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식당>
전국에 소문난 추어탕, 여기는 추어가 아닌 배추요리다. 배추시래기추어탕에 겉절이, 물김치로 차린 한상이 배추 요리의 변주다. 주제가 오히려 더 확실하고 강렬하다. 배추와 된장만으로 미꾸라지의 부담을 잡고 맑은 맛으로 승기를 잡았다.
1. 식당얼개
상호 : 상주식당
주소 : 대구시 중구 국채보상로 598-1(동성로 2가 54-1)
전화 : 053) 425-5924
주요음식 : 추어탕
2. 먹은날 : 2020.10.7. 저녁
먹은 음식 : 추어탕 10,000원
3. 맛보기
주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무조건 추어탕이다. 사람 수만 확인되면 음식이 나온다. 상은 반찬을 사람 수대로 따로 차려주는 독상으로 나온다. 시스템이 확실하여 인력을 최대한 줄인다.
절약한 인력은 음식에 투입된다. 앞마당에 수많은 솥을 걸어놓고 탕을 끓이는 데 정성을 다하는 분들이 그분들이다. 손님앞에서 끓여서 신뢰도도 높인다. 사장님이 직접 지휘하는 요리군단은 같이 오래 호흡을 하는 묵은 직원들이다.
음식도 오래 솜씨가 묵은 음식이다. 간단한 음식과 조리법에 묵은 노하우와 정성이 담겨 있다. 토종 고냉지 배추와 국산 미꾸라지를 구하지 못하는 시기에 아예 문을 닫는 것도 고객에 대한 정성이다. 고객은 신뢰로 보답한다.
12월 1일에서 3월 30일까지, 장장 4개월을 동면에 든다. 미꾸라지 동면 기간과 비슷하다. 이번 휴지기는 예년보다 더 길다. 휴지기가 갈수록 길어져도 고객에 대한 성의 비축 기간으로 삼으면 위로가 된다. 절약하고 비축한 시간과 체력은 내년에 더 맛깔진 음식으로 탄생할 것이다.
배추만큼 흔한 채소가 없다. 그러나 배추와 추어탕의 조합은 독특하다. 말 안 될 거 같은 조합을 성공시키고 보편화시키고 있다.
배추 추어탕이지만 비리지도 느끼하지도 않다. 미꾸라지도 충분히 들어가 있어 영양도 놓치지 않는다. 갈아서 나오지만 형태가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라 살도 가시도 씹히는 맛이 있다.
추어탕은 세 가지쯤의 방법으로 즐길 수 있다. 처음은 그냥 나온 대로 그대로 먹는 것이다. 순수한 그맛, 자신하는 그맛이 어떤가 보기 위해서다. 좋다 개운하고 비리지 않고 깊은 맛이 느껴진다. 아, 따로 양념하지 않아도 먹을만한 음식이구나. 신뢰를 가지고 다양한 즐거움을 위해 2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2단계는 매운 고추 다데기를 넣는 것, 좃은 고추는 강렬한 매운 맛을 낸다. 그러나 속이 아릴 정도는 아니다. 국물 맛을 더 개운하게, 약간 매콤한 맛을 끌어올릴 정도다. 음, 이것도 괜찮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젬피(젠피)를 넣어보자. 젬피는 비려서 먹기 힘든 음식을 더 강한 놈으로 중화시키는 거다. 우리는 추어탕에서 주로 먹는다. 남원 새집 추어탕은 대부분 젬피를 넣어 먹는다.
빈대맛 같은 느낌, 이것은 호불호가 상당히 엇갈리므로 강한 맛에 자신 없으면 고추 차원에서 끝내야 한다. 추어탕을 제대로 맛보고 싶으면 3단계까지 진출해보자. 향신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원래 추어탕 맛이 강하지 않아 단계별로 맛을 다 살려준다. 마지막 젬피 단계를 즐길 수 있으면 추어탕 맛 제대로 느끼는 거다. 이쯤 되면 서양에서 왜 정향이나 육두구를 두고 약탈은 물론이고 전쟁도 불사했는지 이해가 된다.
국물보다 더 맘에 드는 것은 배추 시래기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탕을 먹을 때, 불만인 것은 왠지 속이 허하다는 것인데, 이 추어탕은 상당히 포만감을 준다.
미꾸라지로만은 양을 채우기 힘든다. 느끼하기도 하고, 채소도 필요하고, 맛의 다양성으로 탕의 매력도 높이고. 여기서 선택한 것은 배추, 적절하게 삶아져 식감이 좋고, 보기에도 그득한 충족감을 주고, 맑은 국물에 담긴 배추라 개운한 느낌도 준다.
배추시래기추어탕에 아예 반찬도 모두 배추 일색으로 일관성을 갖췄다. 애기배추 겉절이는 강렬한 고냉지배추 느낌이 살아있다. 물김치는 사근사근 살짝 새콤하여 또 행여 느끼해질까, 싶은 우려를 해결한다. 배추 시리즈 식탁, 이런 식탁도 처음 만난다. 강렬한 개성도 이 메뉴에 줘야할 보너스다.
또하나 좋은 것, 밥이다. 보리를 살짝 섞어 약간 꼬들꼬들한 밥알이 이뿌리에 닿는 맛이 좋다. 밥을 말아도 탱글거리며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퍼지는 맛이 없이 추어탕 시래기와 섞여 제대로 식감을 낸다. 좋은 밥이다. 밥은 돈 더 내지 않아도 더 준다. 인심도 좋다.
식당은 한옥 마당깊은 집이다. 깊은 마당이 주방이다. 깔끔한 조리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며 그것을 인테리어로 삼았다. 이래저래 보이는 자신감, 흐뭇하다.
식재료 배추가 단장하고 식당 앞에서 손님을 맞는다. 이런 것을 먹게 되는구나, 공개된 식재료가 음식에 대한 신뢰를 부른다.
4. 먹은 후
문을 연 지 60년이 넘어 대를 이어 하는 식당,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함께 단골이 되는 식당, 대구를 대표하는 식당이다. 따로국밥과 함께 대구의 대표적인 맛집이다. 상호는 상주식당이지만 대구의 토속식당이다.
배추 변주로 이루는 배추추어탕, 개성과 맛이 대구를 사로잡고, 경북 대표 추어탕으로 올라섰다. 저마다 다른 배추맛이, 배추의 변신을 천의 얼굴로 만들며 진폭을 넓히고 추어탕도 특별하게 만들었다. 상주식당은 경북 음식의 자존심과 개성이 되었다.
경북 대표로 남원 새집, 원주복추어탕, 서울 용금옥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하지만 전라도 남원 추어탕이 전국화되어 국가대표가 되었다. 남원시가 미꾸라지 생산과 시래기 생산 지원 등등 힘을 실어주지만, 그보다 먼저 추어탕 맛의 대중 선호도가 압도적이다.
우선 본토에서의 영향력이 차원이 다르다. 새집 주변에는 추어탕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그곳이 바로 광한루 옆 거리다. 대규모 관광단지를 이루게 되어 고객 창출에도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고향의 힘을 배경으로 전국 각지로 진출하여 이제 어느 누구도 그 아성을 넘볼 수 없을 듯하다. 남원추어탕으로 검색하니 서울경기 지역에서만 875개가 뜬다. 영향력 면에서는 남원, 원주, 서울, 대구 순이다.
그래도 특정 지역 음식으로만 도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객의 선택권도 보장되어야 하지만, 다양해야 발전하는 법이니까. 이제 한식은 한국의 음식만이 아닌 국제적 음식이 되어 다른 나라 사람의 삶도 풍성하게 해야 하니까.
왜 대구 상주식당은 여러가지 장점을 가졌는데, 음식이 대중화되지 못하는 것일까. 60년 넘어 영업을 해왔으면 근처에 추어탕집이 몇 개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라도 음식이 맛있다고 해도 누구나 그 맛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모두 어릴 때 먹었던 음식에 익숙해지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 맛을 기억하고 찾는 경향이 있다.
경상도 음식은 일반적으로 담백하다. 양념이 진한 전라도 음식을 부담스러워하고 담백한 음식을 찾는 경향이 있다. 추어탕은 두 지역의 맛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전라도는 제맛을 키워왔는데, 경상도는 소홀했던 것이 지역음식으로만 머무는 한 원인이 아닐까.
맛의 다양화, 조리법의 다양화는 한식 발전의 원동력이다. 대구 사람이 키워온 상주식당, 조금 더 밀어줘보자. 대구에서 남원식을 열었더니 안 먹혀서 경북식으로 열었다고도 한다. (삼덕골 남원추어탕) 좀더 음식에 관심을 가져보자. 한식의 발전과 더 즐거운 삶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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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배추된장국처럼 보입니다. 날씨가 쌀쌀할 때 뜨끈뜨끈한 배춧국에 고봉으로 담은 이밥 한 그릇이면 그만이지요. 달짝지근한 김장배추와 구수한 된장이 어우러진 배춧국에 밥을 말아 흡입하듯 들이키다 보면 어느새 배가 불룩해집니다. 그 자리에 김장김치나 깍두기가 빠지면 안되고요.
제가 어렸을 땐 식당에 가서 음식을 사먹은 기억이 없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 음식점도 많지 않았고, 음식을 사먹는다는 개념도 없었지요. 음식점이라고 해봐야 시장 골목에 자리잡은 순대국집이나 해장국집, 시내 중심가에나 있는 불고기집, 주로 주택가에 들어앉은 막국수집, 길거리에 위치한 중국집 정도가 눈에 띄는 식당이었지요. 고등학생 정도 되었을 때, 그러니까 1970년대나 되어 어쩌다 음식점에 들렸던 것 같은데, 그때 들어간 곳은 중국집 아니면 막국수집이 전부였습니다.
지금 당진에 와있습니다. 급히 나갈 일이 있어 나중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1)
제가 어렸을 때 집에서 해먹은 추어탕은 요즘 식당에서 파는 추어탕이 아니고, 미꾸라지고추장국이었습니다. 도랑에서 잡아온 미꾸라지를 해감시킨 후, 뻣뻣해진 미꾸라지를 한 마리씩 밀가루를 묻혀가며 펄펄 끓는 고추장국에 집어넣는 게 전부였지요. 고추장국엔 별다른 양념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푹 끓은 미꾸라지탕은 냄새나 맛이 매콤한 수제비고추장국과 비슷해, 수제비고추장미꾸라지국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미꾸라지국 한 사발에 밥 한 사발을 말아 입에 떠넣기 시작하면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노자는 道를 황홀하다 했는데, 저는 뱃속이 홀황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추어탕집이 여기저기 생겨났고, 미꾸라지국 맛이 그리워 들른 추어탕집은 실망만 안겨줬지요. 어렸을 적 혀와 코와 오장육부에 새겨진 미꾸라지고추장수제비국을 한 번 더 먹어볼 수 있을까? (2)
부기: 콘라트 로렌츠가 발견한 刻印(인상 찍히기)이 사람 입맛에도 적용되는지 모릅니다. 어렸을 적 어떤 계기에 의해 경험한 입맛을 평생 간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내달 포항에 내려갈 일이 있는데, 올라올 때 상주식당을 찾아갈 생각입니다.
상주식당은 대구 유명한 노포인데 이름만 들어본 적이 있고 가본적은 없어요. 추어탕을 맛집을 찾아다니지는 않아도 좋아해서 성서 계명대 뒤에 있는 유여사 추어탕을 가는데 젬피를 아주많이 뿌려 먹어요. 근데 초피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젬피라는걸 이 글을 보고 알았어요. 맛은 있겠지만 추어탕 만원이면 좀 비싼 것 같기도 합니다.
젬피는 다양하게 불립니다. 젠피라고도 하지요. 전라도에서는 젠피, 경상도에서는 산초라 많이 부릅니다. 공식적으로는 '초피'라고 합니다. 모두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지만 언중이 사용하는 어휘로 젬피는 젠피, 제피, 조피 등까지 다양하게 쓰입니다. 젠피와 산초는 비슷한 나무인데 다른 품종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전 사전 어휘 작업을 하면서 몇 개의 식물 어휘를 추적한 적이 있었는데, 종국에 가서는 갈래를 타지 못하겠더라고요. 분류 지점에서 매우 혼동되어 쓰이므로, 식물학적 지식이 없으면 도저히 구분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식물학자와 함께 어휘 분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젠피도 그런 류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초피, 산초, 젠피 등이 모두 사용되고 발음이 비슷한 젬피, 제피, 지피, 조피 등등이 모두 쓰입니다. 편하게 쓰시면 될 거 같습니다.
아직 원주 추어탕을 못 먹어봤는데, 아마 거기에는 수제비가 들어가는 거 같습니다. 수제비가 들어가면 거의 어죽 수준인데, 그렇게 먹는 것이 강원도식이 아닌가 합니다. 밥을 따로 먹을 필요없이 추어탕 한 그릇이면 한끼가 온전히 해결되는 것이지요. 제가 어릴 때는 미꾸라지는 침 흘리는 아이들에게 꼭 해먹였습니다. 식약동원의 대표적 식재료가 미꾸라지인 셈이지요. 추어탕 한 그릇이면 밥도, 약도 다 해결되는 건강식이었던 것인데, 논에 농약을 하면서 쉽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사라져 여기저기 양식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중국에서 대부분 수입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일설에는 시중 유통의 80% 정도가 중국산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인 맛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환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집은 다행히 식재료에 대한 신뢰도는 확실한 집이니 드실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강원도식과는 완전히 다르니 새로운 음식문화 수용이라고 생각하고 드십시오. 그래도 추어탕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거니, 어릴 때 만들어진 음식 스펙트럼 안에 있습니다. 추억도 영양도 모두 잡는 음식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