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남을 卒業하는 SK戰士들[낙남정간 제15구간 종주후기]
[고운동치-묵계치-외삼신봉-삼신봉-영신봉-거림]
2006. 6. 10(당일)
★교통및 참가인원 : 25인승버스 SK 산악회원 및 동호인 8명
김경관, 이창호, 손정완, 심기수, 문호준, 이채욱, 이채욱2남, 황전효(존칭생략)
★날씨 : 맑은 후 비(천둥과 번개)
★산행코스
고운동치-묵계치-외삼신봉-삼신봉-음양수샘-영신봉-세석-거림
=== 도상거리 12.9+6.6=19.5㎞, 실 21.5km, 총 소요시간: 11시간 05분 ===
★GUIDE
[구간별 소요시간]
* 6월 10일 (토)
08:45 고운동재(803m)
09:25 묵계치(815m)
09:50~10:10 1050봉
11:25 외삼신봉(1288.4m)
11:10 갓걸이재(청학동3거리) 이정표(청학동 2.0km 세석 8.0km)
11:50 쌍계사3거리 이정표(청학동 2.5km 세석 7.5km 쌍계사 8.9km)
11:55 삼신봉(1284m)
12:25~13:15 이정표(청학동 3.3km 세석 6.7km) 중식
13:30 이정표(청학동 4.5km 세석 5.5km)
13:45 한벗샘3거리(1200m) 이정표(청학동 5.2km 세석 4.8km 한벗샘 40m)
13:50~14:00 한벗샘
14:10 헬기장
14:40 비박굴/세석3.3km
15:00 석문
15:15 대성동갈림(1350m) 이정표(삼신봉 5.3km 세석 2.2km 대성교)
15:30 주추돌
15:35~16:20 음양수(1450m)
16:50 전망대 제단
17:10 영신봉(1651.9m)
17:40 세석
19:50~20:10 거림매표소
20:20~22:00 거림(하산식)
22:00 차량 탑승 / 울산으로 출발
24:30 울산 도착/ 해산
[구간별 거리-도상거리] 총거리 약 19.5km
고운동치-묵계치 (1.8㎞)
묵계치-외삼신봉 (2.5㎞)
외삼신봉-삼신봉 (1.0㎞)
삼신봉-음양수샘 (6.0㎞)
음양수샘-영신봉 (1.6㎞)
영신봉-세석 (0.6㎞)
세석-거림 (6.5㎞)
★식수 구할수 있는곳 1) 한벗샘 2) 음양수샘 3) 세석대피소
●낙남정간 15구간(완주구간) 종주를 시작하며
"완주의 그날을 맞이하여 SK산악회 홧팅!!!" 아! 낙남의 졸업이다.
작년 1월에 시작된 낙남이 우여곡절 끝에 졸업을 맞이하게 되었다.
설래는 마음으로 새벽공기를 마시며 달려나간다.
15구간(완주구간)의 개요를 정리하자면 출발 고운동치에서 영신봉까지는 지리산의 남부능선으로 역사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며 신산으로 제단과 주위의 도인촌, 삼성궁등 신과 관련된 지역이다.
또한 지리산 국립공원내의 영구통제구간 3곳을 지나는데 고운동치에서 갓걸이재(청학동 삼거리), 음양수샘에서 지리산 주능, 지리산 주능에서 영신봉 정상까지의 3곳을 지난다.
고운동치부터 외삼신봉까지는 급격한 고도상승과 산죽군락으로 매우 힘든 곳이며 외삼신봉을 지나면 완만하고 잘 정비된 등로가 진행된다.
●2006年 6月 10日
태화로타리, 신복로타리에서 8명의 대원이 낙남의 졸업을 위해 출발한다.
차량은 울산 언양간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남양산 분깃점-대동나들목-북부산나들목-남해고속도로 -진영휴게소-남해고속고도-휴게소-대전통영간고속도로-단성나들목-중산리방향진행-거림방향진행 -삼신봉터널-고운동치에 도착한다.
08:30 고운동치(803m
고운동치에 도착하여 채비를 하고 창호세야가 낙남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영덕대게를 한 박스나 준비해왔다.
시작부터 끝가지의 보급대 창호세야와 형수님에게 감사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대게3마리를 배낭에 넣어 메고 상하기 전에 단체로 혼 함 빼고 출발 준비를 해본다.
●2006年 6月 10日
08:45 고운동재(803m) 산행시작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출입금지 푯말과 함께 팬스가 쳐 있는 가운데 철조망의 좌측 가장자리를 통해 진입한다.
고운동치부터 외삼신봉을 지나 청학동 삼거리까지는 영구 통제구간이다.
관리공단직원에게 걸리면 벌금이 50만원씩이다. 8명이명 400만원… 워메 큰일이구마…
등로는 뚜렷한 편이고 낙엽이 깔린 부드러운 길을 올라가 흔적만 남은 묘터를 지나니 산죽군락의 시작을 알린다.
산죽과 처음부터 쳐올리는 급경사의 오르막이 장난이 아니다.
산죽사이로 1010봉을 지나고 봉우리의 좌측사면의 급경사를 내려서면 묵계치이다.
[고운동치]
[고운동치]
[산죽군락이 시작되는 묘지]
[산죽군락]
09:25 묵계치(815m)
해마다 큰 폭우가 쏟아져 냇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해서 유래된 묵계(默溪)는 이제는 삼성궁과 도인촌 청학동에 가려 이름조차 멀어져 가고 그 고개인 묵계치는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 (慶尙南道山淸郡 矢川面 內大里) 하동군 묵계리와 시천면 내대리 주민들이 교류한 산재머리로 지금은 삼신봉 터널이 뚫려 헬기장만 덩그러니 있다.
묵계치는 사방이 산죽인데 좌측은 삼신봉 터널입구 우측은 ‘내대리’로 내리는 길이다.
잠깐의 휴식으로 땀을 식히고 다시 산죽 숲을 헤친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산죽길이라 더욱 힘이 들고 피해갈 도리가 없는지라 묵묵히 헤치고 나간다.
봉우리 하나를 올라서니 여기가 1050봉인 줄 알았는데 전방에 1050봉인듯한 봉이 버티고 있어 씩씩거리며 올라선다.
그래도 그러한 상황를 알고 진행을 하기에 부담은 덜 한 느낌이다. 그저 묵묵히 헤치면서 오른다.
[묵계치]
09:50~10:10 1050봉
조그만 바위가 있어 쉬기 좋은 곳으로 오름짓에 힘들었던 다리에 쉴 기회를 준다.
주유소를 차린다. 휘발유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아 핏쳐로 갈증을 해소하고 나니 창호세야가 옻술이라며 꺼내 놓는데 맛이 일품이다.
창호세야는 출발 때부터 마지막 완주구간까지 한번도 빠짐없이 대원들의 즐거움을 위해 보급대 역할을 해오셨는데 오늘도 예외가 아니다. 감사할 따름이다.. 창호세야 ㄳ…...
소나무 숲길을 따라 암릉을 오르내리며 나아가다 암벽을 돌아 올라가니 1070봉에 이르고 다시 내려갔다
암릉지대를 통과하며 곳곳에 비박의 흔적을 발견하고 완만한 능선을 진행하는데 앞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려 낙남꾼인 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였으나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다.
4명인데 된통 걸렸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말로 하시고 보내주시니 감사에 또 감사올시다…
10여분 이야기하다가 진행하니 로프가 걸린 수직 암벽을 만나고 오르기 전에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허기를 느껴 간식으로 보충하고 진행을 계속한다.
로프가 걸린 수직 암벽을 올라서면 좌우측으로 텐트자리가 멋지게 자리하고 다시 올라서면 외삼신봉이다.
[주유소]
[1050봉]
[비박지]
[외삼신봉 직전 로프가 걸린 수직암벽]
11:25 외삼신봉(1288.4m)
외삼신봉에는 정상석과 큰 바위가 하나 올려져 있다.
삼신봉(1,284m)과 내삼신봉(1,354.7m)이 바로 잡힐 듯 건너다 보이고, 우리가 가야 할 영신으로 이어지는 마루금과 노고단(1,507m)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 주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좌측갈림길을 들어서니 갑자기 등산로가 좋아지고 시그날도 자주 띄고 산죽군락은 지겹도록 계속된다.
순한 길이 잠시 이어지다가 산죽내리막을 빠져나가니 청학동 삼거리다.
[외삼신봉]
[외삼신봉에서]
11:10 갓걸이재(청학동3거리) 이정표(청학동 2.0km 세석 8.0km)
이곳부터는 넓은 길이고 산행객들이 많다.
이정표에는 굵은 글씨로 갓걸이재라고 써 놓았다. 여기서부터는 개방구간이다.
되돌아보니 출입금지팻말이 보인다. 넓은 을 따라 올라서면 삼거리 능선분기점인 쌍계사방향 삼거리이다.
[갓걸이재(청학동3거리)]
11:50 쌍계사3거리 이정표(청학동 2.5km 세석 7.5km 쌍계사 8.9km)
왼쪽(서남) 능선길이 내삼신봉을 지나 불일폭포를 경유해 쌍계사로 내려가는 코스이다.
우측으로 5분쯤 암릉길을 올라가니 삼신봉에 닿는다.
[쌍계사3거리]
11:55 삼신봉(1284m)
돌무더기를 쌓아 올린 제단과 삼신봉 정상석이 있다.
청학동 주민들이 곡우절 등에 이곳에 올라 산신제를 올린다.
그 뒤로 지리주릉을 표시한 안내판과 지리산 전경을 다시 한눈에 보게 된다.
여기서는 여러분을 만나게 된다. 허기가 져서 얼른 혼 함빼고 정상석 뒤로 진행한다.
완만한 길을 나아가면 좌우로 아픈 역사의 횡사목군락을 만난다.
대성골의 빨치산을 토벌하기 해 비행기로 휘발류 수천 드럼통을 낙하하고 이어 소이탄으로 불바다가 된 겨울 숲의 흔적이다.
5일 간 불바다였던 대성골과 바위벽 아래에서 생쌀을 씹으며 4박 5일간 사투끝에 기적적으로 생존한 마지막 여자 빨치산 정순덕 여인과 당시 참상을 대변하는 곳이다.
[삼신봉]
[삼신봉에서]
[횡사목군락]
[삼신봉에서 본 내삼신봉]
*참고 정순덕-마지막 여자 빨치산(남편을 찾아 빨치산이 된 여인)
1933년 6월 경남 산청 출생 1951년 1월 빨치산 정석조와 결혼한 본인도 빨치산 입산
1963년 11월 체포된 후 대구, 공주, 대전 교도소에서 모두 23년간 복역
1985년 8월 가석방으로 출소
1995년 8월 비전향장기수 공동체인 서울 봉천동 낙성대 '만남의 집'에 정착
1999년 3월 뇌출혈로 쓰러진 이래 지금까지 인천 나사렛 한방병원에서 투병생활
2000년 9월 정부에 북송을 요구 했으나 대상자에서 제외
2004년 4월 1일 사망
[빨치산 몰살의 비운을 간직한 협곡]
1952년 1월 17일은 지리산 온 골짜기를 가득 메워버릴 것처럼 함박눈이 내렸다.
그날 날이 저물면서 빗점골, 거림골, 신흥 등지의 방면에서 빨치산이 대성골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
다음날 새벽쯤에는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눈 덮힌 대성골 전체가 빨치산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순덕(정순덕)이 가늠하기에도 1만 명의 대병력이 대성골에 빽빽히 들어찬 것이다.
빗점골 의신부락 뒤쪽에서 토벌대들이 언제 야포를 끌어다 놓았는지 금세 대성골로 포탄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스무발 이상이 동시에 작렬했다. 귀청이 찢어질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달아나는 것 같았다. ....... 시간이 지날수록 희생자는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토벌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훤히 내려다보며 토끼몰이를 하듯 포위망을 좁히며 포격을 퍼부어 대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동작이 빠른 지휘관이나 전사들은 토벌대와 정면으로 부딪치며 포위망을 뚫고 나갔지만 대다수는 독 안에 든 쥐처럼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어 자빠졌다. 발에 걸리는 것이 시체들이었다.
하루 종일 퍼부어 대던 포격도 총격도 해가 지면서 추춤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쪽 하늘에서부터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 ......
머리 위에 떨어지는 시커먼 물체는 휘발유가 가득 차 있는 '드럼통'이었다.
비행기 편대는 네 번 아니 다섯 번 쯤인가 대성골 골짜기에 마개가 빠져 있는 드럼통을 삐라처럼 뿌리고 다녔다. 그러다 마지막 편대에서는 주먹만한 것을 골짜기 곳곳에 날려보냈다. 바로 소이탄(燒夷彈)이었다.
그 순간부터 하얀 눈으로 덮혀 있던 대성골은 시뻘건 불바다로 변해버렸다. 발췌- [실록 정순덕]
쫓겨 지친 대원, 소대, 비무장이 속속 박다내골(일명 의신골, 하동군 화개면)로 모여들었다.
박다내골은 험한 바위가 우뚝우뚝 솟은 험상궂은 골짝 저마다 배낭을 털어 비상 쌀알을 씹는다. 나눠준다.
지휘관들은 수군수군 머리를 짰다.
박다내골을 눈치챈 토벌대는 사단병력을 총동원 박다내골을 몽땅 포위 쥐새끼 한 마리도 놓치지 않을 태세 포탄과 총알이 나무뿌리를 날리고 바위를 쪼갰다.
악, 악, 여기 저기서 육박전. 아, 처참한 비명 아우성. 굉음, 눈보라, 흙보라, 피보라, 비행기는 가끔 소이탄을 떨어뜨려, 빨치산을 태워 죽인다.
포위 나흘째 올가미는 바작바작 좁혀왔다. 박다내골 마지막은 비장해 딴 도리가 없다고 판단한 팔로군 출신 인민군 장교 5연대장 김모는 '조국과 인민이 주는 마지막 훈장'이라며 동료 여섯을 그들 소원대로 차례로 쏘고 남은 한 방으로 자기의 심장을 쐈다. 1952년 1월 18일의 일이다.
죽은 자 가운데는 노영호 사령관을 따라 짧은 생애나마 노사령관을 그렇게도 사모해마지 않던 빨치 허귀연이 끼어 있었다.
이때 단 한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이 있었으니 5연대장의 연락병 임창해(당시 20세)다. 허리에 총을 맞고 신음 중 국군에 구출되었다.
이 '죽음의 골'에서 이영회와 노영호 두 지휘관은 각각 다른 방향에서 약간의 대원을 이끌고 필사적,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갔다.
1952년 9월 광주형무소에서 노영호의 동생 노영수는 우연히도 임창해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허리부상을 앓고 있었다. 둘은 꿈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예, 수백 명은 죽었을기라요." "경냄이 녹아난기가......비무장까지 합치모온 8백은 넘을끼더." 발췌-[죽음의 골,실록 연작시 지리산]
마음의 아련함을 느끼며 횡사목 군락을지나 좌측으로 암봉들을 끼고 돌아가면 이정표를 만난다.
12:25~13:15 이정표(청학동 3.3km 세석 6.7km) 중식
이정표 앞으로 약간의 공터가 있고 여기서 중식을 해결한다.
창호세야가 준비한 영덕대게와 씨래기 산악회 답게 준비된 각종 씨래기와 휘발유, 핏쳐 다양하게 배를 채운다. 중식을 해결하고 계속 따라 나아가니 쉴 만한 공터가 있는 능선분기점에 올라서고 왼쪽으로 꺾어 10분쯤 내려가니 이정표이다.
[이정표(청학동 3.3km 세석 6.7km)]
13:30 이정표(청학동 4.5km 세석 5.5km)
세석 5.5km, 청학 4.5km 이정표를 지나 좌측에 “탐방로가 아닙니다.”라는 팻말이 있는데 ‘단천골’로 내리는 길인 듯하고 잘 정리된 산죽길을 달려가면 이어 한벗샘 삼거리이다.
[이정표(청학동 4.5km 세석 5.5km)]
13:45 박단재(수곡재) 한벗샘3거리(1200m) 이정표(청학동 5.2km 세석 4.8km 한벗샘 40m)
이곳은 지난날 거림마을과 대성마을 사람들이 서로 넘나들던 생활로이다.
이정표를 보고 우측 한벗샘을 보기위해 내려간다. 배낭을 벗어 놓고 가려니 손대리가 메고가자네 그려… 할 수 없이 메고 내려간다. 내려가는데 꾀 있는 몇몇이 베낭을 벗어 놓고간다… 손대리 때문에 내만 죽는구마…ㅋㅋㅋㅋ 잠깐 내려가면 한벗샘이다.
[박단재(수곡재) 한벗샘3거리(1200m)봉]
13:50~14:00 한벗샘(박단샘, 수곡샘)
갈수기에는 물이 나오지 않고 지금은 수량이 제법된다.
어느 분의 배려인지 밥그릇 하나가 놓여있어 감사히 물 한잔 한다. 물맛이 시원허니 좋다.
한벗샘 앞으로는 두동은 칠 수 있는 공터가 있어 야영하기에는 제격이다.
원래는 박단샘, 수곡샘으로 불렸으나 마산의 한벗 산악회에서 샘을 정비하고 붙인 이름이 공단에서 세운 표지판에도 한벗샘으로 기록되어 있다…고유의 이름을 되찾기를 기원해 본다.
아래쪽으로는 통제구간으로 한벗샘에서 발원한 자빠진골을 따라 거림으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있다. 자빠진골은 능선에 삐뚜름하게 붙어 자빠진듯 생긴 모양을 보고 [자빠진골]이라한다.
세석에서 5.5km, 거림에서2.5km지점에서 합류한다.
또한 이곳도 지난날 반란의 역사 격전지였던 곳으로 빨치산 시신들이 엎어지고 자빠진 채 버려진 곳이다. 다시 박단재 삼거리로 올라와 영신봉으로 향한다.
잘 정비된 부드러운 길을 나아가면 좌측으로 단천골 갈림길을 지나고 완만하게 오르니 헬기장이다.
[한벗샘(박단샘, 수곡샘)]
14:10 헬기장
1237봉 헬기장에는 ‘세석대피소4.4km’이정표 떨어져 있다. 헬기장에서 내려 안부에서 급경사를 올라 바위봉우리 아래 비박하지 좋은 굴을 만나다.
[헬기장]
14:40 비박굴/세석3.3km
비박굴앞에는 이정표가 있고 암봉을 만나는데 좌측사면길로 돌아 올라가면 우측으로 조망이 장쾌한 전망바위에 서게된다.
촛대봉이 우람하게 보이고 세석과 갈야할 연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속 암릉 길로 이어진다.
안부로 내려섯다 부드러운 산죽길을 오르면 1270봉인 듯하고 나아가면 거대한 석문이 우리를 맞이한다.
[비박굴]
15:00 석문
신선이 노니는 청학동(이상향)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거대한 자연석문. 지리산을 오르려면 문을 지나야 한다.
통천문, 개선문, 안락문(安樂門), 신선대 아래 석문, 쇠통바위 석문 여기 석문등 그 중 지리남부능선에 있는 이 석문은 그 규모가 으뜸일 것 같다.
높이가 6~7m는 될 것 같다.
석문을 지나 봉우리를 사면으로 돌아 오르니 능선분기봉이고 잠시 평탄한 오름길이 되다가 점점 경사가 급해지더니 대성골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석문]
15:15 대성동갈림길(1350m) 이정표(삼신봉 5.3km 세석 2.2km 대성교)
좌측으로 대성리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여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큰바위를 만나고 바위의 좌측으로 돌아나가면 삼거리 분기점이고 좌측길로 진행한다.
좌측으로 나아가면 일명 돌절구통을 만난다.
[대성동갈림길]
15:30 주추돌
다들 절구라고 하는데 주위를 살피니 어떤 건물인지 모르지만 기둥의 주추돌 같은 느낌이다.
암자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길이 넓어지고 국립공원의 등로 난간이 설치된 곳을 올라가면 음양수샘이다.
[주추돌]
15:35~16:20 음양수(1450m)
바위틈에서 나오는 석관수이다.
햇볕이 드는 우측이 양수(陽水), 그늘진 좌측이 음수(陰水)라고 하며, 음수는 수량이 작고 양수는 수량이 풍부하다.
한 바위에서 양성의 샘물이 각각 흘러나와 음양수라고 하며 두 샘이 한 곳으로 모여 고여 흐르기에 그 물을 마시면 아이를 갖을 수 있다는.. '전설의 샘'이다.
반갑다. 음양수…. 물한잔하니 그간의 피로가 사라지고 여기까지 오도록 지원해준 마눌과 가족들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수통에 물을 가득채운다.
이곳은 전설적인 여성 빨치산 김점분외 14인이 쫓기고 쫓기다가 비장한 최후를 마친 곳이다.
남부군이 몰락을 걷고 있던 53년 여름, 그녀가 이끌던 15명의 여성 대원들은 토벌대에 쫓기다 음양샘 바로 뒤에서 포위 되었다.
토벌대 포위망을 뚫고 나갈 가능성이 없던 김점분이 지휘하던 여성 남부군들은 그녀들이 권총으로 서로 쏘아 자결한 곳이다.
그들의 영혼이 편히 쉬기를 기원해본다.
음양수 샘터 위쪽에 커다란 돌을 쌓아 만든 음양수 제단이 있다. 이곳이 그녀들의 자결장소이다.
주유소를 차린다. 허기도 지고 휘발유와 핏쳐와 여기서 거의 배낭을 비운다.
내 배낭은 언제 비우노… 제물이 들어 있으니…. 한참의 휴식 뒤에 마지막을 위하여 출발한다.
여기서부터는 통제구간이다.
개방된 등로로 갈려면 세석으로 영신봉을 오르면 된다.
우리는 또 다시 어쩔 수 없는 불법의 희생양으로 통제구간으로 들어간다.
음양수샘에서 좌측과 음양수 위 제단좌측으로 들머리가 있으나 음양수샘의 좌측으로 들어가니 제단 바로 위에서 만난다.
음양수위 제단좌측으로 들머리를 잡는 것이 좋을 것으로 평가된다.
밋밋한 오름길에 희미한 족적이 있고 풀밭 길로 올라가서 좌측능선으로 치받아 올리니 등로가 없다.
다시 돌아 나오니 풀밭사이 마루금을 확인하고 간간히 시그날을 확인하며 오르니 좌측으로 널찍한 바위반석이 나오고 작은 돌탑(거북모양)이 있다.
돌탑을 지나 우측 사면길로 돌아 오르니 큰 바위와 제단형태의 돌무더기와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음양수이정표]
[음양수]
[음양수]
[음양수위 제단]
[바위반석위의 작은 돌탑(거북모양)]
16:50 전망대 제단
주상절리 같은 멋진 바위가 우뚝허니 솟아 있고 앞으로는 천길 낭떨어지다.
큰새개골 계곡이 발아래 펼쳐지고 돌제단이 있다.
한바탕의 숲지대를 빠져 나오면 조망이 탁트이는 넓은 길을 만나고 우뚝한 바위를 지나 돌로 단을 쌓은 곳에 올라서면 헬기장이고 영신봉표지목이 있는 지리산 주능선에 닿는다.
아! 영신봉 이제 그 끝자락에서 대원들과 환호하며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
지리 주능선에서 영신봉 정상까지도 통제구간이다.
여기까지 와서 정상을 안가볼 수 없지..
진입을 금지한 밧줄을 넘어 모두들 총알같이 올라간다. 영신봉이다….
아! 영신봉 영신봉 영신봉 영신봉 영신봉 영신봉 그 정상에 선다.
[전망대 제단]
[주상절리 바위]
[지리주능 직전 바위]
17:10 영신봉(1651.9m)
드디어 15차에 걸친 낙남정맥의 끝을 맞는 순간이다.
환호와 포옹으로 대원들과 기쁨을 나눈다.
낙남정맥 226.3.km의 대장정을 여기서 마무리한다.
그간 지나온 15구간의 마루금이 머릿속에 긴 여운으로 다가오고 희로애락속에 핀 낙남의 졸업이 기쁨과 한편의 허전함,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념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낙낙정간 마지막에 서서 SK산악회 홧팅!!!"
날씨가 궂어 질려고 하고 어두워 질 것 같아 하산을 서두른다.
세석대피소쪽으로 내려가며 세석 위 헬기장에서 그간 안전산행과 완주를 허락해 준 산신님께 감사의 제를 올린다.
제를 올리고 나자 빗방울이 쏟아진다. 우의로 대비를 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영신봉 단체]
[지나온 마루금]
17:40 세석
세석에는 많은이들로 붐빈다. 단체 촬영 후 거림으로 내려간다.
빗방울이 굵어지고 천둥과 번개가 장난이 아니다. 냅다 달린다.
이 빗속에도 올라오는 지리산메니아들을 종종 만나고 내려가는데 선두가 멈춘다.
내려가는 두분을 만나는데 한 분의 상태가 어려운 모양이다.
김총장의 스틱을 팔라고 한다네…
김총장님의 상비약을 드시게 하고 나에게 스틱이 두개가 있어 스틱 하나와 헤드렌턴과 핸드렌턴이 있어 핸드렌턴을 드리고 하산 후 택배로 돌려받기로 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안전한 하산을 기원해 본다….
많은 비로 인하여 등로가 미끄러워지고 등로가 하수로 역할을 해 물에 잠겨버렸다.
신발안도 흔건히 젖어 버렸다.
김총장이 억씨도 달려버리는데 바로 2~3m옆으로 번개가 떨어진다. 너나 누구 할 것 없이 동시에 바닥에 엎드린다. 번개는 이미 떨어져 버렸는데…ㅋㅋㅋㅋ
산신님께서 우리가 가는 것이 서운하신가… 아니면 앞에서 만난 분에게 보시 조금했다고 봐주시는 것인지… 이후에도 한번 더 엎드리는 일을 겪고서야 거림매표소에 도착한다.
[세석]
19:50~20:10 산행날머리 거림매표소
산행완료…
매표소아래 민박집에서 막걸리와 파전으로 후미를 기다리니 이내 합류하고 간단한 건배로 마무리한다
길상사 입구를 지나 거림주차장에 도착하여 차량으로 식당으로 이동하여 샤워로 젖은 몸을 추스리고 창호세야가 준비한 영덕대게와 닭도리탕으로 다시 한번 건배 잔을 돌리면서 완주의 기쁨을 나누어 본다.
[거림매표소]
20:20~22:00 거림(하산식)
22:00 차량 탑승 / 울산으로 출발
24:30 울산 도착/ 해산 낙남정맥종주는 이렇게 완료되었다.
“축 SK산악회 낙남정맥 완주”
정간대원 여러분 .... 낙남정간졸업을 하였습니다.
그 동안 함께 하신분들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모든분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간의 기쁨과 환히, 고통과 고난의 기억들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너무도 좋은 산행을 함께 하게 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산행 때 다시 뵙기를 바라며 지루한 글 끝가지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낙남정간 완주(제15구간)를 마치고 고장난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