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 하반기 문예바다 신인상 | 수필 부문 당선작 1 |
어머니의 앵두나무
김석이
토요일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벌써 일어나 있을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특별히 할 일은 없지만 여든을 넘은 노부모의 말동무가 잠시 되어 주고 텃밭 일을 돕는 것이 주말 일과이다. 어머니는 유별나다고 할 만큼 작은 텃밭에 애착이 많다.
나의 고향이기도 한 산골에는 스무 집 정도의 씨족들이 모여 살았다. 세대수에 비해 경작할 수 있는 토지는 적었다. 제사가 있는 큰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토지가 없어 종중의 토지를 소작하면서 살았다. 우리 집도 소작을 했다.
토지가 없는 것에 마음이 상했던 어머니는 물건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장사를 했다. 언제나 별이 지기 전에 집을 나가고 밤중에 돌아왔다.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자식을 키우고 토지를 샀다. 가난했던 집이 논과 밭이 있는 부자가 됐다.
흐르는 강물을 막아 수력발전 댐이 만들어졌다. 저지대 논들이 물에 잠겼다. 우리 집 논도 물에 잠겼다. 어머니는 힘들게 마련한 토지가 한순간에 물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낙담하고 세상을 원망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주단지로 이사 가거나 도시로 떠났다. 새로 생기는 통영-대전 간의 고속도로가 동네 한가운데로 지나갔다. 그나마 남아 있던 동네의 논밭을 고속도로로 묻어 버렸다. 사람들은 도시로 떠나고 일흔이 넘은 집안 형님 내외분이 종손이라는 이름으로 고향 동네를 지키고 있다. 고향 마을은 빈집이 늘어나고 사람의 온기가 없는 적막한 동네가 됐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 남아 있던 논밭들이 하나둘씩 잡초가 무성한 풀밭으로 변해 갔다.
쫓기듯 도시로 나온 어머니는 여전히 고향 토지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도로에 잘려 나가고 남은 작은 자투리 밭에 평생 마음을 담았던 나무들과 농작물을 심었다. 모서리 구석진 곳에는 음나무, 구지뽕, 가시오가피를 심었다. 대추, 매실, 앵두나무 두 그루는 밭 가운데 쪽으로 심었다.
한번은 앵두나무는 왜 두 그루냐고 물었다. 한 그루는 묘목 집에서 사서 심었고 한 그루는 추동댁 집 앵두나무 잔뿌리 하나를 달라고 해서 심었다고 이야기했다. 너희들 어릴 때 동네 아이들이 그 집 앵두나무로 애를 먹었던 생각이 나서 그랬다고 나를 보며 말했다.
몇 해가 지나 나무에 앵두가 열기 시작했다. 묘목 집에서 사서 심은 앵두나무에는 잎이 무성하고 가지가 휠 정도로 빨간 앵두가 많이 열렸다. 얻어 심은 앵두나무는 잎은 시들고 앵두는 띄엄띄엄 열렸다.
곱던 추동댁도 다 늙었고 앵두나무도 늙었다며 어머니는 지난날을 회상하듯 말했다. 어머니는 꽃이 부실하고 열매도 시들한 그 앵두나무를 베어 버렸다. 그때는 앵두나무 하나 심을 내 땅이 없었고 식구는 많고 먹을 것은 없어 사는 것이 힘들었다고 배곯을 만큼 가난했던 때의 이야기를 했다.
밭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앵두나무는 가지가 자라 큰 나무가 되어 가고 빨간 앵두가 해마다 많이 열렸다. 앵두나무가 크고 무성해지자 앵두나무 주변에 있던 채소들이 시들해져 갔다. 어머니는 앵두는 과일도 아니고 채소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빨간 열매로 사람을 혼란하게 한다고 없애 버리라고 했다. 나는 잔가지들을 잘라 내고 굵은 가지 세 개를 남긴 채 밭 뒤의 구석진 곳에 옮겨 심었다.
뿌리와 가지가 잘려 구석진 곳으로 옮겨진 앵두나무는 잎이 시들어 갔다. 어느 날 어머니는 몸통 가지만 남은 앵두나무를 만지며 ‘죽지 말고 살아라. 제발 죽지 말고 살아라.’라고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는 틈틈이 앵두나무 옆 땅을 밟아 주었다. 그해 앵두나무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어도 앙상한 가지 그대로였다.
아련히 잊혀 가는 일을 생각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지 후인지도 기억이 흐리다. 나는 어릴 때 나무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했고 뒷산에 놀면서 큰 소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졌다. 어깨뼈가 부러지고 머리에서 피가 났다. 혼절한 나를 어머니가 업고 이웃 마을 작은 의원이 있는 곳으로 좁은 길을 따라 뛰었다. ‘희야, 자면 안 된다. 잠들면 안 된다.’ 어머니의 흐릿한 목소리와 울먹이는 거친 숨소리, 땀에 흠뻑 젖은 몸 냄새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사람들은 내가 죽는 줄 알았다. 나는 병원을 두 번 옮겨 이틀이 지난 후에 깨어났다. 어머니는 나에게 생명을 두 번이나 주어 세상 밖으로 보내 준 것이다. 간혹 그때 일을 내게 이야기하며 늘 조심하며 살라고 충고했다.
이듬해 봄이 되자 나무들은 때에 맞추어 푸른 싹이 났다. 앵두나무는 앙상한 가지 그대로였다. 어머니는 앵두나무가 살아날 것이니 파내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다. 수시로 앵두나무 주변 땅을 밟아 주었다. 두 주가 지나자 앵두나무 가지에 새순이 났다. 어머니는 ‘살아 있어 고맙다.’라며 하며 앵두나무를 만졌다. 어머니는 옮겨 심은 앵두나무가 살아 있을 생명임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무더운 여름 추운 겨울도 맞서 가며 평생 궂은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84세를 지나 몸은 늙고 많이 야위었다. 다리는 절고 허리는 굽어 걷기조차 힘들어하는 몸으로 여전히 밭으로 간다. 나는 주말이면 부산에서 진주까지 가는 장거리 운전을 해서라도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 고향 밭으로 향한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으려는 어머니를 부축해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관절은 성한 곳이 없고 위도 많이 상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하기는 너무 늦었고 간혹 많이 아플 것이라고 했다. 지금 상태를 유지하도록 쉬면서 약을 먹으라고 권했다. 나는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으면 나을 것이라고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약해져 간다.
5월이 되면 어머니가 그토록 애정을 담은 앵두나무에 빨간 앵두가 주렁주렁 열린다. 사람들이 떠난 산골에는 아이들 대신 산새들이 바쁘게 짹짹거린다.
고향 작은 밭 앵두나무는 나에겐 생명의 전령사이자 그리움을 가득 품은 망향비望鄕碑이다.
| 2021 하반기 문예바다 신인상 | 수필 부문 당선소감 | 김석이 |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출장이 잦은 직업이라 공단 지역 외근 중 잠시 쉬고 있는 시간에 당선 전화를 받고 순간 놀랐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저에게 당선의 영광을 주신 문예바다에 감사드립니다. 평생교육원의 야간 수필창작반에서 글로써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과 수필의 의미를 배우고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글쓰기 소재로 삼겠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소재로 삼고자 했던 일하는 사람 중에 가장 가까이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선택했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에 애착이 많고 사람은 살아 있는 한 일을 해야 한다고 늘 자식들에게 말했습니다. 80살이 넘어서도 여전히 쉬지 않는 일상의 모습은 나에게 신선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지쳐 가는 직장생활에 일이 아닌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4년 전 평생교육원 야간 수필 창작과정에 불쑥 들렀다가 지도교수님의 지도에 매료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글쓰기 방법과 수필의 의미를 지도해 주신 지도 교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평생교육원 수요 야간반에서 주경야독 학업을 같이하는 선생님들과 기쁨을 같이하고 싶습니다. 곁에서 말없이 성원해 준 가족들도 감사하며, 저에게 수필가의 첫 계단을 밟게 해 준 문예바다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생명과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 편 수필로 세상에 알리도록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김석이 | 경남 진주 출생. 대한상공회의소 부산인력개발원 근무. 부경수필문인협회 회원. 2020년 제41회 근로자문화예술제 문학분야 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