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실루엣, 철탑과 정자가 있는 풍경 계양산 그리고 바다
한남정맥 10간 (징매이고개~문고개)
1. 일자: 2018. 8. 18 (토)
2. 산: 계양산(395m), 할미산(106m)
3. 행로와 시간
[계양산 장미원(06:07)
~ 계양산(06:40~52) ~ (피고개산) ~ 통일아파트(07:30) ~ 인천공항고속도로 밑(07:40) ~ (아래뱃길 도로) ~ 아라마루 전망대(07:56) ~ (도로) ~ 정맥(08:02) ~ (군부대 펜스) ~ 부대정문(08:30) ~ 검단SK아파트(08:46) ~ 아침(08:49~09:09) ~ 종말고개(09:34) ~ 할메산(09:58) ~ (묘지/칡넝쿨) ~ 롯데마트(10:20)
~ 마전동묘지(10:27) ~ 문고개(10:47) / 12.6km)]
차를 몰아 인천으로 향한다. 아침 기운이 서늘하다. 얼마 만에 느끼는 청명함인가. 고속도로에 올라서자 뒤편으로 붉은
기운이 느껴진다. 서녘은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징메이고개
옆 장미원에 차를 세우고 길에 나선다. 장미의 계절이 아닌 탓도 있지만, 이 메마른 계절 꽃밭은 비어 있었다. 가파른 오름이 진득이 이어진다. 돌아보는 풍경에 산 넘어 도시가 깨어난다. 양떼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고개마루에 올라선다. 검은 실루엣,
철탑과 정자가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계양과의 두번째 인연이 이렇게 닿는다.
정상으로 올라선는 계단에서
바다를 본다. 다리 너머로 서해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기대
이상의 첫 풍경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서쪽 방향 어디로 카메라를 돌려도 풍경의 끝은 바다다. 정자와 데크가 있는 정상에 선다. 동녘에는 해무리가 붉게 하늘을
뒤덮고 있다. 붉은 기운이 눈부시다. 한참을 서성이며 풍경을
마음에 담는다. 하늘이 맑아 멀리까지를 본다. 복 받은 아침이다. 좀 더 일찍 집을 나섰으면 하는 생각은 욕심이리라.
피고개 방향으로 내려선다. 선답자들이 길을 잃고 헤맸다는 기록을 본지라, 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등로는 널찍하다. 며느리밥풀꽃이 보라색 자태를 뽐낸다. 오르는 이들도 꽤 있다. 피고개산 부근에서 등로가 나뉜다. 정맥은 좌측이지만 군부대를 돌아가는 길이기에 직전한다. 인적이 드물어지고
멀리서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등로는 선명하다. 아침
햇살을 받은 숲의 색이 풍요롭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가는
이가 있었다. 개 짖는 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이젠 걱정 없다. 뒤돌아
보는 눈에 계양산의 철탑이 보인다. 이어 거짓말처럼 도로가 나타난다.
계양산 누리길을 알린다. 군부대 아파트가 길을 호위한다.
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밑에서 걸음을 멈춘다. 계양의 아침은 기대보다 실제가 근사했다. 먼 바다 풍경도 보고 한적한 숲도 걸었다. 바람도 아직은 선선하다.
도로를 건너자 긴 다리
밑으로 물길이 길게 이어진다. 웬, 물길. 낯선 풍경? 경인아라뱃길, 아직도
왜가 분명치 않은 애물덩어리는 그래도 아침 햇살에 빛나며 근사한 풍경을 선물해 준다. 길게 이어지는
강 어디에도 배 한 척 보이지 않는다. 다리를 건너자 도로가 이어진다.
멀리서 트럼팻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가까워진다. 소리가 정점에 달했을 무렵, 한 중년 신사가 앰프와 악보까지 갖추고 곡을 연주하고 있다. 멋지다. 어디 대회 나가나 보다. 연습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 길을 간다.
도로에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많다. 긴 오르막을 지친 기색 없이 오른다. 종아리 근육이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아라뱃길 전망대에서 잠시 쉬어 간다. 쉼터는
자전거 라이더의 천국이다. 여러 동호회가 진을 치고 있다. 8시가
넘어선다. 어렵게 정맥 길을 찾는다. 오늘도 표지가가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풀 숲을 헤치고 난 길이 희미하게 이어지더니 군부대 펜스를 따라 간다. 살짝 불안해진다. 기억은 왠지 모를 불안을 예고한다. 간간이 조우하는 라이더들이 벗이 되어 준다. 자세히 등로를 살피니, 곳곳에 등장하는 장애물은 훈련용 지형물이었다. 군부대 정문을 지난다. 다시 펜스가 이어진다. 음침한 분위기 곧 등로가 끊길 것 같은 예감은
적중했지만, 이내 등로를 찾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걷는다.
아파트 단지 앞에 선다. 검단SK.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문 연 식당이 있다. 맛나고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했다. 몇 차례 되돌아 나온 끝에 정맥
숲에 선다. 요양원 뒷 산을 넘어 종말고개로 내려선다. 걱정했던
군부대보다 강적은 난개발로 등로가 뒤엉킨 마을 뒷산이었다. 할메산으로 향하는 등로는 많이 묵었다. 희미한 흔적을 따라 용케 할메산까지는 왔다. 내리막 등로에는 묘지가
참 많다. 트랙을 제대로 따라 왔지만 길은 계속 끊긴다. 칡등걸에
걸려 몇 번이나 넘어졌다. 발목에 부하가 이만저만 아니다. 햇살은
따갑게 묘지 위로 쏟아진다. 간간이 읽던 묘지명도 이젠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풀이 덜한 등로 찾기에 혈안이 된다. 결국 돌아돌아 도로에
내려선다. 롯데마트가 괴물처럼 붉은 실체를 드러낸다. 10시 20분이 지난다. 길을 걸은지 4시간이
넘어선다. 서서히 지쳐간다. 물 병을 찾는 횟수가 늘어간다.
망설인다. 조금 더 가보기로 한다. 천주교 마전동 묘원을 넘는다. 따가운 햇살이 목 뒤를 가격한다. 길게 버티지 못한 것 같다. 묘지 정상에는 십자가를 진 예수님과 무릎을 굽힌 성모마리아상이 서 있다. 마음이
먹먹해진다.
도로로 내려선다. 문고개다. 오늘은 여기까지를 선언한다. 물 병에 든 마지막 물을 마신다.
< 에필로그 >
택시를 탄다. 차를 찾아 돌아가야 한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서 천국을 느낀다. 오늘 정맥 길은 전반부는
행복, 후반부는 고역이었다. 식사 이후 걸은 2시간 안쪽의 길에서 잠시 ‘정맥을 이어가야 하나’하는 회의가 들었다. 개발의 그늘에서 이리저리 찢긴 정맥은 환영 받을
상황이 못된. 다음 구간 역시 상황이 오늘과 다르지 않을 듯하여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행복했던 아침 풍경을
먼저 기억에 갈무리 해야지. 계양산 정상에서 바라 본 바다가 있는 풍경을 보는데 집 출발 1시간 남짓이었다면, 그 자체가 큰 축복이었다. 어서 집에 가 남은 두 구간이 기대되는 이유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