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구벨기에 영사관 건물의 변신이다. 큰 볼거리는 아니어도 공간이 넓고 공적인 건물이어서 머리를 식힐 정도는 된다. 사당동 근처가 별로 볼 게 없어서 아쉬운데, 기분 전환에는 훌륭한 공간이 된다. 옥상 전시는 예약을 해야 본다.
소재지 :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2076(남현동 1059-13)
문화재 : 사적 제254호(1977년 11월 22일 지정)
전화 : 02-598-6246
관람일 : 20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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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립미술관은 모두 8개가 있다. 본관은 서소문, 나머지 7개가 분관이다. 이곳 남서울미술관도 7개 분관 중 하나이다.
서소문본관
북서울미술관
남서울미술관
미술아카이브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SeMA 창고
SeMA 벙커
백남준기념관
* 남서울미술관은 미술관 건물인 1905년에 준공된 벨기에 영사관 건물 자체가 우선적인 볼거리다. 1977년에는 건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254호로 지정되었다. 도심 재개발 사업을 위해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벨기에는 대한제국 당시 1901년 한·백 수호통상조약을 맺으며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대한제국의 외무대신 박제순(朴齊純)과 조약을 조인한 벨기에왕국 특명전권대신 방카르트(Vincart, L.)는 서울에 와서 이 영사관 건물 신축을 주도하였다.
벨기에는 6·25전쟁 참전 16개국의 일원이면서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지속적으로 지지해온 우리의 전통적인 우방국이다. 1965년 5월 2일 대사급 외교관계 체결하고 1970년 2월 24일 주한 초대 대사가 부임하였다.
우리가 벨기에와 인연을 맺은 지 120여년이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였던 대한제국 시절 독립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모색한 중립국 해법, 벨기에를 동반자로 삼아 중립국의 길로 가서 나라를 보존하려 했지만, 일본의 무력에 무력해져 실패로 끝났다.
이제 그 연약했던 대한제국 시절은 과거가 되었고, 경제문화강국으로 일본과 같은 무력의 힘을 추종하는 세력을 경계하는 나라가 되려 한다. 무력강국이 아닌, 문화강국이 되어 무력의 시대를 응징하려는 예술의 힘을 아픈 역사적 기억 속에 담으려 한다. 벨기에 대사관의 미술관 변모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고전주의 양식을 따른 건물의 너른 앞 마당에서는 야외 조각 전시를 자주 한다. 전시관 안의 전시는 상설전과 특별전이 있다. 상설전은 <미술관이 된 구벨기에영사관>이다. 건물 소개를 위주로 한 전시로 소규모로 이루어진다.
특별전은 정기적으로 바뀌는 전시이다. 요즘 전시는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기>다. '알고리즘에 예속된 터치의 세계'를 그렸다는 전시이다. 박아람, 정명우, 정지현, 정희민 등 4인 작가가 참여하였다.
특별전은 올 때마다 비슷한 작품들로 꾸며지는 느낌이다. 보통 구상보다 비구상 위주 디자인 위주의 미술품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선과 색과 면을 통해 특별한 것을 이루어내려는 노력이 확실히 돋보이는 작품들인 것은 공통적이어서, 누구에게나 울림을 줄 수 있을 듯하다. 아마도 이런 작품들이 이 건물과도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통적인 그림작품을 보러 온 사람들은 허망함을 느끼지 않을까도 싶다.
*1903년 설립하여 1905년에 준공된 이 건물은 일본 북육토목회사에서 시공하고 기사 小玉이 설계했으며 西島가 감독하였다고 한다. 이중화의 경성기략에는 1900년 입경한 벨기에 전권위원 레온 방카르가 1902년 10월 이곳에 자리를 잡아 영사관 건축에 착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1919년에 영사관이 충무로 1가 18번지로 옮긴 다음 이 건물은 일본 횡빈생명보험회사 사옥으로 쓰이다가, 일본 해군성 무관부 관저로 이용되었으며, 해방 후 해군헌병대로 사용되었다.
1970년 상업은행이 불하 받아 사용하고 있다가 1982년 8월 현재의 남현동으로 이전되어 한국상업은행(현 우리은행) 사료관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으로 새롭게 꾸며져 구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벽돌과 석재를 혼용하였고, 고전주의 양식의 현관과 발코니의 이오닉 오더(Ionic order) 석주 등은 외장상 상당히 수려한 양식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전재)
*아래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기> 전시품들
*이하 상설전이다. <미술관이 된 구 벨기에 영사관>
근대건축사 전공 안창모 교수가 주관한 전시로 건축물 이해에 초첨을 맞추고 있다.
* 벨기에
정식 명칭은 벨기에왕국(Kingdom of Belgium)으로, 영어로는 벨지움(Belgium)으로 표기한다. 유럽대륙에서 작은 나라들 중 하나이며, 해안선의 길이는 66㎞이다. 면적은 3만 528㎢, 인구는 1132만 3973명(2015년 현재), 수도는 브뤼셀(Brussels)이다.
종족구성은 플라망족(Fleminns) 58%, 왈롱족(Wallooks) 31%, 혼혈 11%이며, 언어는 네덜란드어가 60%, 프랑스어가 40% 정도 사용된다. 종교는 전체 인구의 75%가 가톨릭교를 믿으나, 도시나 공업지역에서는 개신교의 분포를 볼 수 있다.
기후는 전반적으로 서안해양성 기후에 속하지만, 동남쪽의 내륙지역과 고원지대는 한랭한 기후를 보이며, 1년 중 봄 이외에는 흐리고 습한 날씨가 계속된다.
산업과 경제가 일찍부터 발달된 나라로, 플란더런 지방은 중세 이래로 모직물공업이 대단히 번창한 곳이며,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영국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산업혁명이 이루어졌다. 고도로 발달된 기술과 풍부한 석탄을 바탕으로 하여 1950년대 초까지는 철강공업·금속공업·유리공업·섬유공업이 경제의 주축이었다.
그러나 석탄산업의 퇴조, 섬유 및 철강산업의 사양화 등으로 벨기에 경제는 구조적 대변혁을 겪고 있으며, 현재는 기계공업·철강공업·화학공업·전기기기공업 등에 역점을 두는 고도의 기술집약적인 공업에 치중하고 있다.
부존자원이 부족하여 기본적으로 가공무역과 수출에 의존하고 있으며, 지리적 조건을 이용하여 동구권 및 아프리카 지역과의 중계무역이 발달되어 있다. 한편, 플란더런지방을 비롯한 평야지대에서는 맥류·사탕무·감자·야채·목초 등을 재배하고 낙농업도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이 나라는 전체 수출의 65% 이상을 인접 독일·네덜란드·프랑스 등에 의존하고 있다. 2014년 현재 국내총생산은 5333억 달러, 1인당 국내총생산은 4만 7516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입헌군주제의 의원내각제이며,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4년의 상원(74석)과 하원(150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은 기민당, 자유당, 사회당 등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 벨기에 :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가 벨기에와 처음으로 관계를 맺은 것은 대한제국 당시 한·백 수호통상조약으로, 이 조약은 1901년 3월 23일 대한제국의 외무대신 박제순(朴齊純)과 벨기에왕국 특명전권대신 방카르트(Vincart, L.)에 의하여 조인되었다.
광복 후에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첫 번째로 우리 정부를 승인한 국가이며, 6·25전쟁 참전 16개국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그 뒤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계속적으로 우리 나라의 입장을 지지하여 온 전통적 우방국이다.
1965년 5월 2일 대사급 외교관계 체결에 합의한 후, 우리 측은 1965년 11월 1일 주 벨기에 상주대사관을 개설하여 2006년 현재 지속되고 있으며, 벨기에 측은 1970년 2월 24일 주한 초대 대사가 부임하였다.
우리나라와의 사회적인 교류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로 구성되어 1952년 4월 5일에 발족한 한국참전용사회, 각계 저명인사와 한국고아 입양부모들로 구성되어 1975년 5월 15일에 발족한 백·한친선협회를 비롯하여 의원친선협회·경제협력위원회·강남월루에쌍피에르자매결연위원회 등이 있어 양 국민간의 교류를 돕고 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벨기에 수출액은 20억 2300만 달러로 주종목은 건설기계·철강판·합성수지·자동차 등이며, 수입액은 14억 3100만 달러로 주종목은 정밀화학원료·합성수지·의약품·전동기 등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108명의 벨기에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07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 LG전자 등이 진출해 있고, 162명의 한국민 교민과 521명의 체류자가 있다.
한편, 북한은 2001년 1월 23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2006년 현재 주 영국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2014년 현재 북한의 대 벨기에 수출액은 4만 9000달러로 주종목은 귀금속·화학제품·플라스틱 등이고, 수입액은 112만 3000달러로 기계류가 주종목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2. 관람후 : 미술관 소장전을 기대하며
일본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미술관, 일본은 그 많은 미술관이 대부분 관람객들로 넘쳐나는데, 우리는 미술관 절대수가 적고 그나마 대개 관객이 없어 한산하다. 대부분 미술관이 새로 만들면서 화가들에게 기증을 요구한다. 공립미술관에서조차 그림을 안 사주면 화가는 누구에게 팔겠는가. 미술관은 대여공간이 아니라 소장하고 소장전을 하는 곳이어야 한다.
도서관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작품이나 책을 살 능력이 없으면 공립미술관이나 도서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서관도 개관하면서 유명 저자들에게 책 기증을 부탁하는 안내문을 돌린다. 화가 저자의 피땀과 시간이 들어간 작품과 학술저서를 그냥 달라고 하면 창작자들은 어디에서 수입을 얻을 수 있나. 문화강국이 되려면 국가가 나서서 창작자들을 대접하고 육성해야 되는 게 아닐까.
이곳도 건물 소개 상설전 외에 다른 상설전이 없는 걸 보면 소장작품이 많지 않음이 틀림없다. 상설전이라 할 것도 근대건축사 전공 교수가 주관한 전시로 건축물 이해에 초첨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표현한 유럽식 건축에 대한 해설과 건물역사 해설이므로 일종의 건축사 전시물이다. 우리 미술작품 전시와는 거리가 있는 전시여서 상설미술전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이 없는 미술관을 미술관이라 할 수 있을까. 엄밀하게 말하면 미술대여관이 아닐까. 미술관은 건물이 아니라, 작품 소장처여야 하지 않을까. 소장작품으로 상설전을 하는 것이 미술관 본령이 아닌가 한다.
유럽 미술관은 대부분 소장전이다. 우리는 대부분 소장 작품이 많지 않고, 있는 것도 대부분 수장가나 화가가 기증한 것이다. 사립미술관은 얼마든지 기증에 의존해 만들어질 수 있지만, 공립미술관은 그래서는 안 될 거 같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문화강국으로 알려져 있는 한국이 미술품 대접을 보면 완전 후진국이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건축물에서 미술관을 운영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나, 미술계 발전과 화가 육성에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지는 미지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 지역 화가의 작품, 그 지역을 그린 그림을 먼저 소장하는 것이 어떨까. 프랑스 니스에 가서 마티스가 그린 니스 그림을 봤다. 내가 보는 니스를 마티스는 이렇게 봤구나, 그 현장감이 감동적이었다. 돌아와서는 내가 눈으로 본 니스보다 그 그림이 먼저 떠오를 정도였다. 지역을 그린 그림은 관광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지자체는 지역 특산물만 팔려하지 말고, 지역 화가의 작품을 팔도록 지역 미술관을 도우면 좋겠다. 구체적인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미술이 살아야 예술이 살고 문화가 산다. 먼저 돈이 많은 서울의 시립도서관이 앞장서 지방 미술관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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