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빌린 책을 다시 제본하면 망가지지 않나요?
jungwan80@empas.com 질의에 대한 응답

을지로3가쯤에서 충무로역, 진양상가 주변 등을 세칭 인쇄골목이라고 부릅니다. 인쇄에 관한 모든 것이 모여있지요. 디자인, 레이아웃, 제판, 인쇄, 제본... 그리고 촬영, 복사, 명함, 캘린더... 등입니다. 그 중에서 제본만 따로 해주는 곳이 있습니다.
어떤 책인지, 어떤 제본인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재 제본은 많이 하는 방식입니다. 이를테면 도판책을 드럼스캔 받으려면 책을 낱장으로 해체해야하죠. 그런 다음 신간제본과 같은 방식으로 제본합니다. 보통 떡 제본을 하죠. 책장들을 쌓아놓고 한쪽에만 접착제를 바른 후 다시 표지를 씌웁니다. 만약 스테이플로 찍었다면 약간 책이 흠집이 갈 수 있습니다만, 떡 제본은 다시 제본하더라도 책이 거의 상하지 않습니다.
먼저, 복사점은 가지 마시고, 명함 제작사 정도 규모의 영세제본업자를 찾으시죠. 책이 낡았으면 떡 제본한 부분까지 재단기로 잘라버리고, 다시 제본을 합니다. 필요하면 표지와 내지 사이의 간지도 갈아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표지를 붙이고 난 다음 나머지 3면을 재단하면 완전히 새 책처럼 됩니다.
(사진 왼쪽: 대만 타이페이 충양투수간-중앙도서관에서 복사한 자료들입니다. 멋지게 제본하고 싶어서 덕성여대 앞, 성신여대 부근 복사점에 갔는데 거절당했습니다. 심지어는 재단기로 자르는 것도 안된답니다. 그래서 제가 떡제본 방식으로 제본하고 미제 스테이플러로 제철하고 투명 표지를 앞뒤에 대고 청테입으로 발랐습니다. 이런 걸 빛좋은 개살구라고 하던가요? 한 이십년 지나니까 너덜너덜하군요.)
약간 책은 작아질 수 있지만 사실 재단기는 몇 밀리미터 단위로 자를 수 있어서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하나, 만약 표지가 하드보드이며 책보다 크다면 먼저 재단을 하고 난 다음 표지를 붙입니다. 그러면 책의 크기는 전혀 차이가 없어 보일 것입니다.
친구의 귀중한 책이니까 재 제본을 해서 돌려주려는 마음이 가상하군요. 인쇄골목에서 사정을 이야기하면 깜쪽 같이 새 책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사진 오른 쪽: DVD케이스에 삽입되는 인쇄물 재단용으로 쓰고 있는 재단기입니다. 인쇄소에서는 마스터 인쇄라도 백장 정도 인쇄도 천장 인쇄비용을 요구하니까, 레이저 프린터로 인쇄하고 재단하면 그런대로 쓸만하죠. 그렇다고 일제나 미제를 쓰기는 부담이 되고 그래서 재단기라는 이름을 가진 무식하고 엉성한 중국제를 사긴 했는데 한국인의 손재주와 눈썰미가 가미되면 그런대로 괜찮은 재단기가 됩니다. )
2016년 補遺
전철 충무역에서 내려 을지로 가는 첫번째 골목 오른쪽으로 꺾어져서 구멍가게 같은 제본집에 제가 집에서 출력한 원고를 디밀었습니다. 표지 디자인을 다시 스캔하고 뭐, 주물럭 주물럭 하더니 표지 근사하게 붙인 책을 건네 줍니다. 떡제본도 커팅도 표지 붙이기도 그냥 오토메이션-반자동이더군요. 신기해서 한 2만원 달래도 줄려고, 얼마요...물으니까, 신기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7천원요...현금출납기에서 현금 찾아서 3천원짜리 건강스낵 사서는, 구멍가게에 잔돈이 없다해서 두개 샀으니까 하나 심심할 때 드셔유...하곤 드렸습니다. 아자씨는 뭘 이런걸 다...하시면서 완전 칙사대접에 문까지 열어줍니다...
하루 종일 신기했습니다. 비록 일꺼리가 없어졌다 해도 기본적인 인건비, 월세, 감가상각비 혹은 임대료 등은 계산이 되어야 할 터인데...달랑 7천원?
신용카드 꺼내지 않은 내가 참 대견했습니다.
휴-오른쪽 사진 옆 여백 다 채우느라 힘드는 군요...그래도 대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