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3 주일설교
좋은 스승과 좋은 제자
(히브리서 13:17)
5월은 참 좋은 달입니다.
어디를 돌아봐도 꽃이 만발해 있습니다. 각종 채소가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가을과 다른 점은 모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5월은 고마운 분을 챙기고 사랑스러운 분들을 만나는 참 좋은 달입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이 있어서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달입니다.
21일 부부의 날은 국가적인 기념일은 아니지만 부부를 생각하는 좋은 날입니다.
물론 5월은 부담스러운 달입니다.
자녀도 챙기고 부모도 챙기고 스승도 챙기고 배우자도 챙기려니 재정적 부담이 큽니다.
그러나 평소에 돈을 버는 이유가 좋은 곳에 쓸려고 하는 것이니까 좋은 면으로 생각합시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원래 스승과 선생은 같지만 우리는 지식 장사꾼이 아닌 인격적인 스승을 존경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스승과 선생은 모두 그런 스승을 의미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스승은 어떤 사람일까요? 또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책무는 무엇일까요?
1. 스승은 나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스승은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일반 지식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귀하지만 진리를 가르쳐 주는 스승은 더욱 더 귀한 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잘 가르치는 스승을 존경하라고 말씀합니다.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교회에는 두 종류의 장로가 있습니다.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입니다. 다스리는 장로는 일반적으로 ‘장로’라고 부르고 가르치는 장로는 교회에서 ‘목사’라고 부릅니다. 다스리는 장로 중에 인격적으로 잘 다스리는 장로를 배나 존경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잘 다르시는 장로보다 가르침에 수고하는 분, 즉 목사는 더욱 존경하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시장이나 거리에서 아버지와 스승 즉 랍비를 같이 만나면 아버지보다 랍비에게 먼저 인사를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육신의 생명을 얻게 해 주신 고마운 분이지만 랍비는 영적인 생명을 얻게 해 주시는 더 고마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우리를 낳아 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가르쳐 주는 스승은 복음을 전해주고 예수를 믿어 천국으로 가게 해 주시는 더욱 고마운 분입니다.
2. 스승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의 공통점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는 나를 낳은 피붙이이기에 자연스럽게 나를 사랑하는데 스승은 그런 관계도 아닌데 나를 사랑해 주는 고마운 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줄 뿐 아니라 그들을 친 아버지가 하듯이 사랑했습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해서는 자신이 복음으로 그들을 낳았다고 말했습니다.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런데 그 사랑이란 마냥 잘 해주기만 한 것은 아니고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했습니다. 그것이 좋은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살전 2: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좋은 아버지라면 자녀의 응석만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권면과 위로와 경계 이 세 가지를 합니다. 그런데 친 아들은 권면과 위로와 경계를 달게 받는데 교회 안에는 바울을 의붓아버지처럼 여기고 권면과 위로와 경계를 거부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만이 아니라 진리를 가르치는 모든 영적인 스승들은 나를 아버지처럼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자녀들은 권면과 위로와 경계를 잘 받아서 순종을 잘 할 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3. 스승은 제자들의 영혼을 위해 스스로 경성하는 사람이다.
목사는 무엇을 근심하고 걱정할까요? 1세기에 바울이 죽을 고생을 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닌 이유는 오직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마 사업을 위해 그렇게 돌아다녔다면 엄청난 성공을 했겠죠. 바울 뿐 아니라 다른 사도들도 관심은 오로지 영혼 구원이었습니다. 오늘날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성도들이 죄를 짓거나 믿음에서 떠나면 목사는 근심으로 밤을 샙니다.
저도 주일에 예배에 와야 하는 성도가 많이 빠진 날은 그렇게 배가 고파요. 목사뿐 아니라 사모도 같은 심정입니다. 젊을 때는 그 허기를 감당하지 못해서 주일 저녁에 폭식을 하다가 우리 부부가 살이 많이 쪘습니다. 그냥 밥을 먹어서는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서 기름기 많은 피자를 먹었거든요.
물론 교회에 못 오는 성도의 사정은 이해되지만 그러나 성도가 몇 주간 계속해서 안 보이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이런 목사의 마음을 히브리서 기자가 잘 표현했습니다.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자, 이러한 영적인 스승이 있는데 비해서 성도는 좋은 제자가 되어야 할 텐데 제자의 책무는 무엇일까요? 좋은 제자가 되기 위해서 책임과 의무와 목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1.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책임은 좋은 스승을 분간하여 따르는 것이다.
세상에는 예나 지금이나 거짓 교사들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있었고 신약 시대에도 있었고 오늘날도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벧후 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진리보다 내 귀에 솔깃한 말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어떤 사람을 스승으로 삼고 따르느냐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결과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좋은 제자가 되는 첫걸음은 좋은 스승을 분간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좋은 말만 한다고 좋은 스승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성경을 읽고 좋은 스승을 분간해야 하며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는 좋은 스승일까요? 좋은 스승이라면 왜 좋고 만일 아니라면 왜 아닌지 가치관을 정립하셔야겠죠. 기왕에 여러분이 좋은 목사로 알고 따른다면 우리 목사가 좋은 이유를 세 가지씩 옆 사람에게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2.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의무는 스승을 좋은 것으로 섬기는 것이다.
음악 그룹 지오디가 ‘어머니께’라는 노래를 부른 것이 1999년이니까 벌써 20년이 됐죠죠. 그 노래 가사 중에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머니도 짜장면 잘 먹습니다.
옛날 가난한 시절에 어머니들이 생선살은 자식에게 주고 자신은 뼈와 대가리가 더 맛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자란 아들이 장가가서 생선을 먹다가 우리 어머니 뼈 좋아하시는데... 라고 했다죠. 여러분, 어머니도 생선살 좋아합니다. 뼈다귀와 대가리 안 좋아합니다. 결과적으로 그 어머니는 아들을 잘못 기른 것입니다.
영적인 스승도 제자를 그렇게 길러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는 성도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담대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동양 문화에서는 목사가 스스로 자신을 잘 대접하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이런 말을 하기 힘들지만 교사주일에는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이런 말도 가르쳐야 하겠죠? 스승의 날을 맞이하면서 목사에게 꽃도 한 송이 선물해도 됩니다. 가끔씩 짜장면도 대접해도 됩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말은 만일 수박을 사면 두 통을 사서 목사에게도 한 통 가져다주라는 뜻입니다.
3.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목표는 선생처럼 되는 것이다.
가르침을 받는 분들의 목표는 스승처럼 되는 것입니다. 자녀는 자라서 부모가 되어야 하고 제자는 자라서 또 다른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가르침을 받는 제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스승이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제자는 결국 선생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6: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아이가 나쁜 병에 걸려서 자라지 못하면 부모의 마음이 무너집니다. 나이가 스무 살이 되어 다른 아들들은 군대에 가는데 자기 아들은 아기노릇 밖에 못하면 부모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영적인 자녀도 마찬가지로 성장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도 초보신자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히 5: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젖을 떼고 밥과 고기를 먹어야 할 나이에 여전히 엄마 젖만 찾는다면 보통 큰 일이 아니죠. 여러분은 영적으로 우뚝 서서 믿음 안에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영적인 스승은 기본적으로 목사가 있습니다. 순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직함을 가지지 않고도 영적으로 스승 역할을 해 주는 고마운 분도 있습니다. 다음 주일에 오실 임목사님은 저의 마지막 담임목사님인데 제가 끝까지 스승으로 모시는 분입니다. 제가 신학대학원에 가면 저보다 젊지만 저에게 지식을 가르쳐 주는 교수도 있습니다. 저보다 젊은 교수를 저는 마음으로 존경합니다.
사람이 성장하는 데는 반드시 좋은 스승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좋은 스승을 분간하고 존경하고 따르며 가르침에 순종하여 좋은 제자, 좋은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