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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제1부
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믿음의 법칙
4차원의 영적 세계
말씀의 창조력
선포된 말씀
제2부
큰 비전을 품고 네 입을 넓게 열라
안드레형 사고 방식
믿음의 씨앗
하나님의 주소
하나님의 안식
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1. 믿음의 법칙
하나님께서는 절대 주권을 가지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위대한 권능을 베푸실 때, 여러분에게 나눠 주신 믿음을 적극 활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 12:3)도 말씀합니다. 우리가 느끼든지 못 느끼든지 간에 누구나 나름대로 믿음의 분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할 때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목적대로 팔을 움직이고 뻗습니다. 그런데 팔을 사용할 때마다 팔이 자기 어깨에 붙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가며 팔을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도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분량대로
믿음을 주셨습니다. 성경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가진 믿음이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되려면, 먼저 우리의 믿음이 성장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제 “내게 있는 믿음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실 것입니다.
분명한 대상을 마음속에 그리라
여러분이 가진 믿음을 사용하려면, 먼저 ‘분명한 믿음의 대상’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바라는 것들(분명한 것들)의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우리가 바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기도할 때, 목표가 분명하지 않고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으면,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원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분명하고 명확한 믿음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 교훈을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배웠습니다.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약속하신 구절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은 내가 예수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응답을 받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요 14:14)
또한 내가 하나님의 당당한 아들이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되신 “하나님의 자녀”(요 1:12)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습니다.
나는 성경의 약속을 믿으면 내게 필요한 것을 주님께 요청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께 기도한 물건들이 속히 도착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응답도 없이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두 달, 석 달, 넉 달, 다섯 달, 무려 여섯 달이 지나갔으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응답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하염없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는 여러 달 전부터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를 놓고 기도했는데, 아직 하나도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 가난한 동네에서 복음을 전하느라 얼마나 고생하는지 주님은 다 아시지 않습니가? 그런데 보십시오. 저 자신도 체험하지 못한 믿음이나 기도 응답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이렇게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고 굶어 죽을 지경인데 저들에게 어떻게 인생이 빵만으로 살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오래 전에 드린 기도가 언제, 어떻게 응답되는지를 지금 당장 분명히 확신할 수 없으니 정말 답답합니다. 만일 제가 죽고 난 다음에 응답하시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왕 응답하시려면 지금 저의 형편을 보시고 제발 좀 빨리 응답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한참 울며 신세 타령 반, 기도 반, 쏟아 놓고 나니 마음이 아주 평안해 지고 안정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평안이 넘쳐나기 시작했으며, 성령의 음성이 마음속에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내 아들아. 나는 오래 전에 너의 기도를 들었다.”
그 말씀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불쑥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 책상과 의자, 자전거는 다 어디 있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비롯한 내 자녀들이 온갖 부타과 요구를 하지만, 그들은 내가 응답하기에 합당치 않은 막연한 말로 달라고만 하는구나. 너도 마찬가지이다. 너는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의 종류가 수십 종이나 되는 것을 모르느냐? 네가 언제 내게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에 대한 분명한 종류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있느냐? 단지 막연하게 달라고만 하지 않았느냐?”
나는 이 말씀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책망하신 이 말씀은 나의 일생 일대에 놀라운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큰 실수를 했지만, 이것을 꺠닫게 된 것은 엄청난 복이었습니다.
“주여, 당신은 진정 분명한 말로 구체적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까?”
이때 성령께서 나에게 히브리서 11장을 펴 보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는 서두부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기도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기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드린 기도대로 착오 없이 응답하시도록 분명한 말들로 항목들을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데 믿음이 뱃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떨렸습니다. 그날 밤, 나는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깊이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기도를 인도하기 위해 4시 30분에 일어났을 때에는 갑자기 가슴이 텅 빈 것 같았습니다. 그 전날 저녁에는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믿음이 있었는데, 자고 나니 믿음은 날개를 치고 날아가 버려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나의 마음속에 믿음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아버지께서 응답을 주실 때까지 믿음을 간직한다는 것과는 정말 별개의 문제군요.”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반사로 겪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눈길이 로마서 4장 17절에서 멈추었습니다.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나는 이 말씀에 사로잡혔고, 이 말씀은 내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 나도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를 수 있다. 벌써 그렇게 한 것이다.’ 하고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믿음을 간직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 해답을 이 성경 구절에서 얻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막연한 기도에 응답하시면, 여러분은 그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인지 아닌지를 잘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분명하고 특별하게 요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분명하고 특별하게 요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 믿음으로 구체적인 기도를 해야 그대로 응답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막연히 중언부언하지 말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특정한
대상과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한 가지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보통의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여러분 안에 거하시고 계시나, 여러분의 삶과 관련된 것을 여러분의 뜻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행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생각과, 믿음과, 명확하고 구체적인 간구를 듣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응답받기 원하면 언제나 분명한 대상과 목표를 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비록 여러분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실지라도, 성경은 여러분이 간구해야 한다고 기록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나리” (마 7:7)
이 말씀은 여러분이 구하는 것을 ‘구체화’시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매우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구해야 합니다. 먼저 기도하기 전에 공책을 꺼내서 기도 제목과 내용을 쓰고 분면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나는 항상 교회 성장에 대해 하나님께 분명한 숫자를 제시하며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기도하실 때, 이런 심정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분의 기도 대상과 목표를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려 보아야 합니다. 이 믿음의 법칙이 확고해지도록 지속적으로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언제나 기도할 때 기도 대상을 명확하게 그려 보려고 애씁니다. 가슴이 떨릴 정도로 생생하게 대상을 그려 봅니다. 그럴 때 능력 있는 믿음의 첫번째 조건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불타는 소원을 가지라
많은 사람들이 그냥 습관적으로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생생한 그림을 마음속에 가진 다음에는 그 대상을 향해 불타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저의 기도에 응답하소서.”
성경은 잠언 10장 24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시편 37장 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여호와(야웨)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여러분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대해 불타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목표가 이미 성취된 모습을 계속해서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한 목표를 세웠으면, 그 목표가 이루어질 때까지 여러분의 마음속에 불타는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소원이 없다면 하난미이 주시는 소원이 임하기를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말씀을 통해 뜨거운 소원이 생겨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기를 열망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크고 비밀한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불타는 소원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받게 될 것입니다.
확신을 얻도록 기도하라
마음속에 불타는 소원이 생긴 후에 믿음의 실상, 즉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 ‘실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휘포스타시스”입니다. 이 말은 ‘권리 증서, 법적 보증서’, 또는 ‘실체, 본질, 확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표가 분명하고 여러분의 가슴 속에 불타는 소원이 끓어오르면, 여러분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되 믿음의 ‘실상’, 즉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일단 믿음의 ‘실상인 권리 증서나 법적 보증서를 마음속에 갖게 되면, 눈에는 아무 증거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합법적으로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믿음의 실상은 여러분에게 끌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의 ‘실상, 즉 ’확신‘을 갖게 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여러분이 믿음의 생생한 그림을 마음속에 그리고 그 대상을 향해 불타는 소원을 갖고 기도하여 확신을 갖게 된 후에는 믿음의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신다고 기록합니다(롬 4:17).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기적의 하나님’이신 것을 의미합니다.
형제, 자매들이여, 여러분은 웃음을 원합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웃음을 원합니까? 여러분의 사업과 여러분의 교회에 웃음을 원합니까?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기적은 맹목적으로 노력만 한다고 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세계게도 엄연한 법칙이 있습니다. 무한한 기적의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여러분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말하는 믿음의 고백을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안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야웨)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말씀과 언어로써 변화되지 않고 부정적인 모습에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권능을 나타내심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2천 년 전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권능이 충만하시며,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교회에 대한 비전은 외부 세계에서 먼저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믿음을 통해 내부에서 먼저 생겨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잉태하게 하시는 그 무엇이든지 여러분은 그에 대한 믿음을 잉태하게 되고, 잉태한 그것은 여러분의 환경 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 마음속의 변화에 유의하십시오.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직접 응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임했다면 확신을 갖고 그것을 주장하고 선포하십시오.
오늘날 교회는 말씀으로 명령하는 소임을 잃어버렸습니다.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창조적 역사를 일으키지 못하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달라고 구걸만 하고 있습니다.
홍해가 무섭게 출렁이는 해변에서 모세는 손을 들어 간구하였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를 도와 주소서! 애굽인들이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꾸짖었습니다.
“모세야, 왜 내게 울부짖느냐? 네가 명령을 하여라. 그러면 홍해가 갈라지리라.”
이같이 기도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명령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기도실에 들어가서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마치고 영적 전투장으로 나오면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창조적인 말씀으로 권세 있게 명령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신유 기도를 하는 것이 믿음의 은사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유의 은사로 하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나 혼자서는 어떤 은사도 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역사는 우리안에 계신 성령께서 대표적인 아홉 가지 은사를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나를 통해 나타내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통해 나타내시기를 원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 이십니다. 나는 오직 성령을 모시고 살며, 성령께 진적으로 복종하고 성령을 의지합니다.
내가 받은 은사를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담대한 믿음입니다. 담대함을 가지고 믿음으로 선포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여러분, 믿음의 법칙을 따르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믿음의 통로 따라 끊임없는 표적이 여러분의 일생을 통하여 나타나게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내주하시는 순간부터 성령의 모든 자원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분명한 목표와 대상을 가지십시오.
그것을 마음속에 최대한 분명하게 하십시오. 이미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며 불타는 소원을 가지십시오. 그런 다음, 믿음의 ‘실상’이 확신 있게 다가올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대로 될 때까지 확신 있는 말로 여러분의 목표를 시인하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반드시 여러분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2. 4차원의 영적 세계
우주에는 세 가지 형태의 영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성령, 악마의 영, 그리고 인간의 영입니다. 기하학을 공부할 때, 여러분은 한쪽과 또 다른 쪽의 두 위치에 점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 두 점사이를 선으로 그은 것을 ‘1차원’ 이라고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수백 수천의 선을 더 그으면 ‘2차원’, 즉 평면이 됩니다. 그리고 그 평면을 하나씩 쌓으면 ‘3차원’ 인 입체가 됩니다.
1차원인 선분은 2차원인 면에 포함되고 지배를 받습니다. 그리고 2차원은 3차원인 입체에 포함되고 지배를 받습니다. 이러한 기하학의 비유를 이용하여 우리는 물질 세계도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물질 세계는 3차원에 속합니다.
그렇다면 3차원의 물질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4차원에 속한 영의 세계입니다.(영의 세계를 편의상 4차원이라고 부르겠습니다.) 4차원의 영의 세계는 어떤 세계입니까? 여러분이 성경을 펴고 창세기 1장 2절을 읽으면 답이 나옵니다.
“땅이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그런데 이 구절을 원어 성경으로 보면 하나님의 신이 물 위에 알을 품듯이 부화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마치 ‘알을 품은 듯한 모습’으로 수면 위를 맴돌듯 날고 계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3차원의 세계를 품으시고 운행하시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실제로 행하시고 역사하시는 영원한 차원의 세계에 속한 분입니다.
사탄에 의해 지배되는 악령의 세계인 흑암의 왕국도 초자연적인 힘으로 영의 세계를 운영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영의 세계가 아닙니다. 이는 성령의 세계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애굽의 마술사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모방한 것과 같이 악령의 세계에도 일시적이고 허위적인 치료와 기적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악령의 세계에 특이한 사건들을 현란하게 일으키면서 사탄은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들입니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종교적인 체험은 할수 있다고 주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사탄이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사탄이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아무리 하나님의 능력을 모방한다 하더라도 그 능력은 역시 하나님의 권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영원한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성령의 영원한 세계에 사탄의 제한된 능력이 절대로 관여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3차원의 공허하고 혼돈된 세계를 품으시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를 선포하시자, 3차원의 공허하고 혼돈된 세계를 품으시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를 선포하시자, 3차원의 수면 위에서 부화하던 영원하신 성령의 역사로 창조가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혼돈과 공허에서 새로운 질서와 생명과 아름다움과 깨끗함과 풍요가 넘치는 세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육체적인 동시에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남녀는 어느 누구든지, 그들의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성령의 세계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4차원의 영적 세계에 거할 수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영은 하나님의 복과 능력이 아닌 사탄이 주는 허구적인 평화와 평안을 갖게 하는 어떤 환영과 그런 류의 영적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신적인 세계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무리의 최고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악마의 지배권에 근접한 동양의 신비주의 같은 데서 자주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저들이 사악한 영에 의해 여라 가지 이적을 행하는 것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굽의 마술사들이 모세의 이적을 흉내낸것과 같은 방식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따라서 동양의 각양 신비 종교들과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치료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동양의 신비 종교 지도자들은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영계를 탐구하여 그 영의 세계에 몰입함으로써 그들 나름의 믿음으로 병 고치는 이적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구원이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생이 없습니다.
나는 이같은 사실은 깨달은 뒤부터 기독교에서의 이적과 타 종교에서의 이적들의 근본적인 차이를 쉽게 구별하여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간혹 와서 나를 시험하곤 합니다.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은 기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예, 저도 당신들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들도 영적 세계에 속해 있기 때문이지요. 당신들은 인간의 영을 계발하여 육체와 환경에 능력을 행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 받고 거듭난 영은 아닙니다. 당신들의 영은 사탄에게 연결되어 있으며, 당신들의 그 능력이라는 것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 단지 제한된 일시적인 능력일 뿐입니다. 오직 유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모든 힘과 세력에 대한 무한한 권세를 지니고 계십니다.
잠재 의식의 역할
과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잠재 의식의 발견을 위대한 업적으로 보며 잠재 의식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 그 에너지를 조종하려고 노력합니다. 인간의 잠재 의식은 어떤 제한된 힘을 가진 4차원에 속해 있지만, 일부에서 이것을 필요 이상으로 주장하는 것에는 많은 속임수가 있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인간의 영적 잠재 의식을 개발하려는 유니테리언 교회(Unitarian Church :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유일신을 주장하는 교회) 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영을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올려 놓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속임수이며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서 공중 권세 잡은 마귀가 장악하고 있는 영계가 있음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수년 전, 미국에서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어떤 사건을 큰 문제로 보도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그 사건의 전말은, 한 도시에서 어떤 사람이 살해되었는데 변화사는 이 사건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폭력물에 도취된 한 젊은이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거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어떤 사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살인범이 텔레비전에서 폭력물을 본 후에 그의 잠재의식 속에서 사람 죽이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연습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잠재의식 속에서 부화된 폭력 행위가 마챔내 실제적인 살인 행위로 현실화된 것입니다.
4차원의영적 세계의 언어
나는 목회는 4차원의 영적 세계의 진리를 발견함으로 대변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역시 이 진리를 바로 깨달으면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한된 육체로 살고 있지만, 전능하신 성령께서는 간단히 전 지구를 부화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제한된 존재이므로 오직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상상력과 비전과 꿈을 통해 부화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성령께서는 우리가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꾸게 도와주시는 것입니다(욜 2:28; 행 2:17).
성령께서 주시는 이러한 꿈과 비전이 있을 때, 우리는 한계의 벽을 뛰어넘어 우주로 뻗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성령께서 주시는 꿈이 없으면 여러분은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창조적인 사람이 못 되면,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쉽게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꿈과 비전은 성령의 영적 언어입니다. 이러므로 성령께서는 여러 가지 꿈과 비전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불어넣어 주시고 그것들을 통해 계속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꿈과 비전을 통해 더 큰 교회를 바라보면서 꿈꿀 수 있습니다. 또 새로운 선교지와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목표를 구체적으로 꿈꾸면, 여러분은 자신의 미래를 부화할 수 있고 목표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은 결국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 같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노력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꿈을 꾸되,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꿈을 계발하십시오. 그 꿈들을 깊이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 꿈들을 부화하십시오. 성령께서 그 꿈이 성취되도록 여러분에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4차원의 영적 세계에서는 선한 것뿐 아니라 악한 것도 만들어집니다.
하와는 나무와 거기에 달린 실과의 영상을 마음에 품고 상상의 나래를 타고 깊이 들어가 선명하게 바라보면서 그 실과가 자신을 하나님만큼 지혜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나무의 실과는 너무도 매혹적으로 보였고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습니다. 하와는 상상에 사로잡혀 마침내 손을 뻗어 그 실과를 따먹게 되었고 남편에게도 건네주어 남편 역시 먹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사고 능력은 동물들과 현격히 다릅니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동물들과는 달리 하나님 자신의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심으로 사람은 ‘생령’이 되었습니다(창 2:7).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4차원의 영적인 세계가 존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과 함께 살 수 있고 성령의 역사로 비전과 꿈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의 터전인 3차원의 세계를 지배하시는 성령과 함께 일하는 존재로 놀랍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남의 집 문을 두드리고 다니며 열심히 전도에 힘쓴다고 하더라도 영혼 구원을 위한 성공적 목회를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믿음의 법칙을 사용할 때 성령께서 친히 교회를 성장케 하시는 것을 봅니다.
문제가 있으면 기도를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성령께 우리의 문제를 다 아룁니다. 그
러면,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역사하시는 것을 여러번 체험할 것입니다.
4차원의 법칙을 적용하기
창세기 30장 31절부터 43절까지에 보면 야곱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는 언제나 이 부분을 읽을 때면 비록 성경이라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두려움과 근심스런 마음으로 건너뛰곤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침례를 받고 나서 성경을 읽던 어느 날.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이 말씀을 다시 읽었을 때 그 속에 감추어진 4차원의 바라봄의 법칙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것으로 인해 그 때 이후로 나의 목회가 한 단계 더 올라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기적을 산출하는 믿음의 법칙을 사용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교회에 매달 천 명씩 성도가 불어나는 것을보는 것을 희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4차원의 성령의 역사에서 벗어난 여러분 혼자만의 몸부림으로는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간 것은 그의 이름이 바뀌기 전, ‘사기꾼’이라는 뜻의 야곱으로 불릴 때였습니다. 그는 무려 20여년간이나 외삼촌의 집에 머물면서 외삼촌을 위해 뼈가 으스러지도록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에 외삼촌은 그를 부려 먹기위해 계속적으로 계략을 꾸미고 수없이 야곱의 품삯을 바꾸며 야곱을 속였습니다.
한편, 야곱도 외삼촌의 궤계에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외삼촌을 속였습니다. 그들은 어처구니 없이 서로 속고 속이며 살았던 것입니다.
어느덧 외삼촌의 집에 온 지도 14년이 되어 야곱이 중년이 되었지만, 그에게는 재산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고향에 돌아가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자기에게 딸린 많은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할 일이 난감하기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야곱을 불쌍히 여기시고 꿈에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그에게 4차원의 영적비밀의 일부를 보여 주셨습니다(창 31:10 - 13).
야곱은 날이면 날마다 그곳에 서서 얼룩덜룩하고 점 있고 아롱진 새끼 양들이 태어나는 모습을 믿음으로 그리며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마음에 비전과 꿈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전에 야곱의 잠재 의식 속에는 가난과 실패와 속임수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그는 힘을 다해 일했어도 거둔 것이 적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잠재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선는 그로 하여금 얼룩덜룩한 나뭇가지들을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그 나뭇가지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의 눈으로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꿈꿀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야곱은 얼룩덜룩한 가지들로 된 나뭇가지 울타리를 보고 또 보면서 확실한 모습들을 그의 마음속에 가들 채웠을 것입니다. 그는 자면서도 양들이 얼룩덜룩한 새끼를 낳는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야곱이 바라본 그 믿음대로 양들은 얼룩지고 점 있는 아롱진 새끼들을 많이 낳았습니다(창 30:39). 4차원의 영적 세계에서 당신이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대한 역할을 합니다.
동물들은 인간과 달리 절대로 상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상상이란 영적인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아롱지고 점 있는 양에 대한 비전과 꿈을 붙잡았을 때, 그는 성령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언어를 배우자 마자, 곧 바로 성령과 대화가 시작되었고 성령께서 역사하시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살았던 시대로부터 오랜 후에,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나무를 세우셨습니다. 이번에는 갈보리 언덕 위에 십자기를 세우신 것입니다. 이 나무는 칼로 그 껍질을 벗겨서 얼룩지고 반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의 피로 얼룩질 것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보혈로 얼룩진 이 십자가 나무를 바라보면, 성령의 능력으로 새 생명과 새 자화상과 새 꿈과 비전을 받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8천 가지가 넘는 약속이 있는데, 그 약속들은 여러분에게 야곱의 점 있고 얼룩진 나뭇가지로 쳐 놓은 울타리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를 자르기 위해 산에 오를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보혈로 얼룩진 그 약속들을 셩경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 약속들은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꿈과 비전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비전과 꿈이 성취되기를 원하다면 먼저 여러분의 마음속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비전과 꿈을 잉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주시는 이러한 비전과 꿈은 다름 아닌 성령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여러분의 기도에 대해 이미 응답된 그림을 보여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삶과 환경에 이미 역사하셔서 그것을 변화시켜 구원의 영광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관여하시는 한 그 일은 이미 끝난 것입니다.
비전과 꿈은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예수님께서 보시는 대로 여러분도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것이 4차원의 영적 세계에 사는 삶입니다. 기도가 실제 응답으로 나타날 때까지, 성령께서 주신 계시의 즐거움으로 생활하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그런 삶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가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미리 그의 가슴 속에 4차원의 성령의 영상을 새겨 놓으셨습니다. 두 번의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가슴 속에 분명한 비전을 수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서도 그의 꿈이 이루어질 것을 굳게 믿고 어떠한 시럼과 환난 가운데 처할지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때가 되자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져,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 낸 요섭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가 성막을 짓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시내 산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는 산에서 40주야를 머무는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성막에 대해 정확한 규격과 건립 계획을 지시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계시받은 내용을 마음속에 정확한 그림으로 그려 간직하고, 산에서 내려가 그 규격과 모양대로 성막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과 같은 중요한 선지자들에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4차원의 영적 세계를 보게 하시고 성령의 언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능력 있는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도 베드로에게도 동일했습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시몬이란 이름은 ‘갈대’라는 뜻으로 구부리기 쉽고, 변덕스러보, 예측할 수 없는 성품을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안드레에게 이끌려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너는 시몬이로다. 너는 갈대처럼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성격이야. 하지만 너는 장차 바위처럼 믿음직한 사람이 될 것이므로 나는 너를 ‘바위’라고 부르겠다. 이제부터 ‘갈대’와 같은 사람인 시몬은 죽고, 대신 ‘바위’와 같은 사람인 ‘베드로’로 살게 될 것이니라.” 어부 베드로는 강하고 견고한 바위의 특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즉시 바위같이 견고하고 강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일 때면, 높은 파도가 바위를 피며 흰 거품을 냈습니다. 파도가 그 바위를 삼킨 것 같았으나, 이내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산산조각 나서 흘러내리고 나면 침묵하는 바위는 여전히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수없이 물어 보았습니다.
“내가 그런 바위와 같은가? 내가? 그래 나는 바위같이 강인한 사람이야.”
오순절 날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는 성령 세례를 받고 변화되어 초대 교회의 강하고 견고한 기둥 같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 대한 장래의 모습을 바위로 보셨는데, 과연 바로 그대로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어떻게 될지 미리 아신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비그리스도인들은 초원적 명상과 불교적 명상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명상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목표와 비전이 강요됩니다. 일본의 일련정종은 번영하는 영상을 그리고 같은 경구를 계속 반복하게 합니다. 그들은 정신을 집중하여 인간의 영계(혼의 잠재력)를 개발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사람들도 무언가를 해내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일본에 전래된 지 백 년이 넘는데도 단지 전 인구의 0.5%만이 그리스도인인 반면, 일련정종은 수백만의 신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련정종은 그들 나름대로의 영적 법칙을 적용하여 기적을 행합니다. 그럼에도 기독교에서 오직 신학과 믿음에 대해서 말로만 주장한다면, 이론에만 그친다면, 우리는 복음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책임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령께 맡기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임하셔서 여러분이 읽은 말씀을 소생시키게 하십시오. 그런 다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여러분의 소원을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여러분은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의 언어인 꿈과 비전을 가르치도록 구하십시오. 그 비전들을 잘 간직하십시오. 성령을 의지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시는 대로 복종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먼저, 성령의 소원에 어긋나지 않는 명확한 목표를 여러분의 마음속에 인식하십시오. 그리고 그 목표에 대하여 마음의 그림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다음, 완전한 응답이 올 때까지 뜨겁게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마인드 콘트롤’(mind control)이나 ‘마인드 익스팬션’(mind expansion)이나, 요가나, 초원적 명상이나, 일련정종과 홍동하지는 마십시오. 이런 의식들은 단순히 인간의 정신 세계(혼의 잠재력)를 계발하려는 사탄의 영역에 불과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일어나서 애굽의 어떤 마술사들보다 더 분명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기적을 나타내십시오. 오늘날 애굽과 같은 이 세상은 이런 종류의 수많은 마술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먼저 우리 마음속에 거룩하신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비전과 꿈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은 보통 존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속에는 물질적인 3차원의 세계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성령의 4차원의 영적 세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믿음의 영역인 성령의 4차원의 영적 세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생활과 환경에 기적이 일어나도록 명령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추하고 혼란한 것이 아름답게 되고, 상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에게 치료가 임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말씀의 창조력
우리의 믿음이 적절히 깨어나기 위해서는 생성, 발달, 성숙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또 믿음이 작용하는 영역에 대해 우리가 배워야 할 중심 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을 시인하는 일’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원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말씀을 시인함으로써 나타나는 창조적인 능력과 그것을 사용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한국에서 권위있는 어떤 신경외과 의사 한 사람과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뇌수술에서 발견된 여러가지 의학적 사실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조 목사님, 목사님은 뇌 속의 언어 중추 신경이 다른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는 거을 아십니까? 우리 신경학계에서 최근 발견한 바에 의하면, 뇌 속의 언어 중추가 모든 신경계에서 최근 발견한 바에 의하면, 뇌 속의 언어 중추가 모든 신경계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이 신경외과 의사는 그들이 발견한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언어 중추 신경이 신체에 대해 큰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말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 육체를 조절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고 계속 말하면 당장 모든 신경들이 그 메시지를 받아서 말할 것입니다. ‘자, 약해지도록 준비를 하자. 우리의 중앙 전달 센터에서 지시가 왔으니 우리는 약해져야 해.’ 그래서 그들의 신체적 상태를 약해지게 조절한다는 겁니다.”
“또 어떤 사람이, ‘그래, 나는 능력이 없어. 나는 이 일을 할 수 없어.’ 라고 말하면 당장에 모든 신경들은 똑같이 그렇게 선언하고 반응합니다. ‘그래, 우리는 어떤 가능한 능력을 계발하는 것도 포기해야 돼. 우리는 이 사람이 무능한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 준비해야돼.’ 라고”
그 신경외과 의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결코 삶의 의욕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삶의 의욕을 잃게 되면 그는 자신에게 반복해서 ‘나는 이제 끝장 난 사람이야. 더 이상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신경들이 그 말에 반응하여 비활동적으로 되어서 빠른 속도로 그 기능이 약화되어 빨리 죽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개인의 삶을 위하여
같은 종류는 같은 것끼리 끌어당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난한 사람처럼 행동하면 가난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 여러분은 평생 가난에 찌들리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2천 년 전, 성경 야고보서 3장 2절에 기록된 내용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의학은 이 원리를 최근에야 겨우 발견했습니다. 이 신경외과 의사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은 “나는 젊다. 나는 능력 있다. 내 나이가 얼마이든간에 나는 젊은 사람이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라고 계속 자신에게 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사람의 신경이 살아 있어 중추 신경으로부터 능력과 힘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야고보서 3장 3절에서 혀를 지배하는 사람이 온 몸을 지배한다고 기록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이 말하는 대로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계속 가난하다는 말을 하면 모든 여건은 가난 쪽으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가난해야 편안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여러분은 차라리 가난하게 되기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계속 자신이 능력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면, 여러분의 모든 신체 조건이 성공하는 동기를 부여받아 반드시 성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떤 도전이라도 맞아하고 그것을 정복할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부정적인 말을 버리고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변화되려면 먼저 여러분의 언어가 달라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을 바꾸지 않으면 여러분 자신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변화되기를 원하면, 먼저 그들에게 적절한 언어를 사용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반항적이고 무책임한 젊은이들이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변화되기를 원하다면, 그들에게 이 새로운 언어를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서 이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휼륭한 언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필요한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활력 있게 하시고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역사하시게 해야 합니다.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정독하여 다 읽으십시오. 성경의 언어에 점령당하십시오. 믿음의 말들을 사용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건설적이고, 진취적이고, 생산적이고, 승리적인 말들로 가득 채우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삶은 승리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창조적인 말을 사용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창조적인 말을 사용하기를 성령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목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 설교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내적 투쟁이 일어나고 나의 영이 방해받는 것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주의 성령께서 나의 영 속에 강하게 임재하신 후로는 내가 설교하고 있을 때, 성도들의 몸에 자라고 있던 결핵균이 사라지고 낫는 모습과 목발로 힘겹게 걷는 연습을 하던 앉은뱅이가 목발을 던져 버리고 걷는 모습이 내 마음의 눈에 보였습니다. 그 장면들이 얼마나 선명한지 마치 텔레비전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한동안 이런 현상이 성령의 역사라는 생각은 추호도 못하고, 아마 사탄의 방해일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의 눈에 그런 모습이 보일 때마다 단호히 말했습니다.
“너 방해하는 귀신아, 예수 이름으로 내가 명하노니 나를 떠나갈지어다. 내게서 물러가라.”
그러나 명령을 하면 할수록 더욱 명확하게 사람들이 치료되는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나는 자포자기하여 거의 설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환상이 계속 보였기 때문에 그 문제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마음속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들아, 그것은 사탄의 방해가 아니니라. 그것은 계시이며 네게 보여주시는 성령의 소원이니라. 그것은 지혜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치료하시기 원하시나, 네가 이러한 나의 뜻을 입으로 선포하지 않는다면 역사할 수 없느니라.”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나는 성경 창세기 1장을 펴 보았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그리고 성령께서 그 땅을 품고 계셨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거기 성령이 임재하고, 위대하고 성스러운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할 때(품고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느냐? 무슨 변화라도 있었느냐?
“아니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나의 영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교회 안에 임재하는 성령을 - 역동적이며 충만한 성령의 임재를 - 느낄 수 있느니라.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전에는 너를 통해 계획하고 계신 영혼이 구원받는 일도, 파괴된 가정이 합쳐지는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네가 사명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뜻하신 역사가 일어나느니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3,14).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세워 주는 생명의 말씀이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겨지면 그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니라.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할 때 성령께서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 속에 강하게 역사하여 새 생명의 은혜를 주시느니라.
너는 다만 달라고 구걸만 하거나, 사람들이 낫게 해달라고 빌기만 하지 말라. 성령께서 너희들의 예배 중에 와 계시니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느니라. 내게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소재를 다오.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될지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암은 떠나 가라.’고 말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신다.’ 하고 말할지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는 그 진리를 깨달은 것은 나의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내용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여 보다 확실히 알기를 원했습니다. 또 내가 말을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겠습니까? 틀림없이 그 일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저는 두렵습니다. 절름발이가 나은 것이 보인다거나 암이 사라졌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 그 대신 두통 환자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설교를 할 때 치료의 환상이 나의 영 속에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계속 부인했습니다. 마음의 눈에는 절름발이가 고침받고 암이 사라지는 것들이 보였지만 그것들을 무시하고 단지 경미한 질병에 대해서만 말했습니다.
“누군가 여기 두통을 앓는 분이 치료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즉시 그 사람이 고침받곤 하였습니다. 나는 단순히 마음으로 본 것을 말했을 뿐인데 실제로 두통이 고침받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일을 깊이 생각하고 성령께서 나를 통해 역동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에 대해 경탄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종양이 나았다고 말하고, 다음에는 귀머거리가 나았다고 말했습니다.
마침내 나는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나의 영 속에 증거하시는 치료의 사건에 대해 모두 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주일 예배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런 방법으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문제의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주시면 그 문제의 산을 옮겨 달라는 애원은 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이렇게 명령하십시오.
“이 문제의 산은 저 바다로 옮겨가라.”
그러면 놀라운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배웠으면 성령의 기름 부으심 아래서 말하는 것을 습관화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믿음을 통해 여러분의 삶에 넘치는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24시간 통화할 수 있는 상담 전화를 설치해 놓고 상담원들이 전화를 받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도를 해줍니다. 거기에 우리집 전화번호만은 기재해 놓지 않았는데도 어떻게든 곧 알려져서 초저녁부터 다음날 아침 늦게까지 전화가 계속 걸려 오곤 합니다.
어느 매우 추운 겨울 밤, 침대에 들어가 기분 좋은 안락감을 느끼며 막 잠이 들려는 순간 한 남자 성도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물론 압니다. 제가 형제님 결혼 때 주례를 섰었지요.”
“저는 2년 동안 이나 경혼 생활을 잘하려고 전력을 다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밤에도 크게 말다툼을 했는데 이젠 하주 헤어지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재산도 다 나누었습니다. 다만 이제 한 가지 남은 일은, 목사님의 축복을 박고 싶습니다. 우리는 결혼할 때 목사님의 축복을 받고 했으니, 헤어질 때도 목사님의 축복을 받고 싶습니다.
나는 밤의 정적 속에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자 나의 영은 성령의 4차원의 영적 세계에 들어갔습니다. 주님께서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마음 속에 생생히 그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가정이 회복되고 그들의 결혼 생활이 새로워지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분명하게 그리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믿음으로 그려 본 대로 응답하여 주소서.”
기도하는 동안 내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이 임하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가정의 문제가 영적으로 변화된 것을 한번 더 확실히 그려보았습니다. 나는 믿음으로 그 모습을 그려 보면서 기도한 그대로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부부를 증오하게 하는 사탄을 묶음을 놓을지어다. 이 시간,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두 사람은 서로 화해하고 다시 하나가 될지어다. 이들 마음이 녹아져서 이혼하고 갈라서는 대신에 사랑과 화해로 하나가 될지어다.”
갑자기 나의 손등에 따뜻한 액체 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내 손등에 떨어졌던 것입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시고 계시군요!’
그 아내 역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나는 두 사람의 손을 끌어다가 포개고 말했습니다. “주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은 어떤 사람도 어떤 환경도 나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이제 가겠습니다.”
그들은 둘 다 문밖까지 따라 나와서 내가 떠날 때까지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목사님.”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은 성경에 이혼을 금하고 있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위에 위기에 처한 부부가 있으면 여러분은 4차원의 영적 세계에 들어가 그들이 회복된 것을 바라보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4차원의 영적 세계에서 믿음으로 내가 그려 보고 기도한 대로 그 부부의 결혼 생활은 원상 복귀된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서로를 증오하게 하는 악령의 세력이 깨어질 것을 명령했고 선포한 대로 결과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시고 창조적 권능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능력을 행하는 데에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구하는 말만 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충만한 믿음으로 명령하기를 두려워하고 하나님께서 대신 해주시기를 빌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말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명령의 말씀을 선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 들어가기
말씀을 시인하는 것은 여러분을 예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은 로마서 10장 10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사람은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십니까?
예수님의 거주지는 어디입니까?
물론 예수님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영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권능으로 그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시인함으로써 예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갈 수 있고, 여러분이 표현하는 믿음의 말을 통해 예수님께서 권능을 나타내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말을 분명하게 말해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분명히 역사해 주십니다.
“너희가 땅에서 하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무엇이든지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
여러분은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기도를 통하여 명령할 때, 마귀에서 묶인 사람들을 풀어주거나 축복과 믿음의 말씀들을 풀어 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이 하는 말을 확실하게 증거해 주실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여러 교단에 속한 교회들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의 목회자는 중생의 체험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그는 오직 구원의 경험에 대해서만 강조하기 때문에 그의 메시지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구원받게 하지만, 더 이상의 성장은 되지 않습니다. 그 근처의 또 다른 교회는 언제나 ‘성화’에 대해서만 설교합니다. “성결하라. 성결하라.” 이 말만 반복해서 훈계합니다. 그 교회 목회자는 성도들의 삶 속에서 오직 성화를 이루시는 거룩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설교하기 때문에, 그 교회 성도들은 교회에 와서 성화된 예수님의 임재하심만을 접하고 돌아갑니다.
나는 성도들의 생활 전반에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해 증거하는, 순복음(Full Gospel)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의 메시지는 구원하시는 예수님, 성령의 충만으로 성결케 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치료하시는 예수님과, 복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곧 다시 오실 왕 되신 주 예수님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모든 필요에 대한 전인 구원의 메시지는 오늘날 사람들의 모든 요구를 충족케 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목회자의 역할
여러분이 구원에 대해 말하면, 구원하시는 예수님이 임하시며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켜 구원받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신유에 대해 말하면, 성령께서는 예배 시간에 병든 자들이 치료받도록 그들의 마음속에 믿음을 불러일으키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전파하면,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께서 그 예배중에 임하셔서 여러분이 전파하는 말과 입술의 고백을 확증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권적으로 모든 일을 행하실 수 있으시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여러분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두려워하여 이 위대하신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지 않는다면, 이런 역사를 간절히 사모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권능을 페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전능하신 그리스도를 담대히 전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가정 예배를 드리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만일 그 집의 가장이 가정 예배를 계속하면서 가족들에게 그들 속에 함께 계신 그리스도를 분명히 증거하면, 예수님이 그 가정에 함께 계셔서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돌보시고 계심을 모두가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삶들이 가정 예배를 드리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자녀들에게 분명히 그르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자녀들은 삶을 인도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처험하는 엄청난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께 속한 것입니다. 성령은 은사는 절대로 여러분의 개인적인 소유가 아니고, 오직 성령께서 필요로 하실 때 여러분을 통해 나타내시는 것이므로, 여러분은 성령께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담대하십시오!
담대함의 은사를 받아 분명하게 말하십시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곁에 임하시고, 여러분의 예배중에 자신을 명백하게 증거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도들을 예배중에 주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분명하고 특별한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나는 많은 교회들의 예배에서 종종 커다란 잘못을 발견합니다. 목사님들은 성도들에게 훌륭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리고 설교가 끝나고 예배를 필하면 사람들은 귀가합니다. 그 때문에 그들의 마음속에 말씀이 뿌리내려서 결실하도록 기도하는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즉, 많은 교회가 예배를 너무 빨리 끝냅니다. 여러분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음미할 충분한 시간을 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다음 많은 시간을 합심으로 기도하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소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십시오. 만일 우리 목회자들이 이 점을 시정하면 교인들의 믿음이 날로 자라고 발전하여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말씀의 능력과 중요성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결론적으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언어 중추가 우리가 하는 말에 반응하여 모든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므로 결국 우리의 말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온 몸과 삶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말을 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성령에서 여러분이 자신의 삶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하시고, 여러분이 한 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십시오.
그 말씀은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의 교회를 견고케 하는 기적을 일으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완하게 성결하기 때문에 들어 쓰실까요?
그렇게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살아 있는 한, 계속 육신과 싸워 거룩함에 이르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 쓰시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고 그 믿음으로 말씀을 실천하는 자들을 언제나 들어 쓰셨을을 성경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뜻을 따라 성령에 의해 사용되어져서 날마다 주님 안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시인하십시오.
셋째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그대로 우리를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이처럼 여러분의 혀를 사용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어떤 일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입을 다물고 침묵함으로써 주님의 뜻을 거역하시겠습니까?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결정에 따라 여러분에게 복 주실 것입니다.
4. 선포된 말씀
말은 강력한 창조성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적절히 사용하는 일은 우리의 삶으로 하여금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도록 생명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의 능력이 진실로 효력을 발생하려면 반드시 올바른 기초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믿음 : 문제점들과 생산성
어느 날 사람들이 한 자매를 들것에 뉘어서 나의 사무실로 데려왔습니다. 그 자매는 목 아래가 다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 자매가 들것에 실려왔을 때, 나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나의 가슴이 요동하는 듯했습니다.
바로 베데스다 못가에 누워 있는 38년 된 병자가 기적을 체험했던 것처럼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 자매 마음속에 자신이 낫는다는 믿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자매에게 있는 것은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나는 그 자매의 이마에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자매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신은 나았습니다.”
그러자 그 즉시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여 그 자매는 낫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들것에서 일어나서 크게 놀라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자매가 기적적으로 하나님께 고침받았다는 소문이 즉시 퍼졌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에 어떤 부유한 여 성도가 역시 들것에 실려 왔습니다. 그녀는 믿은 지 오래된 다른 교회의 집사였습니다. 그녀는 성경 중에서 신유에 대한 구절들을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야웨)임이니라”(출 15:26)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 8: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 나는 힘을 다해 그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이러나지 않았습니다. “좀 더 믿음을 가지고 일어나 보세요.”
그녀는 거듭 일어서려고 했지만 또다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힘이 다 빠져 버렸으며, 그녀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녀는 항변조로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편애를 하시는군요. 지난번 그 자매는 목사님이 아주 사랑하시니까 나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시니까 병이 낫지 않는 것이죠? 이건 목사님의 편애 때문이에요.”
저도 하나님께서 왜 당신을 고쳐 주시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은 낫지 않는 괴로운 문제들이 생기는 경우는 비단 이 한 가지 경우만이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복음 전도자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열정적으로 설교를 합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나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들은 설교할 때 믿음의 말들을 쏟아 붓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든 영광을 받으며 떠난 뒤에, 나는 고침받지 못한 사람들과 남아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합니다. 그들은 내게 몰려와서 항의합니다.
“우리는 낫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선 우리를 포기하셨어요. 우리는 완전히 잊혀진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왜 우리가 계속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서 믿는 일로 씨름해야 하나요?”
나도 이 사람들로 인해 고통스러워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왜 그렇습니까? 어째서 이런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 제발 대답해 주세요.”
그러자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특히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신 깨달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을 알려 주는 말씀과, 하나님께서 특별한 상황에서 우리 마음속에 믿음을 주시는 말씀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믿음이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온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분을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 1:1-8).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의 절대 진리입니다.
그러나 단지 이 기록된 말씀을 읽는다고 해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에 대해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고 이해는 할 수 있어도,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특별한 일을 이루기 위한 믿음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믿음을 세우는 재료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 성경 그 절에서의 ‘말씀’에는 특수한 측면이 있습니다. 믿음은 특별히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을 들음으로써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두 가지의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고, 또 하나는 특별한 상황에 특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포된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록된 말씀’이나 ‘선포된 말씀’이나 모두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기록된 말씀’ 을 통해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그분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된 말씀이 항상 개인에게 믿음이 부여된 ‘선포된 말씀’ 으로 다가오는 것(체험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어떤 병든 사람이 베데스다 못에 가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왜 여기서 기다리고만 있고? 이건 언제나 똑같은 곳에 똑같은 물이 있는 똑같은 연못인데 왜 여러분은 물 속에 들어가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는 거요? 나는 곧바로 뛰어들어가겠소.”라고 말하는 물 속에 뛰어들어가서 몸을 씻었다 하더라도, 그의 병은 낫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병자들이 그곳에 뛰어들어가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주의 천사가 와서 그 물을 동하게 할 때뿐이기 때문입니다.
‘선포된 말씀’ 은 ‘기록된 말씀’ 으로 부터 나옵니다. ‘기록된 말씀’은 베데스다의 못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경을 공부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특수한 상황에 적용하시는 말씀이 될 때에 ‘기록된 말씀’은 ‘선포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기록된 말씀은 한국인, 유럽인, 아프리카인, 미국인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집니다. 기록된 말씀은 세계 만민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알게 해 줍니다. 그러나 특정한 상황에 있는 특정한 개인에게 ‘선포된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포된 말씀’은 성령께서 기록된 말씀을 선포된 말씀으로 되살릴 때까지 주를 의지하고 기다리는 신실한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님을 의지하고 기다릴 시간이 전혀 없다면(전혀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면), 주님께서도 여러분에게 오셔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필요한 성구를 되살려 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현대는 바쁜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즐기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짧은 설교를 듣고 주님을 섬길 시간도 없이 급히 흩어져 버립니다. 그들은 ‘기록된 말씀’ 을 얻습니다. 그러나 ‘선포된 말씀’ 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전에 와서 주의 깊게 말씀을 듣고 주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따라서 그들이 교회에 출석하여 그들의 성경 지식을 늘어날지 모르지만, 반면에 문제 해결에 필요한 믿음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의 문제도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점차 교회에서 멀어져 가기 시작하고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활동적인 시대에 교회가 당면한 또 한 가지의 문제는, 목회자들이 너무 바쁘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관리인으로, 재무관으로, 건축가로, 계약자로, 이외에도 수많은 일들을 지시하는 데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들은 너무 지쳐서 주님을 섬길 시간도 없고, 말씀의 푸른 풀을 섭취하여 젖으로 변화시킬 시간도 없는 것입니다. 그 교회 성도들은 단순히 풀만 먹게 될 뿐 말씀의 젖을 공급받지 못합니다. 이것은 중대한 실수입니다. 평신도들은 목회자의 적이 아니라 친구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할 양떼들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런 방식을 따릅니다. 그리고 나는 설교 전에 ‘선포된 말씀’을 받지 못하면 당상에 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토요일에는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굴에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내게 ‘선포된 말씀’을 주실 때까지 기다립니다. 때로 나는 이러한 기도로 온밤을 지새기도 합니다.
“주님. 내일은 사람들이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나옵니다. 고통, 질병, 가족 문제, 사업 문제 등 온갖 문제들을 앉고 올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들으려고 올 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제에 대한 진전한 해답을 받으러 올 것입니다. 만일 제가 그들에게 살아 있는 믿음의 ‘선포된 말씀’을 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고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이 특별한 주일에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한 후 나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임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런 다음 단상에 오를 때 나는 설교할 그 메시지에 성령께서 기름 부으신 것을 알기 때문에 장군처럼 씩씩하게 걸어 나갑니다.
사랑하는 교역자,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교회를 어떤 거룩한 친교 단체로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만일 목회사가 성도들에게 그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인격적이고도 실제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단지 종교적인 사회 단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세우는 교회는 사람들이 주님을 만남 해결책을 얻는 곳, 그들의 삶 속에 기적을 얻는 곳,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을 얻는 곳뿐만 아니라 생생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먼저 인격적이고도, 개별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그들의 삶에 관여하시고 성경을 통해 그들에게 영감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 성경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적용하셔서 ‘하나님께서 지금 하시는 말씀’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 기록된 말씀이 믿음으로 소유케 되는 선포된 말씀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신실하게 섬김으로써 그 말씀을 실제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어떤 성구를 개인에게 살아 있는 말씀으로 주시기 전에 하실 일이 많으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신실하게 대하시는 것같이, 여러분도 시간을 내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여러분의 삶을 내맡기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이럴 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베데스다 못과 같은 여러분의 마음이 특별한 말씀(성구)에 의해 감동되어, 그 약속이 여러분의 것이라는 확신과, 여러분의 마음속에 기적을 산출하는 믿음이 생긴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 목표
성령의 궁극적 목표는 우리의 육신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영혼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지 않다면,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소리 치고 뛰어도 신유의 역사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믿음의 말씀은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먼저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받고 구원을 얻으십시오. 그러면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신유의 말씀으로 채우시고 영감을 얻게 하여 여러분에게 필요한 ‘선포된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역사를 체험하려면 여러분은 주님을 섬기고 기다려야 합니다.
신유는 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즉시 치료받는 사람도 있지만, 떄로는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도 있고 또 때로는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훌륭한 집사님 한 분이 병이 들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봉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이사가 그의 몸 안에 뭔가 멍울이 생겨 자라고 있으니 수술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꼐서 그를 고쳐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누가 보아도 아주 신실한 성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출혈이 너무 심하여 병원으로 옮겨져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게신가요? 왜 하나님은 그 집사님에게 이렇게 하시나요?”
나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항상 특별한 목적이 있음을 알기 떄문에 묵묵히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자신이 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들, 간호사들, 환자들까지 매일 그 집사님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우리 성도들이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할렐루야. 집사님이 즉시 나은 것보다 오히려 병원에 입원한 것이 훨씬 잘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의 육체적인 치료보다는 영혼의 치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이 다가올 때 우리는 어찌하든지 그 고난에서 벗어나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깨닫게 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통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고난을 인내로 이겨내면 오히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포과하는 사탄의 유혹에서 오는 시험이면 즉시 회개하고 거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고난을 통과하게 하신 또 하나의 사례를 들고자 합니다.
6-25 동란이 일어났을 때, 전국적으로 수백 명의 목사들이 잡혀서 총살되고 2천여 교회들이 파괴되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가족이 인천에서 잡혔는데 한 공산당원이 ‘인민 재판’에 그들을 회부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런 종류의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그 죄에 해당되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한 목소리로 동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옳소!”
이런 식으로 인민 재판을 끝낸 공산당 무리들을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목사님과 아내와 자녀들을 구덩이 속에 던져 넣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당신은 성경의 미신으로 사람들을 그릇 인도했소. 이제라도 당신이 우리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며 그러한 비행들을 뉘우치면, 당신과 아내와 자식들을 살려 주겠소.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계속 그 미신을 고집한다면 당신 가족은 모두 생매장될 것이오. 자, 결정하시오.”
그때 목사님의 자녀들이 간절하게 송리 쳤습니다.
“아빠, 아빠, 제발 우리를 살려 주세요. 아빠!”
나도 세 아이의 아버지인데 내 경우였더라면 아이들이 죽임당하는 것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아이들을 구하고 내가 지옥 가는 편이 훨씬 낫다고 여겼을지 모릅니다.
그 목사님은 자녀들의 부르짖는 소리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는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예,예. 그렇게 하겠소. 내 부인하리다........ 나의.........”
그런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아내가 팔꿈치로 치며 급히 말했습니다.
“여보, 아니라고 말하세요. 조용히 해라, 애들아. 오늘 밤 우리는 왕중의 왕, 만주의 주님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녀는 자녀들에게 찬송을 부르도록 했습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이내 아이들의 머리가 흙구덩이 속에 파묻혀 버렸고 그들 부부는 목만 흙 위에 나와 있었지만 쉬지 않고 찬양을 했습니다. 이 장면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꼐서는 목사님과 그 아내가 완전히 흙 속에 파묻혀 버릴 때까지도 끝내 그곳에서 건져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처형을 지켜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령의 큰 감동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들 중 여러 사람이 현재 우리 교회의 산도입니다.
그 목사님의 가족의 수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가 흘러 넘쳤던 것입니다. 하나님꼐서는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보내 주시어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심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속하시고 믿는 자들이 구원 얻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영혼의 구원이 하난님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더욱 나타낵 수 잇으며 그것이 믿음의 연단이라면, 고통에서 구해 달라고 구하기 보다 견딜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을 구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려 그 뜻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낙심하거나 혹 예언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대신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믿음으로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성령께서 ‘기록된 말씀’을 여러분에게 생생하게 ‘선포된 말씀’으로 되살려 주실 때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심겨지는 것입니다.
선포된 말씀을 받은 이상 놀라지 마십시오. 주님만 바라보고 파도 치는 문제의 바다 위를 계속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앞서 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는 열심 때문에 바울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보다 앞서서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바울은 아시아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바울이 아시아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말했습니다.
“저는 비두니아로 가겠습니다.”
그러나 다시 성령께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미지의 도시 드로아로 갔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방황하는 바울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는 혼란스러워 곰곰이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렸을 때 환상중에 마케도냐 사람 하나가 그에게 청했습니다(행 16;9)
“마케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
그래서 바울 일행은 배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바울의 예를 통해서도 우리는 자신의 인간적인 믿음보다 하나님께서 현재 내게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선포된 말씀을 받는 법
제1단계 : 기다림
첫 단계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철저히 회개하여 사죄의 체험을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 마음을 전진도 후퇴도 아닌 중립 기어에 놓고 완전히 고요한 상태에서 주님의 음성을 기다립니다.
“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 영이 당신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다립니다. 주께서 ‘가라’고 하면 갈 것이며, 주께서 ‘가지말라’고 하시면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습니다. 주께서 제게 향하신 뜻에 따라 결정하겠습니다. 그것이 제게 좋든 나쁘든, 저는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만 바랍니다.” 이러한 태도로 주님을 기다립니다. 선포된 말씀을 받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금식기도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이와 같이 진정 고요히 가라앉았다면 두번째 단계로 오십시오.
제2단계 : 거룩한 소원
두번쨰로 하는 것은 나의 소원을 통해 주님의 뜻을 나타내시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소원은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행할 의지를 우리 안에 두시고, 우리 마음에 소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주여, 이제 당신의 뜻에 따르는 소원을 제게 내려 주십시오.”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거룩한 소원을 주실 떄까지 기다리십시오.
그런데 여러분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소원이 자리잡을 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조금 기도하다가 일어나서, “야, 나는 모든 해답을 얻었다.” 라고 말하고서 급히 나가 버리지 마십시오. 좀더 주님을 섬기며 기다리십시오. 왜냐하면 소원은 때로 엉뚱하게 사탄이 가져다주는 생각이나 여러분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마음문을 열고 주님 앞에서 기다리십시오. 여러분이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여러분 자신의 소원과 사탄의 소원은 점점 희미해지고 성령께서 주시는 소원만이 점점 강하게 부각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십시오. 그리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거룩한 소원을 받도록 하십시오.
제3단계 : 성경에 기초한 검증
이 단계는 자신의 마음에 임한 소원이 성경의 가르침과 부합하는지를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너는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모하느냐’(고전 6:19).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기도를 한다면 사탄이 우리에게 악한 생각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소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원은 조심스레 성경에 비추어 검증하는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 스스로 검증할 자신이 없으면 목사나 교역자들에게 가서 도움을 받으십시오.
제4단계 : 신호로 나타나는 증거
네 번째 단계는 하나님께 나의 환경으로부터 오는 징표를 구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비가 오기를 일곱 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표를 받았습니다(왕상 18:44). 바다 쪽에서 사람의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기드온 또한 우리에게 이러한 예를 제공합니다. 그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징표를 두 번 구하여 두 번 다 표적을 받았습니다(삿 6:36 - 40).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도 환경으로부터의 징표를 종종 보여 주셨습니다. 때로는 아주 작은 징표를 주실 때도 있는데 그래도 징표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제5단계 : 신성한 순간의 포착
이 단계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시기를 알 때까지 시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우리의 때와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속에 창평안에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임하는 참된 평안은 일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심판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를 한 후에도 여러분의 마음이 불안하면 때가 적절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 적신호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계속 기도하고 기다리십시오. 적신호가 꺼지고 청신호로 바뀔 때, 여러분의 마음속에 참된 평안이 밀려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체하지 말고 즉시 일어나 출발해야 합니다. 최고의 속도로, 축복과 선포된 말씀을 가슴에 안고 달려가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이 하나하나 여러분을 뒤따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음성을 기다리십시오. 결코 그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일년 내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단 한순간에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섬기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큰 비전을 품고 네 입을 넓게 열라
5. 안드레형 사고 방식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개인적인 구세주로 영접할 때, 여러분의 영혼은 즉시 거듭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믿는 순간, 구원받는 기적이 일어나며 하나님의 생명이 여러분에게 부여되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새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마음과 생각까지 완전히 새로워진 것은 아닙니다. 새사람으로 거듭난 후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은 성령에 의해 점진적으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이를 신학 용어로 ‘성화’라고 말합니다.)
마음과 생각이 새로워지는 작업은 시간과 힘과 노력이 드는 것으로써 평생의 과정을 요구하는 작업입니다.
새로워진 생각으로 사는 삶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지만, 참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알기 위해 자신들의 마음을 개조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즉 자신들의 삶을 하나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맡기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 안에 성령으로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통해 자유로이 역사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어떤 형태를 지니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여러분의 생각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아무런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통로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그 분의 말씀을 통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생각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며 여러분의 마음을 계속 새로워지게 해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여 새사람이 된 후에도 옛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갖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낡은 사고 방식에 제한을 받으며 잘못된 사고 방식대로 생활하기 때문에 자기 중심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여러분의 마음과 사고 방식을 말씀으로 새롭게 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을 우리에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변화를 받는다고 했습니까? 성경은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성령에 의해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갈망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실 때 우리는 빨리 돌이켜야 하며, 하나님과 함께 평화를 누리며 일하도록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1절은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의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아라”
여러분이 하나니므이 뜻을 알려면 마음을 새롭게 하여 영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새롭게 할 때, 여러분의 영 속에 믿음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고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이 여러분의 영에 임하여서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을 통해서 여러분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변화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회개한 후에라도 계속 마음을 새롭게 하지 않는 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마음이 새로워졌다 해도 말씀을 듣지 않는 한 여러분은 믿음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키면 하나님의 생각을 듣게 됩니다. 여러분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생각들을 받아들이면 믿음을 산출하게 됩니다. 이처럼 여러분의 생각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새롭게 하는 데는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제1단계 : 변화된 사고 방식
첫번째 단계는, 부정적인 태도에서 긍정적인 태도로 여러분의 사고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한 예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를 봅시다(마 14:22 - 31).
베드로는 항상 생각하기 전에 말부터 했습니다. 그는 매우 감정적인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경험적인 믿음을 통하여(눅 5:5) 이와 같은 담대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오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즉시 마음에 받아들이자 생각이 새로워졌습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베드로는 결코 물 위를 걸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을 때 그의 생각을 바뀌었습니다. 새로워진 베드로의 생각은 매우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물 위로 걸어갈 수 있다는 것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마음속에 큰 믿음을 얻었고, 배 위에서 용감하게 뛰어내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셨을 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용감히 물 위를 걷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기적은 항상 새로워진 마음을 통해 일어납니다. 베드로가 마음을 새롭게 했을 때, 의심없이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실제로 물 위를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바라보던 눈을 돌려 자기 주위에서 거칠게 파도치는 물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즉시 그의 새로웠던 생각은 사라지고 예전의 생각으로 돌아갔습니다.
“나 좀 보게....... 내가 물 위를 걷고 있네.”
그 즉시로 그는 물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삶의 다른 태도들에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을 새롭게 하고 생각을 긍정적으로 가지는 것이 지극히 중요합니다.
새로워진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항상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붙들어야 합니다.
생각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여러분의 생각을 매일 새롭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빛이시며 어두움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부정적인 것이 전혀 없습니다. 말씀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살찌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긍정적이며, 여러분의 마음을 계속 새롭게 지켜 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하시기를 즐겨하십니다.
현신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큰 일을 하실 것을 담대히 믿고, 그 분의 이름으로 영광을 돌리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이고 진부한 생각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성취코자하시는 위대한 역사를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여러분의 생각을 바꾼다면, 현재의 단계를 넘어 보다 높은 단계에 도달할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의 제한된 생각으로 일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으십시오. 여러분의 제한된 생각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제한된 생각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전적으로 자유롭게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제2단계 : 기적의 관점에서 생각하라
두번째 단계는, 자신을 끊임없이 기적의 관점에서 사고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광야에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드레가 믿음으로 가져 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하시고 사람들에게 떼어 주셨습니다. 안드레는 가능성을 생각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어 그가 찾은 음식을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가 예수님의 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많은 군중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나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만, 사고 방식에 의해 두 부류로 구분됩니다. 즉, ‘빌립형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 부류와 ‘안드레형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 부류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빌립형 사고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불가능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이곳은 광야이며 날이 미리 저물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먹일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믿음이 거의 없기 때문에 현실 상황과 자신의 능력에 얽매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불가능하다고 쉽게 단정해 버립니다.
반면에, 안드레형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환경이나 자신의 능력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환경을 초월하여 놀라운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의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서 늘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느 부류에 속하십니까?
빌립형 사고 방식을 가지고 계십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폭으로 믿고 순종하는 안드레형 사고 방식을 갖고 계십니까?
생각하기와 구하기의 법칙
에베소서 3장 20절과 21절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나는 이 법칙을 ‘생각하기와 구하기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구함으로써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하고 구하는 것 이상으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넘치도록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워진 여러분의 생각에 따라 더 넘치도록 역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사고 방식은 어떠합니까?
당신은 마음을 새롭게 했습니까?
실패를 생각하십니까?
가난을 생각하십니까?
질병을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부정적인 태도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인 것과 함께하시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적절하게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사는 바로 그곳에서 여러분이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풍족하게 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우리 삶의 자원이 있는지 아십니다.
모든 자원들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시 50 : 10)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여러분이 어느 곳에 있든지 바로 그곳에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오묘한 방법으로 채워 주실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규칙적으로 생명의 양식인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또한 역사적인 연구 목적을 위해서 만도 성경을 읽지 마십시오. 그런 것보다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고 성령께서 여러분의 사고 방식을 새롭게 하실 재료 곧 영의 양식이 되도록 성경을 읽으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십시오.
말씀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새로운 차원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고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하나님의 기적이 여러분에게 넘쳐 나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 능력을 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될 것입니다.
6. 믿음의 씨앗
온전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전적으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마음에 조금도 의심없이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신앙은 믿음에 의해 우선 믿고자 하는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부터 시작됩니다.(물론 엄밀히 말하면, 이 믿음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자 노력하는 것이 정말 힘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평안을 원하지만 우리 안에 평안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좌절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얻기 위한 이러한 노력들이 미미할지라도 그것은 신앙적 기초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2장 1절부터 5절까지에서 중풍병자가 고침받은 기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가 사는 동네인 가버나움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면 확실히 고침받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믿었지만 그것으로 병이 낫지는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친구들은 그가 너무도 간절히 부탁하므로 그를 들것에 눕혀 예수님 계신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이 이르렀을 때 그곳에는 이미 많은 무리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비상 수단을 강구했습니다. 그것은 지붕을 뜯고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당시 유대인의 집은 평평한 지붕으로 되어 있었다.) 친구들은 용기를 내어 그를 지붕 위로 데려가서 지붕을 뜯고(눅 5:19)구멍을 내어 그가 누워 있는 들 것을 줄에 매달아 예수님 앞에 내려 주었습니다.
이일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막 2:5 ; 눅 5:20)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실제로 중풍병자의 믿음을 아셨으므로 그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를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막 2:11)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즉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막 2:12).
그 중풍병자의 믿음의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신앙의 첫 번째 단계에서 그 중풍병자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진실로 믿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앙의 두 번째 단계로 들어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병 고침을 받으려는 소원을 갖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 고침을 받고자 하는 그의 소원과 예수님 앞으로 나오고자 하는 그의 결심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소원과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흥미 있고 중요한 일이 여기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그가 가진 믿음에 하나님의 믿음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중풍병자는 산을 움직이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 위에 하나님의 믿음을 얹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활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 보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계속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 가운데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하나님께 대힌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실천하면 더욱 자라고 성장하여 마침내 산을 움직이는 기적을 체험하는 하나님의 믿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믿음은 우리의 믿음 위에 역사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첫단계가 노력하는 믿음 또는 인간적인 믿음을 갖는 것이라면, 두 번째 단계는 ‘믿음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오랄 로버츠 목사는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믿음을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원리로 ‘믿음의 씨앗’을 가르쳤습니다. ‘믿음의 씨앗’이란, 씨앗 속에 생명이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살아 있는 것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누구나 은혜의 분량만큼 영적인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크든 작든간에 우리가 그 믿음의 씨앗을 가지고만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의 씨앗을 행동으로 하나님께 심어야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입술로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하고 고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 믿음을 증명해 보이기를 원하십니다. 그 중풍병자는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실천함으로써 그의 믿음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여러분의 믿음을 보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믿음을 여러분에게 주시기 위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찾고 계십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실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단지 인간적인 노력만 기울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이 점에 있어서 매우 명백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그 중풍병자가 예수님 앞에 가지 위해 인간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집요하고도 단호한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 드렸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의 살아 있는 믿음을 보시고 그의 중풍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단지 인간적인 노력으로만 기적을 체험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인간적인 노력만 가지고는 산을 옮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첫 번째 단계인 우리 편에서 노력하는 믿음의 씨앗이 싹이 나서 점점 자라면 마침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켜 기적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씨앗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나는 중대한 문제가 생길 때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고 확신하지만, 한편 나의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굳게 믿기 때문에 때때로 큰 부담이 되는 엄청난 액수의 헌금을 드림으로써 나의 믿음의 씨앗을 보이기도 합니다.(믿음의 씨앗은 물질만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입니다.)
그리고 줄기차게 기도리면서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까지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믿음이 마음에 임하면 나는 그것을 뚜렷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때 나는 내 앞에 가로놓인 문제의 산을 향해 명령할 수 있습니다.
“산아, 여기서 저 바다로 옮겨갈지어다!”
그러면 태산 같은 문제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산을 움직이게 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수 있는 믿음의 씨앗을 뿌린 적이 있습니까?
1987년,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교계 안팎에 복음 소식을 싣는 주간 신문과 일간 신문을 발행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위스로부터 초고속 인쇄기를 구입하려고 은행에 3백억 원을 대부해 달라고 요청해습니다. 2주내로 그 돈이 필요했으나 나에겐 그만한 돈을 빌릴 수 있는 자격이 없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 나의 믿음은 노력하는 믿음의, 즉 초보적 단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믿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의심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음의 씨앗을 심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오, 하나님! 저는 단지 초보 단계의 믿음, 제 편에서 믿으려고 노력하는 믿음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믿음의 씨앗을 심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시도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일주일 동안 계속 기도드렸습니다. 목요일에 우리 교회의 재정 담당자가 나의 사무실로 찾아와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목사님, 은행으로부터 신용장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은행측에서는, 그들 은행의 70년 역사상 담보 없이 그만한 액수의 공채를 발행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은행측에서 요구하는 담보가 없습니다. 그러니 은행이 우리에게 3백억 원을 빌려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이 산이 옮기우리라고 생각하고 우리 교회의 재정 담당자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직은 하나님의 믿음이 내게 없지만, 어느 때고 곧 하나님의 믿음이 내게 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믐 이미 믿음의 씨앗을 하나님께 심었기 때문이지요.”
나는 기도실에 들어가서 또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께 제 믿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압니다.”
기도 후, 나는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하늘 문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믿음이 나의 마음에 임하였습니다. 나는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믿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믿음이 임하는 때를 여러분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경우에는 말할 수 없는 평안이 나의 마음속에 흘러 넘쳐났습니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일어서서 큰 소리로 당당히 말했습니다.
“은행아, 나는 네가 3백억 원에 해당하는 신용장을 발행하도록 명하노라.”
다음날 아침, 나는 교회로 가서 우리 교회의 재정 담당자를 불렀습니다.
“은행에 가십시오. 신용장이 오늘 발부될 것입니다!”
“목사님, 꿈을 꾸고 계시는군요?”
“예, 나는 꿈꾸는 사람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믿음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문제의 산이 움직여질 것입니다. 나는 산을 향해 움직이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제 그 산은 물러갈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재정 담당자가 은행에 갔습니다. 비록 은행에서 서너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돌아올 때는 3백억 원의 신용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결과였습니다. 얼마 후 그 은행의 은행장과 직원들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우리 은행의 70년 역사상 담보없이 이만한 액수의 신용장을 발행한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금액을 당신께 빌려주도록 강요당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빌려 드리고 나니 기분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믿음!
인간적으로 믿으려고 노력하는 믿음과 하나님의 믿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믿음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이것은 일종의 노력하는 믿음입니다. (물론 이 믿음조차 하나님의 선물이기는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얻기 위해 반드시 우리 측에서 시작되는 믿음을 갖도록 요청합니다. 우리 측에서 시작되는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믿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믿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씨앗을 심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믿음을 뿌리 내리게 하실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진리를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씨앗을 심고 난 뒤에는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기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다리지 않고 여러분 자신의 믿음만 가지고 일을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예배하십시오. 하나님의 때가 여러분의 준비된 믿음 위에 하나님의 믿음을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여러분에게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믿음을 명백히 나타내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찾고 계시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믿음의 씨앗을 심어 싹이 나는 것을 보시고, 그 위에 하나님의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믿음의 분량이 아무리 적어도 일단 그 믿음을 심어서 활용하면 태산이라도 움직이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느니라”(마 17:2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살 동안 사용하도록 성경에 8천 가지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약속들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갓을 어떻게 보여 드릴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기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바를 끝까지 하십시오. 믿음의 씨앗을 심으십시오.
수년 동안 열심 있는 신앙 생활을 해온 성도라 해도 산을 옮길만한 기적적인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믿음의 씨앗을 심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놀라운 진리를 안 이상 반드시 여러분의 믿음의 씨앗을 심으십시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믿음이 올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믿음을 받으면 여러분 앞에 있는 어떤 문제의 산이라도 옮겨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7. 하나님의 주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 분을 진심으로 찾는 자에게 스스로를 나타내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에 의해 그의 말씀으로 내게 임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 하느뇨”(고전 3:16)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 하나님의 주소는 그를 믿는 자의 주소와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 마음과 삶 속에 함꼐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성도들에게 담대하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거하십니다. 그의 주소는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함을 입은 모든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며, 우리들 속에 하나님의 모든 힘과 권능과 자원으로 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함께하십니다. 그분은 바로 여러분 속에 계십니다. 그분의 주소는 바로 여러분의 주소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분들은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그 분을 당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자원이 되시고 여러분안에 거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듣고 우리 성도들이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내 목회의 시발점이었고 기반이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며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노력했었습니다. 유명한 복음 전도자가 올 때면 달려가서 하나님을 붙들기 위해 열심히 설교를 듣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기도하러 산이나 계곡에 갔습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을 찾고 붙들기 위해 모든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발견한 후에는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만리 장천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천 년 전에만 계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현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현주소는 여러분의 ‘마음’ 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으로 그분과 이야기하고 기도하며 친교를 나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해 큰 소리로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조용히 말할 때도 들으십니다. 여러분이 묵상을 할 때도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 계시므로 여전히 듣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도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고, 그 분의 자원의 문을 두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그분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셨습니다.
도전
나는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모든 원천이 바로 지금 여러분 안에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새겨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안에는 지금부터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거하십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에 따라 비전을 여러분 마음속에 두시고 도와주시려고 여러분을 통하여 역사하시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시는 통로입니다.
여러분이 통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여러분의 요구를 알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길을 발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적으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여러분의 믿음이 허용하는 것만큼 크게 체험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또한 여러분이 믿음으로 규정하는 만큼 작게 체험될 수도 있습니다. 이 원리를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어떤 성도들은 다른 성도들보다 하나님 앞에 와서 더 많이 기도 응답을 받고 어떤 성도들은 조금밖에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신의 네 가지 죄와 싸우고 있는데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이것들을 먼저 정복해야 합니다. 이 네 가지 죄를 그들의 삶에서 청산하지 않으면 은혜의 통로가 막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죄는 내가 지금껏 목회하면서 사람들과 상담한 결과 발견하게 된 것들입니다.
증오의 죄
사람들은 증오 때문에 여러 모로 고통을 받습니다. 마음속에 증오를 간직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을 통해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증오는 근본적으로 살인과 같습니다.
죄는 크든 작든 상관없이 하나님께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킵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증오는 신앙 생활의 첫 번째 적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증오를 없애지 않으면 진정으로 주님과 사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목회에 임할 때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반드시 깨닫게 해줘야 합니다.
하루는 어느 학교의 여자 교장 선생님이 나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 선생님은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병원에 가서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아 보았으나 헛수고였습니다. 그녀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도 낫지 않아서 관절염을 꾸짖고 소리쳤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치료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서 신유를 체험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좀처럼 낫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전혀 차도가 없으니까 나중에는 기도하는 것조차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소리치지 말아라. 기도로 꾸짖지도 말아라. 나는 그 여자를 통해 역사하지 않는다. 그녀가 전남편을 무섭게 증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치료자이신 성령께서는 당신의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치료하는 권능을 당신 속에서 솟아오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증오가 하나님의 치료의 흐름을 막고 있습니다. 전 남편이 원수같더라도 그를 축복하십시오. 그리고 그에게 선을 베푸십시오. 그러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 속에서 자라나서 증오가 떠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를 사랑하면, 그것은 당신을 치료하시는 성령의 권능이 흐르는 통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다시 한 번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이를 갈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성령의 역사로 그녀는 전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3개월이 못되어 그녀는 관절염을 치료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당신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나 가장 큰 적인 증오를 없애지 않으면 여러분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여러분을 통해 흐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두려움의 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입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신앙 생활을 가로막는 네 가지 죄 중에 두 번째 죄입니다.
여러분이 처한 환경을 육신의 눈, 곧 인간적인 관점으로만 보고 감각에 의지하여 살면, 사탄이 여러분을 두려움으로 파멸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인간적인 환경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면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식에는 감각적인 지시과 계시적인 지식의 두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기록되어 있는 계시적인 지식으로 살아야지, 감각적인 지식으로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주변 상황과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들이 두려움을 주님께 내어 맡기지 못하면 믿음을 발전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에게 역사하실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님께 내어 맡기라고 하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두고 나아가도록 가르치십시오.
열등감의 죄
많은 사람들이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가며 그 때문에 계속 좌절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이 빈민촌에 살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낀다면, 그 열등감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 그는 사업에 실패해서 그 실패에 몸을 맡겨 버렸을 것입니다. 그가 실패감과 실패자의 태도를 갖고 있는 한 당신은 그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가 스스로 자기의 열등 의식을 주님께 내어 놓고 문제에 직면한 다음에야 당신은 그의 삶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재건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정복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우울증과 비관에서 끌어내어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 위에 서도록 도와주며,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거듭거듭 확신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치료하고 훈련시켜야 합니다. 성령께서 이를 위해서 도와주심으로 그들은 점차로 열등감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죄 의식의 죄
많은 사람들이 또한 죄 의식 때문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죄 의식으로 고통받고 있는 한, 그것은 하나님의 원천이 그를 통해 흐르는 데 장애가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죄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을 무가치하고 죄로 가득 찬 사람이라고 느낄때, 그냥 주님께 나오도록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해주시고 용서해 주시므로 그들도 스스로를 용서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바로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모든 권능과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생활과 건강을 위해서, 또는 학업이나 사업이나 그 외 모든 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권능과 자원을 계발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가서 복음을 전할때 공허한 목표나 이론이나 철학이나 인간적인 종교를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자원을 어떻게 계발해야 하는지를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사람들을 예수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해서 이세상에 역사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8 하나님의 안식
걱정과 두려움은 사탄의 가장 강력한 두가지 무기입니다. 처음 교회를 개척했던 때부터 오늘날까지 종종 걱정과 두려움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인해 수많은 밤을 뜬 눈으로 보냈으며 때로는 그 중압감이 너무 무거워서 심장병으로 죽을 것이라는 싱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과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걱정과 두려움은 마귀가 가져다 주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평안과 안식을 주십니다. (히브리서4장 10,11절)
범죄로 인해 상실한 하나님의 안식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관자이십니다. 아무도 하나님께 도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본분을 다해야지 주인이 되고자 하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어려운 문제를 결정하는 데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선하지 않은 것인가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우리 삶의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높이고 공경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주관자가 되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나무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하는 순간부터 그들은 하나님 의식을 상실하고 자의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행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악을 행하는 능력을 얻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모습을 상실하고 타락하게 되어 버린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선한 일만 하시는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이 범죄한 때부터 무죄함과 순수성을 상실하였으며, 그들이 불순종했을 때 영원한 죽음의 세력이 즉시 효력을 발생했고, 그들의 육체마저 소멸하기 시작했습니다(롬 5:12 - 21).
그들이 불순종함으로써 독립을 선언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부터 그들의 죄의 대가로 이마에 땀을 흘리고 스스로 노력해야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인류는 자신들이 주권자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평화스럽게 살려고 애썼지만 적대감과 증오가 그들의 가정을 지배했습니다.
그들은 건강하길 원했으나 질병이 그들의 건강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유복하게 살려고 힘썼으나 땅에서 엉겅퀴가 돋아났습니다. 생계를 위해 땅을 갈고 밭을 일구는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주권을 가지고 삶의 주인이 되어 보니 그 대가로 평생 죄책감과 질병과 저주와 가난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 안에서 얻는 ‘안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죄책감과 질병과 저주와 가난과 죽음의 고통을 져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아무에게도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 즉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값을 십자가에서 치루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가 값없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자신의 선행으로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사역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 사역은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적인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어떤 인간적인 종교도 우리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비참하고 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기만 하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완전한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지 결코 인간의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끝마치셨으므로 더 이상 하실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여러분 자신의 일에서 쉼을 얻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완성하시고 쉬셨는데, 오늘날 신앙인으로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이루셨는데 당신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당신의 생활이 문제를 푸시는 것을 당신의 방식으로 도우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일하시는 분이며 스스로 모든 영광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그 분은 절대자이십니다. 이 점이, 왜 당신의 노력과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지 못했는가를 말해 주는 이유입니다. 염려 때문에 땀 흘리며 고생하는 것은 저주의 상징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불신하여 염려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
수고하고 걱정하며 지치고 무거운 짐진 분이 계시면 진실로 예수님께서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신 의미를 알고 그 초대에 응하십시오.(마 11:28-30)
여러분은 예수님의 멍에를 지기 위해 초청하셨습니다.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다.
일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쉼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안식 안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는 데는 때때로 시간이 걸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자기 중심적이고 독자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오늘 여러분의 짐이 어떤 것일지라도 관계없이 그 짐을 대신 져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예비하신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