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 喪⋅祭禮를 통해 본 죽음과 사후 인식
正覺 / 동국대 겸임교수
1. 緖言
불교 이전 고대인들은 인간 운명이 神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을 가졌으며, 지배자를 天神의 자손이라 생각하는 운명론적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이에 지배자들의 ‘繼世的 世界觀’이 정착된 가운데 旬葬과 厚葬 등이 당연시 행해졌던 바, 세계관 내지 생사관이란 인간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원리임을 알 수 있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因果禍福의 논리를 바탕하여 業과 輪廻의 논리를 설파하는 불교 교리는 고대국가의 繼世的 세계관과 구분되는 來世觀念을 형성, 죽음과 사후인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현상적 측면에서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사건인 한에 있어 현상을 넘어선 또 다른 세계 즉 淨土가 具顯化 되었으며, 輪廻의 질서 가운데 業의 上昇原理는 修行의 정립과 함께 解脫 및 涅槃의 세계관념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필자는 본 논고를 통해 불교 전래로 인해 형성된 죽음 및 사후인식의 변이적 양태를 개관해 보고자 한다. 불교 生死觀의 初傳期的 양태로부터 정착기를 통해 형성된 생사관의 변이 및 그 양태를 조망해 보고자 하는 즉, 불교 喪禮와 祭禮에 깃든 生死觀을 바탕으로 이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한편 이를 정리함에 있어 敎義的 관점이 아닌 史料 및 儀禮行法에 근거한 채, 시대에 있어 通時的 입장에서 生死觀의 변화 양상을 고찰코자 한다. 이러한 논의는 喪葬原理에 대한 이해적 측면만이 아닌, 불교적 수행관을 이해하는 데 역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2. 불교 死後觀의 初傳期的 양태
한반도에 수용된 三國 初傳期 불교의 성격으로는 求福 관념을 들 수 있다. 이에 불교 초전기 교설은 因果禍福이 主가 되었으며, 초자연적 神聖으로서 인식된 三寶에 대한 歸戒와 滅罪, 業說 등은 이를 밑받침한 채 윤리적 종교성의 근간이 되기도 하였다.
한편 삼국기 통일국토의 염원 속에, 불교 轉輪聖王說 및 전륜성왕에 의해 이후 龍華世界가 다스려질 것을 전하는 미륵경전의 예는 국가에 의한 미륵신앙의 정착 및 확산, 그리고 死後觀에 영향을 미쳤으며 彌陀信仰에 근거한 西方往生願 역시 초전기 불교적 사후관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이외에 초전기의 巫佛 혼재 속에 生天 관념의 형성 및 도교적 死後觀의 인식이 존재하기도 하였던 바, 그럼에도 茶毗 실행을 통한 無常 인식과 枯骨觀을 통한 不死를 목적으로 한 수행이 존재하기도 하였다.
1) 兜率上生과 西方往生願
불교 전래 초기의 사후관은 미륵 및 미타신앙에 근거한 채 功德으로 인한 福과 歌의 呪術 원리로서 전개되었음을 볼 수 있다. 우선 미륵신앙과 관련된 死後觀의 한 예로서 평양 평천리 출토의 고구려 유물 「永康七年銘金銅光背」를 들 수 있는 바, 그 光背에는 다음 銘文이 기록되어 있다.
“永康七年歲次□ 爲亡母造彌勒尊像 福願令亡者神昇覺 慈氏三會…”
즉 亡母를 위해 彌勒尊像을 조성하며, 망자의 神이 깨달음의 세계에 올라 慈氏(미륵)三會를 (만나게 될) 복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망자를 위한 現世功德을 말미암아 망자가 兜率天에 上生, 이후 미륵 龍華世界에 下生하여 龍華三會 설법을 듣기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구려 平原王 13년(571)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해도 봉산리 출토 「景四年(辛卯)銘金銅三尊佛光背」에는 다음 명문이 기록되어 있다.
“景4年 辛卯에 비구 道順은 諸선지식 那婁, 賤奴, 阿王, 阿据 등 5인이 함께 無量壽像 1軀를 조성하니 돌아가신 스승과 부모가 날 때마다 心中에 항상 諸佛과 善知識을 만나고, 彌勒을 만나게 되기를… 소원이 이와 같으니 원컨대 모두 한곳에 태어나 부처님 뵙고 法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그런데 위 기록에 의하면 無量壽像 조성 功德으로 인해 亡者가 彌勒 만나뵙기를 기원하고 있음이 발견된다. 이러한 혼재 현상은 고구려에 비교적 뒤늦게 유입된 아미타신앙 수용의 초기적 양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삼국유사 「南月山」 條에는 통일신라 관련 기사 중 망자를 위한 功德과 관련 미륵 및 미타신앙이 혼재된 다음 내용을 전하고 있다. - 신라의 경우 아미타불상이 최초 조성된 예로는 「癸酉(673년 추정)銘阿彌陀佛三尊四面石像」을 들 수 있는 바, 이러한 신앙 혼재현상은 좀더 후대에까지 나타남을 볼 수 있다.
“(南月山 甘山寺)…金堂主 彌勒尊像 火光後記에 이르되, 開元7년(719) 乙未 2월 15일에 重阿湌 金志誠이 그의 先考 印章一吉干과 그의 先妣 觀肖里夫人을 위해 甘山寺와 石彌勒 一軀를 만들었다…彌陀佛 火光後記에는…甘山莊田을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고, 이어 彌陀佛 1軀를 만들어 亡夫 印章一吉干을 받들어 위하였는데, 古人이 되자 東海攸反邊에 散骨하였다.”
위 내용에 의하면 金志誠은 이미 命을 마친 先考를 위해 甘山寺와 石彌勒을 造營했으며, 부친의 생전에는 甘山莊田을 희사해 가람을 세우고 彌陀佛을 조성, 공덕을 행했다는 것이다. 이는 造營功德으로 인한 生者의 淨土往生願과, 死者의 兜率上生願을 동시에 염원하는 예에 해당한다. 이같은 양상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예로서 삼국유사 「月明師兜率歌」 條에는 다음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경덕왕 19년(760)…해가 두 개가 나타나 열흘 동안 없어지지 않았다…때에 月明師가 숲 남쪽 길을 가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祈禱文을 지으라 하였다…月明은 兜率歌를 지어 바쳤다…그 詩를 해석하면 ‘龍樓에서 오늘 散花歌를 불러 靑雲에 一片花를 보내니…멀리 兜率의 大仙家를 맞이하노라’ 하였다…조금 있다가 해의 괴변이 사라졌다…
…月明이 또 일찍이 亡妹를 위해 齋를 올리고 향가[祭亡妹歌]를 지어 祭祀할 때 홀연 광풍이 일어 紙錢을 날려 서쪽으로 향해 없어졌다. 그 향가에 이르되, ‘생사의 길은 이에 있으매 저허하여 나는 갑니다 하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는가…아아, 彌陀刹에 만나볼 내 道 닦아 기다리고다’ 하였다.”
즉 兜率歌를 지어 미륵보살 감응으로 현실 재앙을 소멸했다는 내용과, 齋亡妹歌를 통해 亡妹의 (서방) 彌陀刹 왕생과 再會를 기원하는 혼재된 신앙 위에, 여기서는 歌의 주술적 원리에 의지한 원시적 祈願이 행해지고 있음이 보여진다.
2) 巫俗 生天槪念의 불교적 攝化
이상 功德과 주술적 원리에 의거한 上生 및 往生願과 달리, 임종시 忉利天 生天과 變龍 誓願의 예가 史料 가운데 발견되고 있다. 도리천 生天과 관련해서는 삼국유사에 선덕여왕(?~647) 임종 遺訓과 관련된 다음 기사가 소개되고 있다.
“…(宣德)王이 無病할 때 群臣에게 이르기를, ‘내가 某年 某月日에 죽을 터이니 나를 忉利天中에 묻으라’ 하였다. 群臣은 그곳을 알지 못하여 어디냐고 물으니, 왕이 가로되 狼山 남쪽이라 하였다…그후 10여년 후에 文虎(武)大王이 四天王寺를 왕릉 아래 세웠다. 佛經에 四天王天 위에 忉利天이 있다 하였으니, 비로소 大王의 靈聖한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도리천이란 불교 세계구조 중 四天王天 위 수미산 꼭대기에 위치한 地居天의 최상부를 말하며, 도리천의 主는 帝釋天王이 된다. 그런데 제석천은 재래의 巫敎的 측면에서 內帝釋宮의 上皇으로 이해되기도 하며, 天神의 불교적 攝化로 이해되기도 한다. 한편 선덕여왕과 동시대 승려 安弘(579~640?)은 그의 저서 東都成立記 중 ‘선덕왕을 忉利天女’라 말했던 바, 이를 유추할 때 ‘도리천에 묻어달라’는 선덕여왕의 유훈은 忉利天 生天을 통한 上皇에의 의지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임종 관련의 신라조 기사 중 變龍과 관련된 몇몇 내용이 발견된다. 우선 護法龍과 관련해 삼국유사 「皇龍寺九層塔」 조에는 다음 내용이 쓰여진다.
“(선덕왕 5년<636> 入唐한) 慈藏이 중국 太和池邊을 경유할 때 홀연 神人이 나타나…‘皇龍寺護法龍은 나의 長子로 梵王의 명을 받아 그 절을 보호하고 있으니…’”
또한 위 내용과 관련 13세기에 조성된 일본 高山寺 「華嚴宗祖師繪傳」에 묘사된, 義湘(625∼702)을 흠모하다 죽은 善妙의 化身으로서 ‘護法龍’과, 文武王 유훈에 따른 ‘護國龍’을 들 수 있다. 문무왕과 관련해서는 다음 내용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文武王 21년<681> 7월 1일) ‘내가 임종한 후 10일이 되면 곧 宮門 밖 뜰에서 西國 의식에 의해 불로서 燒葬하라’는 유훈을 남겼으며, 그 유언에 따라 東海口의 大石上에 葬事하였다. 俗傳에는 ‘왕이 龍으로 化하였다’ 하여 그 돌을 大王岩이라 하였다.”
여기서 龍이란 전통 巫敎에서 風雨와 海洋을 주재하는 農⋅漁業의 神을 말하는 바, 이는 또한 불교 세계구조에서 四天王의 八部衆 가운데 西方을 관장하는 廣目天王 휘하의 龍⋅毘舍奢 중 龍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에 사후 變龍이란 다름아닌 四天王天에의 生天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무속 신앙관념이 불교에 攝化된 初傳期的 양태로 평가될 수 있다.
3) 火葬과 枯骨觀
한편 위 문무왕 관련 기사 중 “西國 의식에 의해 불로서 燒葬하라”는 茶毗 관련 내용이 등장함을 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眞平王代(579~632) 활약한 圓光의 경우 “80여세에 貞觀年間에 죽으니, 浮圖는 三岐山 金谷寺에 있다” 하여 (다비에 의한) 浮圖 건립을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기록되고 있다. 그럼에도 茶毗와 관련된 최초의 직접적 언급은 삼국유사의 다음 기록에 보이고 있다.
“(慈藏이)…마침내 쓰러져 죽으니 茶毗하고 뼈를 石穴 가운데 안치하였다.”
慈藏(590?∼658?년)은 善德女王(632~646)과 眞德女王(647~653)代에 활약한 인물로, 신라의 경우 茶毗 행법은 대략 7세기 전반~중반에 소개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후 문무왕을 필두로 史記에는 8명 왕들의 火葬 사실을 전하는 바, 이후 茶毗葬法은 왕실귀족과 승려는 물론 민간에까지 확산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茶毗란 ‘시체를 불태워[焚燒] 그 遺骨을 묻는 행법’을 말한다. 기존 인도에서는 여러 유형의 장법이 행해졌던 바, 그 가운데 水葬(河葬)과 火葬⋅林葬(野葬)⋅土葬의 四葬은 地⋅水⋅火⋅風 등 四大로 구성된 몸이 四大에로 환원케 됨에 그 뜻이 있다고 할 수 있어, 이는 불교 無常의 원리를 드러내는 현상적 행법이 널리 확산되었음을 뜻한다고 하겠다.
한편 위 慈藏과 관련해 삼국유사는 枯骨觀이란 죽음觀 관련의 다음 기사를 전하고 있다.
“(慈藏은) 일찌기 양친을 여의고…田園을 희사하여 元寧寺를 짓고 홀로 幽險한 곳에 處하여 虎狼을 피하지 않고 枯骨觀을 닦았다.”
여기서 枯骨觀은 死體를 觀하는 방법으로, 不淨觀 내지 白骨觀이라 불린다. 死體가 부패하여 白骨로 변하는 九想 내지 十想을 봄으로서 자신 몸의 31가지 구성요소를 想起하여 不淨하다는 觀을 행하는 수행법을 말한다. 또한 탐욕과 감각적 욕망을 다스린 채 不死를 목적으로 한 수행법으로, 이로서 볼 때 枯骨觀을 통한 불교의 不死 추구 행법이 당시에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4) 死後觀과 도교적 요소
위 불교적 행법 외에도 일부 死後觀과 관련된 유교 및 도교적 예가 보여지고 있어, 墓誌銘의 용례를 통해 그 내용을 밝혀 볼 수 있다. 1971년 7월, 공주 能山里墳 발굴 도중 그 모습을 드러낸 무녕왕(501~523 在位) 陵과 출토 墓誌에 대한 많은 연구가 행해진 바 있다. 이에 墓誌 내지 買地券 관련의 기초적 연구와 함께, 부장된 王妃의 墓誌銘 중 ‘壽終’이란 文句의 예를 통해 墓誌에는 儒家의 생사관이 반영되었다는 견해가 발표된 바 있다. 한편 ‘무녕왕릉 墓誌銘’과 관련해서는 여러 이견이 제시되었던 바, 墓誌銘에는 다음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錢1万文. 右 1건. 乙巳年(525년) 8월 12일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앞의 금액으로 (賣主인) 土王과 土伯, 土父母, (그리고) 上下 二千石의 여러 관리에게 자문을 구해 西南西 방향의 땅을 매입해 墓를 삼았다.’ 이에 문서를 작성해 증명 삼으니, (이 묘역에 관한 한) ‘律令’을 따르지 않는다.”
위 내용 중 ‘土王과 土伯 및 관리로부터 (일정 금액으로) 토지를 매입했다’는 기록은 위 墓誌가 買地券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듯 매지권 위에는 묘지 값에 해당하는 1万文의 상징으로 普通4年(523) 주조된 중국 五銖錢 90여 개의 꾸러미가 올려 있었다. 한편 위 기록에 언급된 ‘律令’이란 文句는 道家의 經에 주로 사용되는 표현으로, 墓誌銘 문화에는 도교적 성격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음이 지적된 바 있다.
그런데 위 도교적 성격에 근거한 買地券 관련 기록이 高麗朝 승려의 墓誌에서 일부 발견되어 주목된다. 현재 조사된 바에 의하면 고려조의 墓誌는 총 324기가 발굴, 그 가운데 20기가 승려의 墓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기의 墓誌 중 개경 玄化寺 住持 闡祥과 개경 松川寺 주지 世賢의 墓誌銘에 따르면, 闡祥은 99,990貫文을 지불하고 묘지 1段을 샀으며 世賢은 19,990文으로 둘레 1頃의 묘지를 샀음이 기록되며, 그 계약을 확실히 하기 위해 지하세계의 仙人 또는 관리라 생각되는 李定度 등의 인물을 보증인으로 세우고 있음이 보여지는 것이다.
한편 634년 건립된 「芬皇寺模塼石塔」 제2층 塔身에서 1915년 탑 수리시 石函이 발견 되었는데, 그 안에서 고려 重修때 납입된 것으로 여겨지는 銀盒과 (買地錢으로 추정할 수 있는) 常平五銖, 崇寧重寶 등이 발견되었던 바, 이러한 예는 불교 喪葬法에 도교의 買地券 문화가 혼입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3. 往生修行과 生天 및 再生의 念
이상 필자는 불교 初傳期에 형성된 死後觀으로서, 兜率上生 및 西方往生願에 따른 功德과 歌의 呪術的 원리, 그리고 무속 신앙관의 불교적 攝化 과정에 형성된 生天槪念, 화장을 통한 無常의 인식과 枯骨觀을 통한 不死 추구의 念, 買地券의 용례를 통한 死後觀의 도교적 요소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후 불교가 정착되는 가운데 위 내용 중 西方往生願에 따른 세부적 원리가 형성⋅修行됨을 발견할 수 있으며, 往生과 生天⋅再生願 및 無常原理 체득과 관련된 실제 행법이 喪葬禮에 정착됨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는 불교 死後觀이 좀더 적극적이고 구체화되는 양상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1) 왕생수행과 정념왕생
이 가운데 西方往生願에 따른 구체적 행법이 修行된 예로서 十六觀과 十念念佛, 또한 정념왕생 의례의 정립과 시다림 행법 등의 시행은 喪葬의 死後觀 정립에 영향을 미쳤음을 말할 수 있다.
(1) 十六觀과 十念 稱佛
우선 삼국유사에 전하는 최초의 往生談 「廣德 嚴莊」 條에는 十六觀 수행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예가 보여지고 있다. 이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문무왕대(661~680)에 沙門 廣德과 嚴莊은…약속하되, 먼저 安養으로 돌아가는 자는 서로 알리자 하였다…어느날…창밖에 소리가 나며 말하기를, ‘나는 이미 西쪽으로 가니 그대는 잘 있다가 속히 나를 따라오라’ 하였다…德(광덕)이 죽었다. 그 처와 함께 유해를 거두어 장사 지내고…‘남편이 죽었으니 같이 사는 게 어떤가’ 하였다…밤에 잘 때 정을 통하려 하니…妻가 말하되, ‘夫子(광덕)가 나와 10여 년을 동거하였으되…다만 每夜 端身正坐하여 한소리로 阿彌陀佛 이름을 외우고 혹은 十六觀을 지어…정성이 이와 같았으니 비록 西方淨土로 가지 않고자 한들 어디로 가리요…지금 師(엄장)의 觀은 東으로 간다 할지언정 西로는 갈 수 없다’ 하였다. 莊이 부끄러워 물러가 元曉法師(617∼686)에게로 가서 津要를 간구하였다. 曉가 鍾觀法을 지어 지도하였다. 莊이…一心으로 觀을 닦아 또한 극락으로 갔다.
위 내용은 廣德이 阿彌陀佛 稱名과 十六觀 수행으로 인해 왕생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또한 嚴莊은 元曉에게 法을 구했던 바 원효가 「鍾觀法」을 지어 지도, 一心으로 觀을 닦아 극락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된 十六觀과 阿彌陀佛 稱名에 대해서는 觀無量壽佛經에 다음 내용이 전해진다. 즉 임종시 서방 극락국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3종 淨業을 닦아야 할 것을 제시하는 바, 그럼에도 ‘혼탁함과 惡으로 善을 짓지 않고 五苦에 허덕이는 자가 어떻게 아미타불 극락세계를 볼 수 있겠습니까?’ 라는 韋提希의 질문에 대해 “이 땅을 觀하는 자는…死後世界에 틀림없이 그 淨國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하며 그 방법으로서 다음의 十六觀을 설하고 있다. ①日想觀 ②水想觀 ③寶地觀 ④寶樹觀 ⑤寶池觀 ⑥寶樓觀 ⑦華座觀 ⑧像想觀 ⑨眞身觀 ⑩觀音觀 ⑪世至觀 ⑫普觀 ⑬雜想觀 ⑭上輩觀 ⑮中輩觀 下輩觀 등.
한편 관무량수불경에 의하면 ‘惡道에 떨어지게 될 下品下生의 不善業 五逆十惡者’인 下輩 중생들을 위해 다음 내용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네가 만약 저 (무량수)佛을 생각할 수 없다면 [歸命無量壽佛]이라 稱佛해야만 한다’라고…이렇게 <南無阿彌陀佛>을 十念 具足해 칭하면, 佛名을 부름으로서 念念에 80억 겁 생사의 죄를 없애고, 목숨 마칠 때…一念에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
즉 “네가…(무량수)佛을 생각할 수 없다면 - 十六觀 중 眞身觀을 행할 수 없다면 - ” 「나무아미타불」이란 稱佛을 10回[十念]에 걸쳐 행해야 함을 말하는 바, 이러한 칭명염불(阿彌陀佛 十念 稱佛)은 下輩에 속한 범부들의 臨終觀에 중요한 요소가 되어짐을 알 수 있다. 이외에 불설무량수경에 전하는 48대원 중 十念往生願과 臨終現前願, 그리고 불설아미타경의 臨終來迎說 등은 왕생 수행의 중요 指南이 되며, 삼국유사 「南白月二聖」 조에 소개된, “努肹不得은 彌勒을 勤求하고 ‘중생에게 隨順하는 菩薩行’과 ‘(다라니의) 念佛’을 통해 現身으로 彌勒尊佛을 이루어 成佛하고 昇天했다”는 내용 역시 왕생 수행의 중요 행법이 된다고 하겠다.
(2) 임종 자세와 정념왕생
한편 원효에 앞서 신라에는 唐의 道宣(596~667)으로부터 受學한 慈藏(590?∼658?)에 의해 南山律宗이 전래되었던 바, 南山宗의 창시자인 道宣이 630년 저술한 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는 이른 시기에 국내에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의 「看病 葬送」 항목에는 다음의 임종행법이 전하고 있어, 율종의 확산 속에 시행되었음을 생각할 수 있다.
‘病者는 無常院에로 옮긴다. 무상원에 立像을 안치하며, 불상 왼쪽에 오색기가 바닥에 깔리도록 건다. 병자가 임종하면 불상 뒤에서 왼손으로 부처님 손에 늘어져 있는 깃발 끈을 손에 쥔다. 이에 의해 부처님 인도를 받아 정토에 왕생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임종할 때 道俗을 막론하고 親類緣者는 베겟머리에 모인다. 임종자의 정신이 확실한 동안 그 사람의 한 평생 선행을 소리높이 불러 듣도록 한다. 임종에는 妄業이 다투어 모인다. 선악 昇沈이 아득히 멀어진다. 經卷을 손에 쥐고 부처님 명호를 칭한다. 또는 불상을 눈앞에 모시고 우러러본다. 선한 말을 주며 세상사에 관한 말을 하지 않는다.’
위 내용에 따르면 無常院에 佛立像을 안치하고 부처님 손으로부터 깃발을 늘어뜨리며, 病者가 臨終하면 왼손에 깃발 끈을 잡아 부처님 인도를 받아 정토에 왕생케 하는 모습이 설명되고 있다. 또한 임종시 평생의 선행을 말하며, 經卷을 손에 쥔 채 佛名을 칭하도록 하여 正念으로 往生케 하는 모습이 설명되어 있다.
또한 원효 이후, 7세기 신라 정토사상가 義寂은 저술 無量壽經述義記에 唐代 善導의 사상을 도입하고 있는 바, 위 道宣의 예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善導의 「臨終正念訣」 의궤 역시 국내에 유입, 18세기에는 한글 번역본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한편 善導의 臨終方訣에는 다음의 임종시 행법이 부가되어, 임종 자세와 臨終正念 행법으로 널리 행해졌음을 말할 수 있다.
“命終時 따듯한 香水로 몸을 닦아 청정히 한다. 새 옷을 갈아입힌 후, 앉혀 正念思惟케 한다. 病者 앞에 사각 단을 만들고, 병자가 예배하며 부처님 상호를 보아 覺心 일으킬 수 있도록 단 안에 佛畵를 건다. 설법자는 ‘이 세상은 苦界이며, 부처님께 귀의함으로 三惡道에 가지 않고 시방의 부처님 머무는 곳에 가서 미묘한 즐거움 받을 것’을 설명한다…병자에게 어떤 불국토에 태어나기 원하는가를 묻고…그 불국토에 태어나도록 부처님 명호를 소리내어 부르도록 한다. 十念을 하면 三歸戒를 받는다. 참회가 끝난 후 보살계를 받는다. 수계 후 頭北面西한 채 부처님 32상과 80종호를 생각토록 한다…목숨 마칠 때, 化佛 및 菩薩衆이 妙香華를 가지고 行者를 맞이하러 온다. 병자는 환희심 낸다. 몸에 고통 없고, 마음 흐트러지지 앉고, 正見의 마음 생긴다. 禪定에 들듯 목숨 마친다. 지옥⋅아귀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行者가 바라던 부처님 나라에 태어난다.”
(3) 시다림 행법
위 善導의 임종방결에 의하면 임종시 설법자의 苦界說法과, 十念에 이어 三歸戒, 그리고 懺悔 후 菩薩戒를 受戒함이 명기되고 있다. 한편 망자의 죽음에 따른 이와 유사한 행법이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바, 이는 善導의 규범에 따른 臨終儀軌가 이미 新羅代에 시행되었음을 추정케 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어느날 (蛇福의) 어머니가 죽었다…蛇福은 元曉에게…‘그대와 나의 옛날 경전을 실었던 암소가 지금 죽었으니 같이 가서 장사 지냄이 어떤가?’…원효가 菩薩戒를 주고 그 시체 옆에서 가로되 ‘나지 말지어다, 그 죽음이 괴롭다. 죽지 말지어다, 그 남이 괴롭다’ 하였다. 蛇福은 그 표현이 번거롭다 하여 고쳐 이르되 ‘死生이 모두 괴롭다’ 하고 二公이 메고 活里山 동쪽 기슭에 갔다…”
여기서 원효는 菩薩戒 授戒와 함께 임종자를 위한 苦界說法을 행하는 바, ‘死生 모두가 괴롭다’는 표현은 生死出離의 解脫의 念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임종자를 위한 苦界說法을 현재 한국불교에서는 亡者를 위한 讀經으로서 ‘시다림’ 내지 ‘시다림법문’이란 용어로 사용되는 바, 이는 망자를 위한 왕생 행법의 하나로 인식될 수 있다. 이에 대해 佛說灌頂隨願往生十方淨土經에는 임종을 맞이한 사람의 往生을 목적으로 한 讀經 設行의 예가 보여지고도 있다.
“타방국토의 보광보살이 ‘네 무리의 제자가 임종할 때…어떤 공덕을 닦아야 시방국토에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저 十方佛土에 태어나기를 희망한다면) 임종을 당하거나 임종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라도…3⋅7(21)일 동안 부처님 經을 외울 것 같으면, 목숨이 끊어져 中陰 중에 있어…죄와 복이 결정되지 못할 때 그때에 응당 복 닦음이 되어지리니…’”
한편 梵網經에서는 “부모⋅형제⋅화상 아사리의 사망일이거나 3⋅7(21)일 또는 7⋅7(49)일에 응당 大乘 經律을 독송⋅강설하여 齋會에 복을 구하고 미래의 생을 다스릴 것”을 말하고 있으며, “六道衆生 모두가 내 부모이니…부모 형제의 사망일에 응당 법사를 청해 菩薩戒經을 講하면 능히 망자에게 복이 되어 그로 하여금 부처님을 뵙고 인간이나 천상에 나게 할 것”을 말하는 바, 이러한 등은 시다림에 대한 佛典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삼국유사 「金現感虎」 條에는
“金現의 妻가 죽음을 앞둔 채 ‘나를 위해 절을 세우고 眞詮(佛典)을 講하여 勝報에 도움이 되면 낭군의 은혜가 이보다 큰 것이 없겠다’고 하였던 바, ‘虎願寺란 절을 짓고 항상 범망경을 講하여 범의 저승길을 축복’하였다.”
는 내용이 전해지기도 한다. 이렇듯 시다림은 신라로부터 널리 행해진 亡者의 왕생을 위한 행법으로, 이로 인해 망자는 경전의 깊은 뜻을 깨닫고 諸佛菩薩의 慈悲願力에 感念, 집착의 마음 버리고 고통을 넘어 彼岸으로 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往生 및 再生願과 無常의 인식
이상 往生 修行 및 正念往生의 내적 원리와는 달리, 상장례의 실제 행법 가운데 往生 및 再生願과 無常의 인식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이를 설명하기에 앞서 중국 諸種 상장례 관련 문헌을 바탕으로 상장례 전체 행법을 간략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⑴ 殮襲 : ①巾幘(幘巾: 死者의 머리와 얼굴을 베로 만든 頭巾으로 덮는다.) → ②欲亡(湯灌: 즉 죽은 이의 몸을 닦는 일.) → ③淨髮(削髮은 出家得道의 의미가 있다. 손발톱을 깍는다.) → ④死者에게 明衣(經文이 적힌 옷)를 입힌다. 善導의 臨終方訣에 “新淨衣를 입혀 安詳으로 앉힌다”고 한다. 陀羅尼經 중에 “선세 죄업자는 진언⋅다라니를 옷에 쓴다면 결정코 퇴전함이 없고 깨달음을 얻으며,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정토에 왕생한다”는 말에 의거한 것이다.) → ⑤行裝(칙수백장청규에 의거, 冥界를 여행할 때 필요한 물품, 數珠와 行纏⋅짚신 등을 준비한다.) → ⑥六道錢(路資: 이승과 저승 사이의 三途川을 건널 때의 배삯과 육도윤회의 여비에 해당, 중국 한나라 이후 五代부터는 紙錢을 썼다.) → ⑦死者의 자세(合掌하고 頭北面西한다.) → ⑧枕經(선원청규의 예에 따라 승려를 초빙해 遺敎經을 讀經한다.)
⑵ 入龕 : ①入龕(入棺: 입감 후, 龕 앞에 상을 차리고 위패를 세우며, 등과 꽃⋅향을 마련한다. 아침⋅저녁 두 차례 차와 죽, 밥을 올린다.) → ②移龕(寢堂에서 법당으로 관을 옮긴다.) → ③鎖龕(법당으로 이감한 후 관 뚜껑을 닫는다. 재가자는 침당에서 鎖龕하고 법당으로 이감한다.) → ④法堂掛眞(법당에 진영을 걸어 둔다.) → ⑤擧哀(애도의식을 행한다.) → ⑥奠茶蕩 → ⑦對靈小參 → ⑧전다탕.
⑶ 發靷 : ①起龕(관을 화장장에로 옮긴다.) → ②眞亭掛眞(운구 앞에 진영을 내세운다. 장례지에 도착하면 龕을 열반대에 안치, 근친자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세 번 돈다. 龕은 天蓋로 위를 가리고 네 개의 번으로 둘러싼다.) → ③전다탕(상에 華⋅燭⋅爐⋅湯⋅茶를 올리고 생전에 사용하던 물품을 진열한다. 분향 후 無常經을 독경한다. 임종방결에 ‘읽고난 경은 불사른다’고 한다. 土葬<埋葬>일 경우 여기서 모든 법식이 마무리된다.)
⑷ 火葬 : ①秉炬(불 준비.) → ②安骨(收骨: 칙수백장청규에, 친족이 화장장에 남아 있다가 잿속에서 뼈를 수습해 오면 僧堂의 종을 울려 대중이 맞아들여 寢堂에 봉안, 영정을 걸고 安骨 법요식을 거행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 ③提衣(唱衣: 입적한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을 사중에 귀속시키거나 대중이 분배하는 일, 또는 나눌 수 없는 물건은 경매하여 그 금액을 대중에 분배하는 일을 말한다.)
⑸ 入塔 : ①起骨(종을 쳐 대중이 모이면 유골을 침당에서 탑으로 옮긴다.) → ②入塔 → ③入祖堂 → ④全身入塔 → ⑤撤土.
위와 같은 상장례의 행법 내지 관련 의식집은 고려 이래 조선조에 걸쳐 다수 유입 되었으며, 그에 대한 첨삭을 거치는 가운데 고유의 喪葬禮 의식집이 출간 되었던 바, 이를 종합적으로 고찰해 보는 가운데 喪葬禮 전반에 대한 절차 및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 전체 내용 가운데 往生과 再生願, 그리고 無常 認識의 체득과 관련된 몇몇 내용만을 드는 가운데 喪葬의 死後觀을 설명하고자 한다.
(1) 往生 및 再生의 願
高麗史에는 茶毗와 관련, 사후 往生 및 再生의 願을 말하는 다음 기사가 보여지고 있다.
“恭讓王 元年(1389) 憲司에서 上䟽하여 말하기를…근세에 浮屠氏의 茶毘가 성행하여 사람이 죽으면 세찬 불꽃 가운데 장사 지내고 있습니다. 모발을 태우고 살갖을 익혀 다만 해골만 남기며, 심한 자는 뼈를 태우고 재를 흩날려 물고기와 새에게 주며, 반드시 이렇게 한 연후에 生天할 수 있으며 西方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바라옵건대 이제부터 일체 엄금하되 어기는 자는 죄를 논하소서.”
즉 茶毗 후 散骨하여 물고기와 새에게 준 연후에 生天 내지 往生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와 동일한 내용은 세종실록 世宗 2年(1420) 條에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한편 1660년(順治17) 懶庵眞一은 禪苑淸規와 五杉集, 釋氏要覽 등을 再編하여 釋門家禮抄를 간행하였던 바, 위 내용과 관련한 茶毗 행법이 다음과 같이 상술되어 있다.
“眞言大藏 10函 樓閣記에 이르되, 사람이 죽으면 死體를 잡목이 없는 곳에서 태워 3일 후에 깨끗한 베로 8척의 주머니를 만들어 燒骨所에 이른다. 나무젓가락으로 拾骨하되, 동쪽을 향해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버드나무 토막[瓮筒]으로 鉢盂 2개 정도가 들어가는 (크기의) 발우를 만들고, 가지 부분으로는 절공이를 만든다.
참기름 3되, 白炭 3말, 참깨 가루 3숫가락, 풀방석 1장 등을 준비해 높은 봉우리 정상에 올라 큰 바위 위에 놓는다. 나무 젓가락으로 뼈를 집어 향탕수에 씻고 백탄 위에서 태운다. 이때 往生偈를 외운 후, 나무 젓가락으로 (타고 남은) 뼈를 집어 버드나무 발우에 담은 다음 절공이로 빻아 가루로 만든다…
…참깨 가루 3숫가락을 물에 섞어 뼈가루와 반죽해 큰 콩 크기의 丸을 만든다. 환을 푸른 연못 안의 큰 고기들에게 보시한 후 ‘이 공덕으로 ○○靈駕가 바로 西方에 이르거나, 또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출가하여 大法王의 몸이 되어지이다’ 라고 한다. 만약 이같은 법으로 碎骨한 즉 水陸齋를 지낼 필요가 없다.
五杉集에 이르기를, ‘茶毘禮가 처음부터 끝까지 법에 맞도록 행해지면 靈駕는 불 가운데서 色身의 본래 空한 이치를 깨닫게 되는 까닭에…곧바로 극락에 태어나게 되며, 齋를 올린 자의 복덕도 無邊할 것이다…’”
위 내용에 의하면 ‘참깨와 뼈가루를 반죽한 丸을 연못의 물고기에게 보시한 공덕으로 往生케 되어짐’이 강조되고 있다. 이에 往生의 측면에서 위 내용의 상징을 분석해 보면, 연못은 西方淨土의 七寶蓮池가 될 것이며, 물고기는 그 안에 노니는 彌陀漁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七寶蓮池에 뼈가루를 반죽한 丸을 던짐은 뼈가루의 靈駕가 서방정토의 칠보연지에 直入해 들어감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점은 佛畵 畵師을 金魚라 하며, 佛畵에 그려진 人面漁 얼굴에 서방 칠보연지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畵師 자신 얼굴이 그려짐과 동일한 이치라 하겠다. 즉 淨土에 直入하기를 기원하는 往生의 적극적 표현이 담겨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丸을 보시한 공덕으로 ‘再生 出家하여 大法王 되기를 기원함’ 역시 강조되어 있는 바, 이 부분은 ‘茶毗로 인해 色身의 空한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점과 함께 禪的 生死觀의 일면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2) 無常과 空의 인식
위 인용 중 ‘茶毗로 인해 靈駕는 色身의 空한 이치를 깨달아…’라는 점은 茶毘儀式 중 唱衣 행법에서도 드러나 있다. 唱衣는 대중이 다비장에서 돌아온 후 寺中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亡者의 所有物을 매각하여 我 및 我所(나의 것)에의 집착을 여의게끔 하는 방법을 말한다. 석문가례초는 이에 대해 “律에 이르되, 亡僧의 재물을 대중 앞에 들어 보여 다 매각하여 靈을 薦度케 하는 바, 이는 僧家의 풍속이다” 하고 있다.
唱衣는 衣鉢을 대중 앞에 진열하는 提衣, 대중에게 가치를 묻는 唱衣, 의발을 대중에게 매매하는 估衣로 구분되며, 估唱에서 얻어지는 수익은 3등분하여 看經時의 布施로, 또한 葬送式 및 估唱 참석자에게, 나머지는 장례비와 常主庫下(사중수입) 등으로 나누게 된다.
한편 창의에 앞서 “뜬 구름 흩어지니 그림자 흐르지 아니하누나. 沒燭 다하니 빛 스스로 없어지는구나. 지금 여기에 估唱하여 無常함을 나타냄이라” 하고 말하며, 창의가 끝나면 “上來大衆의 念誦과 창의 공덕을 모두 歿故某人에게 廻向함이며, 覺靈을 資助하여 정토에 왕생케 함이다” 하는 바, 석문의범 「唱衣篇」 항목에서는
"이제 唱衣는 無常의 진리를 표함이니, 우러러 대중은 十念을 생각하라. 위의 唱衣 念誦 공덕으로 받들어 영가를 위하노니, 根塵을 逈脫하고 三界를 벗어나 千聖의 正路를 찾아 밟으며 一乘의 묘한 장소에 유희케 되어지이다."
하여 唱衣를 행함은 영가로 하여금 無常의 진리를 일깨운 空의 (禪的) 인식 속에 번뇌를 벗어나 薦度케 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4. 祭禮에 나타난 죽음과 死後認識
불교는 祭式主義에 대한 부정을 근본 기저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제식주의에 대한 초기불교적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 [中阿含業相應品]의 伽彌尼經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那難陀園에 머물러 계실 때 阿私羅天에게 伽彌尼란 아들이 있어…부처님께 이르기를…‘법의 주인이신 세존이시여…목숨이 마치는 중생으로 하여금 善處에 이르거나 天 가운데 태어남을 얻게 해 주실 수 있겠지요?’ 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어떤 사람이…악법을 행한 채 10종의 不善業을 성취하였으며…삿된 소견을 취하고 있다면, 저 사람의 목숨이 끊어질 때 여러 사람이…그를 향해 ‘줄을 잡으라’고 소리 높여 기도한다면…이 緣으로…목숨이 마쳐 善處에 이르거나 천상에 태어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위 내용은 임종자에 대한 喪⋅祭禮의 효용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전하는 바, 경전 말미에 “(善業을 성취한 사람은)…목숨이 마칠 때…四大는 파괴되고 滅盡해 갈 것이며, 목숨이 마친 후…혹 태우거나 매장하여 粉塵될 지라도 그의 心意識은 信과 精進⋅多聞⋅布施⋅智慧에 훈습된 바 되어 이 緣으로 인해 그 사람은 자연히 善處에 올라 태어나게 될 것이다” 하고 있다. 또한 善處에 나아갈 수 있는 道로서 正見⋅正定 등 八支聖道(八正道)를 말하고 있어, 生天 내지 善處에 태어남은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개개인 선악의 業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先祖 숭배는 尊敬恭敬을 뜻하는 것으로 梵志陀然經 중 ‘부모⋅先祖⋅수행자⋅바라문⋅諸神을 존경공양 함으로서 사후 향락을 얻고 天界에 태어나고자 한다’는 梵志 陀然의 바램 및 ‘그것이야말로 法(dharma)에 따르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초기 니까야(nikāya)에 “선조의 혼(餓鬼; ⓢpreta)을 위해 공양하는 것은 불교를 믿는 장자들의 성스런 의미”임을 말하는 등은 祭禮 設行의 의미적 前提가 되어진다.
1) 滅惡趣와 生人天
위 범지타연경에서 말하는 ‘死後 享樂과 生天’ 원리는 불교 祭禮로서 四十九齋 실행의 의미에 다소 근접하고 있다. 그럼에도 佛祖統紀 「七七齋」 항목은 七七齋 설행 의미를 보다 적절히 설명하고 있어, 내용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죽어 中有의 몸으로서 만약 生緣을 얻지 못하면 최고 7일을 머물게 된다. 그리고 죽어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이와 같이 生死를 輾轉하다가 7⋅7일에 이르러서는 결정코 태어남을 얻게 된다…사람이 죽어 7일마다 필히 追福의 齋를 경영하는 것을 ‘齋七’이라 이름하는데, 이는 中有種子로 하여금 惡趣에 轉生치 않게끔 하는 것이다.”
위에 말하는 追福의 齋로서 7⋅7재는 齋七 내지 七七忌⋅七七日⋅累七齋 등으로 불리우며, 釋氏要覽 중 ‘惡趣에 轉生치 않게끔 돕는다’는 뜻의 ‘以善追助’란 어구를 근거로 追善供養이란 말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한편 地藏菩薩本願經 「利益存亡品」에 의하면
“사후 7⋅7일 내에 널리 衆善을 지으면 능히 死者로 하여금 영원히 惡趣를 여의고 人天에 태어나게 할 수 있으며, 수승한 妙樂을 얻게끔 하며 현세 권속들에게는 이익이 무량할 것이다.”
는 내용이 기록되어, 이 기간 동안 親屬들은 亡者를 위한 追福의 祭禮를 행하게 된다.
2) 施餓鬼會의 기원과 행법
亡者를 위한 追福의 祭禮는 달리 施餓鬼會라 불린다. 또한 焰口施食儀라 불리는 바, 佛說救拔焰口餓鬼陀羅尼經에는 施餓鬼會의 기원을 전하는 다음 내용이 소개된다.
‘한때 阿難이 홀로 念所에 머물고 있던 밤, 焰口라 이름하는 추악한 餓鬼가 나타나 이르기를, “3일 후 너의 목숨이 다해 餓鬼 가운데 떨어질 것이라” 하였다.
아난이 크게 놀라 “어떻게 하면 아귀에 태어날 고통을 면할 수 있느냐?” 물으니 아귀가 이르기를 “능히 다음날 백천 나유타 항하사 數의 아귀들과 백천 婆羅門仙人 등에게…각기 1斛(10말)의 음식을 보시하며, 또한 나를 위해 三寶께 공양 올리면 너는 수명 연장함을 얻을 것이고, 나로 하여금 아귀의 고통 벗어나 천상에 태어남을 얻게 하리라” 하였다…
…아난이 이 일을 부처님께 여쭙자 부처님께서는 「無量威德自在光明殊勝妙力」이라 이름하는 陀羅尼 및 “那謨 薩嚩怛他 蘗多 嚩盧枳帝 唵 參婆囉 參婆囉 吽”이란 眞言句를 말씀하시면서 ‘선남자 선여인이 長壽와 복덕이 증장케 되고자…하면 매 새벽[晨朝] 및 일체시에 깨끗한 그릇 하나에 淨水를 담고 약간의 음식과 떡 등을 두어둔 채 오른손을 그릇에 얹은 다음 이 다라니를 7편 외운 후 4여래의 명호(다보여래⋅묘색신여래⋅광박신여래⋅이포외여래)를 외울 일이다…’
또한 ‘선남자 등이 4如來 명호를 칭하고 加持를 마친 다음 손가락을 7번 튕기고 난 후 食器를 집어 깨끗한 땅에 팔을 펴 쏟아라. 이렇게 施食을 마치면 사방 백천 나유타 항하사 數의 아귀들 앞에 각각 마가다국의 77斛 만큼의 음식이 있게 되어 이 음식을 받고 모두가 포만케 되며, 鬼의 몸을 버리고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 볼 때 시아귀회란 ‘(阿難 스스로가) 죽음으로 인한 餓鬼道의 고통을 면키 위해 수많은 餓鬼(亡者의 혼)들에 공양 올림으로서 施食者는 수명 연장을, 음식을 받은 아귀는 공양 功德으로 天上에 태어남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바, 이는 餓鬼 즉 亡者의 혼을 위한 薦度 목적으로 행해지는 施食 행법임을 알 수 있다. 이에 현행 施食文 중 “受我此法食 何異阿難饌 飢腸咸飽滿…”이란 구절은 餓鬼를 위한 施食 緣起를 설명해 주는 표현이라 하겠다.
대장경 密敎部에는 施餓鬼會의 연유 및 행법을 전하는 7종의 경전이 발견되고 있다. 이 가운데 시아귀회 행법의 기본 틀을 상술하고 있는 불설구발염구아귀다라니경에서는 施餓鬼會 행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매 새벽[晨朝] 및 일체시에 깨끗한 그릇에 淨水를 담고 약간의 음식과 떡 등을 두어둔 채 오른손을 그릇에 얹은 다음 「무량위덕자재광명수승묘력」이란 다라니, “나모 살바다타 아다 바로기제 옴 삼마라 삼마라 훔” 7편을 외운 연후 4여래의 名號(다보여래⋅묘색신여래⋅광박신여래⋅이포외여래)를 외워 加持를 행한 다음 손가락을 7번 튕긴 후 食器를 집어 깨끗한 땅에 팔을 펴 쏟는다.”
위 행법은 施諸餓鬼飮食及水法幷手印에 이르러 보다 구체화되어지는 바, 시제아귀음식급수법병수인은 ①중생식 준비→②請(餓鬼)偈→③普集印(餓鬼雲集呪)→④開地獄門(진언)→⑤無量威德自在光明勝妙之力加持飮食陀羅尼→⑥甘露法味眞言(施甘露眞言)→⑦毘盧遮那一字心水輪觀眞言印(普施一切餓鬼印眞言)→⑧5여래(보승여래⋅묘색신여래⋅감로왕여래⋅광박신여래⋅이포외여래) 名號 칭함→⑨菩薩三昧耶戒陀羅尼→⑩發遣解脫眞言 등의 次第를 통한 시아귀회 법식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시아귀회 행법은 이후 祭禮 관련 의식집 편찬과 함께 그 내용이 복잡하게 전개된다. 중국의 경우 시아귀회 관련 儀式書 편찬으로는 元나라 德異의 增修禪敎施食儀文 및 明代 袾宏의 修設瑜伽集要施食壇儀를 필두로 다수의 祭禮 儀式書가 편찬되었던 바, 대개의 경우 袾宏의 찬술 내용을 대부분 답습하고 있어, 施餓鬼會 관련 의궤화의 원형을 德異의 增修禪敎施食儀文 및 袾宏의 修設瑜伽集要施食壇儀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 한국의 경우 고려 宣宗7년(1090) 崔士謙이 송나라에서 水陸儀文을 들여온 이래 元代 德異의 增修禪敎施食儀文 간행을 필두로 많은 의식서가 출간 되었던 바, 대부분 德異의 증수선교시식의문을 답습하는 정도에 그쳐 德異本을 저본으로 한 변형으로서 시아귀회 관련 의궤가 정립되었음을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후 1827년(道光6) 白坡亘璇은 ‘의식문의 착오와 결함을 보충, 의식 통일을 위해 作法龜鑑을 찬술’했던 바, 施餓鬼會 行法에 다소 변화가 생겨남을 볼 수 있다.
이에 필자는 施諸餓鬼飮食及水法幷手印의 경전 규범과 德異의 증수선교시식의문, 그리고 白坡亘璇의 작법귀감에 나타난 施餓鬼會 행법에 대한 共觀表를 구성해 보았는 바, 경전 규범 내지 증수선교시식의문에서와 달리 작법귀감에 이르러 행법의 변화가 생겨나 있음을 볼 수 있다.(도표. 1)
施諸餓鬼飮食及水法幷手印 |
增修禪敎施食儀文 (元, 德異 讚) |
作法龜鑑(1826년, 白坡亘璇 編) |
㊀ 衆生食 준비 |
|
|
㊁所請(餓鬼)偈 |
①請魂→ |
擧佛→ 창혼→ |
|
②表白→ |
착어→ 진령게→ 풍송가지→ |
㊂普集印(餓鬼雲集呪) ㊃開地獄門(眞言) |
③大悲呪→ ④破地獄偈→ ⑤破地獄眞言→ ⑥普召請眞言→ |
천수→ 파지옥게→ 파지옥진언→ 보소청진언→ |
|
⑦해원결진언→ ⑧별청(향화청)→ ⑨안좌진언→ |
|
|
⑩歎佛→ ⑪귀의삼보→ |
탄불→ 귀의삼보→ |
|
|
귀의관세음보살→ 귀의대방광불화엄경→ |
|
⑫지장보살멸정업다라니→ ⑬관음보살멸업장진언→ |
|
|
|
고혼청→ 보례삼보→ 수위안좌게→ (수위안좌진언)→ 공양게→ |
㊈보살삼매야계다라니 |
⑭개인후진언→ ⑮삼매야계진언→ |
|
㊄무량위덕자재광명승묘지력가지음식다라니 ㊅甘露法味眞言(施甘露眞言) ㊆비로자나일자심수륜관진언인 ㊇5여래 명호 칭 |
변식진언→ 감로수진언→ 일자수륜주→ 유해진언→ 7여래명→ |
변식진언→ 감로수진언→ 일자수륜관진언→ 유해진언→ 5여래→ |
|
시무차법식진언→ |
시귀식진언→ |
|
보공양진언→ |
보공양진언→ |
|
|
보회향진언→ 수아차법식→ 여래십호→ |
|
참회→ 사홍서원→ 12인연→ |
|
|
금강사구게→ |
반야게→ |
|
|
법화게→ 정토업(장엄염불)→ |
|
심경→ |
|
㊉발견해탈진언 |
|
봉송게→ 보례시방삼보→ (봉송소)→ |
|
왕생정토주 |
왕생게→ |
|
|
소전진언→ 봉송진언→ 상품상생진언→ 삼귀의→ 보회향진언→ 파산게 |
도표 1. 施餓鬼會 행법 구성 共觀表
3) 往生의 淨土業
위 도표를 통해 볼 때 施餓鬼會 행법의 변화 가운데 주목되는 점은 작법귀감의 경우 기존 증수선교시식의문의 행법 중 삼매야계진언, 사홍서원, 12인연 등 禪宗 관련의 내용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諷誦과 여래십호, 정토업(장엄염불), 상품상생 등 淨土業 관련 부분이 첨입되어 있음이 눈에 띄는 바, 이는 의식 구성의 사상적 기반이 禪風에서 淨土業에로 옮겨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 하겠다.
즉 앞의 喪例 행법에서는 ‘再生 出家하여 大法王 되기를 기원함’이란 禪的 生死觀의 일면이 보여지고 있음에 비해, 祭禮 행법에서는 그 내용이 약화되는 가운데 정토업의 관념이 좀더 부각되어 있는 바, 이는 祭禮의 主眼點이 禪的 解脫 개념으로부터 往生에로 전이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5. 結語
불교 이전 古代人들은 운명론적 生死觀 및 繼世的 세계관을 지닌 채, 현실에 순응하는 삶을 살았었다. 그럼에도 因果禍福에 근거한 業과 輪廻의 이론을 설파하는 불교 전래는 윤리적 종교성의 근간이 된 채 죽음 및 사후인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가 처음 전래된 三國 初傳期의 경우, 轉輪聖王說 및 彌勒信仰의 정착은 兜率上生의 死後觀을 정립케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彌陀信仰에 근거한 西方往生願 역시 초전기 불교 死後觀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이외에 불교 초전기 巫佛 혼재의 양상 속에 生天의 도교적 사후관이 불교 안에 존재하기도 했던 바, 또한 茶毗 실행을 통한 無常의 인식과 枯骨觀을 통한 不死를 목적으로 한 수행이 존재하기도 하였다.
이후 불교가 정착되는 가운데 西方淨土願에 따른 실천원리로서 十六觀과 十念 稱佛이 행해졌던 바, 임종자세에 대한 규범 내지 正念往生의 원리, 그리고 시다림 행법 등이 실천되었다. 또한 往生과 生天에 대한 적극적 인식은 淨土에의 直入을 기원하는 상징적 의식을 생성하였고, 再生願 및 無常原理 체득과 관련된 禪的 生死觀이 喪禮의 일부 행법으로서 정립되었다.
한편 滅惡道와 生人天의 원리에 바탕한 祭禮로서 施餓鬼會의 경우, 19세기 이래 施餓鬼會 구성의 사상적 기반이 禪風에서 淨土業에로 전이되고 있음을 통해 祭禮의 주안점이 禪的 해탈개념으로부터 往生原理에로 전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