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기르면서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던 개념들을 정리해 본다.
1. 나는 권위적인 부모가 되기보다 권위 있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2. 내 아이가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람이 되기보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가 되기를 바랐다
3. 여러 성품 중 내 아이는 ‘절제’할 줄 아는 아이가 되길 바랐다. 절제의 반대말은 탐닉이다.
1. 권위적인 부모와 권위 있는 부모
과거 많은 부모들은 권위를 강조하고 강요하는 자기중심적인 부모였다.
그에 대한 반발로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어떤 권위도 내세우려 하지 않으며
친구 같은 부모 또는 자녀와 끊임없이 타협하고 설득을 시도하는 부모가 되려고 한다.
그 기저에는 권위적인 부모에 대한 반발이 숨어 있으며 억눌려 지냈던 자기 유년에 대한 보상 심리도 있을 것이다.
부모의 권위를 경험하지 않고 자란 자녀들은 자율성과 독창성, 독립심이 커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권위의 바른 속성은 ‘보호’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권위 아래 자라지 못한 아이는 부모의 보호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이 경우 아이들은 늘 불안감과 싸워야 하고 반항적이 된다.
이런 불안의 상태에서 자율성과 독창성, 독립성은 길러지지 못한다.
바른 권위를 제대로 배우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현재의 많은 부모들은
자신이 경험한 권위적인 부모가 되지 않겠다는 결심만 있고
권위 있는 좋은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조차 없다.
그러다보니 아이들과 늘 씨름이다.
매사에 설득하려다 설득당하고,
원칙을 세우기도 전에 타협해 버리고 만다.
일관성 없는 부모가 되어 자녀를 망치는 지름길은 부모의 권위를 포기할 때이다.
권위적인 부모는 일단 자녀와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부모이다.
권위적인 부모는 자녀가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부모이다.
그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여 권위적인 부모가 되어버린 부모이다.
반면 권위 있는 부모의 기본은 자녀와의 신뢰관계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권위 있는 부모의 자녀는 부모가 팥으로 메주를 쑤라고 해도
그 말에 “예‘하고 순종할 자세를 갖추고 있다.
권위 있는 부모는 자녀가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의 말에 즐거움으로 기꺼이 자발적으로 순종할 것을 확신하고
실제로 매 순간 자녀의 순종을 경험하며 기쁨 가운데 자녀를 양육하게 된다.
나는 권위적이 아닌 권위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내 아이에게 좋은 보호자가 되어 주고 싶다.
내 아이는 부모인 나의 말을 좋은 보호막으로 인정하고 기꺼이 순종해주길 기대한다.
부모님의 보호(권위) 덕분에
자신이 겪을 뻔한 수많은 시행착오와 혼돈을 피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