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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성경적 신앙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前,後) † 구약(舊約) ☆ (歷史書)
왕상22:1-53절) 아합의 죽음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악한 자라 할지라도 그 생명(生命)을 귀(貴)하게 생각(生角)하셔서 상당한 시간(時間)까지 그 생명(生命)을 지켜 주십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들의 생각(生角)과 하나님의 생각(生角)은 너무나도 다릅니다.
우리 생각(生角)으로는 *악한 자는 살아 있어 봤자. 나쁜 짓만 더 할 것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生角)합니다. 그래서 악한 자가 나에게 해(害)를 끼치는 나쁜 사람이 하루라도 빨리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를 그렇게 빨리 죽게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긴 시간(時間) 동안 기다리시고, 악한 자가 조금이라도 회개(悔改)하거나 하나님 앞에 겸손(謙遜)하기만 하면, 은혜(恩惠)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합이라는 사람은 연구(硏究)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아합은 이스라엘 왕 중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왕들은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서 금송아지를 숭배(崇拜)했지만, 아합은 아예 바알을 끌어 들였고, *바알을 숭배(崇拜)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다 죽이기까지' 했습니다.(바알은 우상(偶像)의 이름으로 토지의 생산력과 가축의 번식력을 주관하는 신(神)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 은혜(恩惠)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기도로 3년 반 동안 오지 않던 비가 오게 하셨고, 또 아람과의 전쟁(戰爭)에서 두 번씩이나 크게 승리(勝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합이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했을 때, 나봇이 죽은 포도원에 아합을 죽게 하려고 했지만, 그가 하나님 앞에 회개(悔改)하는 자세를 취했을 때, 그의 아들 대(對)까지 심판(審判)을 연기(延期)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합이 살 수 있는 길은 죽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회개(悔改)하고, 자식(子息)에게도 다른 것을 물려줄 것이 아니라, 회개(悔改)한다고 찢은 옷을 증거로 물려주었더라면, 하나님께서 또 심판(審判)을 연기(延期)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자에 대(對)한 하나님의 모래시계는 결국 끌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래시계가 다 끝났을 때는 아무리 하나님의 심판(審判)을 피하려고 몸부림 쳐도 결국은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합의 경우를 통(通)하여 하나님께서 이. 악한 자를 얼마나 기다리고, 얼마나 은혜(恩惠)를 베푸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악한 아합을 이 정도로 기다리고. 은혜(恩惠)를 주셨다면,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회개(悔改)하기만 하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本文)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시간(時間)이 다 되었을 때, 아합은 결국 자기(自己) 욕심(慾心)과 거짓 선지자(先知者)들의 아첨(阿諂)에 속아 *길르앗 라못 전투(戰鬪)에 참가 (參加)해서 죽임을 당하는 내용'입니다.
Ⅰ.여호사밧의 친 이스라엘 정책(상)
아합이 길르앗 라못의 전투(戰鬪)를 하려고 한 이유는 아람 왕의 약속(約束) 불이행(不履行)때문이었습니다.
22:1-3절)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셋째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내려가매. 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의 왕의 손에서 도로 찾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아합은 절대로 이길 수 없었던 아람과의 두 번째 전쟁(戰爭)에서 모두 이겼습니다. 그런데 그 승리(勝利)는 아합이 전쟁(戰爭)을 잘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아람 나라의 벤하닷은 아합과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몽둥이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아합은 아람 군대(軍隊)에 의해 멸망(滅亡)당할 뻔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몽둥이를 드셨지만, 이스라엘을 치지 않고, 오히려 벤하닷을 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명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우상(偶像)을 섬기지 않고, 돈에 아첨(阿諂)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 (存在)인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두 번째 전쟁(戰爭)에서 이스라엘과 아람은 군사력(軍事力)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즉 아람 군대(軍隊)가 온 들판을 차지하고 있다면, 이스라엘은 *들판에 있는 염소떼 무더기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이때, 아람 왕은 아합에게 항복(降服)하면서
*자기(自己) 아버지 때에 빼앗았던 성(城)들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약속(約束)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즉 3년이 지나도록 아람 왕은 *약속(約束)한 땅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 중요한 땅이 길르앗 라못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자기(自己) 신하(臣下)들에게 *아람 왕이 약속(約束)을 어기고, 길르앗 라못을 반환(返還)하지 않고 있으니, 전쟁(戰爭)을 다시 해서 빼앗자'고 제안(提案)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합이 두 번의 전쟁(戰爭)에서 크게 승리(勝利)하여 이스라엘의 영웅(英雄)이 된 것입니다.
아합은 *아람 군대(軍隊)는 마음먹기만 하면,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自信感)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이 알지 못한 것은 *어떻게 해서 이길 수 없는 전쟁(戰爭)을 이겼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恩惠)였고,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라봇이라는 의인(義人)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은 죄로 근신(謹愼)중에 있었습니다. 아합이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延長)하려면, 죽는 날까지 근신(謹愼)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은 3년이라는 시간(時間)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길르앗 라못이라는 땅에 대 (對)한 욕심(慾心)이 생겨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 등장(登場)하는 사람이 곧 유다 왕 여호사밧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유다 왕으로서 아주 신앙적(信仰的)인 인물(人物)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버지 아사 처럼, 유다 안의 우상(偶像)을 없애고, 여호와의 신앙(信仰)을 회복(回復)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의 치명적(致命的)인 결점(缺點)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는데, 너무나 열정적(熱情的)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통일(統一)에 관심(觀心)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는 것, 즉 남북화해(南北和解)에 열심을 냈습니다.
어느 정도로 열심(熱心)이었는가 하면, 하나님이 미워하는 아합과 전쟁(戰爭)을 같이 하고, 그와 사돈(査頓)맺을 정도로 열심(熱心)이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남북(南北)문제가 중요하고, 화합(和合)이 중요하더라도'
*하나님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는 것도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합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하나님의 능력(能力)으로 남북(南北)이 하나 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위정자(爲政者)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인간적(人間的)인 방법(方法)을 써서라도 남북(南北)이 가까워지게 하려고 하겠지만, 너무 무리(無理)한 경우 *안보(安保)가 흔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여호사밧이 아합을 가까이 한 결과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과 유다가 가까워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여호사밧은 길르앗 라못 전투(戰鬪)에 함께 참가(參加)했다가 아합으로 오해(誤解)받아 죽을 뻔 했습니다.
그리고 아합의 딸과 자기(自己) 아들을 결혼(結婚)시켰는데, 아합의 딸이 남편이 죽은 후에 유다의 *왕자들을 모두 죽이고, 자기(自己)가 왕 노릇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의 아들 아하시야는 이스라엘의 사돈(査頓)을 방문(訪問)했다가 반역(反逆)을 일으킨 예후의 손에 죽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사밧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스라엘과 가까워져서 이스라엘의 통일(統一)을 앞당기려고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유다를 거의 망하게 하는 결과를 얻게 했습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이 자기(自己)를 방문한 틈을 타서 길르앗 라못을 칠 계획(計畫)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여호사밧을 전쟁(戰爭)에 끌어들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對)하여 여호사밧은 아무런 군소리 하지 않고, 순순(順順)하게 *전쟁(戰爭)에 참여(參與)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할 때, *남북관계(南北關係)가 더 가까워질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호사밧은 너무나도 순진(順進)했던 것 같습니다.
즉 길르앗 라못 전쟁(戰爭)이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이기게 하실 것'이고, *이번 전쟁(戰爭) 에서 같이 이기면. 이스라엘과는 아주 가까워질 것'이라고 착각(錯覺)했던 것입니다.아-멘
복음송(대하 20:15)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매일 새벽(冬)4-5시 ✫ 주님께 도움의 기도하는 습관. ✫ 저녁엔 회개와 범사에 감사하는 삶(살전517) 💖진리의 복음💖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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