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西遊記)
을묘년 윤5월에 덕수(德水 풍덕(豐德))의 율곡(栗谷) 선생 사당이 건립되어, 이달 정유일에 신주를 봉안하고 향사할 예정이었다. 나는 그 행사를 참관하기 위해 최자 계백(崔子啓伯 최방준(崔邦儁)), 이자 사징(李子士澄 이홍(李泓))과 약속하여 이틀 전인 을미일 새벽에 경성을 출발하였다. 두 사람은 모두 뒤늦게 출발하여 낮에야 고양(高陽)에서 나를 따라잡았다. 우리는 저녁에 임진강(臨津江)에 도착하여, 배를 저어 내려가며 강기슭의 아름다운 바위 절벽을 구경하고 강가의 민가에서 묵었다.
병신일에 아침 일찍 임진강을 건넜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동파역(東坡驛)에 들어가 밥을 지어 먹고 낮에 사천(沙川)에 도착했는데, 여전히 비가 내려 나아가기가 매우 어려웠다. 저녁이 되어서야 덕수에 도착했는데, 원근에서 70여 명의 선비가 모여들었다. 이날 밤비가 심하게 내리고 큰바람이 불었으며 정유일에도 날씨가 개지 않았다. 선비들이 모두 사당 문밖에서 비를 맞으며 서 있었는데, 제사를 행할 때가 되자 날이 조금 개어 각 위(位)에 있는 집사(執事)들이 각기 맡은 일을 부지런히 행하며 제기(祭器)를 다루었다. 이윽고 또 음복례(飮福禮)를 행하였는데, 각기 존비(尊卑)의 순서대로 일어나 공경하는 태도로 나이가 많은 사람의 앞으로 가서 술잔을 권해 올렸다. 제사를 끝마칠 때에는 날이 더욱 개었다. 나는 전에 이미 최계백과 이사징 두 사람과 박연(朴淵)을 구경하기로 약속한 일도 있고 하여 그곳을 향해 출발했다. 해가 지기 전에 송도(松都)에 도착하여 남문 밖에서 묵었다.
무술일에 일찍 출발하였는데, 가랑비가 내렸다. 모두 6, 7개소의 시내를 건너 영은령(靈隱嶺)에 올랐는데, 이곳은 천마산(天磨山) 자락이었다. 고개를 내려가 골짜기로 들어서자 솔밭이 나타났다. 마침 중 둘이 지나가기에 박연으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여기가 박연인데 어찌하여 묻습니까?”
하였다. 나와 두 사람은 모두 깜짝 놀라 조금 앞으로 가 보니 큰 바위 못이 하나 보였다. 이것이 바로 박연으로 폭포수가 위에서 곧장 떨어지는 곳이고, 그 아래는 고무담(鈷鉧潭)인데 폭포수가 흘러내리며 모이는 곳이다. 폭포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끝나는 곳을 볼 수가 없고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근원을 볼 수가 없었다. 그 높이를 헤아려 보면 총 30길이나 되어, 수직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만 같고, 소리는 우레 같으며 물거품은 한겨울의 싸락눈 같았다. 폭포의 넓이는, 위는 반 무(畝)이고 아래는 그의 10배이며 청록색을 띠었는데, 중이 이르기를,
“이 못에는 용이 삽니다. 그래서 전에 제단을 쌓아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 때 돼지 머리를 올리고 홍수나 가뭄을 그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감응이 있었습니다.”
하였다. 폭포의 양쪽 벼랑은 모두 절벽인데, 절벽에 있는 검은 학의 둥지를 중이 나에게 가리켜 보였다. 구경을 마치고 운거사(雲居寺)에서 밥을 먹고는, 돌아가는 길에 또 박연을 구경하고 못가의 바위에 우리의 자취를 기록하였다. 물을 따라 올라가서 구담(龜潭)을 구경하고 관음굴(觀音窟)에서 쉬다가 골짜기 물을 마시고 태종대(太宗臺) 아래에서 목욕을 하였다. 이날 밤에는 밝은 달이 떴다.
기해일에 산을 내려와 또 박연을 보았는데, 모두 세 번을 구경하였으나 보면 볼수록 더욱 기이하였다. 지난 신해년(1671, 현종12) 늦봄에 박연에 왔던 것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인데, 폭포를 구경한 것은 이번이 갑절이나 되니, 이번에는 오직 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낮에 송도로 돌아와 만월대(滿月臺)에 올라 왕씨(王氏)의 고적(古蹟)을 둘러보고 숭양묘(崧陽廟)를 알현한 다음, 선죽교(善竹橋)에 들르고 탄령(炭嶺)을 넘어 화곡(花谷)에 이르렀다. 이곳은 여울물이 콸콸콸 흐르는 속에 흰 자갈이 수없이 깔려 있고 물가에 우뚝 솟은 바위 아래로 못이 형성되어 있으며, 주위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솔숲이 울창하였는데, 바로 서 선생(徐先生 서경덕(徐敬德))이 은거했던 곳이다. 나와 두 사람은 이곳이 마음에 들어 바위 밑에 둘러앉아 술잔을 물 위에 띄워 가며 술을 마셨다.
북쪽으로 숲을 벗어나 큰길을 가로질러 가파른 돌 비탈을 오르게 되었는데, 몇 리를 가서 화장사(華藏寺)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패엽(貝葉)과 단향(檀香) 등 기이한 물건을 구경하였는데, 이는 모두 서역(西域)에서 나온 것이었다.
경자일에 산을 내려왔는데, 바람이 마치 가을, 겨울인 양 거세었다. 임진강을 건너 화석정(花石亭)에 올랐다가 저녁에 고양에서 묵고, 신축일 아침에 경성으로 돌아왔다.
西游記
歲乙卯閏五月。德水栗谷先生祠廟成。卜用是月丁酉。擧妥侑之儀。約崔子啓伯,李子士澄。往觀厥成。先二日乙未。平明發京城。二子皆後。午及我于高陽。夕 次臨津。刺船以下。觀江岸石壁之勝。宿于濱江之舍。丙申。早渡臨津。雨驟作。投東坡驛炊飯。午次沙川。尙雨行甚艱。夕始達于德水。遠近士集者七十餘人。是夜雨甚大風。丁酉。尙未晴。士皆雨立廟門外。逮行事少晴。諸在位各以其事奔走。執豆籩已。又行飮福禮。各以尊卑次起。詣尊執爵。飮皆敬。卒事益晴。余前已約二子觀朴淵。遂行。及日于松都。宿于南門之外。戊戌。早發。雨微作。凡揭水六七。乃登靈隱嶺。是爲天磨之麓。絶嶺入谷。得松林之壇。遇二僧過焉。問朴淵路。曰是則淵。尙奚問。余及二子皆驚。少前。卽見一大石 泓。是惟曰朴淵。瀑水之所自墜下。卽爲鈷鉧潭。瀑水之所降滙瀑。從上視不見其止。從下望。不見其源。測之高凡三十仞。懸而流若從天下。其聲類震雷。其沫類大冬之霰。潭上者半畝。下者十之。厥色靑綠。云有龍居之。舊築壇以祠。祠用豆彘。水旱禱之有應。瀑兩崖皆壁。壁有玄鶴之巢。僧爲余指焉。觀旣。飯于雲居之寺。還又觀朴淵。記迹於潭之石。遵水以上。觀龜潭。息于觀音窟。飮谷中之水。浴于太宗臺下。是夜月出有光。己亥。下山又觀朴淵。凡三觀益奇。昔歲辛亥。余以春暮至淵。及今惟再至。其觀顧倍昔。則亦惟雨故焉。午還松都。登滿月臺。撫王氏古蹟。謁崧陽廟。過善竹橋。踰炭嶺。至于花谷。湍瀨濺濺。中多白礫。爰有石磯巍然。下成淵潭。有山屛之。松樹攸菀。是惟徐先生之所盤旋。余及二子樂之。環坐磯下。爲流觴之飮。北出林薄。絶大路陟峻磴。數里至于華藏寺。觀貝葉,栴檀諸奇物。是皆出西域。庚子。下山。風甚如秋冬。渡臨津登花石亭。夕宿高陽。辛丑。朝還京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