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2
나는 바로 다음날 친구들 모임 참석차 서울 갈 일이 생겨서 약속 장소로 가기 전에 성북동을 먼저 찾아갔다. 전날의 흥분이 가라앉기 전에 꼭 들러서 내 고향 성북동 구석구석을 두 눈에 가득 담고 싶은 마음이었다
전철 4호선 한성대역에서 내려 성북동 방면 출구로 나와 1111번 버스를 타고 5분쯤 가면 내가 다니던 성북국민학교 후문인데 그곳이 예전 조선시대에 선잠단이 있던 자리다.
조선 초기에 한양 도성을 축조할 때부터 성벽에서 10리 되는 곳은 성저십리(城底十里)라는 일종의 그린벨트 개념이 있었다.
즉, 성 바깥으로 십리(4km) 이내 지역은 일체의 분묘 조성이나 벌목을 금하여 자연 그대로 보존한다는 원칙이다.
그때 예외로 인정된 곳 두 군데가 있었는데 동대문 밖 제기동의 선농단(先農壇, 사적 제436호)과 또 하나가 바로 성북동의 선잠단(先蠶壇, 사적 제83호)이다.
선농단에서는 왕들이 해마다 친히 밭을 경작하며 농경을 장려하는 친경(親耕)을 베풀었고, 선잠단에서는 왕비가 누에를 치는 양잠에 직접 참여하는 선잠제가 열렸다. 이를 친잠(親蠶)이라고 한다. 두 제단은 국가가 백성들의 먹는 것과 입는 것을 보살펴야 함을 확인하는 의례였다.
선잠단터에서 조금만 더 가서 다음 정거장 '쌍다리'에서 내리면 앞에 금왕돈가스 집이 보이고 그 오른쪽 옆길로 들어서면 바로 '수연산방'을 만난다. 이곳은 지금 이태준의 손녀가 한옥 카페로 영업을 하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월·화요일은 휴업이라는 안내문이 대문에 붙어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사진 한 장으로 달랜다.^^
저기 사진 뒤의 안내판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다음으로 갈 곳은 '예썰의 전당'에는 안 나왔지만 성북동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심우장'으로 정했다. 찾을심 尋, 소우 牛, 별장장莊. 만해 한용운이 자신의 거처 이름으로 삼은 심우장! 그 뜻이 궁금하다.
이 이름은 불교 선종(禪宗)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수연산방에서 심우장으로 가기 위해 한양 성곽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많이 익숙한 얼굴의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만해 한용운이다. 그 옆에는 그의 대표작 <님의 침묵>도 보인다. 그의 형형한 눈빛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낭만적인 시라는 느낌이다. 고등학교 때 열심히 암송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도 '님'의 옆에 나란히 앉아서 쎌카를 찍는다.
매서우리만치 형형한 그의 눈빛과 작별 인사하며 이제 그가 거처하던 곳을 찾아 계단을 오른다.
두 다리가 뻐근할 정도로 한참을 올라가야 심우장에 닿는다. 관리인인듯 보이는 이가 어서 오라고 반갑게 맞아 준다.
우선 인증샷부터 남기고...
꼼꼼히 집 안을 살펴본다. 부엌 한 칸, 안방 두 칸, 건넛방 한 칸 해서 총 네 칸짜리 한옥이다. 이곳이 바로 앞에서 말했던 한양 성곽 바로 밑에 위치한 북정마을이다. 심우장은 이곳 북정마을의 유일한 한옥인 셈이다. 만해는 이 한옥을 조선총독부가 있는 도성 성곽의 바로 밑에 지으면서 총독부를 등지고 북향을 택하는 결기를 보였다. 그의 결기는 일본에 고개 숙이기 싫어서 세수할 때도 곧바로 선 자세로 세수를 해서 위아래 옷이 다 젖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또 한번은 친일로 변절한 육당 최남선이 심우장을 방문했었는데 만해가 "내가 알던 육당은 이미 죽어서 장례까지 치러버렸소."라고 일갈하며 내쫓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심우장 순례까지 마친 나는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인 종로 쪽으로 가기 위해 걸어서 성곽을 넘어서 와룡공원을 지나 명륜동으로 내려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종로까지 걸은 걸음이 휴대폰 만보기에 만 이천 보로 찍혔다.
좌측으로 방금 넘어온 한양 성곽이 보인다.^^
오늘 순례는 여기까지지만 성북동 구석구석에는 아직 소개하고 자랑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우선 떠오르는 곳은 최순우 집터와 길상사다.
한성대역에서 가까운 최순우 집터는 내가 예전에 두어 번 찾아가서 도심 속 고요함에 머물렀던 기억이 있고, 길상사는 절집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성모 마리아를 닮은 보살상을 만나러 꽤 여러 번 다녀왔던 곳이다.
하지만 이번 kbs의 '성북동 연가' 특집을 통해 성북동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으니 이제 보는 성북동은 이전하고 결코 같지 않을 거라는 기대가 크다. 이런 기대를 갖고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서울 올라가서 성북동 순례길을 밟아볼 생각에 벌써 마음은 부풀고 있는 중이다.^^
2023. 3. 21
to be continued...^^
첫댓글
신부 님!
멋진 이모티콘 감사합니다.^^
책으로 내셔도 좋을 듯~
농담이겠지만 과찬이십니다.
#3도 올렸으니 즐감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