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하고 돌아가면서 올리는 차자 辭歸箚
무신년(1608, 광해군 즉위년) 7월 25일 〔戊申七月二十五日〕
삼가 아룁니다. 신은 어제 양재역(良才驛)에서 신에게 머물게 하고 잘 조리하라는 전하의 비답을 삼가 보았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전하께서는 단지 신의 세 번째 사직 차자만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올린 차자는 그때까지 위로 전달이 되지 않아서, 신이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의리를 전하께서 아직 알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용인현龍仁縣)에 이르렀는데, 예관(禮官)이 뒤따라 와서 또 신에게 감당하지 못할 교서를 내려 떠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신은 은혜를 받고 감격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은 애초에 홀로 세상 밖으로 달아나 은거하여 벼슬하지 않으면서 감히 장저(長沮)ㆍ걸닉(桀溺) 같은 은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이 벼슬을 사직하고서 저 벼슬을 받고, 벼슬에 나아갈 줄만 알고 벼슬에서 물러날 줄은 모르면서, 벼슬아치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달갑게 여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이미 쇠락해진 나이에 질병이 침노하니 세상일을 대응할 가망이 전혀 없는데도, 은총을 마음에 두고 연연해하면서 염치를 모르고 높은 벼슬에 후한 봉록을 받는 대열에 있는 것은, 신이 스스로 마음에 부끄러워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며 비웃고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이 먼저 그 일을 할 도구를 잃은 것이니, 장차 맨손으로 나라를 구제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떠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것이 하나의 의리입니다.
신이 누차 소장(疏章)을 올려 감당할 수 없는 의리, 맡을 수 없는 심정, 떠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을 갖추어 아뢰어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고도 또다시 도성에 머물면서 여전히 작록을 누리면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뒤틀려 모순되고, 전에는 이런 사람인데 뒤에는 저런 사람이라서 몸과 마음을 돌아보면 어찌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아도, 어찌 남들이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남들이 의심할 뿐만 아니라 전하 또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이 감히 다시 머무를 수 없는 것은 이것이 또 하나의 의리입니다.
또 전하께서는 신에게 잘못 의지하여 사직(社稷)을 편안하게 하려고 하시지만, 지금은 사직이 이미 편안하니 또 장차 무엇을 편안하게 하시겠습니까. 신은 전하의 교서를 대하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전하께서는 보잘것없는 신에게서 무엇을 취하여, 갑자기 이렇게 의지하기를 기대하면서 머무르기를 바라십니까. 가령 신을 의지할 수 있어서 머무르게 할 수는 있더라도 쇠잔한 여생은 언제 숨이 끊어질지 모르니, 전하의 조정에 있을 날이 며칠이나 되겠습니까. 신료 가운데 나이가 젊고 정력이 왕성한 사람으로서 이 책임을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을 빨리 선택하여, 중임을 맡기고 큰일을 하기를 기약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리되면 종사는 그들을 의지하여 편안해지고 조정은 그들을 의지하여 중시되고 백성은 그들을 의지하여 생활하고 전하께서는 그들을 의지하여 보좌하는 신하로 삼아서 근심이 없어질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잠저(潛邸)에서 거의 20년을 계셨으니, 전조(前朝)의 대소 신료 가운데 누구는 충성스럽고 누구는 간사하며, 누구는 어질고 누구는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의당 그 대략을 이미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충성스러운 사람을 끌어들이고 간사한 사람을 물리치며, 어진 사람을 임용하고 올바르지 않은 사람을 버려야 합니다.
옛날 송(宋)나라 신하 주희(朱熹)가 임금에게 “군자를 등용할 적에는 오직 그들이 많지 않을까를 두려워하고, 그들이 당을 만드는 것을 다시 의심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군주는 군자의 당을 만든 뒤에라야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이것은 전하가 살펴서 선택하고 깊이 사귀는 데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신이 삼가 생각하건대, 지금 선비를 고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권력을 가진 간신이 전횡한 것이 멀지 않은데, 그들이 좋아하면 등용하고 싫어하면 내쫓고 그들이 사랑하면 복을 주고 미워하면 화를 내렸습니다. 조정 대신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물러나 피하여 그 혜택을 받지 않은 사람은 비록 반드시 모두 어질지는 않더라도 또한 군자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집에 이르지 않고 공신에 들지 않아서, 그들에게 시기받은 사람은 반드시 군자입니다. 그 가운데서 의리에 밝고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나라를 위하는 사람을 더욱 살펴서 선택하여, 그 지위를 높여 주고 그 책임을 무겁게 하면서 평상적인 규칙에 구애되지 말고, 중요한 임무를 맡기고 가까이하고 신임하되 반드시 완전하기를 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은(殷)나라의 두 현명한 군주를 보좌한 사람은 이윤(伊尹)과 부열(傅說) 두 사람 뿐이었고, 한(漢)나라 소열제(昭烈帝)의 신하로는 제갈량(諸葛亮) 외에는 알려진 사람이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신이 머무르지 않는 것을 염두에 두지 마시고, 빨리 신을 체직시키고 다시 합당한 사람을 찾아서 그에게 제수하십시오. 신이 몸은 민간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직함을 가지고 있어서 잘못을 더하는 것이 다시 전날과 같게 하시지 않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전하의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주1] 장저(長沮)ㆍ걸닉(桀溺) : 중국 춘추 시대 초(楚)나라 은자(隱者)로, 《논어》 〈미자(微子)〉에 그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주2] 두 현명한 군주 : 은(殷)나라의 탕왕(湯王)과 고종(高宗)을 말한다.
[주3] 이윤(伊尹) : 은(殷)나라의 어진 재상으로 탕왕(湯王)을 도와 걸(桀)을 쳐서 탕왕으로 하여금 왕이 되게 하였다.
[주4] 부열(傅說) : 은(殷)나라 고종(高宗) 때의 재상으로 중흥의 대업을 이루었다.
辭歸箚 戊申七月二十五日
伏以臣昨在良才驛。伏見留臣善攝之批。竊以爲 殿下只見臣三辭。而告歸箚字。時未上達。殿下未及亮臣不得不去之義故也。今到龍仁縣。禮官踵至。又下臣不堪當之敎以留行。臣銜恩感激。罔知所云。臣初非跳身物外。長往不仕。敢爲沮溺之高者也。又非辭此而受被。知進而不知退。甘爲宦子之態者也。特以年旣衰暮。疾病侵欺。萬無行世之望。而耽戀恩寵。強顔肉食之列。不獨臣自愧于心。人所具瞻。皆加嘲侮。是臣先喪其有爲之具。將以手援邦國乎。臣之不得不去。此一義也。臣累上章疏。具陳不敢之義。不堪之情。不得不去之勢。靡有底蘊。而又復遲留都下。還享爵祿。則所言與所行。掣肘矛盾。前一人也。後一人也。環顧身心。豈得無愧。雖不自愧。人豈得不疑。不獨人疑之。恐殿下亦不得無疑也。臣之不敢復留。此又一義也。抑殿下謬倚臣以安社稷。今社稷已安。又將何安也。臣於殿下之敎。不覺涕下。殿下何取於無狀之臣。遽以此期倚而欲其留也。誠使臣可倚而可留。奄奄餘生。無以冀朝夕。則在殿下朝廷能幾日也。不如早擇臣僚之年富力彊。可以當此責者。委以重任。期以致遠。則宗社倚以爲安。朝廷倚以爲重。民庶倚以爲命。殿下倚以爲股肱而無憂矣。殿下在潛宮垂二十年。先朝之大小臣僚。某也忠某也奸某也賢某也不肖。宜已知其梗槪。則自當進忠而距奸。用賢而舍不肖也。昔宋臣朱某告於君曰。用君子。惟恐其不多。不復疑其爲黨也。必須人主爲君子之黨。然後可以有爲也。此在殿下審擇而深交而已。臣竊以爲今日之擇士不甚難也。權奸之專制不遠。黜陟惟其好惡。禍福任其愛憎。朝紳 之終始歛避。不受其膩者。雖未必皆賢。亦君子路上人也。足不及其門。身不入保社。爲其所憎疾者。必君子也。就其中。更加審擇其明於義赤心謀國者。尊其位重其任。不拘常規。委心腹。寄以耳目。而不必求其備也。殷先二哲王之佐。伊傅二人而已。漢昭烈之臣。諸葛亮外無聞焉。伏願殿下。不以臣之不留爲意。而亟遞臣職。更求其人而授之。不使臣身在山野。猶帶職名。以增罪戾。復如前日。則不勝幸甚。取進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