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네덜란드는 국토 크기에 걸맞지 않게 대중교통 값이 상당히 비싼 편이다. 버스나 트램도 그렇지만, 이걸 제일 크게 느낀 것은 기차를 탈 때였다. 서교공처럼 적자 장사를 할 수는 없다는 심산인지는 모르겠지만, 암스테르담 센트럴 역에서 틸부르흐 대학교 역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 데에 1시간 반이 걸렸는데, 20유로를 받았다. IND(이민국)업무를 보려고 틸부르흐에서 스헤르토헨보쉬로 겨우 세 정거장 가는 데에도 한국 돈으로 9000원 가까이 들었다. 그것도 편도로. 틸부르흐에서 베를린 가는 기차 삯이 29유로고, 안트베르펜 가는 기차 삯이 19유로인 걸 생각해보면, 뭔가 기분이 애매하게 이상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용 OV-Chipkaart를 만들고, NS홈페이지에서 할인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아마 대중교통이 원체 비싸서 네덜란드 사람들이 더더욱 자전거를 끌고다니는 게 아닐까 싶다.
2.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약간 비싸다. 반 고흐 미술관의 경우, 평일에 받을 수 있는 학생 할인(국제학생증을 제시해야 한다)은 10유로 정도로 합리적이지만, 안네 프랑크 하우스나 하이네켄 체험관은 14유로나 21유로라는 가격을 지불할 정도인지 의문이었다. 로얄 콘세르트헤보우 공연도 자주 보러 다니고 싶었는데, 기본적으로 괜찮은 클래식 공연 티켓은 37~8 유로 이상 가격대에서 형성된다. 그 점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공연장 등의 웹사이트에 먼저 들어가서 가격정보를 확인해보고, 미리 예매를 하는 버릇을 들이자. 그러면 줄도 안 서도 된다. 안네 프랑크가 사람들이 자기가 살던 은신처에 비싼 돈을 내고 와서 구경을 하는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할 지 씁쓸하게 궁금해지긴 한다. 아, 그리고 난 맥주는 기네스다.
3. 게르만 족 아니랄까봐 이 나라도 여러 행정 업무를 우편으로 처리한다. 자연히 일 처리 속도가 느리다. 예를 들어, 현지 은행의 계좌를 만들고, 카드, 암호, 카드 등재용 카드 리더기 등을 전부 따로 우편으로 집에 보내는 것이 그 예다. GGD(보건 담당 기관으로, 코로나 검사 등을 주관하고 있다)에서 무료 코로나 자가검사 키트를 집으로 보내는 데에도 2주일 가까이 걸렸다. IND(이민국)에서 현지 거주허가증을 만들어서 학교로 수령하러 오라고 하는 데에도 2주 가까이 걸렸다. (우연히도 내게 거주허가증을 건네주러 온 직원은 스헤르토헨보쉬 IND에서 내 생체정보를 채취한 바로 그 직원이었다) 기숙사에서 고장난 전기 주전자를 고쳐달라고 한 뒤 실제로 고쳐주기까지 10일이 걸렸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이쯤에서 울화통이 터져서 숨을 거두는 편이다. 물론 그 행정업무를 보는 쪽에서 잊고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에, 너무 수속이 오래 걸린다 싶으면 차분하게 사장님 나와를 시전할 준비를 하고 전화를 돌려보도록 하자.
4. 겨울 날씨가 정말 안 좋다. 3월이 다가오는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1월말에 암스테르담에 내린 직후 2주동안 해를 5번 정도, 그것도 한두시간씩밖에 못 봤다. 기숙사 같은 층에 사는 잉글랜드 출신 친구는 이곳 날씨가 스코틀랜드보다도 나쁘다고 할 정도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내가 비오는 날씨를 좋아하는 편인줄 알았는데,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영하로 내려가는 적이 없을 정도로, 기온이 낮은 것은 아닌데, 바닷바람이 내륙까지 그대로 밀고와서 바람이 강한 편이고, 하루에도 날씨가 여러 번 바뀐다. 이 곳 사람들이 우산을 안 쓰고 다니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이, 비가 강하게 꾸준히 몰아치는 게 아니라 잠깐잠깐 오는 편이고, 바람 탓에 우산이 뒤집히기 일쑤라서 그렇다. 나중에 다른 글에서 적겠지만, 나도 멋모르고 다니다가 이 놈의 날씨 탓에 큰 일을 하나 겪었다. 그렇지만 그 겨울 날씨를 이겨내고 길거리 도처에서 고개를 내미는 보랏빛 크로커스나 수선화 등을 보는 감흥도 각별하다.
5. 치즈와 초콜릿 과자류가 싸고 많다. 빵도 싸다. 이 점은 아주 만족스럽다. 여기서 한달 동안 혼자 먹어본 치즈만 해도 에멘탈(한국의 5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다), 라클레트(라클레트는 치즈가게 아저씨가 하도 많이 썰어주셔서 고역이었다, 청국장 냄새가 생각보다 아주 강한 치즈이기 때문에 주의하자), 브리, 카망베르, 샹탈, 구다, 스틸턴, 오베르뉴, 에담 정도이고, 대부분 내가 살이 찌는 기쁨을 느끼도록 하는 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의외로 야채 값도 싸다. 그러나 인건비가 개입하는 외식 물가는 술이 확 깰 정도로 비싼데, 대학교 학생 식당에서 먹은 단품 칠리 콘 카르네에 가람 마살라 수프만 곁들였더니 13000원이 나오는 것을 본 이후로는 거의 대부분의 끼니를 내가 직접 해먹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나의 요리 실력이 점차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레시피를 틀려버리고 모양새가 안 나도 맛만 좋으면 그만 아니겠냐는 뻔뻔함이다. 아, 그리고 커피도 꽤 많이 마시는 문화권인데, 대체로 스트레이트보단 라떼로 마시는 문화인 것 같다. 이 점은 개인적으론 조금 아쉬웠다.
6. 여기 사람들이라고 다 대마 태우고 다니는 건 아니다. 대마는 담배만도 못하다는 말도 현지 친구들에게서 왕왕 들었다.
7. 여기 사람들이라고 공부 다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팀플을 째거나 줌 수업 때 참여를 하나도 안 하려 드는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학교 도서관에서 수업 교재를 빌렸다고 하자 다들 너 뭐 석사라도 할 거냐고 놀라던 것이 생각난다. 양질의 공교육과 더불어 언어적 유사성 때문에 남녀노소 영어를 아주 잘한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중소도시까지는 이게 사실이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로 내려가면 피부로 체감이 될 정도로 영어 의사소통의 질이 달라진다.
8. 상술했다시피 자전거가 있어야 돌아다니기가 편한데, 평야 지대에 야트막한 건물들이 넓게 퍼진 도시 구조들이 많아서(로테르담 제외) 걷기가 좀 귀찮다. 그럴 땐 현지에서 Swapfiets라는 자전거 대여 업체를 이용하도록 하자. 여러 도시에 지점이 많고, 인터넷 결제를 통해 기본형 자전거를 월 17유로 정도로 대여해준다. (그렇지만 21유로 정도 주고 핸드브레이크가 있는 걸 이용하는 게 낫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무엇보다 수리도 무상이다! 나는 비자카드가 해외에서 인터넷 결제를 하는 데에 무슨 문제가 생겨서 한참동안 이걸 못 이용하다가, 국내 결제 은행을 신한에서 우리은행으로 바꾸고 나서야 결제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금융은 날이 가도 어렵다. 출국 전에 은행 측에 궁금한 것은 전부 물어보고, 해외 서비스센터 전화번호도 알아가자. 이메일로 물어보면 대답도 못 얻는다.
9. 한국이라는 나라가 생각보다 인지도가 있다. 카니발 때도 오징어 게임 의상을 여기저기서 자주 보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는 북한의 핵무장과 분단 상황을 한국 사람들은 평소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는 지 질문도 곧잘 받았다.(물론 대학교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다만, 동아시아에 대해 따로 교육을 실시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이 독일 사람과 프랑스 사람을 딱 보고 구분할 정도로 관찰력이 좋지 않은 이상, 당신을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착각하는 것을 너무 기분 나빠하진 말자. 물론, 버릇없는 얼라들이 니하오를 넘어서 칭총이라는 음절을 입에 올리면 그땐 웃으면서 한국말로 어머니 아버지 안부를 여쭤보자.
10. 적어도 내가 본 바에 따르면 마트 직원이나 청소부, 공사장 인부, 식당 주방 직원 등의 절반 가까이는 유색인종이었다. 이 점이 무엇을 시사하는 지는 아직 판단하지 않기로 한다.
오늘의 회상은 여기까지로 하고, 다음 기회에 다시 뵙는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