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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인생, 실력의 인생
2013. 4. 21(주일낮예배) 고린도후서 12:7-10
수술을 끝내고 의사가 환자에게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취가 풀리면 많이 아플 수 있으니 그때 간호사에게 말씀하세요 하고 이야기를 한 후 병실을 나갔다. 그 이야기를 들은 환자는 조금 있으면 많이 아플 것이다는 말에 긴장을 하였다. 그러다 상태를 점검하러 온 간호사를 보자 언제가 가장 아픕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간호사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조금 있다가 계산서를 보시면 가장 마음이 아플 겁니다.
환자가 왜 계산서를 볼 때 마음이 가장 아프겠는가? 그것은 자신이 수술을 통하여 병이 나았다는 은혜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의 삶에 그대로 적용해 보기 바란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푼 은혜를 먼저 생각하고 산다면 기쁨과 감사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갈 앞날만 바라보고 있다면 염려와 근심 속에서 아픈 가슴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옆의 분과 인사 / 은혜로 삽시다.
미국 ABC 방송국에서 20년동안 중역으로 일을 한 스콰이어 러쉬넬 이 쓴 하나님이 당신에게 윙크할 때라는 책이 있다. 행복이 넘치는 집에서 가끔 이런 일이 있다. 아이가 엄마에게 친구와 놀러가야 한다고 용돈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한달용돈을 주었으니 더 이상 못준다고 야단을 친다. 결국 용돈을 받지 못한 아이가 화가 나서 자기 방에 가보았더니 책상위에 필요한 용돈이 있는 것이다. 좋아서 거실로 나왔더니 아빠가 아무말 없이 윙크를 한번 해 주는 것이었다.
이 윙크의 의미가 무엇인가? 러쉬넬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그렇게 자신에게 윙크를 해 준 일이 기억이 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이렇게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은혜를 베풀고 윙크를 할 때가 언제였는지 생각하고, 그런 자료를 수집하여 이 책을 발간한 것이다.
이 책에서 러쉬넬은 자신은 우연히 시골에 있는 교회에 갔다가 방송국 PD를 만나 한평생 자신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우연히 교회당에서 만난 PD로 인하여 러쉬넬의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42대 미국 클린턴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백악관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케네디 대통령이 수학여행을 온 고등학생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악수를 해 준 것이다. 클린턴도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한 후 나도 저렇게 멋진 대통령이 되어야 겠다고 결단을 하였고, 결국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에는 하나님의 윙크 할 때가 없었는가? 어느 목사님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설교를 하였다. 그랬더니 한 성도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어떻게 압니까? 하고 인터넷에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목사님은 그 댓글을 읽고 가슴이 많이 답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는 그 글을 읽고 내게 일어난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하여 사람들은 다 우연이라고 말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열심히 일한 결과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 말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내게 일어난 일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오늘본문은 사도 바울이 육체적 가시로 인하여 주께 3번 간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학자들은 그 육체적 가시가 안질이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 또 간질이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또 천주교의 학자들 중에 일부는 독신이 육체적 가시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핍박이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그 육체적 가시를 말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한가지 정확한 것은 그것이 바울을 굉장히 많이 괴롭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 육체적 가시를 사단의 사자라고까지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그 육체적 가시로 인하여 주께 3번 간구하였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피방울같이 흘러내림같이 그렇게 전심을 다하여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바울이 주께 3번 간구하여 얻은 결론이 무엇인가? 육체적 가시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알게 되었다. 지금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일이 하나님의 은혜일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기도하기 전 바울은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사단의 사자로만 보였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지 못하겠고, 또 그 고통으로 인하여 바울은 늘 힘들어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도하던 바울은 육체적 가시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구나! 하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이 아니겠는가? 어느 목사님이 집회 중에 다음 세상에서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여 살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2명의 사람이 손을 들었다. 목사님은 기뻐하면서 손을 든 이유를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정말 좋으신 분이신가봐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혀를 차면서 아니요, 다 그놈이 그놈인데 별수 있을라구! 하고 대답을 했다. 그 말에 목사님은 조금 실망했지만, 또 다른 중년의 부인에게 똑같이 질문했다. 남편분은 훌륭한 분이신가봐요. 그 말에 중년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목사님 제가 결혼한지 21년 되었습니다. 21년동안 고생하며 교육시켜 놓았는데, 또 다른 남자만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쟎아요
이것이 오늘날 우리 가정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30-40대 남녀에게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을 하겠습니까? 하는 설문을 조사하였다. 그리고 나온 결과가 남자는 65%가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자는 고작 33%만이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그러면 목회자 가정은 어떠하겠는가? 2009년 목회와 신학에서 240명의 목사님들에게 사모님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다. 그랬더니 33.3%는 매우 만족한다고 하였고, 53.3%도 만족한다고 하였다. 그러니 86.6%의 목사님들이 사모님에 대하여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83%의 목사님들이 사모님을 행복하게 해 주고 있다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하이패밀리에서 사모님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그랬더니 8.7%만이 남편에 대하여 만족한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그러니 91.3%는 목사님에 대하여 불만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배우자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다. 첫사람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하나님은 돕는 배필로 여자를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를 볼 때마다 돕는 배필인 여자를 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구나!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아내도 마찬가지이다. 남자의 갈빗뼈로 만들어진 아내는 남편과 함께 할 때가 자기의 자리를 찾는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배우자를 보아도 전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 없고, 또 안전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은혜와 안전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은혜를 바라보는 눈이 닫혀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육체적 가시로 인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고통가운데 은혜를 바라보는 눈이 열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 바울이 기도하여 발견한 은혜는 무엇인가?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서 왜 부자가 지옥에 갔고, 또 나사로는 어떻게 천국에 갔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아주 단순하게 부자는 이 땅에서 자기 마음대로 부요함을 누리며 살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고,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가난과 고통하며 살았기에 하나님이 보응하여 주어서 천국에 갔다는 얼토당토 않은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 구원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바리새인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최고의 부요함을 누린 부자와 최악의 고통을 가진 나사로를 비교하고 있다. 당시 부자는 얼마나 부요하였던지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살았다. 그에 비하여 나사로는 이 땅에서 헌데를 앓았으며,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서러기를 주워 먹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개들이 와서 헌데를 핥았다는 것을 볼 때 나사로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았나?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것이 나사로이다. 부자가 세상의 연락을 즐길 때 나사로는 가난과 육체적 질고로 인하여 고통하는 인생을 산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부자와 나사로를 보면서 부자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고, 나사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고 평가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산다고 하여서 그 사람이 은혜받은 사람이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자도 죽고 나사로도 죽었다. 그런데 나사로는 죽어서 천국에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고, 부자는 죽어서 지옥에서 고통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인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형통하게 산다고 할지라도 구원의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은 참된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다는 것을 바리새인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바로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바울은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삼천층을 보기도 하였다. 그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바울은 내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바울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사단의 사자로 인하여 고통하며 그 은혜를 잊게 되었다. 그때 바울은 기도하는 가운데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깨달아 알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은 여러계시를 받아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도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깨달은 또 다른 은혜가 있다. 그 부분을 읽어보자.
(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머물게라는 말은 장막으로 덮게라고 해석을 한다. 쉽게 말하면 어렵고 힘든 형편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베푼 은혜를 알아 그 은혜를 자랑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덮게가 되어서 보호하고 인도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가?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에서 자폐 수영선수 김진호의 어머니 수기가 연재된 적 있었다. 김진호군은 자폐로 인하여 초등학교 입학을 2번이나 유예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입학통지서가 날아왔다. 김진호군의 어머니는 더 이상 입학을 미룰 수가 없어서 20일 철야기도를 하고, 21일째 눈덮힌 북한산 꼭대기에서 비닐을 뒤집어쓰고 진호가 학교에 무사히 다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였다.
그렇게 하여 1994년 3월 2일 입학식에서 진호의 어머니는 선생님께 진호에 대한 편지를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선생님을 만났더니 선생님은 밤새 눈물을 흘리면서 편지를 읽었다고 진호의 입학을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진호의 수업을 돕기 위하여 교실에 함께 들어올 수도 있게 해 주었다. 그런데 39일째 되는날 선생님이 진호어머니에게 어머니가 교실에 계시니 불편하고, 어머니는 교실 밖으로 나가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김진호군의 어머니는 눈앞에 캄캄해 졌다. 왜냐하면 엄마가 없는 진호가 교실에서 어떤 사고를 칠지 뻔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다. 그렇게 얼마를 기도했을까? 진호의 어머니는 하나님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내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다. 네 소유라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맡겨준 대로 키워라. 그 아이에게 나의 계획이 있다.
그 순간 진호의 어머니의 입에서 회개가 터져 나왔다. 왜냐하면 그동안 한번도 진호를 이해하려고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말을 가르치겠다고 회초리를 휘둘렀고, 또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학대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자폐라는 이유로 혼자 고통하며 괴로워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하루하루가 감사하였다. 하나님이 진호를 어떻게 인도하여 주실까? 기대하는 날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밥을 해도 기쁘고, 빨래를 해도 행복한 그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김진호의 어머니는 그 후부터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간증을 하는 것이었다.
김진호군의 어머니는 자폐아이를 낳아서 무수히도 많은 기도를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가슴아프고 고통스러운 삶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기대하게 되었을 때 김진호군의 인생이 달라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은혜 받은 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지난 주에 태국 캄보디아칸차나부리에서 사역하는 박정문 선교사님이 우리교회에 오셔서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선교사님과 대화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태국은 뱀이 많이 나오는 곳이다. 그런데 특별히 뱀이 사탕수수밭에 많이 있는데, 목사님 교회 바로 옆이 사탕수수밭이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뱀이 있겠는가? 선교사님이 차를 타고 가다보면 큰구렁이가 길을 막고 있을때가 종종 있다고 한다. 또 코브라를 만날 때도 있다고 한다. 거기다 선교사님은 아직 태국어가 능통하지 못하다. 그래서 설교를 하려면 원고를 그냥 읽는 형편이다.
이것이 선교사님의 사역하는 모습이다. 한국에서 사역하면 뱀과 전갈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또 언어에 대한 부담도 없이 사역을 할 수 있을텐데 왜 선교사님이 태국에서 그렇게 고생하며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구원의 은혜를 알게 된 선교사님은 먼 이국땅에서 문화적인 고통 자녀양육의 고통이 있지만, 그것을 이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선교사님이 왜 그렇게 어려운 선교사 사역을 감당하고 있겠는가? 구원의 은혜와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족한 나를 통하여 태국땅에서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 보여 줄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의 귀한 재산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이 돈이 아깝지 않아서 헌금을 하겠는가? 또 자기 일이 바쁜데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시간을 바쳐서 봉사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렇게 봉사와 헌신을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형편이 좋아서가 아니라, 은혜받았음을 알기에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는가? 사실 헌신과 섬김이 있는 교회는 목사가 헌신하라 섬겨라고 말을 많이 하는 교회가 아니다.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면 자동적으로 헌신과 섬김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은혜가 사라지면 교회안에 더 이상 헌신과 섬김의 모습은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교회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란다. 아니 그 은혜를 깨달아 알고 또 고백하므로 헌신과 섬김의 삶이 풍성해지는 자여교회로 성장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제 말씀을 맺는다.
미국 남북전쟁 때 프레드릭스버그 대전투라는 유명한 싸움이 있었다. 육탄전까지 치르고 수많은 부상자를 중간에 남겨 놓은 채 쌍방은 후퇴하여 대치하고 있었다. 많은 부상병들이 신음하는 상황에서 또 다시 싸워야 한다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때 북군의 병사 한 사람이 물통을 들고 달려갔다. 그리고 병사는 전쟁에서 신음하는 남군과 북군 모든 병사들에게 물을 먹여 주는 것이었다. 한 병사의 목숨을 건 행동으로 인하여 플레드릭스버그 대전투는 부상자들을 수습하기 위하여 한시간 휴전이 이루어졌다. 그때 남군의 한 장교가 북군의 병사에게 너의 이름이 뭐냐? 하고 물었다. 남군 장교의 질문에 북군의 병사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My name is Christian.병사는 자신의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말하지 않고, 나의 이름을 크리스챤이다고 대답을 한 것이다. 그가 목숨을 걸고 부상병들에게 물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이 사회 안에서 참된 크리스챤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교육이다고 말을 한다. 그래서 교회가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면 이 세상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알아도 참된 크리스챤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정말 크리스챤으로 살고 싶으면 은혜를 깨달아 알기 바란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는 하나님, 또 나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알므로 이 땅 가운데 참된 크리스챤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