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금동대향로의 용봉 봉래산 연화생 등 많은 설명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해양교역이 활발했던 백제로서 어느 하나의 사상을 고집할 이유와 필요가 없었을 수 있다. 다양한 문화를 녹여 왕실의 권위를 표상할 수도 있다.
42마리의 동물은 동양신화의 상상의 동물로 12명의 사람은 신선사상으로 연꽃은 연화생으로 물론 설명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신선사상은 연제해빈燕齊海濱 동이의 사상에서 용봉龍鳳은 동이의 경전이라는 산해경山海經의 표상적 상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신선사상과 악기-주악선인과 봉황의 연결고리를 찾기가 난감할 지도 모른다. 시야를 넓히면 악기는 동이東夷 순舜임금의 연금玄琴과 음악은 순임금의 소소簫韶에 단서가 있을 수 있다.
김영재 민화의 뿌리에서 인용한다.
『어람御覽80』에 인용된 『제왕세기帝王世紀』에는
돌을 세게 혹은 채杖로 치거나 손으로 혹은 가볍게 두드리어 장단을 맞추고 구소九韶를 노래하자 온갖 짐승이 이에 따라 춤을 추었고 경성(景星; 瑞星)이 방(房; 房星)에서 나왔으며 땅에서는 승황의 말乘黃之馬이 나왔다.
고 했다.
서경과 중종실록에 순임금의 음악인 소소簫韶가 진선진미하다고 했다.
『서경書經』에는 또
소소簫韶를 구성九成, 즉 아홉 번 연주하니 봉황래의鳳凰來儀, 즉 봉황이 법도에 따라 춤추었다.
고 했다.
『중종실록中宗實錄』의 권제1, 71장에는 시독관侍讀官 김세필金世弼이
공자가 제齊에 있을 때 소韶를 듣고, 음악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하였으니, 그 아악雅樂됨이 진선진미盡善盡美한 것입니다
고 하였다.
특히 한국에서 봉황의 위상은 높다. 그 출생의 기원과 연관이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또 강륜효자도에는 순임금의 효도를 상징하는 금琴 혹은 ‘현금弦琴’이 빠지지 않는다. 순임금 당시의 악기를 현금이라 부를 상당한 근거가 있다. 가야금伽倻琴은 가야의 가실왕이, 거문고玄琴는 고구려시대 왕산악王山岳이 만들었다고 했으니 문맥상 맞지 않는다.
다시 민화의 뿌리이다.
『사기史記卷一』「오제본기五帝本紀第一」에
순舜의 아비 고수瞽叟는 완고하고(頑), 어미는 어리석었으며(嚚), 아우 상象은 오만했으며 모두 순을 죽이려 했다. 순은 순순히 적응하여 아들의 도리를 잃지 않고 효도하며 형제간에 자애로웠다.
순을 죽이고자 했으나 죽일 수가 없었고, 순은 죽이려는 것을 알면서도 찾아가 곁에 있었다. 사기史記에서는 이를 즉구상재측(卽求,嘗在側)이라 했다.
고수瞽叟는 계속 순을 죽이고자 했다. 순에게 창고에 올라가게 한 후 사다리를 치우고 창고에 불을 질렀다. 순은 두 개의 삿갓으로 자신을 덮어 가리고 내려왔으므로 죽일 수 없었다(舜乃以兩笠自扞而下, 去, 得不死).
후에 고수가 순에게 우물을 파게 했다. 순은 우물을 파면서 옆으로 나갈 구멍을 만들었다. 고수와 상은 함께 흙으로 우물을 메웠다. 순은 숨겨둔 구멍을 따라 나와 도망갔다. 고수와 상은 순이 이미 죽었다고 기뻐했다.
순을 파묻은 후 상은 순의 방에 들어가 살면서 금琴을 뜯었다.
순복궐제舜服厥弟라 했다. 순이 장님 아버지 고수瞽叟, 계모와 이복동생 상象의 반복된 살해 기도에도 오히려 효행의 도를 다하였다는 말이다. 그림에서는 대순탄금大舜彈琴을 상징하는 현금이 그려진다.
금동대향로라는 이름 안에 내포된 많은 문화와 사상을 동이라는 맞쇠로 접근할 때 총체적 포괄적인 설명과 명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유물 유적은 넓고 깊은 지식과 견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다큐 등에서 빈출頻出하는 중구난방衆口難防의 해설에 근거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미지: Sky A&C 위대한 유산 시즌 4 하늘이 구한 유산 77회 백제금동대향로에서 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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