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회루는 정면 7칸 측면 5칸 모두 35칸이다.
바닥면적이 933m² (282평)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중층 익공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경회루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그 구도가 멋이 있다.
바닥과 기둥 2층 난간이 거의 장사각형을 이루었고 계단은 장사각형에 대각선을 그은 듯 설치되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면 또다른 아름다움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방으로 탁 트인 다락의 장쾌한 멋이 바로 그것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낙양각이 눈에 든다.
화려한 당초문양의 낙양각을 달아 밖의 빼어난 경치를 빌려 감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경회루 주변의 절경이 낙양각을 통해 생생한 그림으로 빨려온다.
차경법(借景法)의 참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차경(借景)은 자연과 인간의 합일(合一)을 이끌어낸 조경기법의 진수이다.
북쪽의 백악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남산을 자연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
이곳 난간은 이중으로 둘렀다.
나이 많은 재상들의 안전을 배려한 임금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2층 바닥은 장귀틀과 결합하는 동귀틀이 각 칸에 구성된 장마루를 깔았다.
건물 바깥쪽(外陳) 기둥은 네모진 기둥이고 안쪽(內陳)은 모두 둥그런 원기둥을 배열하였다.
2층의 기둥은 아래층 돌기둥(石柱)과는 달리 나무기둥(木柱)로 하였고
아래층과 같이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민흘림을 두었다.

이층마루는 3겹으로 구성하였다. 이외진-내진-내내진 3겹이다.
2층 평면의 제일 안인 내내진 중심공간은 세 칸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중궁(中宮)으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상징한다
이 세 칸을 둘러싼 여덟 기둥은 천지 만물이 생성되는 기본인 <주역(周易)>의 팔괘(八卦)를 상징한다.
이를 부도전괘(不倒轉卦)라고도 한다.
제일 안 세 칸을 둘러싼 다음 겹인 내진은 12칸이다. 1년 12달을 상징한다.
안쪽 기둥들로 구성된 정면 5칸과 측면 3칸은 그 전체의 칸수가 12칸으로 되어 있다.
이는 1년 12개월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가운데 있는 제1중궁이다. 3칸으로 구성된다. 이는 천 지 인 삼재(三才)를 형상화한 것이다.
삼재란 동양 고대사상에서 우주의 세 근원인 천(하늘) 지(땅) 인(사람)을 가리킨다.
"역은 넓고 큰 것을 모두 갖추었다. 하늘의 도가 있고 사람의 도가 있고 땅의 도가 있다."
<주역>의 계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기둥 8개를 썼다. 주역이 8괘를 상징한다. 칸마다 창문 4개 써서 32를 표현했다.

동북쪽 모서리 칸이 정월로 시계방향을 따라 2·3…12월로 이어진다.
매 칸마다 네 짝씩 16칸에 달린 64문짝은 64괘를 상징한다.
36괘는 64괘와 같은 의미로 우주자연의 원리를 나타내는 수이다.
가장 바깥을 둘러싼 24칸은 1년 24절기와 24방(方)을 상징한다.
이런 평면배치는 누각의 시각적인 효과를 한껏 높여주고 미적인 효과도 극대화시켜 준다고 하겠다.
각기둥에는 12지 10간을 적용하였다.
12지의 인(寅)은 북동쪽을 상징한다. 24계절 중 우수는 북동쪽이다.
모든 만물이 생(生)하는 방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 우수이고 방위가 북동이다.

우주의 원리를 적용해서 경회루를 지었다.
우주자연과 사람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데서 출발한다.
서양에서는 달나라에 탐사를 한다.이는 호기심의 발로이다.
자료를 찾아 궁금증을 풀기위함이다.
달나라에 가서 이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는다.거기서 끝난다.
바로 서양에서 자연을 대하는 관점이고 자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오감으로 느끼는 것을 종합한다.
달나라에 직접 가지는 않는다. 상상을 부단히 하고 이치를 생각한다.
극단적인 사유(思惟)를 부단히 반복한다,
"새가 울고 내가 있는데 과연 새와 내가 같은가 다른 가?"
여기서 계절의 변화 이치를 터득하고 얻는다.
우리의 사상의학도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
천인상응((天人相應)이라고 하였다.
자연계와 인간의 상응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상의학의 기본 관념이다.
우리는 집을 짓는데도 일을 하는데도 이 이치 속에서 살려고 했다.
바로 천인합일(天人合一) 전통사상이다.

경회루에도 십이지상이 있다.
사람들은 보통 십이지하면 동물을 떠올린다.
물론 쥐 소 호랑이 토끼 등 동물과 관련은 있다.
이 동물과 십이지 본질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할머니가 귀여운 손주 보고 "내 토끼새끼!"한다.
이 때 토끼는 그 손주를 지칭한다.토끼가 손주는 아니다.
십이지는 동물과 직접 관련은 없다.
우주삼라만상의 변화의 원리를 담고 있는 것이 십이지이다.
동양인들은 계절의 변화를 전체의 운행상태로 파악하였다.
특별한 관심의 대상으로는 북극성과 북두칠성이었다.
천제(天帝)는 사유(思維)를 벌여놓고 북두칠성으로써 운행케 했다고 했다.
북두칠성은 달마다 일진(一辰)씩 옮겨갔다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다고 했다.

북두칠성의 자루 부문을 건(建)이라 한다.
이 건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계방향으로 돌아가면 열두 달이 순차적으로 오고 간다.
정월은 인(寅)의 달 2월은 묘달(卯月) 11월은 언제나 자월(子月)이 된다.
이같은 시간개념이 월건(月建이며 이것이 십이지의 기본적인 시간개념이 된다.
이같이 만물의 존재이치를 12개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이 때 북두칠성의 자루(建)가 가리키는 인(寅) 또는 축(丑)은 시간이 아니라 방위개념이다.
한 식물의 한 살이를 십이지로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계절 순환에 따른 삼라만사의 생(生) 성(成) 쇠(衰) 멸(滅) 현상을 동물로 대신 표상한 것일 뿐이다.
주역에서는 음양이 쇠하고 성하는 이치에 따라 자연생태계의 태동 성장 성숙 수장(收藏) 등의 변화를 설명하였다.
우주는 시간과 공간의 융합체이다. 상하사방을 우(宇)라고 하고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것을 주(宙)라고 한다.
공간의 세계가 우(宇)이고 시간의 시계가 주(宙)인 것이다.
십이지는 시간 개념과 공간 개념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우주질서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상징 부호라고 하겠다.

경회루에 들어가려면 돌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곳에는 세 개의 다리가 있다.
북쪽 다리는 성교(星橋) 별다리이이다. 중간 다리는 월교(月橋) 달다리이다. 쪽 다리는 일교(日橋) 해다리이다.
자시문과 연결된 해다리이다. 자시문은 임금의 침전인 강령전과 가까워 임금만이 이용하는 해다리이다.

1455년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보하던 날 이곳에서는 성삼문과 박팽년의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마침내 1455년 윤 6월 수양은 조카 단종을 압박하여 상왕으로 밀어내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는 날, 예방승지라는 직책 때문에 성삼문(1418~1456)은 어쩔 수 없이
수양대군에게 경회루에서 옥새를 전달했다. 성삼문의 절친한 친구 박팽년(1417~1456)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경회루에서 뛰어내리려 하였으나, 성삼문의 만류로 후일을 도모하게 된다.
『연려실기술』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에는 그 날의 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 그때, 단종이 환관 전균(田鈞)을 시켜 우의정 한확(韓確) 등에게 전교하기를,
“내가 어려서 안팎의 일을 알지 못하여, 간악한 무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 반란의 싹이 끊임없이 일어나니,
이제 장차 대임(大任)을 영의정에게 전하려 하노라.” 하였다.
한확이 깜짝 놀라 아뢰기를, “지금 영상이 나라 안팎의 모든 일을 모두 총관(摠管)하는데,
다시 무슨 대임을 전한다는 말입니까” 하였다.
균이 그 말대로 아뢰니, 임금이 이르기를, “내가 전날부터 이미 이 뜻이 있어서 이미 계책이 정해졌으니, 바꿀 수 없다.
빨리 모든 일을 준비하라.” 하였다.
한확 등이 동시에 아뢰면서 결정을 바꾸기를 강력하게 청하고, 세조가 또한 울며 굳게 사양하였다.
균이 들어가 아뢰니, 조금 있다가 다시 전지를 내리기를 “상서시(尙瑞寺) 관원에게 옥새를 가지고 들어오게 하라.” 하매,
여러 대신이 서로 돌아보고 실색하였다. 또 동부승지 성삼문에게 상서원에 가서 빨리 옥새를 내어오도록 명하고
균을 시켜 경회루 아래로 받들고 나오라 하고, 임금이 경회루 아래에 나와서 세조를 불렀다.
세조가 들어가니, 승지와 사간이 따랐다. 임금이 일어서니, 세조가 꿇어 엎드려서 울며 굳이 사양하였다.
임금이 손에 옥새를 들고 세조에게 주었다.
세조가 사양하다 재가를 받지 못하고 그대로 엎드려 있으니, 임금이 부축하여 나가라고 하고, 군사가 호위하였으며,
정부는 집현전 부제학 김례몽(金禮蒙) 등으로 하여금 선위ㆍ즉위하는 교서를 봉하게 하고, 유사는 의위(儀衛)를 갖추어
경복궁 근정전에 헌가(軒架)를 설치하고, 세조가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백관을 거느리고 대궐 뜰에 나가서 선위를 받았다.
세조가 사정전(思政殿)에 들어가 임금을 뵈옵고 드디어 근정전에서 즉위하였다.」
「세조가 선위를 받을 때에, 자기는 덕이 없다고 사양하니, 좌우에 따르는 신하들은 모두 실색하여 감히 한 마디도 내지 못하였다.
성삼문이 그때에 예방승지(禮房承旨)로서 옥새를 안고 목 놓아 통곡하니, 세조가 바야흐로 부복하여 겸양하는 태도를 취하다가
머리를 들어 빤히 쳐다보았다.
이날 박팽년(朴彭年)이 경회루 못에 임하여 빠져 죽으려 하매, 성삼문이 기어이 말리며 말하기를,
“지금 왕위는 비록 옮겨졌으나, 임금께서 아직 상왕으로 계시니, 우리들이 살아 있으니 아직은 일을 도모할 수 있다.
다시 도모하다가 이루지 못하면 그때 죽어도 늦지 않다.” 하매, 박팽년이 그 말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