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 머리말
오랜 세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시편을 통해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보다 몇 세기 전부터 기도하고 예배해 온 유대인들
에게서 이 기도책을 물려받았다. 이 책에 담긴 언어를 우리 것으로 삼을
때, 우리에게 말하는 신께 합당하게 응답할 수 있다.
평생 목회자로 일하다 보니 시편을 ‘지금 우리가 쓰는 말’로 풀어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목사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야
할 사람이다. 그들이 모든 경험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가 정직하고
철저하게 신에게 아뢰도록 도와야 할 사람이다. 그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시작은 쉽다. 기도의 욕구는 우리의 존재 중심에 깊이 내재해
있는 터라 사실 무슨 일이든지 기도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와 주세요”와 “감사합니다”가 가장 기본적인 기도이다. 그러나
정직함과 철저함은 그렇게 쉽사리 생기지 않는다.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신 거룩하신 신과 대화한다고 생각하면 곤혹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어색하고 거북하게 느껴진다.
“나처럼 못된 인간이 무슨 기도야. 행실을 바로잡아 괜찮은 사람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때로는 어휘가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기도 한다. “몇 달만 시간을 주세요. 아니 몇 년만! 신과의
거룩한 만남에 어울리는 세련된 기도를 할 수 있게 훈련받고 싶습니다.
그러면 더듬거리거나 불편한 느낌이 드는 일이 없을 거에요.”
나는 이런 고충을 털어놓는 사람들의 손에 시편을 쥐어 주며 말한다.
“집에 가서 이대로 기도하십시오. 지금 기도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시편에 나온 대로 기도하다 보면 잘못된 생각이
없어지고 진짜 기도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겁니다”
내 말대로 한 이들은 대개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성경에 그런
내용이 있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 나는 그들의 놀라움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시편이 고상한 사람들의 기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시편 기자들의 언어가
세련되고 예의 바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기도에 대해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는 선한 사람들이 잘해 나가고 있을 때 하는
행위로 기도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는 “기도용” 언어가 따로 있을 거라는 생각하고 그 언어를 익혀야만
신이 우리의 기도를 진지하게 들어주실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그런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도는 고급언어가 아니라 초급언어로 드려진다.
우리의 언어는 기도라는 수단을 통해 신에게 대한 정직하고 참되게 인격적인
반응을 담아내게 된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삶의 모든 것을 신에게
내어 놓는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하나님, 내 삶을 샅샅이 살피시고
모든 사실을 직접 알아보소서.
나는 주님 앞에 활짝 펴진 책이니,
멀리서도 주께서는 내 생각을 다 아십니다.…
오 하나님, 내 삶을 샅샅이 살피시고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캐보소서.
나를 심문하고 시험하셔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파악하소서.
내가 잘못한 일이 있는지 직접 살피시고
나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소서.
(시139:1, 23-24)
그러나 목사인 나의 격려로 시편을 읽고도 여전히 기도를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영어로 번역된 시편은 매끄럽고 세련된 데다가 두운과
각운까지 맞춰져 있다. 문학적으로는 비할 데 없이 뛰어나다.
그러나 시편이 분노와 찬양과 탄식의 순간에 신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육성이
담긴 기도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런 번역에는 중요한 것이 결여됨을
알게 된다. 문법적으로는 정확하다. 번역이 기초가 되는 학식은 깊고 탁월하다.
하지만 기도로 보자면 썩 흡족하지 않다. 히브리인들의 시편은 순박하면서도
거칠다. 고상하지 않다. 우아한 언어로 표현되는 교양인들의 기도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목회현장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면서
시편을 현대 영어의 운율과 표현으로 풀어 쓰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나
폭넓고 힘이 넘치는 시편의 기도를 가장 잘 다가오는 언어로 생생하게
접하게 해주고 싶었다. 다윗을 포함한 시편 기자들이 처음 시편을 썼을 때
사용했던 언어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나는 이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 더없이 정직하고 꼼꼼하게
철저하게 기도할 때, 역시 시편으로 기도하셨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온전하고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출처] 유진 피터슨, 메세지 성경
[입력] 22년 11월 12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