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은 생후 24개월을 분기점(分岐點)으로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되는데,
아기들이 겪는 생후 24개월까지의 피(被)양육(養育) 경험이 일생을 결정짓게 된다. 사람들이 깊은 의미는 모르고 그냥 하는 이야기 중에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과 ‘미운 세 살’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서양에서는 ‘Terrible Two’라고 하는데, 일찍이 확인된 바에 의하면 미운 세 살이나 Terrible Two나 아기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성장과정이 아니고, 생후 24개월까지의 기간을 정상적으로 양육받지 못하면 못할수록 불만과 좌절, 자기비하, 분노와 공격성 등으로 더 물이 든다고 알려졌다.
아기들이 겪게 될 생후 24개월까지의 피(被)양육(養育) 경험은 일단 24개월이 지나면 되돌릴 수 없고 보충이나 교정, 치료 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절대적(絶對的)인 발달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시간적 길이는 제각각 다르지만 몇몇 동물이나 인간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특이하고도 고유한 시기이자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절대적인 생후 24개월까지 기간 중에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후천적(後天的)인 문제는 단 한 가지 애착(愛着)이라는 주제 내지는 범주에 드는 것으로, 불안정 애착과 탈착, 반응성 애착장애 등등이다.
아이 입장에서 환언(換言)하자면, 아기들이 겪게 될 생후 24개월까지의 피(被)양육(養育) 경험은 오직 한 가지 결실을 맺게 되는데 그것이 애착이다.
즉 태어나서 24개월까지 피(被)양육(養育) 경험을 통해서 아기의 내면에서 형성되는 것은 오직 하나 애착이라는 것인데, 이 하나에서부터 사회성, 인지발달, 언어발달, 신체 발달 등이 모두 분화(分化)되어 나온다.
아기를 처음 양육하는 부모, 24개월 이상 터울을 두지 않고 자녀를 가지게 된 부모, 쌍둥이를 포함한 다둥이 부모는 내 아이의 애착문제 발생에 관한 한 극히 위험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아기가 출생 후의 긴 시간 동안을 부모의 보살핌에 절대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의존하여서 생존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아이 입장에서 환언(換言)하자면, 나를 돌보아주는 이에게 전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의존해야만 내가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나를 책임지고 돌보는 이는 나에게 절대적인 신적(神的)인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해 주는 그대로 100% 흡수하여 일생을 살아가는데 근본이 되고 기본이 되는 바탕으로서 나의 것이 된다.
인간의 아기에게 가장 좋은 양육은
1. 아기의 필요에 정확하게 부응해야 한다.
가령 아기가 보채거나 우는데, 배가 고픈 것인지, 목이 마른 것인지, 어디가 아픈 것인지, 덥고 갑갑한 것인지, 주변이 너무 시끄럽고 자극적인지.... 만약 아이기를 돌보는 이가 이것을 모른다면, 아기의 필요에 정확하게 부응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정말 힘든 가운데에서 아기한테 해 주는 것은 눈곱만큼도 의미가 없다. 좋고 나쁨의 판정 기준은 오직 아이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었다고 진실되게 말하지만, 정작에 그 자식은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다.
2. 아기의 표현이나 경험에 민감해야 한다.
아기가 표현할 수 있는 비언어적 표출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감을 잘 잡아야만 한다. 가령 배가 고파서 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배가 많이 고팠구나 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일종의 공감능력인데, 둔감한 것은 상대방의 처지나 마음을 모르는 것과 같아진다. 아기 입장에서 둔감한 양육자는 약 올리는 행동을 하는 자이다.
3. 아기의 필요는 즉각적으로 해결해 주어야만 한다.
아기들은 주변 환경 상황이나 사람들을 파악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른이 생각하는 일이 분이 아기에게는 한두 시간이 될 수도 있다.
4. 어떤 형태가 되었던 양육은 아기와 양육자간의 상호 교감이나 교류의 형태라야만 한다. 아기 눈앞에 양육자가 없어서 안 보이는 상황에서 아기의 필요가 충족되지 못하는 것과 아기 눈앞에 양육자가 있는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아기의 필요가 충족되지 못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가령 양육자가 몸이 불편하거나 아파서 아이 눈 안에는 들어오는 아이와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아기의 필요를 즉각적으로 해결해 주지 못하면 아이는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 돌보는 이는 아프면 안 된다. 어떤 아기도 24개월 전까지는 이런 사실들을 파악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이상과 같은 필수 조건을 충족시키는 환경은 아이를 돌보아 줄 사람들이 많은 대가족 속에서 아이가 자라는 것, 아이 하나마다 기술 좋은 전담 양육자가 반드시 하나 이상으로 있는 것 등이다.
24개월이 되면 아기는 양육자인 어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것에서 벗어나서 독립한다. 이때부터 아기는 자신의 의견, 자신의 입맛, 자신의 취향 등이 생기는데, 건강하고 튼튼한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자신과 다른 것일수록 흥미를 느끼고 재미난 것으로 여기면서 다가가려고 하게 되지만, 부실하고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자신과 다른 것일수록 부감스럽고 피하고 싶고 두려움을 느끼고 움츠러들게 된다.
그래서 아기를 돌보는 이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여분의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 상태가 고스란히 아기에게 전달되어서 24개월 이후의 아기는 일생을 현실적으로는 전혀 이유가 없는 여유과 풍족함 속에서 살게 된다.
내 자식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반드시 생후 24개월 안에 하여야 하고, 내 계획, 내 생각, 나의 취향대로 절대 절대 하지 말고 반드시 아기 기준과 입맛과 필요에 정확하고 신속하고 민감하게 맞추어서 해야만 한다. 건강한 애착, 이것만이 인간에게 가장 좋고 가장 효율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단 24개월의 투자로 한 인간의 일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이것뿐이다.
빚을 내어서라도 내 아기를 24개월만 잘 키운다면 부모인 양육자에게도 수천 수만 배의 물질과 정신적인 이로움과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고 어른이 되어서 갖게 될 일가 친척과 가족에게도 수천 수만 배의 물질과 정신적인 이로움과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