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뜨개질3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박종희 할머니께 배운 대로 뜨개질을 했다.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아도 내주신 숙제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한 코씩 떠갔다. 할머니께서는 숙제를 주시면서 잘 못해도 괜찮다고 우선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잘 못해도 괜찮다.”
할머니 말씀에 위안이 됐다. 잘 해내야하고, 완성해야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면 과정에서 누리는 즐거움보다는 눈에 보이는 성과에 치우쳐지곤 한다. 마음의 부담감을 내려놓고 하다 보니 뜨개질이 놀이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혹시 하다가 실수하면 되돌아가 코를 풀고 다시 뜨면 되는 일이었다. 할머니를 만나서 그동안 해온 뜨개질을 보여드렸다.
“많이도 떠왔네. 근데 이 모자는 내가 맨들어야겠어. 학생이 뜨다간 하루죙일 걸릴 것 같네. 힘 조절도 잘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모양도 울퉁불퉁해지거든.”
“하하하...”
“자, 여기 이걸로 처음부터 다시 연습해보자고. 지금 내가 9코 만들어 놓을 테니 그냥 쭉 길게 뜨기만 해. 이게 연습장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떠보는 거야. 이건 모자도 목도리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연습장이니깐 쭉 뜨기만 해. 이거 이만치 다 뜨면 뜨개질 도사될 거야.”
할머니께서는 모자 만드는 일은 영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다시 기초부터 가르쳐주셨다. 혹시 내가 주눅 들을까 옆에서 계속 잘하고 있다고, 그렇게 하면 도사 될 수 있다고 응원해주신다. 뜨개질 연습장에 집중하고 있다가 할머니께서 뜨고 계신 모자를 보면 잠깐 사이에 모자 몸통이 훌쩍 늘어나있다.
“우와...”
“학생 1개월 치를 1시간도 안 되서 다 떴지?”
할머니께서 손목이 편찮으셨는지 잠시 쉬었다 하자고 제안하셨다.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는 막걸리 한잔 먹고 하라며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어 한잔 가득 따라 주셨다. 할머니는 맛있게 담근 김치가 있으니 안주 삼아 먹자며 막걸리 옆에 김치 한 그릇 담아오셨다. 막걸리 한 모금 마시고 감칠맛 나는 김치 한입. 한 잔 다 비우니 할아버지께서 또 먹으라고 한잔 가득 따라주신다. 할머니는 이렇게 막걸리 먹으면 뜨개질 못한다고 말리셨지만 한번은 정 없다며 한 잔 가득 또 따라주셨다.
다 먹고 다시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뜨개질을 했다. 하다 보니 어느새 꽤 많이 떴다, 연습장 길이가 길어질수록 코바늘 하는 속도랑 정확도가 나아졌다. 처음보다 눈에 띄게 늘어난 실력을 보시고는 할머니께서 이제 좀 뜨개질하는 가닥이 나온다고 칭찬해주셨다.
“일거리 가져오니깐 나도 좋네. 할 일이 있으니깐 시간도 금방가고.”
눈뜨고 일어나면 심심했는데 할 일이 있으니 좋다고 하셨다. 예전에는 모자도 많이 떠서 사람들 주기도 하고 팔기도 했는데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 없고, 밖에서 사서 쓰는 모자도 예쁘니 굳이 만들 일이 없다고 하신다.
어른으로서 무언가 이루시거나 해 주시거나 베푸시거나 가르쳐 주시거나 보살펴 주실 때 생기가 돌지 않습니까? 어른을 돕는다면 이것을 살려 드려야 합니다. 당신 복지를 이루는 데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어른 구실 어른 노릇 하시게, 그로써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로 느끼시고 그렇게 인정받으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복지소학」 30쪽
‘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 일로써 무언가 이뤄냈다고 느끼고 도움이 됐다고 생각되면 어른으로서 자존심, 체면 살릴 수 있다. 뜨개질은 할머니께서 자신있어하시는 일이니 더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시려고 하셨다. 틈틈이 뜨개질 자랑하셨고 그때마다 당당하고 멋져보였다.
손재주가 없어서 다행이다. 굳이 내 재주 자랑하고 싶어 안달나지 않고 할머니 재주는 돋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잘 못하니 할머니께 더욱 여쭈게 되고 할머니 곁을 서성인다. 예전엔 재주 없는 손을 타박했는데 지금만큼은 서투른 손에게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