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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5장 17-25절. 장로에 대한 목회적 지침
이 부분은 장로에 대한 목회직 지시 사항인데, 17-18절은 장로에 대한 재정적 대우 문제, 19-22절은 장로에 대한 송사 문제, 23-25절은 디모데 개인에게 주는 지시 사항으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17절.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elders who rule well are to be considered worthy of double honor, especially those who work hard at preaching and teaching.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Οἱ καλῶς προεστῶτες πρεσβύτεροι, διπλῆς τιμῆς ἀξιούσθωσαν,
the well having ruled elders, of double honor let be counted worthy
직역하면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합당하게 간주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다스리는’(προεστῶτες)은 완료분사로서(having ruled) ‘이미 지금까지 잘 다스려온’ 장로들을 가리킵니다.
‘알되’(ἀξιούσθωσαν)는 현재 명령형 수동태로서( let be counted worthy) ‘합당하게 간주되게 하라’(let be counted worthy)는 뜻인데, 그냥 ‘간주하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μάλιστα οἱ κοπιῶντες ἐν λόγῳ καὶ διδασκαλίᾳ.
especially those straining in word and teaching
직역하면 ‘특히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배나 존경하라)는 뜻입니다.
‘수고하는’(κοπιῶντες)은 현재분사로서(straining) 현재 수고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장로들’(πρεσβύτεροι)이란 말은 5장 1절에서 ‘늙은이’로 번역되었는데, 교회의 장로 직분자를 가리킵니다. (디도서 1:6 참조).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도 장로들이 있었으며(행 11:30, 15:22),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에 교회를 설립한 후 장로들을 세웠고(행 14:23), 밀레도 해변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기도했고(행 20:17), 디도를 통해 그레데 교회에도 장로를 세웠습니다(디도서 1:5).
사도 베드로(벧전 5:1)와 사도 요한(요한삼서 1:1)도 장로로 호칭되기도 한 것을 보아 초기에는 장로직이 교회의 직제로 고정된 것이 아니었으나, 목회서신이 기록될 당시부터는 장로직이 교회의 고정된 직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초기에는 장로와 감독이 서로 혼용되었으나, 1세기 말부터는 완전 분리되었습니다.
2. ‘다스리는’(προεστῶτες)이란 단어는 교회의 행정적 업무를 가리키는데, 디도서 1장 7절에서는 행정적 업무자를 ‘감독’(ἐπίσκοπος)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나이 든 어른’이라는 뜻을 강조할 때는 ‘장로’라고 표현했고, 행정적인 면을 강조할 때는 ‘감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3. ‘배나 존경할 자로 알라’는 것은 과부들보다 인격적으로 배나 존경하라는 것과 사례비를 배나 지급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존경’(τιμή)이라는 단어는 5장 3절에서 과부에게 사용된 말(τίμα)인데, 과부에게 구제연금을 주듯이 장로에게는 배나 사례비를 주라는 뜻입니다.
예컨대, 과부를 오늘날 과부된 여교역자라 한다면, 목사는 여교역자보다 사례비를 두 배 주라는 뜻입니다.
4.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이란 설교하는 장로 즉 목사를 가리킵니다.
즉 목사도 장로이지만, 행정적 장로보다 목사는 강도권(설교권)과 교육권이 추가된 장로입니다.
이처럼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목사에게는 더욱 존경하고 더 많은 사례비를 주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과 성경의 가르침대로 목사에게 적정한 사례비를 지불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0: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누가복음 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디모데전서 1: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18절.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For the Scripture says: Do not muzzle an ox while it is treading out the grain, and, the worker is worthy of his wages.
성경에 일렀으되
λέγει γὰρ ἡ γραφή
says for the scripture
직역하면 ‘왜냐하면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일렀으되’(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says) 성경이 현재 말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Βοῦν ἀλοῶντα οὐ φιμώσεις,
ox treading out grain not you shall muzzle
‘곡식을 밟아 떠는’(ἀλοῶντα)은 현재분사로서(treading out grain) 곡식을 밟아 떨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망을 씌우지 말라’(οὐ φιμώσεις)에서 동사(φιμώσεις)는 미래형인데(you shall muzzle), 이 미래형은 금지를 나타내는데 사용되고, 구약에서는 법률용어로 사용되었으며, 거의 언제나 지상 명령으로 사용되었습니다. (the future is used to express a porhibition and is used in the legal language of the OT almost always as a categorical imperative). Linguistic Key 631.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καί Ἄξιος ὁ ἐργάτης τοῦ μισθοῦ αὐτοῦ
and worthy the worker of the wages of him
동사는 없으나 적절한 번역입니다.
1.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은 신명기 25장 4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일상시에 소가 밭길을 지나갈 때는 곡식을 헤치지 않도록 소의 입에 망을 씌웠습니다.
그러나 타작마당에서 소가 곡식을 밟아서 떨 때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않고 곡식을 먹어가면서 일을 하게 했습니다.
오늘날도 아랍인들은 이 풍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2.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누가복음 10장 7절에서 하신 말씀이고, 고린도전서 7장 9-14절에서도 바울 사도가 말한 내용입니다.
누가복음 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디모데전서를 기록할 때 바울은 누가와 함께 로마 감옥에 있었는데(골 4:14, 몬 1:24), 바울은 누가를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했을 것입니다.
19절.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Do not receive an accusation against an elder except on the basis of two or three witnesses.
장로에 대한 고발은---받지 말 것이요.
κατὰ πρεσβυτέρου κατηγορίαν μὴ παραδέχου,
against elder accusation not receive
‘받지 말 것이요’에서 동사(παραδέχου)는 현재 명령형으로서(receive) 항상 받지 말라는 뜻입니다.
두세 증인이 없으면
ἐκτὸς εἰ μὴ ἐπὶ δύο ἢ τριῶν μαρτύρων.
except if not on two or three witnesses
동사가 없으나 적절한 번역입니다.
1. 구약성경에서 모든 재판은 두 세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정죄가 성립되었습니다.
신명기 19:15.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이러한 재판 규정은 초대 교회에서도 적용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3:1.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그런데 일반 교인도 아니고, 장로와 목회자에 대한 송사는 더욱 엄격히 적용되었습니다.
교회의 중직자인 장로와 목사에 대한 송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피해가 예상되므로, 송사 자체를 두 세 증인이 없으면 아예 송사로 다루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20절.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ose who continue in sin, rebuke in the presence of all, so that the rest also will be fearful of sinning.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Τοὺς ἁμαρτάνοντας, ἐνώπιον πάντων ἔλεγχε,
those sinning, before all rebuke
직역하면 ‘범죄하는 자들은 모든 사람 앞에서 책망하라’는 뜻입니다.
‘범죄한’(ἁμαρτάνοντας)은 현재분사로서(sinning) 현재 계속 범죄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꾸짖어’(ἔλεγχ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rebuke) 언제나 꾸짖으라는 뜻입니다.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ἵνα καὶ οἱ λοιποὶ φόβον ἔχωσιν.
so that also the rest fear might have
직역하면 ‘나무지 사람들도 두려움을 갖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두려워하게 하라’에서 동사(ἔχωσιν)는 현재 가정법 동사로서(might have) (두려움을) 갖도록 하라는 뜻이고, 항상 두려움을 갖도록 하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1. 본 절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 ‘범죄한 자들’이 범죄한 장로를 가리킨다는 해석입니다.
이 경우에 범죄한 장로를 모든 교인들 앞에서 꾸짖는 책벌을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칼빈의 주장대로 ‘범죄한 자들’은 장로를 무고히 고발한 자를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장로를 함부로 무고한 자는 모든 성도들 앞에서 엄히 꾸짖으라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 15-17절에서 범죄자를 처벌하는 과정을 ① 일대일로 권면, ② 두세 사람이 가서 권면, ③ 교회에서 치리함, ④ 외인으로 출교시킴이란 순서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범죄자를 모든 교인 앞에서 공개 책망하는 것은 ③의 교회 치리 중의 한 방법입니다.
3. ‘범죄한’(ἁμαρτάνοντας)은 현재분사로서(sinning) 현재 계속 범죄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범죄를 계속 고집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 those who persist in sin: ESB, BSB, NRSV, WNT등).
4. ‘나머지 사람’도 나머지 장로로 해석할 수 있고, 나머지 일반 교인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범죄한 한 사람을 징계하는 것은 나머지 사람들로 범죄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5. 한편 범죄자를 징계하는 목적은 장로와 교인들을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바로 세우는 것이 목적인데, ‘세운다.’는 말은 부러진 뼈를 맞춘다는 의미입니다.
뼈를 맞추어서 정상적으로 활동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즉 징계의 목적은 벼랑 끝으로 밀어 넣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컨대, 피아노를 조율하고 정상적으로 맞추어선 아름다운 연주를 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21절.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solemnly charge you in the presence of God and of Christ Jesus and of His chosen angels, to maintain these principles without bias, doing nothing in a spirit of partiality.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διαμαρτύρομαι ἐνώπιον τοῦ Θεοῦ καὶ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καὶ τῶν ἐκλεκτῶν ἀγγέλων
I earnestly testify before the God and Christ Jesus and the elect angels
‘엄히 명하노니’(διαμαρτύρομαι)는 현재형으로서(I earnestly testify) 현재 엄히 명하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διαμαρτύρομαι)은 ‘철저히’(thoroughly)라는 접두어(διά)와 ‘증언하다’(μαρτύρομαι)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ἵνα ταῦτα φυλάξῃς, χωρὶς προκρίματος,
that these things you should keep, apart from prejudice
‘지켜’(φυλάξῃς)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you should keep) 틀림없이 지킬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μηδὲν ποιῶν κατὰ πρόσκλισιν.
nothing doing out of partiality
동사(ποιῶν)는 현재분사로서(doing) 언제나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않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란 최후의 심판대를 가리킵니다. (눅9:26)
‘엄히 명하노니’는 장로의 재판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처리할 때, 디모데가 실수하지 않고, 최후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처리하라는 말입니다.
‘택하심을 받은 천사’란 타락한 천사인 마귀와 대조적으로 선한 천사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처럼(마 16:19), 교회의 재판은 천국 심판과도 연관되므로, 참 신중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2. ‘편견’(πρόκριμα)이란 단어는 영어(prejudice)와 같이, ‘미리’(πρό)라는 접두어와 ‘판단하다’(κρίνω)는 동사의 합성어러서, 미리 짐작하고 미리 판단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불공평’(πρόσκλισιν)이란 단어는 ‘향하여’(πρός:toward)란 접두어와 ‘기울어지다’( κλίνω:incline)는 동사의 합성어로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파적인 것(partiality)을 가리킵니다.
2. 교회에서 재판할 때, 신중하게 처리하고,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파적인 재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원고와 피고가 충분히 해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고와 피고가 다 충분히 발언할 기회를 얻어야 할 것이다.
잠언 18:17.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
22절.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Do not lay hands upon anyone too hastily and thereby share responsibility for the sins of others; keep yourself free from sin.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Χεῖρας ταχέως μηδενὶ ἐπιτίθει,
hands hastily on no one lay
직역하면 ‘아무에게나 경손히 손들을 얹지 말라’는 뜻입니다.
‘안수하지 말고’에서 동사(ἐπιτίθει)는 현재 명령형으로서(lay) 언제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μηδὲ κοινώνει ἁμαρτίαις ἀλλοτρίαις·
nor share in sins of others
직역하면 ‘다른 사람들의 죄들에 참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간섭하지 말며’에서 동사(κοινώνει)는 현재 명령형으로서(share) 언제나 다른 사람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 동참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σεαυτὸν ἁγνὸν τήρει.
yourself pure keep
직역하면 ‘네 자신을 정결하게 지켜라’는 뜻입니다.
‘지켜라’(τήρει)는 현재 명령형으로서(keep) 항상 정결하게 지켜라는 뜻입니다.
1. 본 절에서 ‘안수’는 장로 임직과 같은 때 안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는 것은 장로의 임직에서부터 신중히 처리하여, 후에 범죄와 재판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장로에 합당한 자를 임직하고 안수하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은 ‘참여하지 말라, 동참하지 말라’는 뜻인데, 장로가 범죄했을 때 동조하지 말라는 뜻도 있고, 장로에게 안수한 것은 장로의 죄에 책임을 같이 져야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아무튼 아무나 함부로 임직하고 안수하지 말고, 신중히 해야 나중에 공동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는 말씀은 참된 경건은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란 말씀(약 1:26)처럼, 목회자가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는 것이 교회가 성결을 유지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23절.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 longer drink water exclusively, but use a little wine for the sake of your stomach and your frequent ailments.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Μηκέτι ὑδροπότει,
no longer drink water
직역하면 ‘더 이상 물을 마시지 말라’는 뜻입니다.
동사(ὑδροπότει)는 현재 명령형으로서(drink water) 항상 물만 마시지 말라는 뜻입니다.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ἀλλὰ οἴνῳ ὀλίγῳ χρῶ
but wine little use
‘쓰라’(χρῶ)는 현재 명령형으로서(use) 언제나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는 것이고, 원형(χράομαι)은 ‘쓰다’(use)는 뜻입니다.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διὰ τὸν στόμαχον καὶ τὰς πυκνάς σου ἀσθενείας.
because of the stomach and the frequent of you ailment
동사는 없습니다.
1. 앞 절에서 바울이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고 교훈한 것은 영지주의적 금욕주의를 명령한 것이 아니므로, 바울은 신앙 안에서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위장병을 위해서 포도주를 약용으로 조금씩 쓰라고 말한 것입니다.
당시에 포도주와 기름은 약용으로 통용되었습니다. (눅 10:34)
보통 지나친 경건주의로 사는 사람은 신체가 약하고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디모데도 어려서부터 경건한 신앙인으로서 만성적인 위장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아버지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위장병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해서 포도주 같은 약을 조금씩 쓰라고 했습니다.
물론 믿음의 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병을 이길 수도 있으나, 약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반은총적인 것이므로, 성도들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약을 사용하고, 병원에 가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23절.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sins of some men are quite evident, going before them to judgment; for others, their sins follow after.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Τινῶν ἀνθρώπων αἱ ἁμαρτίαι πρόδηλοί εἰσιν
of some men the sins manifest are
직역하면 ‘어떤 사람들의 죄들은 밝히 드러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동사(εἰσιν)는 현재형으로서(are), 언제나 밝히 드러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προάγουσαι εἰς κρίσιν,
going before into judgment
동사(προάγουσαι)는 현재분사로서(going before) 언제나 심판으로 먼저 나간다는 뜻이고, 원형(προάγω)은 ‘먼저’(πρό)라는 접두어와 ‘나아가다’(ἄγω)라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τισὶν δὲ καὶ ἐπακολουθοῦσιν·
of some however also they appear later
직역하면 ‘그러나 어떤 사람들의 것도 역시 뒤를 따른다’는 뜻입니다.
‘그 뒤를 따르나니’(ἐπακολουθοῦσιν)는 현재형으로서(they appear later) 언제나 뒤를 따른다는 뜻이고, 원형( ἐπακολουθέω)은 ‘위에’(ἐπί)라는 접두어와 ‘따르다’(ἀκολουθέω)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1. 본 절은 어떤 죄는 밝히 드러나 쉽게 심판받게 되지만, 어떤 죄는 처음에는 밝히 드러나지 않지만, 나중에는 밝히 드러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디모데 목사가 범죄한 장로를 재판함에 있어서, 처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죄도 나중에는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교훈한 것입니다.
즉 장로 재판에서 초기에 분명히 드러나는 죄도 있고, 나중에 드러나는 죄도 있으나, 엄폐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25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Likewise also, deeds that are good are quite evident, and those which are otherwise cannot be concealed.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ὡσαύτως καὶ, τὰ ἔργα τὰ καλὰ πρόδηλα,
likewise also, the works the good evident
직역하면 ‘이와 같이 선한 행실들도 밝히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동사는 없으나 적절한 번역입니다.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καὶ τὰ ἄλλως ἔχοντα, κρυβῆναι οὐ δύνανται.
and those otherwise having, to be concealed not able
직역하면 ‘그렇지 않는 것들이 있어도, 숨겨지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있어도’(ἔχοντα)는 현재분사로서(having) 항상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숨겨지는 것이’(κρυβῆ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로서(to be concealed) 단호하게 완전히 숨겨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가능하지 않다’에서 동사(δύνανται)는 현재형으로서(able) 언제나 가능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앞 절에서 장로들의 어떤 죄는 밝히 드러나서 심판에 나가지만, 어떤 죄는 처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나중에 드러나듯이, 본 절에서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일시적으로 숨겨져 있지만 결국 밝히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재판에서 성급히 판단하지 말고 신중하라는 교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숨긴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8: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마 10:26)
똑같은 내용을 마가복음 4장 22절에서는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로 오역한 것은 한글개역과 개역개정에서 크게 잘못한 것입니다.
공동번역이나 새번역이나 현재인의 성경에는 올바르게 잘 번역되어 있습니다.
2. 이 부분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목사와 장로들을 존경하며 특히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하라는 것과, 장로들의 죄와 재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과, 죄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임직 받은 장로와 목회자를 존경하시고, 범죄는 드러나게 마련이므로 함부로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평안한 교회가 되고 부흥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