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초등학교 교사
어린 공주
조 영 옥
어린 공주가 이 지구별에 왔다가 또 다른 별로 떠나간지도 벌써 삼년하고 한 달이 지나갔다.
어린 공주 생일 케이크에 겨우 두 개의 촛불을 끈 며칠 후의 일이다.
우리 모두가 전혀 예기치않았던 머나먼 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어린 공주는 나의 둘째 딸을 통해서 우리 지구별에 왔다.
어린 공주는 둘째 딸의 두 번째 공주이다.
어린 공주의 엄마는 이 어린 공주를 세상의 여느 엄마들이 그러한 것보다 몇 백배는 더 예뻐하는듯 했다. 내가 보기에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내 마음속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있었다.저토록 이뻐할 수가 있을까하는.
어린 공주는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어린 공주는 해님이 있는 동안은 순하디 순하게 잘 놀았다.
그런데, 왠지 별님이 뜨는 밤이면 잘 자다가도 갑자기 놀란듯이 자지러지게 울어 대곤했다.
안아도 보고, 업어도 보고, 먹여도 보았지만 울음을그칠 줄 몰랐다.
병원에 갔지만 의사선생님이 아무 탈은 없다고 했다.
그 때 왜 그랬을까? 어린 공주에게 앞으로 갑작스런 이별이 있으리란 예감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랬을까? 하지만 한 치 앞일을 모르는 우리네 인간사가 아닌가?
내 딸은 밤잠을 설치게 울어대는 어린 공주를 단 한 번도 지천을 하지 않았다.
내게는 그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었다.
월배 E마트에 가면 아기를 태우고 쇼핑할 수 있는 작은 마차형의 카트가 있다.
어린 공주가 대구에 왔을 때 ,그 카트에 태웠더니 얼마나 즐거워 했는지 모른다.
그 날, 빨간 바탕에 흰 물방울 무늬가 있는 예쁜 원피스를 샀다.
어린 공주에게 참 잘 어울렸다.
어느날 어린 공주가 감기에 걸려서 기침을 콜록콜록 하였다.
소아과에 데리고 갔더니 겁먹지도 않고 의사선생님이 얘기하기도 전에 그 작은 애가 척척 알아서
양쪽 귀를 번갈아 돌려 댄 다음, 입도 '아'하고 벌릴 줄 알았다.
다음은 윗옷도 쓱 올려 청진기로 진찰하게 했다.
내 맘에 어린 공주가 하는 동작이 너무나 기특하게 느껴졌다.
어린 공주는 엄마가 일터에 출근할 수 있도록 두 살 많은 언니랑 어린이 집에 가기로 했다.
종일반은 오전 열시에 가서, 오후 다섯시나 되어 엄마가 퇴근 할때까지 어린이집에 있어야만 했다.갓 두 돐이 지난 기저귀 찬 어린 공주였다.
글쎄,그 어린 것이 엄마 떨어지지 않으려고 보채지도 않았다.
그 때,다른 애기들 처럼 가지않으려고 떼나 좀 많이 썼으면 어떠했을까싶다.
내가 멀리 대구에 살고 있어서 서울에 있는 어린 공주를 돌봐주지 못했다.
어떻게든 내가 돌봤어야했는데,후회로 내 가슴이 미어진다.
어린이집 가려고 자기 키만한 동그란 가방을 힘겹게 매고도 아장아장 잘도 걸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면 귀여운 무당벌레와도 같았다.
어린 공주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층번호 누르기를 엄청 좋아 했다.
언니와 어린 공주가 둘다 서로 자기가 누르겠다고 "내가! 내가!"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어린 공주는 언니에게 떠밀려나가 울음보를 터뜨리기가 일 쑤였다.그럴 때면 내 마음이 아팠다.
어린 공주는 아직 말은 잘 하지 못했지만 모두 알아는 듣는듯 했다.
다섯 살 언니가 뭐라 뭐라고 얘기하면 조용히 경청을 했다가, 언니 말이 끝나자마자 까만 눈을 반짝이며 언니에게 질세라 "나도! 나도!" 라고 외쳤다.
'나도!'에 는 어린 공주의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있었다.
내가 듣기에 그 말도 그렇게도 깜찍스러웠다.
어린 공주는 때가 묻어 꽤재재해진 진저쿠키 모양의 납작한 인형을 안고 다녔다.
집에 예쁜 인형이 많고 많았지만 어린 공주에게는 돌아오지 않았다. 언니때문에 말이다.
착한 어린 공주는 늘 그 못난이 인형을 꼭 껴안고 잠들곤 했다.그 걸 보는 내 마음은 짜안했다.
어린 공주의 엄마는 주말이면 어린 공주와 모녀 발레 교실에 가기로 했었다.
하루는 연한 핑크빛의 앙증맞은 발레복과 발레슈즈를 사왔다.
입혀보고, 신겨보고 모녀가 둘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또 알록알록한 꽃무늬 천으로 된 모녀 커플 플랫슈즈도 사 왔다..
알뜰시장에서 운좋게 예쁜 신을 건졌노라고 좋아했다..
휴일에 공원에 산책 갈때 같이 신을 거라고 했다.
그 걸 보는 내 마음도 흐뭇하고 설레었다.
어린 공주의 엄마는 직장에 복직해서 월급을 받으면 어린 공주에게 예쁜 옷도 마음껏 사 줄 수 있을거라고 좋아헸다.
쇼윈도 밖에서 보고 벌써 몇 벌을 찜해 놓았노라고 내게 말했었다.그 걸 듣고는 내 마음이 애잔했다.
그 날 어린 공주는 선생님의 인솔로 어린이집에서 멀리 떨어진 꽃가게까지 가게 되었단다.
겨우 두살의 어린 아기들에게 가을 꽃을 직접 견학시켜야 한다는 선생님의 넘치는 열정이야 나무랄 수 없는 것일까? 이제야 알고보니 그 곳은 사망사고가 잦은 아주 위험한 곳이었다. 여러 번의 인명사고가 있었던 곳 이란다. 그런데도 그 마의 사거리에는 과속 방지턱 하나 없었다. 이 시대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 탓이다. 두 선생님이 아직 귀저귀도 떼지 못한 뒤뚱뒤뚱거리는 오리들을 각각 열명씩을 데리고 ,그 먼 곳 까지 걸어 갔단다. 가는 동안 선생님과 아기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찔한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한 선생님이 소피 마렵다는 한 아기를 돌보는 순간, 그 어린 열마리 오리들의 대열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단다.그 때 나의 어린 공주는 선생님이 쥐여준 꽃잎이 손에서 빠져 달아난 것을 알게 되었나 보다. 우리의 어린 공주에게 선생님이 건네준 한 장의 꽃잎은 생명과도 같았나 보다.그 꽃잎! 그 운명의 꽃잎을 찾으려고 어린 공주는가던 길을 뒤돌아서 아장아장 걸어가고 있었단다.이윽고, 선생님이 어린 공주를 찾았으나 어느새 저 쪽으로 여남은 걸음을 되돌아가고 있는 중 이었단다. 다음 찰라! 어린 공주는 절체절명의 지점에 다다르고 말았다. "어린 공주!" 선생님의 단말마가 허공을 찔렀다. 하지만.
우리의 어린 공주는
다른 별나라로
순간이동되고 말았다.
그 꽃잎을 잡으려다.
마침 그 부근의 아저씨가 허겁지겁 뛰어나와 어린공주에게 계속 계속 지구별의 숨을 불어 넣었단다.
119 구급차가 올때까지. 그러나,다른 별나라로 보내어진 어린 공주는 다시는 돌아올 줄 몰랐다.
구급차는 늦게, 아주 늦게서야 도착했다고들 했다.
"어린 공주가 다쳤습니다!"
중식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가려던 어린 공주 엄마에게 다급한 전화가 울려왔다.
"다치다니요? 얼마나요? 많이요?"
"네,많이..."
어린 공주 엄마의 간이 "쿵"하고 떨어졌다.
"많이라뇨? 팔이나 다리라도 부러졌단 말인가요?"
공주의 엄마는 건국대학병원 응급실로 정신없이 달려왔다. 어린 공주룰 제발 제발 이 지구별에 붙들어 달라고 의사선생님께 애끓게 애끓게 사정하고 사정했지만 이미 아무런 소용이 닿지않았다.
내 딸이 나중에 내게 이야기했다.
"그 때 하느님께 단 일분만, 아니 단 일초만 어린 공주랑 마지막 눈인사만이라도 나눌 수 있게 해 달랬으면 설마 그 소원은 들어 주셨겠지요? "라고,
그 전에 어느날,어린 공주가 식탁 모서리에 부딪혀 눈두덩이에 5mm 가량의 상처가 생겼단다.그 것이 흉터가 될까봐 잠자는 어린 공주를 밤새도록 들여다 보며 울었단다.이제 보니 그 정도는 아무런 걱정거리가 못 되었노라고 했다.
어린 공주의 정수리에는 아기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두 돐이 채 안된 아기의 머리칼은 가느다랗고 성글게 나있기 마련이다.어린 공주의 엄마가 이 머리칼을 한 웅큼 고무밴드로 묶어서 생긴 나무이다.
차디찬 곽 속의 어린 공주는 아기 소나무 머리를 이고 평화롭게 잠자는듯 했다.
어린 공주의 피붙이들이 통곡하며 아무리 아무리 외쳐도 끝내 깨어나지 않았다.
어린 공주는 애지중지하는 모든 이들을 남겨둔채 그렇게 홀연히 떠나 가고 말았다.
진저쿠키 인형도 어린 공주랑 같이 보냈다. 그리운 이들을 그려보라고 어린 공주가 쓰던 크레파스도 함께 보냈다. 외로움을 달래라고...
어린 공주는 분당 추모 공원 '휴'에서, 어느 별나라로 비상했다.
그기서 어린 공주는 흰 물방울 무늬 빨간 원피스를 입고, 두손을 머리에 대고 하트 모양을 만들며 방긋 웃고 있다.지금도 하염없이 말이다.
그 뒤로, 내게는 어딜 가나 아기 소나무 머리를 한 애기들만 눈에 띄는 것이었다.
참으로 신기할 정도였다. "이 애기 두 돐이 됐지요?" 하면 영낙없이 맞다고들 했다.
"한 번 안아봐도 될까요?' 하면 낯선 할머니의 당돌한 제안에 엄마와 애기가 모두 움칫 하였다.
갑작스럽게 닥친 크나큰 상실감에 소나무 머리의 아기만 보면 빼앗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언제나 어디서나 애기들을 보면 모두 예뻤는데,이제는 어린 공주 생각에 가슴을 에는듯하여 외면하고 만다.내가 지은 죄가 너무 많아 큰 형벌을 받고 있나보다.
어린 공주의 엄마는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꽃무늬 슈즈는 아직 신발장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
지금도 어린 공주의 엄마는 어린 공주의 사진들을 거실벽에 그대로 걸어 두고 지낸다.
나는 딸네 집에 가서 어린 공주의 그 모습들을 보면 '꺼이꺼이' 목놓아 울고 싶어진다.
주저앉아 바닥을 치며 통곡하고 싶어진다. 남은 피붙이들 때문에 속으로만 삼킨다.
나의 딸은 어린 공주를 잊어야하겠지만 ,어린 공주가 조금씩 잊혀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한다.
어린 공주의 엄마 아빠는 대못이 가슴에 박혀 지금도 수시로 선혈이 흘러 내린다.
얼마나 아플까.
어떻게 견딜까.
내 딸의 아픔이 또한 나의 아픔이다.
어린공주와 피를 나눈 이는 모두 팔뚝이 하나 잘려 나간 아픔을 안고 있다.
모두들 말하기를
어린 공주와의 인연이 그기까지라고들 한다.
우리 중에 이 지구별에 영원히 살아 남을이가 있느냐고들 한다.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고들 한다.
어린 공주는 잠시동안 우리 가족과 머물다간 어린 천사였을까? 어린 예수였을까?
어린 공주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속삭인다.
누구에게나 불현듯한 이별이 찾아올 수도 있다고.
그러므로 서로 사랑만 하기에도 남은 시간이 모자란다고.
우리 가족간의 사랑이 아직 부족함을 깨우쳐주려고 왔었노라고.
신이여!
어린 공주를 보고픈 이 절절한 그리움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2014.11.2
똘이 아빠의 아름다운 하루
딸이 초등학교 시절에 친구 누구처럼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소원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집앞 의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어떤 낯선 아저씨가 "너 강아지 키우고 싶지?"하고 묻더란다.
딸이 얼른 "네!"하고 대답했더니, "잘 키워 봐라."하면서 안고 있던 강아지를 건네 주더란다,
'"마침 잘 됐다"고 하면서 온 가족이 데려온 그 강아지 키우기에 매달렸다.
그러나, 애완견 돌보기에 모두가 무지한 탓에 어리다고 우유를 먹였더니 설사병에 걸려서 연일 동물병원에 데리고 다녀야 했다.병원비가 보험도 안되고 사람에 비해 엄청 더 비쌌다.
거의 나아갈 무렵, 내가 외출한 사이에 딸이 내가 한 당부를 잊고강아지에게 샤워를 시켰다.회복되어가던 강아지는 다시 설사가 심해졌다. 이제 다시 병원에 다녀와도 소용이 없었다. 거의 탈진하여 누워서 가녀린 숨을 할딱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강아지의 생명이 붙어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보아야 했다.
미음을 티스푼으로 한 숫갈 두 숫갈 떠서 먹였다, 입을 우물 우물 다시면서 제법 받아 먹었다 ,
한참을 먹이던 나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강아지의 축축하게 힘없이 누워있던 털들이 하나 하나씩 윤기를 발하면서 일어서고 있는게 아닌가! 이어서 귀가 쫑긋쫑긋하고 일어서더니 고개도 쳐들고 눈이 반짝 하고 떠졌다.뽀송뽀쏭한 강아지가 되었다. 마치 에니메이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드디어 내가 살려 냈구나!" 나는 뛸듯이 기뻤다. 그러나, 나를 보고 인사를 하는것 같더니 이윽고 툭 쓰러졌다. 그리곤 숨을 거두었다. 참으로 신기하고도 믿지못할 장면이었다. 한낱 동물이지만 있는 힘을 다해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가다니!
한동안 우리 가족들은 마음이 매우 아팠다.
'마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 '죽을 때가 되면 행동거지가 뭔가 달라진다.'는 말들을 들었다. 병상에서 자타가 모두 그 날이 언제인가 염려하던 중환자에게도 임종하기직전에 기적같은 일이 잠시 일어나기도 한다고 한다.
그 날도 남편과 나는 아파트 어귀의 포장집을 찾았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의 피곤하고 바쁜 생활로 인해 서로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남편의 제안으로 일주일에 한번정도 그 곳을 들리게 되었다. 그 즈음 시대가 변하여 주부들도 가족이나 지인들과 포장집에서 담화를 즐기는 풍속이 생겨 났다. 소박한 안주와 쓴 소주 한 잔으로 녹녹치 않은 인생살이의 애환을 달래는 일에도 어느듯 남녀평등의 바람이 불어 왔던 것이다. 소심한 나도 시류에 힘입어 남편과 포장집을 가끔 찾게 되었다. 곰장어, 고갈비, 공갈비, 조개구이 등의 안주이름을 알게 되었고 어느새, 쓰디쓴 소주를 달작지근하다고 하는 말에도 공감을 하게금 되었다. 또한 세상의 반을 차지하는 남자들은 여자들이 모르는 다른 세계가 있었구나하고 느꼈다. 음주문화도 잘만하면 대인관계의 윤활유가 되고 어느 정도 스트레스도 풀 수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비닐과 각목으로 만들어 찌거덕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그 날 포장집에는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뜻밖에도 똘이 엄마가 아닌 똘이 아빠가 앞치마를 두르고 날랜 솜씨로 곰장어를 굽고 있는 게 아닌가.몰라보게 말쑥하고 생생한 얼굴로 손님을 맞고 있었다. "아니, 똘이 엄마는 어디 가고? 똘이 아빠가?" 우리 부부가 똑같이 깜짝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이렇게 말하자, "네, 애랑, 애엄마를 전라도 처갓집에 보냈지요. 장모님 생신에, 한 사나흘 푹 쉬어 오라고 했어요."하며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손님을 맞고 있는 똘이 아빠의 그런 모습은 내게 환상을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그 당시 큰 찻길에서 우리가 사는 신설된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길의 양 어귀에는 아직 미개발의 빈 터가 널직하게 남아 있었는데 그 곳에 신설 아파트 주민을 겨냥하여 각종 무허가 가게들이 성업 중이었다. 과일,채소,생선,옷가지.철물,생필품,인테리어등. 싸고 가까운 탓에 주민들이 너나없이 이용하였다. 이 포장집은 허리가 기역자모양으로 굽어버린 할머니의 과일가게 뒤편에 있었다. 비닐과 각목으로 얼기설기 지어졌는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왼편에는 디귿자 모양의 화덕과 손님 앉을 자리가 있었고 오른 쪽에는 아주 조그마한 온돌을 놓아서 똘이네 가족의 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똘이 엄마가 포장집 영업을 하였다. 똘이 아빠라는 사람은 늘 술에 만취되어 있었다. 그 아담한 방 안에서 횡설수설하고 있거나 ,방과 가게를 구분하기위해 쳐놓은 누더기에 가까운 포장을 쳐들고는 무어라 고함을 질러 대기가 일쑤였다. 어떤 때는 똘이 엄마가 굽고 있던 생선 석쇠를 들고 손님의 등 뒤를 빙글빙글 돌며 도망 다녀야 했다. 그 뒤를 똘이 아빠가 비틀비틀거리며 추적하기 때문 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알코올에 중독된 남자는 생업에 여념이 없는 마누라에게 도움은커녕, 그들 모자에게 암적인 존재로 보였다. 똘이 모자는 그런 아빠와 남편을 원망하거나 손님들에게 넉두리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초연한 태도였다. 똘이는 대여섯 살의 똘망똘망한 아이였다. 그런 아빠를 두었지만 표정은 밝았다. 주위 아이들과 잘 뛰놀았다. 똘이 엄마도 항상 미소를 띤 얼굴로 손님을 대했다. 목소리도 맑았으며 똘이 아빠에 대한 타박도 없었다. 우리는 똘이 모자를 안쓰럽고 대견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 날 똘이와 엄마를 외갓집에 보냈다고 하고 똘이 아빠가 갑자기 멀쩡한 사람이 되어 영업을 하고 있었으니 천지가 개벽이라도 한 듯하였다. 마치 여름 장마비가 추적추적 끝도없이 내리다가 어느날 갑자기 청명한 태양이 솟은 것 같았다. "똘이 엄마, 나 땜시 생고생했지요. 이제 내가 잘 해 줄 겁니다.두고 보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도저히 똘이 아빠라고 믿어 지지 않았다. "아 네 , 그러셔야지요 .똘이 아빠, 너무 보기 좋아요." 우리는이제 멀지않아 이 포장집이 더욱 번창하리라 믿으며 아주 기분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며칠 후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똘이 아빠가 술에 취한 채 어느 골목 구석진 곳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똘이 모자는 간단히 장례를 치렀다. 그리곤, 이전처럼 생업을 이어나갔다. 똘이 엄마는 웃는 얼굴로 여전히 조개구이 안주를 만들었고,똘이는 앞집 과일가게 할머니의 손녀랑 정답게 놀았다. 그 손녀는 과일집 둘째 아들이 어디서 낳아온 사생아라고 하였다. 살아있는 사람은 엄숙한 삶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무허가 가게들과 그 가게 상인들의 순박하지만 억척스럽던 삶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어려운 가운데도 의연했던 똘이 모자의 생활 모습과 똘이 아빠가 생의 마지막에 잠깐 보여준 사람다웠던 모습이 매우 의아하면서도 아름답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비록, 똘이 아빠가 인생 낙오자에서 헤어나지 못했지만, 세상에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마지막으로 단 하루나마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신의 똘이 아빠에 대한 애틋한 연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똘이 아빠가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술에 취하지 않고, 늘 맑고 밝게 웃고 있으리라 믿고 있다.
2014.10.26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글재가 있으십니다. 앞으로도 계속 정진하세요...
선배님, 격려에 힘을 내야겠어요^^*
똘이아빠 얘기는 흔하지 않은 소재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글 중에 "고향"이란 작품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같이 개제하면 어덜까요?
어린공주 얘기가 가슴을 저미게 하는군요. 글을 통해서라도 위안을 얻으시기를 . 잘 읽었습니다
졸작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편 더 올리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어린공주가 나에게도 눈물을 주었습니다. 깊이 위로드립니다. 속히 마음이 평정되시기 바랍니다.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무거운 글 소재라서 올리기가 망설여 졌습니다.^^;;
동화 작가 셨나보군요. 동화같은 수필을 올리셨군요. 훌륭한 동화한편을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