래
층층으로 파 내려간 로마 귀족들의 석관들,
칸칸마다
신분을 아로새긴 문양들 속에 독수리 한 마리 새겨져
있다
전쟁으로 폭파되는 지하 석관들,
안식하던
로마의 위용이 먼지로 내려
앉는다
고비사막, 산꼭대기에 있는 천장
터엔
이제 막 의식을 끝낸 먹이 위에 배고픈 독수리 몇
마리
빙빙 돌아 느긋한 하강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신발
늦은 밤 좁다란 현관에 하루를 저어 온 낡은 배 한 척
무사히 닻을 내린다
달빛도 없는 밤
한때는, 갑판 높이 펄럭 거렸던 깃발을 접어서 내린지
오래
오늘은, 어느 폭풍우를 헤쳐 왔을까
몸의 중심이 기우뚱
거린다
자존심과 함께 닳아 얇아진 밑창, 새어 젖던 자국이
굳
은살로 무늬가 되었다
신발장 문을 열면, 올망졸망 살붙이들의
신발들
칸칸이 얹혀 속살거리는 작은
이야기들
저마다 푸른 바다를 꿈꾸며
가지런하다
찰랑거리는 물소리 여전히 뱃전을
흔드는데
아버지는, 닻을 내릴 수도 끓을 수도
없다
삐걱거리는 노 소리 점점 멀어 진다
고등어 자반
컴컴한 시장골목, 어물전 좌판 위에 채곡채곡 쟁여져 있는 고
등어 자반을 본다
소금 같은 세상 함께 건너온 우리
부부같다
한때는 나도, 푸른 물속을 헤엄쳤던 싱싱한 활어의 시절
있
었는데
어느 날, 뼛자국 선명한 아롱무늬의 내 청춘을
보았다
쓸게, 창자 다 들어내고 왕소금으로 속을 꽉 채우던 날
심
술로 톡톡 짠 소리 뱉은 날들
있었지만
문득 바라본 그의 앞가슴 살점에 내 등뼈 자국이
흉터로
남아 있는 그를
보았다
그도, 비워낸 그의 속살에 찌르는 내 등뼈 가시가 박혀
소
금같은 세상 자반 한손으로 절구어
졌을까
속안의 속것까지 다 버린 고등어자반으로
살았을까
어물전 좌판 위의, 잘 절여진 고등어자반을
본다
신인 우수작품 (시)
이 철
건
내 마음의 아프리카
나는 왜 내 것이 아닌
슬픔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일까요
4B연필로 그리다 만
쫓기는 약한 것의 질주를
보세요
붉은 물감으로 찍은 비명
하나
불쌍한 죽음의 뼈다귀가 비에
젖습니다
슬픔이 여기 저기
바오밥나무로 서
있습니다
바오밥나무들이 아프리카
아프리카
울고 있어요
유니세프가 보내 온
편지는
검은 눈물 속에
빛나는
하얀 치아 같아요
울지 마 톤즈는
잊혀지지 않는
울림입니다
슬픔이 내 마음을
아프리카 아프리카
적심니다
겨울 소네트
작약 꽃의 저녁 강이
산그늘 속으로 저물어 갈
때
넌 기도원 별관으로 날 데리고
갔다
넌 내 마음을
읽어나갔고
내 시린 결핍의 고통을 마음
아파했다
생을 리셋하고 싶다는 내
말에
말간 우물 같은 네 눈이
젖었다
네 안의 어머니
내의처럼 따뜻했다
아침에 커피 잔을 들고
우리는
창가에 투명하게 마주
앉았다
창 너머로 산등성이가 말갈기
같았다
하얀 자작나무 숲이
더 이상 슬퍼 보이지
않았다
거의 울음에 가까운
시간의 관절이 마모되고
있다
직립의 키가 낮아지고
있다
아내는 야윈 손으로
생활의 기장을 줄이고
있다
자정 넘어 아무도
모르게
집채가 내려앉는 소리를
듣는다
아주 천천히
납입고지서의 힘겨운
무게로
침몰하는 식탁
침몰하는 가구
침몰하는 길들인
이름들
날이 갈수록 더욱 짓눌리는
무릎에
슬픔이 고이고
찬바람이 스며든다
시린 달빛이 두보의 시가
되어
창문을 적신다
신인 우수작품 (시)
이 준
희
그녀는 허벅지로부터
온다
무선을 타고 그녀가
온다
소리없이 다가오는 선 속에 그녀가
있다
수줍은 듯 고개 숙여 나오지 못하고 무선 속에 웅크려
앉아
나를 보고 있다
몇 번을, 유리벽 같은 외벽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그녀가
기다려 진다
그녀는 허벅지로부터
온다
가슴에서 옆구리, 호주머니로부터
온다
실핏줄 군데군데 수화기가 걸려 있어 허벅지와
가슴을
중심으로 노크 한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희미한 흔들림 속에서 그녀가
온다
“주소를 잘못 찾았네요,
미안해요”
달아나는 그녀보다 내 손가락이 더
머쓱해진다
폐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로 도배한 벽들 사이에서 뻐꾸기시계가 멈춰 서
있다
뒷 곁 우물가엔, 패다만 통나무들 마지막 숨을
고르고
깨어진 장독, 검게 타 버린 부뚜막, 배고픈 숟가락
젓가락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뒷간 담벼락엔 거름 망태기, 일 나간 주인을
기다리고
널부러진 구들장들, 서로 마주보며 흩어진 식구들이
궁금하다
그것들 모두 쓸어 모아 불쏘시개로 불을
지피면
찌그러진 냄비에서 보글보글 찌개 끓는 냄새가 어제
같겠다
그래도 봄인데, 반쯤 쓰러진 처마 끝에서 왕거미는
새 집을 짓기
시작한다
폐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라면과 소면
꼬불꼬불한 라면들이 한 뭉텡이로 뭉쳐져서 제 집속에 접혀져
있다
통발 속에서 잠든 미꾸라지들
같다
꼿꼿한 소면은, 초년병 시절의 내
모습이다
누워서도 자세를 흩뜨리지
못한다
말라빠진 스프 한 봉지에도 간 맞출 줄 아는
라면은
대충 끓여도 목구멍으로 슬슬 잘 넘어
간다
아버지는 추어탕을 좋아
하셨다
뜨거운 물속에서도 쉬 몸 풀지 못하는 소면, 까탈스런 시누이처럼
요구조건도 많다
멸치 우린 국물에 몇가지 고명을 얹으라
한다
세상 그리 살지 말라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늦은 밤 책상머리에서 나는, 라면과 소면사이에서
갈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