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홍(李炳洪) |
출생 | 1891년∼1955년 10월 17일 |
1891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출생 |
호 | 현포(玄圃) |
생애 | 경성부 오성학교 졸업 |
1919년 3월 3일에 있은 고종황제의 국장일을 계기로 하여 거족적인 민족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났고, 진주 또한 3월 18일부터 5월까지 대소 20여 회에 가까운 시위에 3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였다. 진양군 내에서 발생한 주요한 만세 시위 운동은 정촌면과 미천면을 들 수 있다. 단성면 배양리에 거주하던 이병홍은 평소 가까이 지내던 정촌면 관봉리 강재순에게 서울의 3.1운동을 목격하고 숨겨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를 넘겨주고 동지 이종언과 수백장의 선언서를 찍어내어 인근 동지들에게 비밀리에 전달하여 다 같이 봉기할 것을 촉구하는 등 조국 광복에 힘썼다. |
상해임시정부 요인으로도 활약 |
1948년 5월 10일 : 제헌 국회의원(경남 산청) 낙선 |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36년 일제 침략기 동안 일본에 아첨한 사람을 가려 벌주는 위원회) 제1조사부 위원장 |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남도 산청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대한국민당 강기문 후보를 누르고 당선 제2,3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 |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남도 산청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 |
사망 | 1955년 10월 17일 새벽 심장마비로 삼청동 자택에서 사망, 제3대 국회의원 임기 중 사망 |
묘지 | 망우리공원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