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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확실히 알자 (롬7:22-25)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우리는 참 많은 정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옛날에 비해 아는 것도 참 많아졌습니다. 최첨단 과학의 영향을 받아 많은 전문적인 부분까지 아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아는 것이 병이란 말처럼 알지 않아도 좋을 것까지 알고 사는 아픔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모든 것을 잘 알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나란 어떤 존재인가? 특히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백성으로서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것을 몰라도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아는 것은 무엇보다 필요한 일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성경 속에서 나를 확실히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다고 나를 확실히 아는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 표현되는 내 얼굴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의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근심 속에 살아갑니다. 그 마음에 품은 걱정, 근심의 요소가 얼굴에 모두 나타납니다. 그래서 얼굴만 보면 그 사람이 행복한 지, 불행한 지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나이 40이 넘으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생긴 습관이나 사상이나 생각을 고치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40이 되기 전에 자신의 얼굴은 자신이 만들고 다듬어야 합니다. 얼굴은 화장품을 바르거나 성형수술을 한다고 변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변하면 얼굴이 변합니다. 특히 마음 중심에 하나님으로 충만하면 그 얼굴에 빛이 납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얼굴은 빛이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인간 존재의 깊은 내적 갈등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선함을 추구하며 살기를 간절히 갈망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그 고뇌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고뇌는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늘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살고자 하지만 상황과 형편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갈등합니다. 바울도 이러한 문제로 갈등하다가 결국 복음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1. 과거에는 죄인이었습니다
본문 22-23절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인간은 누구나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었던 죄인입니다. 바울 역시 철저한 율법주의자였지만 생명에 대한 희망보다는 늘 무거움과 정죄만 있었습니다. 마음에서는 늘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마음에 원치 않는 죄의 법에 끌려 다니는 자기를 발견했습니다. 결국은 선한 마음을 품고는 있지만 그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한 존재가 인간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모든 소망을 앗아갑니다. 죄로 인해 타락하여 무능해진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교만의 대가입니다. 하나님을 도전하면서 그 관계가 깨지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존재는 불안과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려고 온갖 노력해도 헛수고일 뿐입니다. 이는 마치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일 뿐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특히 죄의 문제는 어떤 노력으로도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요, 복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이면 다 되는 줄 알고 돈에 매여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돈으로 집(house)을 살 수 있지만 가정(home)을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침대(bed)를 살 수 있지만 잠(sleep)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시계(clock)는 살 수 있어도 시간(time)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책(book)을 살 수 있어도 지식(knowledge)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지위(position)는 살 수 있지만 존경(respect)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약(medicine)은 살 수 있지만 건강(health)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피(blood)는 살 수 있어도 생명(life)을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친구(friend)는 살 수 있어도 친구의 사랑(love)은 살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돈으로 사랑을 살수는 없습니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돈으로 엮여 있습니다. 심지어 인간 관계도 돈에 따라 변화가 심합니다. 그래서 돈이 최고라고 모두다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돈은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돈은 이 사회의 불편과 혼란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필요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러시아 속담에도 “돈이 말할 때 진리는 잠잠해 진다”는 말이 있는 모양입니다.
돈으로 성지와 성전도 살 수 있지만 죄사함과 구원은 살 수 없습니다. 현대 문명과 물질 문화로 첨단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나 그 무엇으로도 죄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만나기 전까지 우리 모두는 철저한 죄인이었습니다. 지옥의 운명이었습니다. 사탄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여기에는 희망과 구원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없는 인간은 멸망과 어둠의 존재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나의 존재를 깨달을 때 은혜와 감사의 삶을 살게 됩니다. 곤고한 사망의 존재였음을 깨닫고 더욱 겸손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지옥과 사망에서 건져 주신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거룩한 사건이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늘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어느 가정이 모두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어머니가 세례문답을 받게 되었는데 먼저 믿은 며느리가 시어머니 세례문답 공부를 시켰습니다. "어머님, 목사님이 '예수님이 누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나요?' 하고 물으면 어머니는 무조건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세요"라고 단단히 말씀해 드렸습니다. 이윽고 세례 문답실에 들어가자 목사님이 물으셨습니다. "자매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지요?"라고 목사님이 물으시자 며느리에게 이미 배운터라 그 시어머니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네 우리 며느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지요.”
주님은 며느리 죄 때문이 아니라 내 죄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또한 내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 안에서 과거의 문제는 온전히 해결 된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감격과 기쁨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현재에는 구원받았습니다
본문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현재 나를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물질과 명예를 소유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는 많은 재산을 남겨두고 죽은 사람이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하고 그저 빈손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나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구원의 현재성을 통해 감격과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기뻐할 이유는 어떤 조건의 성취 때문이 아닙니다. 현재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구원받은 현재의 나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광 돌립니다. 그리고 이웃을 향하여 사랑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섬김과 나눔을 통해 주의 은혜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구원의 복음을 힘껏 증거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망의 몸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곤고한 존재인 우리를 가장 밝고 평화로움을 누리며 살도록 인도하시는 주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제 매 순간 주의 손에 붙들려 사는 현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저 남을 뒤따라가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 바라보며 그 능력의 손에 붙들려 사는 소망적 존재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런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오정과 손오공이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시험을 치르러 어느 회사에 갔습니다.
손오공이 먼저 면접장에 들어갔습니다. "15번 손오공입니다."
"자네 축구 좋아하는가?" "예, 좋아합니다."
"축구 선수 중에 누굴 가장 좋아하는가?" "예 옛날에 차범근이었는데 요즘은 박주영입니다."
"산업혁명이 언제 시작됐지?" "예, 18세기입니다."
"하나님은 있다고 믿는가?" "예, 과학적으로 증명은 안되었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면접을 마치고 나간 손오공은 벌벌 떨고 있는 사오정이 불쌍해서 첫 번째 질문부터 순서대로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오정은 열심히 외우면서 자기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름이 호명되자 사오정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17번입니다." 사오정이 이름을 말하지 않자 심사위원이 묻습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예, 옛날에는 차범근이었는데 지금은 박주영입니다."
"뭐? 자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나?" "예, 18세기입니다."
"자네 혹시 바보 아닌가?" "예, 과학적으로 증명은 안되었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같이 흉내내고 따라가는 사람이 있고 앞서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순서가 바뀌면 큰 일입니다. 전혀 다른 내용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도 흉내 낼 수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구원받을 수 없었던 죄인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나는 최고의 선물,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의 자녀 됨의 감격 속에서 늘 밝고 기쁘게 살아가는 생활되시기 바랍니다. 주의 손에 붙들려 더욱 힘있게 살아가는 샘물가족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3. 미래에는 천국에서 삽니다
본문 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바울은 비참한 상황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그를 새롭게 했고, 놀라운 기쁨의 삶을 살게 한 것입니다. 특히 심한 고난과 아픔 속에서는 미래의 소망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천국에 대한 소망이요 확신입니다.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선을 행하기를 소원하지만 항상 죄의 법을 따르는 갈등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스스로를 정죄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부족하고 연약함에도 이제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생명과 평안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뿐이었던 삶이 이제는 기쁨과 소망이 가득한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죄악의 그늘에서 한숨쉬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드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로 바뀐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순탄한 생활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계속되는 실패와 아픔 속에서도 그것을 딛고 전심전력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고난과 아픔을 잘 이겨내고 영광의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사실 모든 것은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성공의 열매는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 리처드 바크(Richard Bach)의「갈매기 조나단」을 아시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습니다. 저도 오래 전에 읽었지만 마음 속에 깊이 남는 책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작품이 무려 열여덟 군데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절했던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1970년에 맥밀란(Macmillan) 출판사가 간행했습니다. 1975년 미국에서는 이 책이 700만 부나 팔렸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안되는 일이 계속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꿈을 가지고 계속 전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열매를 거두게 한 것입니다.
성공의 과정에 있어서 굳센 신앙과 의지는 꼭 필요합니다. 실패한 사람들은 재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힘들고 잘 안된다고 너무 빨리 포기해서 성공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분명한 비전을 품고 달려나가는 열정에 기다리는 수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의 성공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데 저절로 성공이 따라오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소망을 붙들고 끝까지 해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인생은 무엇입니까? 구원받아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최고의 충성과 헌신의 삶을 살면 은혜로 채워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더하여 주시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사람 요셉이 그랬고, 다윗이 그랬으며, 솔로몬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그러므로 성공한 인생을 사는 비결은 주님 앞에 충성하고 모든 일에 헌신하고 하나님의 일로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자 사명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우리 삶의 모든 문제의 해결점은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수행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각기 관심 있는 곳에 집중하기 마련입니다. 구원의 은혜와 천국의 소망에 깊은 관심을 두는 사람은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집중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 여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여전도회 회장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의 별명은 "땅 사랑" 집사입니다. 부동산투기에 눈이 밝았고, 아주 거기에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부동산 투기가 한창 기승을 부릴 즈음, 한몫 잡으려는 땅 집사는 이번 주일에 여전도회 헌신예배가 있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일주일 내내 열심히 아파트와 땅을 보러 발이 닳도록 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큰 건하나 잡지 못한 채 허겁지겁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때서야 여전도회 헌신예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런 헌신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땅 집사는 회장이니 사회를 맡아서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그래도 여유 있고 노련하게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신앙고백을 한 후 찬송을 부를 시간이었습니다. 그 땅 집사 회장은 거룩하게 자신 있게 한 마디 했습니다!
"우리 모두 찬송가 109동(!)을 부르겠습니다!"
교회에 앉아 있어도 관심이 땅에 있고, 아파트에 있으면 찬송가도 102동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지만 천국에 관심을 두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관심을 집중하고 헌신하며 오늘 주어진 삶을 복되게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주 앞에 충성하고 헌신하면 나머지는 다 덤으로 얻게 되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죽도록 충성하여 미래에 천국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샘물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과거에는 죄인이었습니다. 현재에는 구원받았습니다. 미래에는 천국에서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사람은 절망과 사망과 지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천국백성 된 것을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왕이면 복된 신앙의 삶을 살도록 최고의 헌신과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 있는 복된 나의 정체성을 바로 확립하고 오늘도 웃으며, 감사하며,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웃음과 행복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며 사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