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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대 수 | 86 세대 |
인 구 | 남자; 82 명. 여자; 87명 (합계) 169 명 |
마을임원 | 이장: 홍성균(011-9617-8376). 새마을지도자;(남)윤주식 (여)김남례 |
◎ 마을의 지명 설명
• 덕산리(德山里): 본래 내덕면의 지역으로서 큰 산 밑이 되므로 덕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산리와 노력리를 병합하여 덕산리라 해서 대 덕면에 편입.
• 기바우: 장산 서남쪽에 있는 바위. 밑에서 기(게)가 많이 잡혔음.
• 기바우끝: 기바우가 있는 부리.
• 대섬(1)/ 대섬고랑/ 죽도: 장산 동남쪽, 바닷가에 있는 마을. 앞에 대섬이 잇음.
• 대섬(2)/ 죽도: 장산 동남쪽에 있는 섬. 식대가 많았음.
• 공동묘지: 덕산에서 장산 사이에 위치. 1890년대에 조성.
• 대섬고랑(1): 대섬. <수효사>
• 대섬고랑(2): 대섬 북쪽에 있는 들.
• 대섬샘: 대섬에 있는 우물.
• 뒷고랑: 장산뒤 골짜기에 있는 마을.
• 등다물: 장산 북쪽에 있는 들. 다물(돌담불)이 많았음. 1940년대 주막집이 있어 길 가던 행인들의 쉼터로 활용.
• 맛골: 장산 북쪽에 잇는 골짜기.
• 복송나무 골착: 피란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복숭아나무가 많았음.
• 안골: 장산 동남쪽 안에 있는 골짜기.
• 이씨시혜비: 장산 북쪽 길가에 있는 녹원 이세옥(綠園李世玉)의 시혜비.
• 큰개: 장산 앞에 있는 큰 개.
• 큰골: 장산 동쪽에 있는 큰 골짜기.
<장산에서 바라본 회진대교>
◎ 천연기념물
□피란골
덕산리와 장산리 뒷산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골짜기이다. 좌우․ 후면이 산능선으로 에워싸고 있는 넓은 계곡으로 습기가 많고 토질이 비옥하여 소나무, 대나무 등이 무성하게 자라서 사람이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왜구가 침입할 때마다 안개가 피어올라 왜침을 막았다고 전해 온다. 또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으로 참전했던 사람들이 석대전에서 패하여 이곳으로 피난하여 은신하였다. 그래서 피난골이라 이름이 붙었는데 청명한 날씨에도 이곳은 안개가 끼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는 이곳의 장군바위 영험이라고 믿고 있다.
장산마을에 살았던 윤성범, 윤홍도, 홍우범씨 등은 이곳에 은신하고 있던 동학농민군을 밤을 이용해 금당도와 생일도, 평일도로 피신시켰다고 전한다. (구비전승)
<우측 산에 피란골이 있다>
□보샘
마을의 주산인 용두산(해발 216m)을 50m정도 오르다 보면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데 이 샘의 이름을 보샘(여자의 음부)이라 한다. 그 샘의 모양새가 영락없는 여자의 음부와 꼭 닮았으며 물이 솟는 위치도 여자의 음부에서 나오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름에 초군들이 놀면서 물이 나오는 곳을 작대기로 쑤셔대며 장난을 치곤하는 샘인데 한번은 이 샘의 모습이 너무 닮아 장난삼아 그 옆의 조그만 바위를 깨뜨려 버리자 그 음부 모습을 깨뜨린 남자의 성기가 갑자기 통통 부어올라 아프기가 그지없어 떡시루를 해 가지고 그곳에 가서 빌고 난 후에 병이 나았다 한다. 주민들은 지금도 이 샘을 신성시하며 약수로 활용하고 있다. (구비전승)
□장산저수지
• 제방길이: 140.0m • 제방높이: 4.0m • 수혜면적: 12.4ha • 설치년도: 19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