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즘나무
조외순
아름다운 꽃잎 고운 단풍 없어
찬란한 가을을 말해 주지 못하는
시린 안타까움
설익은 듯 한
주먹을 말아 쥐고
찬바람 몰아치는 회색대지에
터지고 갈라진 등을 보이는
변명 같은 이야기
한 여름 땡볕과 폭우에도
그늘의 쉼터가 되어주면서
열심히 달려온 허무를 안는다
농익지 못한 붉으레한 눈물
우리창에 비친 서툰 빛깔이라
저리 서러워야 할까
푸른 꿈 꾸는 내일이 있는데
버즘나무
너는 도시의 이방인이 아닌
주인인데
플라타너스라고 불리는 버즘나무는 우리의 고유 이름이다.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으나 우리의 버즘나무는 잎이 약간 작으며 몸체가 가늘다. 따라서 잎의 크기도 귀여울 만큼 어리게 보인다. 대표적인 가로수로 전국 어느 곳이나 볼 수 있으며 잎이 넓어 큰 그늘을 만드는 특성 때문에 가로수로 선택받은 나무다. 하나 꽃이 질때 나오는 꽃가루가 특이한 성질을 가져 사람의 눈에 들어가면 간지러움을 일으키고 눈병으로 번지는 부작용으로 이제는 거의 은행나무로 대체되고 있다. 또한 순식간에 자라나 거리를 뒤덮고 바람에 약하여 쓰러지는 예가 많아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나무의 입장으로서는 억울하다. 도시의 험악한 길에서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데 빌딩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낙엽도 되지 못하고 시들어 간다. 또한 줄기에 버즘처럼 무늬가 새겨져 버즘나무로 불리므로 억울 할 수밖에 없다. 조외순 시인은 이점을 중시하며 작품을 쓰면서 나무의 입장에 사람을 바라보는 성태의 표현하였다. 아름다운 꽃이나 단풍도 없이 가을을 알려주고 단풍이 들지 못한채 회색지대를 지켜야 하는 고난은 일을 하면서도 빛이 나지 않는 거리 미화원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 땡볕에서 만드는 그늘이 쉼터를 주는데도 웃자란다고 마구잡이로 잘라내는 횡포는 치를 떨게 한다. 도시의 이방인 이 아닌 주인인데 그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버즘나무는 사회에서 소외당한 소시민을 떠오르게 하며 헌신 하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숨은 일꾼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나 마주하는 나무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버즘나무로 생태적인 시를 쓴 시인의 눈은 밝고 귀가 예민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품이다.[이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