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조시 코언
역자 - 노승영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쪽수 - 380쪽
가격 - 18,500원 (정가)
무기력하고 화난 우리 사회의 본성을
이토록 날카롭게 포착해낸 책은 없었다!
위험 수준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의사당에 난입한 사람들, 극단적 선동과 음모론으로 물든 공론장, 이민자와 여성 혐오자들이 일으킨 총기 난사 사건, 한 개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소셜 미디어의 조리돌림과 마녀사냥까지,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성난 공격으로 사회가 제 기능을 상실한 듯 보인다.
광기에 가까운 격앙된 감정들은 어느새 일상까지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삶과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화, 이념, 성, 계급의 차이로 인한 의견 갈등이 금세 적개심으로 이어지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대신 내 분노가 좋고, 옳고, 정당하다며 인정받으려는 모습이 빈번하게 목격된다.
이 책은 이런 분노의 파도에 올라타는 대신 의문을 제기하고 함께 숙고할 것을 촉구한다. 저명한 영문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조시 코언은 오늘날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경험하는 분노를 ‘의로운 분노’ ‘실패한 분노’ ‘냉소적 분노’로 분류하고, 문학, 심리학, 역사, 철학을 넘나들며 그 내밀한 기원을 섬세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실제 상담 사례를 마중물 삼아 분노 이면에서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방어 기제들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자신과 타인을 향한 호기심의 촉매제로 분노를 수용하는 길을 제시한다.
★ 『모멸감』 저자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 추천
★ 『분노사회』 저자 정지우 문화평론가 추천
지금 세상은 어쩌다 분노에 휩싸였나
분노 사회, 분노 세대, 분노 범죄 등 오늘날 ‘분노’는 시대적 병리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가 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는 주로 분노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행위와 현상에 집중되어, 정작 분노 그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분노는 감정이지만, 슬픔이나 행복과는 분명 다르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분노에 ‘빠진다.’ 사랑이 완전한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것처럼 분노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끈질기게 이어진다. 이 독특한 심리적 경험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일상과 광장,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 곳곳을 들쑤시는 성난 감정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가?
골드스미스런던대학교 영문학 및 비교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조시 코언(Josh cohen)은 개인의 내면과 사회·정치적 맥락을 모두 아우르며, 분노의 본질을 탐구하는 방대한 지적 여정을 시작한다. 감정의 도가니와 같은 자신의 상담실에서부터 성경과 셰익스피어, 프로이트와 헐크, 트럼프와 툰베리를 넘나들며, 단순히 분노를 나쁜 것, 위험한 것으로 단정 짓는 시각을 뛰어넘는 인간 본성에 관한 근본적 통찰을 펼쳐 보인다.
나는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에서 터져나오는 뉴스 헤드라인에서 주변 길거리, 친밀한 정신분석 진료 공간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의 모든 차원에서 이른바 ‘분노의 시대’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간다. 이 책을 쓰는 것은 이 경험을 이해하고, 인간 존재의 보편적 경험에서든 우리 자신이 발끈하는 순간에든 우리가 어떻게, 왜 분노에 휘둘리는지 생각하는 방법이었다. (19쪽)
공격과 폭력을 부추기는
성난 감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먼저 저자는 「서론」에서 정신분석학에 기초해 분노를 새롭게 조망한다. 우리는 흔히 분노를 공격과 짝을 이뤄 생각하지만, 사실 공격은 분노를 바깥 세상에 표현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 사실 우리는 분노를 삼키기도, 과장된 친절로 감추기도, 심지어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게 억압하기도 한다. 반대로, 그동안 외면했던 내면의 복잡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더 깊은 자기이해와 성찰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인간은 변화무쌍한 이 힘들을 수많은 다른 경로로 내보낼 수 있다. 자기파괴뿐 아니라 자기보전에도, 죽음뿐 아니라 삶에도, 정체뿐 아니라 성장에도 똑같이 동원할 수 있다. (135쪽)
분노가 반드시 외부 세계를 향한 원초적 공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 모두는 ‘자신의 성난 자아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이 질문은 인간 삶에서 제거할 수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분노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경험하는 욕구와 만족 사이의 간극에서 발원하기 때문이다. 요구가 거부당하고 불만족이 지속될 때, 분노는 세상의 냉담과 무관심 앞에서 ‘총체적 무력감’이라는 형태로 무의식에 각인된다.
이 유아기 분노의 어떤 측면은 나머지 일생 동안 우리 안에 끈질기게 남는다. 청소년기에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중년의 여러 단계 내내 변두리에 도사리고 있다가, 마지막에 빛의 사멸에 대한 노년의 분노로 돌아온다. (147쪽)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의 분노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모두 파괴한다
반사적으로 느끼는 분노 이면에 유아기적 무력감이 깔려 있다는 점을 알고 나면, 주변에서 마주치는 분노의 양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먼저 저자는 분노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가장 먼저 “자신이 옳다는 철저한 확신에서 분열적이고 편집증적으로 표출되는” 의로운 분노(Righteous Rage)에 주목한다.
분노는 가장 옳게 느껴지는 순간에 가장 위험하다. 자기확신에 단단히 틀어박힐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마음 상태에서는 분노가 뚜렷한 공격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폭력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82쪽)
옳음은 무능력하고 취약한 자아를 보호하는 갑옷으로 작동한다. 그것은 신생아가 불만족으로 가득한 세상에 처음 던져졌을 때,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내면화하는 ‘전능 환상’을 떠올리게 한다. 신생아는 공격적으로 울음을 터뜨림으로써 그 즉시 보호자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환경을 만들어내는데, 그러면서 자신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달콤한 환상을 키워나간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옳음이 인정받지 못했을 때의 굴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내가 옳다는 걸 내가 안다’는 식의 확실성의 세계로 도피한다. 저자는 이런 심리 배경에서 생겨나는 ‘의로운 분노’가 어떻게 총기 난사범과 폭탄 투척범 들의 정의 구현 서사로,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마저 거짓으로 둔갑시키는 음모론으로, ‘우리’와 ‘저들’을 가르는 분열과 배제의 프레임으로 이어지는지 상세하게 보여준다.
분열의 정치가 발산하는 도취의 매혹은 의심과 모호함을 한 방에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질문할 필요도, 탐구할 필요도 없다. 무적의 확실성으로 무장하고서 광장에 나서기 때문이다. 자신의 동기와 목표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옳은 쪽에 서 있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옳음과 분노는 이상적 한 쌍이다. 나쁜 것과 위험한 것을 세상에서 몰아내겠다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서로 재촉한다. (90쪽)
우리는 분노를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는 걸까
어떤 분노가 포퓰리스트의 정치적 자원으로 악용되는가
한편 분노가 이렇게나 문제가 많은 감정이라면, 분노 자체를 없애거나 적어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관리할 수는 없는지 궁금해진다. 이에 대해 저자는 ‘긍정적 사고 전도사’ ‘분노 관리자’ ‘스토아주의’를 예로 들면서 분노를 느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한 실질적 금지, 행복 또는 통제에 대한 강박적 호소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실패한 분노(Failed Rage)’는 불쾌한 무력감과 우울감으로 온몸을 압박하기 때문에, 수동 공격같이 교묘하게 위장된 부정적 방식으로 배출되고 만다.
이 경험은 종종 분노를 모조리 버리겠다는 결단으로 이어지는데, (…) 이런 포기의 문제점은 개인과 집단의 삶에서 분노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부정하고 위장하고 전치하는 분노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긍정적 사고의 복음을 요란하게 설파한다든지 훨씬 은밀한 수동 공격 전략을 구사하는 식이다. (58쪽)
너무 화가 나서 마치 ‘뚜껑이 열린 듯한’ 감각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분노에 브레이크를 걸거나 몰아내거나 애써 잊으라는 권고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절감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억압된 분노는 말해지고 들려지지 않은 “무언의 형체 없는 덩어리”가 되어 정서적ㆍ정치적 악용에 매우 취약해진다는 점이다. 이 감정은 ‘세상 다 망해버려라’ ‘모든 것은 조작되었다’ 같은 구호로 단결한 공동체 속에서 모호한 위안을 얻거나, 극단주의자가 지목하는 ‘외부의 적’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으로 분출되거나, 타인의 고통에 잔인한 조소를 날리며 자신의 ‘강함’과 ‘쿨함’을 과시하는 ‘냉소적 분노(Cynical Rage)’로 변질된다.
분노를 설명할 원인을 찾아 세상을 훑으며 강해진 힘은 분산되어 자유롭게 떠다니며 그에게 “이것이 내가 분노하는 이유야!”라고 말하는 위안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안절부절못하고 변덕스러운 애인과 마찬가지로 그는 분노의 대상을 찾자마자 다른 대상이, 또 다른 대상이 눈에 들어왔다. (211쪽)
분노하는 것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다르다!
분노의 파국적 영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법
분노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자 삶의 불가피한 조건이라면, 우리는 분노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분노의 파국적 결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분노를 ‘느껴야’ 한다고 역설한다. 여기서 ‘느낀다’는 것은 분노 뒤에 숨은 미지의 불안과 욕망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생각과 말과 이미지로 표현할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분노는 예술적 창조의 원동력으로, 자아 및 관계의 균열을 보수하는 접착제로, 타인에 대한 진정한 호기심으로 전환된다. 저자가 정의내린 마지막 유형의 분노인 ‘유용한 분노(Usable Rage)’는 충족되지 않은 분노의 무게를 감당해내는 내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분노로부터 충분한 정신적 거리를 두어 분노에 의문을 제기하고 분노가 무엇에 대한 것이고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물을 수 있으면, 분노는 공격의 산파가 되기보다는 자기반성을 증진하고 공격의 자동적 충동을 억제할 수 있다. (…)자기반성적 분노에서는 행동이 마음을 압도하기보다는 마음과 협력한다. (213쪽)
내가 불행하고 격노하는 원인을 나 아닌 외부에서 찾기가 너무 쉬운 세상이다. 과녁 없이 날려 보낸 비난과 비방, 모욕과 힐난의 독화살들이 인터넷, 소셜미디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가리지 않고 떠돌다가 만만한 희생양에게 무작위로 꽂힌다. 이런 분위기는 불안과 불신을 가중시켜 더욱 손쉽게 분노에 불을 지피게 만든다. 분노와 폭력의 되먹임은 당초 원인보다 훨씬 거창하고 추상화된 대상을 문제의 근원으로 둔갑시켜버리기도 한다.
이해되지 않은 분노는 결국 우리를 안으로부터 갉아먹는다. 이 감정을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면, 자기 감정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타인에 대한 공감과 호기심을 회복해야 한다. 이 책은 흔한 자기계발서처럼 손쉬운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린 분노의 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길을 내어준다.
목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