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본느는 교통의 도시다. 위는 나르본느 역사이다. 한적한 도시이고 구경할 만한 것이 많지 않으나 페르피냥, 카르카손느, 리용 등등 많은 도시를 오갈 수 있는 거점으로 삼을 수 있다. 역앞의 작은 호텔은 집같은 느낌을 준다.
여행, 무리한 일정으로 지쳤을 즈음 어슬렁거리면서 거리를 돌아보면 시간이 멈춘 거같은 느낌이 든다. 대도시에서는 시위가 과격해질가봐 걱정인 시국인데 여기는 조용하기만 한다.
덕분에 여행을 하루 쉬면서 느슨한 거리의 정취에 젖어본다. 식재료 시장으로 유명한 시장에는 활기가 가득하고 수산물, 육류, 채소, 치즈 등등 다양한 식품들이 눈을 매혹한다.
운하 중앙의 공원 옆 시장 구경을 해보았다.
2019.2.8.오전
위치 ; 나르본느 시청에서 멀지 않은 곳, 생쥐스트성당에서도 가깝다.
나르본느 시청. 앞으로는 커다란 광장이 펼쳐져 있고 분위기 있는 음식점과 카페가 가득하다. 유난히 따뜻한 날씨에 이곳 사람들은 모두 광장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 거 같다. 관광객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런에 관광안내소는 어렵게 찾았지만 토요일이라서인지 문을 닫았다.
생쥐스트 성당 외관. 내부 모습은 다른 꼭지로 작성하였다.
점심을 간단히 시장에서 산 음식으로 공원에서 때우고 시청과 생쥐스트성당을 가보니 성당은 2시부터 문을 연단다. 커피를 한잔 하며 쉬고는 성당쪽으로 갔다.
성당은 어마어마했다. 중세 성당의 위용과 품격이 그대로인 현재형이었다. 여기 그치지 않고 보물?이 보관된 방은 따로 관람료를 받고 개방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화려하고 예쁜 성경은 처음 보았다. 다음 꼭지에서 소개한다.
성당을 구경하고 미술관 쪽으로 이동하니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 건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여 따라 들어가니 이전 올랑드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가 있다 한다. 꽤 넓은 방에 사람들이 가득 모였는데 1,2분 후 3시가 되니 정말 올랑드 대통령이 나와 얘기를 시작했다. 시국에 관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자리 같았다. 그러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분위기만 보고 미술관으로 갔다.
올랑드 전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 건물 앞에 무장경찰과 문화보호단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미술관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시청앞 광장이 난리가 난 거 같았다. 일군의 시위대, 일명 노란조끼 시위대 팀이 있었는데 무슨 총을 쏘는 거 같은 빵빵 하는 크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서 그야말로 과격시위가 벌어졌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위대는 마이크에 대고 요구사항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광장 커피숍 노천카페에서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한가로이 시위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장을 한 경찰도 보였는데 그리 긴장하고 있는 거 같지 않았다. 안전요원들, 경찰들, 시위대들이 한켠에서는 같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위대도 아니고 커피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열심히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마침 어제 8일 외교부로부터 9일 오늘 시위가 과격해질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문자를 받은 터라 바로 광장에서 빠져나가려 했는데 이들이 이렇게 한가하니 나도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졌다.
사진을 찍으며 상황을 보니 시위대는 올랑드 대통령이 와 있는 바로 그 건물로 이동했다.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올랭드도 사회당이니 합세를 하나, 궁금했는데 총소리? 비슷한 게 나더니 바로 행렬이 다시 나왔다. 여기까지 보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바로 골목만 꺾어들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한가롭기 그지없었고, 거리의 악사마저 한가롭게 음악을 연주하며 모금?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 악사다. 할머니는 처음이었다. 할아버지 악사는 종종 만났는데, 할머니 악사는 처음이어서 모금함에 동전을 몇 개 넣어주었다. 아니 할머니 악사여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의사표현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 그런 집단 의사표현 가운데서도 여전히 한가롭게 유지되는 일상과 사람들이 고마워서였다는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겠다.
프랑스 문화의 힘은 세다. 마치 매우 두꺼운 선수층을 보는 거같다. 몇 사람이 아무리 녹초가 되어 경기장에서 아웃되어도 계속해서 준비된 팔팔한 선수가 나오는 준비된 선수층이 프랑스 문화고 사람들이 아닌가. 그중에서도 자유의 힘, 민주의 힘을 직접 목도한 것은 감동이었다. 그것들이 아름답게 피어난 것이 프랑스 예술일 것이었다.
시위대들이 든 현수막에는 '분노한 민중'이라 써 있다. 분노는 자유를 지키고 문화를 지키는 힘이기도 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아울러 우리는 생존이 아닌 생활을 원한다고 요구하고 있었다. 인간다운 삶을 프랑스 사람도 아직도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아 삶의 품격은 한번의 완성으로 보존이 가능한 것은 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