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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재와 망기당의 무극태극설 뒤에 쓰다
정축년(1517, 중종12) 〔書忘齋忘機堂無極太極說後 丁丑〕 망재는 진사 손숙돈(孫叔暾)이고 망기당은 진사 조한보(曺漢輔)인데, 모두 경주(慶州) 사람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망재의 무극태극 논변은 모두 육상산(陸象山)에게서 나온 것인데, 옛날에 주자(朱子)가 상세하게 논하였기 때문에 내가 감히 말을 덧붙일 것이 없다. 망기당의 답서로 말하자면 오히려 염계(濂溪)의 뜻에 근본한 것으로, 논의가 매우 고차원적이고 식견 또한 매우 원대하다. 그리고 그가 말한 《중용(中庸)》의 이치 역시 무척 심오하고 폭넓어서 그 요지를 얻었으니, 매우 그럴듯하여 웬만큼 근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지나치게 고원하여 우리 유가(儒家)의 학설에 위배되는 것이 있으니, 내가 이에 대해 말해 보겠다.
이른바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란, 이 도가 애초에 물질적인 형상은 없으면서도 실제로는 만물의 근저(根柢)가 됨을 형용한 것이다. 이는 바로 주자(周子 주돈이(周敦頤))가 도의 본체를 환히 파악하고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어 용감하게 곧장 나아가 남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도리를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후대 학자로 하여금 태극의 묘리는 유(有)와 무(無)에 속하지 않고 방소(方所)와 형체에 떨어지지 않음을 환히 알게 하였으니, 참으로 많은 성인들이 전하지 않은 비결을 얻은 것이다. 이것이 어찌 태극의 위에 다시 이른바 무극이 있다고 여긴 것이겠는가.
이 이치는 비록 지극히 고원(高遠)하고 오묘한 듯하지만 그 실체가 깃든 바를 탐구해 보면 또 지극히 비근(卑近)하고 지극히 실질적이다. 만약 이 이치를 강구해 밝히고자 하면서 그저 심오하고 어둡고 공허하고 요원한 곳으로만 달릴 뿐이요 다시 지극히 비근하고 지극히 실질적인 곳에서 구하지 않는다면, 이단의 공허(空虛)함과 적막(寂寞)함에 빠지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다. 이제 망기당의 논설을 상세히 살펴보면, “태극은 곧 무극이다.”라고 한 말은 옳지만, “어찌 유(有)와 무(無)를 논하고 안과 밖을 나누어 명수(名數)의 말단에 구애되겠는가.”라고 한 것은 잘못되었다. 그리고 “그 대본(大本)을 얻는다면 인간관계와 일상생활 속에서의 갖가지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무엇 하나도 달도(達道)가 아닌 일이 없다.”라고 한 말은 옳지만, “대본과 달도는 혼연(渾然)히 하나가 되니, 그렇다면 어디에서 다시 무극과 태극, 유중(有中)과 무중(無中)의 간격이 있음을 논하겠는가.”라고 한 것은 잘못되었다.
이 극(極)의 이치는 비록 고금을 꿰뚫고 상하에 통하여 혼연히 하나가 되지만, 그 정조(精粗)와 본말(本末), 내외(內外)와 빈주(賓主)의 구분은 그 속에 찬연(粲然)하여 조금의 차질도 용납될 수 없는데, 이것을 어찌 ‘말할 만한 것이 못 되는 명수’라고 함부로 말하겠는가. 그리고 그 본체가 내 마음에 갖추어진 것은 비록 대본(大本)과 달도(達道)가 애초에 두 가지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 가운데는 저절로 체(體)와 용(用), 동(動)과 정(靜), 선(先)과 후(後), 본(本)과 말(末)을 분별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있다. 어찌 그 혼연함을 얻으면 다시는 차례를 논할 것이 없고, 반드시 적멸(寂滅)과 허무(虛無)의 경지에 이른 뒤에야 이 도의 극치가 되는 것이겠는가.
지금은 이른바 혼연한 것이 위대한 줄만 알아서 극도로 논하고, 찬연한 것이 애당초 서로 분리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 주장이 합치기를 좋아하고 분리하기를 싫어하며 실질적인 것을 버리고 허무한 데로 들어가서 끝내 눈금 없는 저울과 자가 되고야 만다. 이 어찌 극도로 고원한 것을 추구하여 멈추는 바가 없음이 아니겠는가.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주자(周子)가 각별하게 사람들을 위해서 특별히 도체(道體)의 극치를 드러낸 것인데, 공부할 곳을 말함에 있어서는 단지 ‘중(中)ㆍ정(正)ㆍ인(仁)ㆍ의(義)로써 정하되 고요함에 중점을 둔다.’라고 하고 ‘군자는 이것을 닦기 때문에 길하다.’라고 말했을 뿐이요,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이 ‘무극(無極)의 참됨’을 보아서 굳게 지키도록 하지 않았다. 대개 이 이치의 근원을 궁구해 보면 비록 지극히 미묘하여 온갖 일과 온갖 변화가 모두 여기에서 나오지만 실제로는 가리킬 수 있는 형상(形狀)이 없다. 공부를 논한다면 단지 중ㆍ정ㆍ인ㆍ의가 바로 이 일을 이해하는 곳이 되니, 별도로 한 가지 근본적인 공부가 또 학문을 강론하고 일에 대응하는 것 이외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지금 망기당의 논설은 이러한 공부를 모조리 내버리고 대번에 무극 태허의 본체를 내 마음의 주재로 삼아, 천지 만물로 하여금 나를 중심으로 모이게 하여 운용에 막힘이 없게 하고자 한다. 이것은 하늘에 오르려고 하면서 사다리가 없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바다를 건너려고 하면서 교량이 없는 것을 헤아리지 않는 것과 같은 격이니, 마침내 허무하고 고원한 지경에 떨어져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대개 망기당의 평생 학술이 그릇된 것은 공허함에 그 병통이 있는데, 병통의 근원을 내가 그 글에서 찾아내었다. “태극의 체는 본래 적멸하다.〔太極之體, 本來寂滅.〕”라고 하여 ‘멸(滅)’ 자로 태허의 본체를 설명하였으니, 이는 단연코 우리 유가의 학설이 아니다.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라는 것을 ‘적(寂)’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극한 적(寂) 가운데에 이른바 “아! 심원하여 그치지 않는다.〔於穆不已〕”라는 것이 존재하여 화육(化育)의 유행이 위아래에 밝게 드러나니, 어찌 다시 ‘멸(滅)’ 자를 ‘적’ 자 아래에 붙일 수 있겠는가.
시험 삼아 마음〔心〕을 가지고 말해 보면,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정(情)이 발하지 않아 혼연히 중(中)의 상태로 있는 것은 이 마음의 본연의 체로 ‘적(寂)’이라고 할 수 있다. 감응하여 마침내 통하는 데 미쳐서는 희로애락의 정이 발함이 모두 절도에 맞아 본연의 묘리(妙理)가 이에 유행(流行)하게 되니, 선유가 이른바 “우리의 적(寂)은 고요하되 감응한다.”라는 것이 이것이다. 만약 적하고 또 멸(滅)한다면 이것은 말라죽은 나무나 불 꺼진 재일 뿐이니, 천성을 멸하는 데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망기당은 ‘본래적멸(本來寂滅)’이라는 구절 아래에서 멸(滅) 자를 빼고 말하지 않았으나, 도리어 “비어 있되 신령하고 적연하되 오묘하니, 신령하고 오묘한 본체가 태허에 충만하여 곳곳에서 드러난다.〔虛而靈, 寂而妙, 靈妙之體, 充滿太虛, 處處呈露.〕”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망기당도 그 실질적인 이치를 말하면서 이 ‘멸’ 자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이 어찌 논리가 궁하여 발뺌한 말이 아니겠는가.
한(漢)나라 이후로 성인의 도가 막히고 사설(邪說)이 퍼져 그 화가 인륜을 망치고 천리를 멸하는 데까지 이르러 지금까지도 그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모두 이 ‘멸’ 자가 해가 되어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망기당의 평생 학술과 언어 및 위와 같은 논의의 잘못됨이 모두 이 ‘멸’ 자로부터 나왔으니, 내가 변파(辨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가 초연히 한 이치의 혼연한 본체를 잘 이해하여 분명히 알고 의심하지 않은 점으로 본다면, 실로 지금 세상의 속유(俗儒)와 고승(高僧)들이 거의 미칠 바가 아니니, 지혜롭되 지나친 자라고 할 수 있다.
진실로 그처럼 고원한 식견을 가진 망기당이 도를 아는 군자를 만나서 그 유사함을 변별하여 참된 데로 돌아오고 그 공허함을 버리고 실질적인 것으로 돌이킨다면, 그의 고명함은 우리 도의 고명함으로 바뀌고 그의 원대함은 우리 도의 원대함으로 바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공자, 맹자, 주자(周子), 정자(程子) 같은 분이 없으니, 슬프다!
[주1] 망재(忘齋)와 …… 쓰다 : 이언적이 27세이던 1517년(중종12)에 지은 글이다. 망재 손숙돈(孫叔暾)은 이언적의 셋째 외숙으로, 부친은 손소(孫昭)이다. 자는 숙경(叔卿)이며, 1489년(성종20)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성종 때 척불소(斥佛疏)를 올렸다고 한다. 망기당의 이름은 조한보(曺漢輔)로,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정재(靜齋) 조상치(曺尙治)의 손자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나, 뒤에 실린 이언적의 편지 투식을 보더라도 이언적보다 최소한 2, 3십 년은 연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의 유생이 되었으나, 1473년(성종4) 성균관 관원들을 배척하여 동맹휴학을 하였다가 장형(杖刑)을 받고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당하였다. 그 뒤 경전을 연구하여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는데, 특히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손숙돈과 조한보가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과 관련하여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에 대한 논변을 벌였는데, 이를 본 이언적이 이 글을 지어 망기당을 비판하면서 태극무극 논변이 이언적과 조한보 사이로 옮겨졌다. 이다음 해인 1518년 이언적은 망기당 조한보에게 답하는 편지 4편을 보냈으며, 이때 〈망기당의 시에 차운하다〔次忘機堂韻〕〉 시 5수도 지었다. 이언적은, 조한보의 무극태극설이 주돈이(周敦頤)의 학설에 근본하였지만 그 논리가 지나치게 고원(高遠)하여 불교 쪽의 색채를 띠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다만 이언적의 이 글은 이언적의 독창적인 논리라기보다는 많은 부분에서 주희(朱熹)의 글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글의 전개가 인용 형식이 아닌 경우가 섞여 있기 때문에 번역문에서 원래의 출전을 일일이 밝히지는 못하였다. 아울러 이 글과 아래 4편의 편지는 《태극도설》과 주희의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들 글을 전제로 언급된 내용들을 번역문이나 주석으로 밝혀 주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밝혀 둔다.
[주2] 육상산(陸象山) : 송나라 유학자 육구연(陸九淵, 1139~1193)이다. 자는 자정(子靜), 호는 상산이다. 주희(朱熹)와 같은 시대를 살며 유학자로서 쌍벽을 이루었으나, 주희가 끊임없는 탐구와 연구를 강조했던 데 반해, 육구연은 도(道)의 가장 높은 지식은 내면의 성찰과 자습(自習)을 끊임없이 실천함으로써 습득된다고 주장하였다. 육구연은 ‘무극이태극’에 대해서, 《역(易)》의 원리는 ‘태극(太極)’이라고만 하면 되는데 ‘무극(無極)’이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비판한 바 있다.
[주3] 주자(朱子)가 …… 때문에 : 《주자대전(朱子大全)》 권36에 실려 있는 〈답육자정(答陸子靜)〉 두 편의 내용을 가리킨다.
[주4] 이른바 …… 것이다 : 이 부분은 《주자대전》 권80 〈소주주학염계선생사기(邵州州學濂溪先生祠記)〉와 《성리대전》 권1의 〈태극도부록(太極圖附錄)〉의 총론(總論)에 나오는 내용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은 주돈이의 《태극도설》의 첫 구절로, 우주 만물의 근원인 《역(易)》의 원리에 대한 설명이라 한다. 주희는 이를 형상은 없지만 이(理)는 존재한다는 의미로 “무극이면서 태극이다.”라고 해석하였다.
[주5] 이는 …… 것이다 : 《성리대전(性理大全)》 권1에 실려 있는 〈태극도부록(太極圖附錄)〉의 총론(總論) 부분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6] 유중(有中)과 무중(無中)의 간격 : 주희가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에서 ‘무극이태극’에 대해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지만 실제로는 조화의 중심축이고 만물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무극이면서 태극이다.’라고 말했으니, 태극 밖에 다시 무극이 있는 것이 아니다.〔上天之載, 無聲無臭, 而實造化之樞紐, 品彙之根柢也. 故曰無極而太極, 非太極之外復有無極也.〕”라고 풀이하고, 육구연에게 준 편지에서는 이 부분을 두고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라는 것은 유 가운데서 무를 말한 것이고, ‘무극이면서 태극이다.’라는 것은 무 가운데서 유를 말한 것입니다.〔上天之載, 是就有中說無; 無極而太極, 是就無中說有.〕”라고 한 바 있다. 《性理大全 卷1》 《朱子大全 卷36 答陸子靜》
[주7] 지금은 …… 만다 : 이 부분은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 뒷부분에 첨부된 주희의 논(論) 가운데 나오는 내용을 가지고 논리를 전개한 것인데, 글자 구성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朱子大全 遺集 卷2》 《性理大全 卷1》
[주8]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 선유는 주희이다. 아래 인용문은 주희가 제자 요덕명(寥德明)에게 준 편지와 〈태극도설해부록(太極圖說解附錄)〉에 나오는 내용이다. 《朱子大全 卷45 答寥子晦》 《性理大全 卷1》
[주9] 중(中) …… 길하다 : 주돈이의 《태극도설》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희는 여기서의 ‘중ㆍ정’이 예(禮)와 지(智)에 해당한다고 풀이하였다. 즉 ‘중’은 예의 표준이고 ‘정’은 지의 본체이자 지의 절실한 곳으로, ‘예지’라고 하는 것보다 ‘중정’이라는 글자가 더욱 실질적이고 확정적이라고 하였다.
[주10] 하늘의 …… 없다 : 주희가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에서 ‘무극이태극’에 대해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지만 실제조화의 중심축이고 만물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무극이면서 태극이다.’라고 말했으니, 태극 밖에 다시 무극이 있는 것이 아니다.〔上天之載, 無聲無臭, 而實造化之樞紐, 品彙之根柢也. 故曰無極而太極, 非太極之外復有無極也.〕”라고 풀이하고, 육구연에게 준 편지에서는 이 부분을 두고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라는 것은 유 가운데서 무를 말한 것이고, ‘무극이면서 태극이다.’라는 것은 무 가운데서 유를 말한 것입니다.〔上天之載, 是就有中說無; 無極而太極, 是就無中說有.〕”라고 한 바 있다. 《性理大全 卷1》 《朱子大全 卷36 答陸子靜》
[주11] 아 …… 않는다 : 《중용장구》 제26장에서 《시경》 〈유천지명(維天之命)〉의 구절을 인용하여 천도(天道)에 대해 설명한 대목이다.
[주12] 희로애락(喜怒哀樂)의 …… 것 : 《중용장구》 제1장에 “희로애락의 정이 발하지 않은 상태를 중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고 하니, 중이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란 천하의 공통된 도이다.〔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13] 선유가 …… 것 : 선유(先儒)는 원(元)나라 학자인 운봉(雲峰) 호병문(胡炳文)을 가리킨다. 《대학집설계몽(大學集說啓蒙)》 서문(序文) 주(註)에 “우리의 허는 비었지만 있고, 저들의 허는 비어서 없으며, 우리의 적은 고요하되 감응하고, 저들의 적은 고요하여 없어진다.〔此之虛, 虛而有; 彼之虛, 虛而無. 此之寂, 寂而感; 彼之寂, 寂而滅.〕”라는 그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우리는 유가(儒家), 저들은 이단(異端)인 불가(佛家)를 가리킨다. 이 글은 《대학장구》 서문의 소주(小註)에도 실려 있다.
[주14] 이는 …… 것이다 : 적멸(寂滅)을 주장하는 불교가 성행함으로 해서 정도(正道), 즉 유학이 쇠퇴하였다는 뜻이다.
[주15] 지혜롭되 지나친 자 : 지식은 많지만 그 지식이 상식을 벗어난다는 말이다. 《중용장구》 제4장에 “도가 행해지지 못하는 이유를 내가 알겠으니,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도가 밝아지지 못하는 이유를 내가 알겠으니, 현명한 자는 지나치고 현명하지 못한 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道之不行也, 我知之矣. 知者過之, 愚者不及也. 道之不明也, 我知之矣. 賢者過之, 不肖者不及也.〕”라고 한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書忘齋,忘機堂無極太極說後。
丁丑○忘齋。進士孫叔暾。忘機。進士曺漢輔。皆慶州人。
謹按忘齋無極太極辨。其說蓋出於陸象山。而昔子朱子辨之詳矣。愚不敢容贅。若忘機堂之答書。則猶本於濂溪之旨。而其論甚高。其見又甚遠矣。其語中庸之理。亦頗深奧開廣。得其領要。可謂甚似而幾矣。然其間不能無過於高遠而有背於吾儒之說者。愚請言之。夫所謂無極而太極云者。所以形容此道之未始有物。而實爲萬物之根柢也。是乃周子灼見道體迥出常情。勇往直前。說出人不敢說底道理。令後來學者。曉然見得太極之妙。不屬有無。不落方體。眞得千聖以來不傳之祕。夫豈以爲太極之上。復有所謂無極哉。此理雖若至高至妙。而求其實體之所以寓。則又至近而至實。若欲講明此理而徒騖於窅冥虛遠之地。不復求之至近至實之處。則未有不淪於異端之空寂者矣。今詳忘機堂之說。其曰。太極卽無極也則是矣。其曰。豈有論有論無。分內分外。滯於名數之末則過矣。其曰。得其大本則人倫日用。酬酢萬變。事事無非達道則是矣。其曰。大本達道渾然爲一。則何處更論無極太極有中無中之有間則過矣。此極之理。雖曰貫古今徹上下而渾然爲一致。然其精粗本末。內外賓主之分。粲然於其中。有不可以毫髮差者。是豈漫無名數之可言乎。而其體之具於吾心者。 則雖曰大本達道初無二致。然其中自有體用動靜先後本末之不容不辨者。安有得其渾然則更無倫序之可論。而必至於滅無之地而後爲此道之極致哉。今徒知所謂渾然者之爲大而極言之。而不知夫粲然者之未始相離也。是以。其說喜合惡離。去實入虛。卒爲無星之稱。無寸之尺而後已。豈非窮高極遠而無所止者歟。先儒言周子喫緊爲人。特著道體之極致。而其所說用工夫處。只說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君子修之吉而已。未嘗使人日用之間。必求見此無極之眞而固守之也。蓋原此理之所自來。雖極微妙。萬事萬化。皆自此中流出。而實無形象之可指。若論工夫則只中正仁義。便是理會此事處。非是別有一段根原工夫又在講學應事之外也。今忘機之說則都遺却此等工夫。遽欲以無極太虛之體。作得吾心之主。使天地萬物。朝宗於我而運用無滯。是乃欲登天而不慮其無階。欲涉海而不量其無橋。其卒墜於虛遠之域而無所得也必矣。大抵忘機堂平生學術之誤。病於空虛。而其病根之所在則愚於書中。求之而得之矣。其曰。太虛之體。本來寂滅。以滅字說太虛體。是斷非吾儒之說矣。上天之載。無聲無臭。謂 之寂可矣。然其至寂之中。有所謂於穆不已者存焉。而化育流行。上下昭著。安得更着滅字於寂字之下。試以心言之。喜怒哀樂未發。渾然在中者。此心本然之體而謂之寂可也。及其感而遂通則喜怒哀樂。發皆中節。而本然之妙。於是而流行也。先儒所謂此之寂。寂而感者此也。若寂而又滅則是枯木死灰而已。其得不至於滅天性乎。然忘機於本來寂滅之下。便沒滅字不說。而却云虛而靈。寂而妙。靈妙之體。充滿太虛。處處呈露。則可見忘機亦言其實理而說此滅字不去。故如是。豈非有所窮而遁者乎。自漢以來。聖道塞而邪說行。其禍至於剗人倫滅天理。而至今未已者。無非此一滅字爲之害也。而忘機堂一生學術言語及以上議論之誤。皆自此滅字中來。愚也不得不辨。若其超然高會一理渾然之體。而的的無疑則實非今世俗儒高釋所可幾及。亦可謂智而過者矣。誠使忘機堂之高識遠見。獲遇有道之君子。辨其似而歸於眞。提其空而反於實。則其高可轉爲吾道之高。其遠可變爲吾道之遠矣。而不幸世無孔孟周程也。悲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