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낮게, 더 가난하게,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1요한 2,6)'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살아가는 모토다. 한국에서 80여 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수도회는 항상 '포기와 가난'을 수도자 본연의 자세로
여기며 가장 낮게, 가난한 모습으로 몸은 낮췄다.
1983년 수원에 파견된 분원도 성라자로마을과 성분도복지관의 한센병 환
우와 장애인들을 비롯 일선 본당 신자들과 함께 살아가며, '십자가의 약함'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구현(회헌 2조)하고 있다.
■ 한센병 환우들의 천사
1983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소속 수녀 5명이 처음으로 수원
땅을 밟았다. 성라자로마을의 한센병 환우들을 돌볼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
다는 초대 원장 고(故) 이경재 신부(1926~1998)의 요청에 의해서다. 한센
병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심하던 시절 수도회로서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성라자로마을 간호 수녀 정두임 수녀는 "당시 한센병 면역 검사가 있었지만
수녀들은 검사도 하지 않고 라자로마을로 왔다"면서 "파견하신 분이나 파견
되신 분들 모두 단단히 각오를 했었다"고 말했다.
감염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수녀들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세가 더 중요했다. 그렇지만 의료시설
이 충분치 않을 뿐더러 공기로 전염되는 한센병 등 여러 열악한 환경을 염
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문에 수녀회에서는 종신서원 한 수녀들만
성라자로마을에 파견했고,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녀들의 굳은 각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녀들은 한센병 환우들을 치료하고 보살피는 것은 물론 미감아들의 교육
도 담당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산 속에 위치한 마을의 환경은 열악했
고, 한센병 환우들을 향한 사회의 시선도 따갑기만 했다. 수녀들은 자신들
의 어려움보다는 힘겹게 살아가는 한센병 환우들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
야 했던 순간을 가슴 아프게 기억했다.
정 수녀는 "의료 혜택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병원에 가면 눈치를 봐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며 "하지만 그들과 함께 살았던 이곳에서의 생활 자체가
우리에게는 어려움인 동시에 기쁨이다"고 전했다.
▲ 성라자로마을 어르신들의 생신잔치에서 절을 올리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소속 수녀들.
수녀들은 어르신들을 부모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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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있음에현재 성라자로마을에는 일곱 명의 수녀가 54명의 한센병 환우들과 함께
생활 하고 있다. 간호 수녀와 공동 주방 수녀를 비롯 아론의 집, 사제마
을, 장주기요셉관, 성라자로마을 등 각각의 시설을 담당하고 있다. 모두
들 베테랑급 수녀이지만 한센병 환우들과 성라자로마을을 찾는 신자들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직분에 임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공동주방을 담당했던 임채업 수녀는 "어르신들이 연로하시
다보니 부모님을 모신다는 생각으로 활동하면서 마음과 마음이 통하게
됐다"며 "그저 어르신이 잘 드실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지 어렵다는 것
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한센병 환우들의 행복과 신앙심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
설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환우들로 구성된 레지오를 설립했으며, 재속
가르멜회에 소속될 수 있도록 발판을 닦아 놓았다.
수원분원 책임자 김영숙 수녀는 "환우들은 매일 봉사자와 후원자들을 생
각하며 기도하면서,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잊는다"며 "이분들과 함께하면
서 하느님께서 살아계심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수녀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뒷받침된 덕분에 성라자로마을은 국내뿐
아니라 국외로도 뻗어나가고 있다. 한국라자로돕기회에 이어 유럽과 미국
라자로돕기회가 설립됐고 전세계 한센병 환우들에게 사랑의 손길이 전해
지고 있다.
김 수녀는 "수도회의 영성에 따라서 힘든 일이 있더라도 순명하며 사는 동
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수원에 파견된 지 30주년이다.
교구가 설정 50주년을 보내는 희년에 수녀회는 겹경사를 맞았다. 시대의
필요에 응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수도회는 성라자로마을뿐 아니라 성분
도복지관과 와동 일치의 모후, 구산본당에서 사도직 활동을 하며 누구보
다 기쁜 희년을 보내고 있다.
▲ 수녀가 어르신의 발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다.
수녀들은 한센병 환우들과 성라자로마을을 찾는 신자들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직분에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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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