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바위 능선으로 올라가다 등산객이 너무 많아 조망만 하고 뒤돌아 내려와 헬기장 방향으로 내려간다.
연주대:1973년 7월 10일 경기도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보광사에서 소유하고 있다. 관악산 최고봉인 연주봉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절벽이 솟아 있는데,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약간의 석축을 쌓아 올린 곳에 연주대가 있다. 신라시대 677년(문무왕 17)에 의상(義湘)이관악사(冠岳寺:지금의 연주암) 창건과 함께 세워 의상대(義湘臺)라 이름 붙이고, 이곳에서 좌선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후 조선 1392년(태조 연주대란 이름은 조선 초에 개칭한 것으로, 태조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뒤 고려의 충신인 강득룡(康得龍)·서견(徐甄)·남을진(南乙珍) 등의 유신(遺臣)들이 이곳에서 멀 리 송경(松京:개경) 쪽을 바라보며 두문동(杜門洞)에서 순국한 72인의 충신열사와 망국 고려 를 연모하며 통탄하였다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전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한 다. 태종이 셋째 왕자 충녕대군을 태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를 눈치챈 첫째 양녕대군과 둘째 효령대군이 왕궁을 빠져 나와 발길 닿는 대로 방랑의 길을 떠나 이산 저산을 헤매다가 며칠 만에 문득 발을 멈춘 곳이 관악산이었다. 그들은 관악사에 들어가 입산수도하면서 왕좌에 대한 집요한 미련과 동경하는 마음을 누를 길 없어 관악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러나 왕좌에 대한 미련으로 발길은 언제나 왕궁이 바라다보이는 산정으로 향하였으며 이 연주대 에 올라 왕궁을 바라보며 왕좌를 그리워하였다. 그리하여 관악사의 이름도 어느덧 연주암으 로 바뀌게 되었다.
▲연주대 응진전에는 통일신라가 광활한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의상대사를 시켜 건립했다는 연주대 암자의 응진전(應眞殿)엔 열여섯 분의 나한이 모셔져 있다. 응진전은 나한 중에서도 16나한을 모시는 건물로 나한신앙을 배경으로 조성된 것이다. 대개 응진전 내부에는 석가모 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난과 가섭을, 그 주위에 16나한을 배치하고 끝에 범천과 제석천을 봉안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관악산(冠岳山:629m): 서울 관악구와 경기도 과천시, 안양시의 경계에 있는 관악산의 주봉 은 연주봉(戀主峰)이다. 검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관악산은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모습의산’이란 뜻의 ‘갓뫼(간뫼)’ 또는 ‘관악(冠岳)’이라고 했 다. 관악산은 옛 지도에는 ‘관악’으로 많이 나오는데 악(岳) 자체가 산(山)을 뜻하기 때문에 그 뒤에 다시 ‘산’자를 덧붙이지 않는 것이 관례였는데 운악, 북악, 치악 등이 그와 같은 예 이다. 관악의 산이름은 그 형상이 마치 관처럼 생겼다고 하는데, 처음의 산 이름은 주위 산 세에서 으뜸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개성의 송악산(松岳山), 가평 화악산(華岳山), 파주 감악 산(紺岳山), 포천 운악산(雲岳山)과 함께 경기 오악(五岳)의 하나였으며 빼어난 수십개의 봉 우리와 바위들이 많고, 오래된 나무와 온갖 풀이 바위와 어울려서 철따라 변하는 산의 모습 이 마치 금강산과 같다하여 소금강 또는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西金剛)이라 고도 한다. 고려 숙종 원년(1,069년) 김위제가 지리도참설에 의해 남경 천도를 건의할 때 삼각산 남쪽 을 오덕구(五德丘)라 말하며, 그 남쪽의 관악은 모양이 날카로와 화덕(火德)에 속한다고 말 하고 있다. 이렇듯 관악산은 서울의 조산(祖山)으로 일찍이 역사무대에 등장했으며, 남쪽 봉 우리 삼성산 중턱에 있는 삼막사에는 몽고 항쟁때 적장 살리탑을 살해한 기념으로 세웠다는 삼층석탑이 있다. 관악산은 그 이전 한강을 중심으로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이 쟁탈전을 펼치고 당군(唐軍) 을 축출할 때 그 지형상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한 곳이다. 서쪽 봉우리 끝에 해당하는 호암산에는 삼국시대에 축성한 석축이 있으며 조선 후기의 기록 인『연주암지(戀主庵誌)』에는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 의상대사가 관악사와 의상대를 창건했다고 한다.
▲마치 생선대가리를 세워 놓은 듯한 자연석의 오묘한 정상석!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옆에서 살짝 인증샷
▲관악산 629.8m (안양23삼각점)
▲사당능선 방향으로 데크계단이 설치되어 내려가기 좋다. 예전에는 쇠줄로 오르내리느라 위험구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