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벽오동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 내 심은 탓인지 봉황은 아니 오고 무심한 일편명월이 빈가지에 걸려세라 ” 하는 시조가 있었습니다 아, 주제가 벽오동이 아니라 봉황이라구요? 그렇군요. 오늘은 봉황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용이 비늘을 가진 동물의 우두머리라면 봉은 새들의 우두머리라 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용을 남성적인 것, 봉을 여성적인 것이라거나 용을 화하華夏민족, 즉 중국의 상징적 동물이라고 보고 봉을 동이족, 즉 지금의 한민족의 상징이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봉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을 말씀해보실까요? 먼저 상서로움의 상징이었지요. 수를 놓은 봉대, 새긴 봉잠, 꽁지를 흉내 낸 봉미선 등이 있고 베갯모, 실패 등에 장식을 했지요. 아름다움의 상징으로는 좋은 벗을 봉려, 아름다운 누를 봉루, 피리 등의 묘음妙音을 봉음이라 했지요. 신성함의 상징이었습니다. 봉황을 장식한 궁궐을 봉궐, 수레를 장식하면 봉거, 연못을 봉지라 해서 왕가 왕궁을 신성화했습니다.
마치 봉의 나라라 할 수 있을 만큼 봉으로 둘러싸인 것이 한국입니다. 그러나 그 정신적인 배경은 보다 심원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봉황 하나만이 아니라 새로 상형되기도 하는 태양숭배사상을 봉황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아니, 봉황에 그토록 심오한 뜻이... 하고 생각하십니까? 그림을 보면서 답을 생각해 봅시다.
보통 이런 그림은 화조화라 분류하기 십상이었습니다. 꽃과 새 그림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봉황은 새라기보다는 상상속의 동물이고 오동은 꽃이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나오는 새들을 봉황이라 식별할 수 있는 징표가 있습니다.
민화 몇 점을 볼까요. 봉황은 오색의 털을 가지고, 닭의 머리에 제비턱, 뱀의 목에 거북등, 물고기 꼬리를 가졌다고 했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꿩의 머리, 원앙의 몸, 학의 다리, 앵무새의 부리 등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닭 벼슬과 길게 찢어진 눈, 오색찬란한 깃털과 현란한 꼬리, 긴 다리 등이 특징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한 징표를 가지면 어떠한 방법으로 그렸던 간에 모두 민화요, 봉황이라 보아 주었던 거의 우리의 민화였습니다. 혁필로 그린 봉황... 한번 볼까요.
1. 혁필봉황도 革筆鳳凰圖
혁필화 리쵸노 민가

오늘날 민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이 아닙니다. 혁필로 그린 민화입니다. 혁필이란 넓은 가죽 붓입니다. 조선시대 이후 세력을 떨쳤지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민속촌 같은 데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퇴락했습니다.
어릴 적 장터에 가면 혁필로 그림을 그리는 이른바 환쟁이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이름이나 문자 등을 쓰고 위에 소나무 학 호랑이 봉황 등을 그리곤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민화라는 것의 본질이었습니다. 주로 백노지라고 오늘날 신문지 같은 것에다 그림을 그렸지요. 넓은 붓에 여러 색의 물감을 칠하고서는 휘저어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람들은 주욱 둘러 앉아 구경을 하고 주문을 하기도 했지요. 구경꾼이 많을수록 환쟁이는 신이 났고 그림을 받은 사람은 소중히 집으로 모셔다가 벽에 붙입니다. 그러나 물감은 곧 퇴색합니다. 그림을 주문했던 사람 역시 그러려니 하지요. 그리고서는 잊어버리는 것이 이 그림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그림을 민화라 했을 때 한국사람들이 쉽게 이해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인들이 한국의 그림을 탐내기 시작합니다. 일본인들은 한국의 민화를 망각과 파괴에서 건져낸 공로가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외국인입니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그림들을 수집 했습니다. 고단샤(講談社)에서 나온 리쵸노 민가(李朝の民畵) 역시 일본인들의 입맛으로 수집되고 정리된 책입니다. 문제는 일본적 취향에 의해 한국의 민화라는 범주가 형성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일제는 조선왕조를 이씨조선, 줄여서 이조라 불렀습니다. 우리가 의식 없이 이조라 부르는 사이 조선이라 하면 북조선으로 통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민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인이 만든 민화라는 이름에 일본인의 취향에 맞는 그림, 그것이 오늘날 민화의 현주소입니다. 혁필화처럼 잊혀진 우리의 정다운 이야기,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누구이어야 할까요?
2. 강륜염자도 중 죽실봉황도 竹實鳳凰圖

강륜문자도 중에서 청렴할 염자입니다. 봉건유교사회에서 관료의 청렴함은 바로 국가기강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봉황이 그려졌습니다. 그 봉황이 깃들고 먹고 마시는 것이 있습니다
민화들을 몇점 볼까요. 가끔 렴자 그림에 봉비천인 기불탁속이라 글이 쓰인 경우도 있습니다. ‘봉은 천길을 날되 배가 고파도 속粟-조를 먹지 않는다’ 라는 말입니다. 대개 오동나무 또는 대나무와 함께 그려집니다. 책거리 그림에서도 대나무와 봉황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역시 벼슬을 하더라도 청렴한 관리가 되어라 하는 뜻이겠지요.
대나무를 상징하기 위해 죽순이 등장하지만 죽순이나 대나무보다 죽실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순임금 때 나타난 봉황이 오동나무에 앉아서 죽실, 즉 대나무 열매를 먹고 예천의 물을 마셨다는 전설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제 벽오동 심은 뜻을 아시겠습니까. 봉황은 오동에만 앉기 때문이지요. 대나무가 그렇게 높이 상찬되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그 이유 중 하나는 봉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의 봉황위에 대나무 열매가 그려집니다.
봉황이 먹는다는 죽실은 대꽃이 피고 난 다음 맺는 열매입니다. 그런데 대나무는 30년 60년 혹은 120년만에 꽃이 핀다고 합니다. 흉년에 죽실을 먹을 수 있다고 했지만 만약 죽실을 양식으로 삼으려면 3대쯤 기다려야 합니다. 상서로운 봉황이 탐욕없이 세월을 기다려 양식으로 삼았다고 생각했을 법 하지요? 그런데 대꽃이 피면 그 대밭은 말라 죽습니다. 이상하지요? 마치 봉황이 내려앉아서 말라 죽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 해답이 다음 그림에 있습니다.
3.조양봉황도 朝陽鳳凰圖

오동나무와 함께 그려지면 오동봉황도라 부릅니다. 그 중에서 태양이 함께 그려지는 것은 조양봉화도라 부릅니다. 아침 해와 봉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보통은 두 마리가 그려집니다. 수컷을 봉, 암컷을 황이라 한다고 했지만 그 구분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특이한 그림이죠? 종이도 좋지 않고 그림도 잘 그려지지 못했습니다. 다른 그림들 몇점 볼까요?
오동봉황도 조양봉황도
다들 잘 그렸죠? 어때요? 왜 이렇게 못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나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사실 이렇게 못생긴 그림이 우리가 민화라 불렀던 그림들이고 화면에서 소개한 그림들은 주로 일본인들이 수집을 했던 민화입니다. 한국의 민화에 일본인들의 감식안이나 취향이 영향을 미친 예입니다.
봉황도 이런 과정에 의해 중국에서 미화되고 정형화했을 것입니다. 그 봉황을 낳은 것이 뭐죠? 신화입니다. 황제 치세, 순임금 치세에 봉황이 나타납니다. 중국 역사에서 대표적인 태평성대죠. 그래서 이 새가 나타나면 태평성대가 나타난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봉황을 우리가 소중하게 모십니다. 왜죠?
봉황은 우리의 새입니다. 왕충의 <논형> 이나 설문 등에 반복하여 이르기를 봉황은 중국에서 출생한 새가 아니라 동방군자지국에서 출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준帝俊, 즉 순임금이 동이족이라 했습니다.
제준과 오색조
제준의 머리가 새머리죠. 동이족의 신모神母, 서왕모의 요지연에서도 봉황이 등장합니다. 유독 봉황이 동이족과 연관이 많군요. 물론 근거가 있습니다.
태양광조
봉황은 태양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군요. 동방에서 출생하고 뭇새를 이끌고 하늘을 나릅니다. 곤륜산을 지나 풍혈에서 잡니다. 태양새를 뜻하는 것이지요.
태양새라...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그 정체가 매우 잘 들어나는 것 같습니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새처럼 하늘을 나릅니다. 봉황을 따라 뭇새가 나르듯 해가 뜨면 뭇새가 둥지를 박차고 날아오릅니다. 실제로 봉황의 봉은 바람 풍자와 같고, 황은 빛 광자와 같은 뜻이라 했습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태양숭배사상과 조류숭배사상이 결합한 것이 봉황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산해경 남차산경에 묘사된 봉황은 인의예덕신(仁義禮德信)을 갖추었습니다. 가슴의 무늬는 인을, 날개 무늬는 의를, 등의 무늬는 예를, 머리의 무늬는 덕을, 배의 무늬는 신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이 새가 먹고 마심이 자연의 절도에 맞으며 절로 노래하고 절로 춤추는데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평안해진다고 했습니다. 어떤 세상인가요? 태양이 제대로 운행하고 있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봉황은 단순한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이며 역사이었습니다. 동이족은 알타이족에 속합니다. 알타이 문명전 혹시 보셨어요? 얼음공주의 문신 생각나세요? 바로 그리핀(Griffin)입니다. 그리핀은 새의 머리에 사슴의 몸통을 한 불사의 존재입니다. 동이계의 경전이라는 산해경에 등장하는 괴물들이 연상되지 않습니까? 그리핀은 봉 문화의 원형일 수 있습니다.
용과 봉, 그리고 산해경과 알타이의 영수들을 모두 집합한 개념이 있습니다. 사령이고 사신입니다. 다음 시간에 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