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Powicke(Sir Frederick Maurice, 1879–1963)
A medieval historian, Powicke was novel for his time in utilising continental scholarship in his writing as well as attempting an empathetic approach to his subjects. His skill as a teacher was also notable, contributing to the pre-eminence of Oxford in the field of medieval history.
_deduction(연역, 3단논법)
- 일반적인 사실로부터 특수한 진리를 유도해 낸다
something that is inferred (deduced or entailed or implied)
entailment, implication
reasoning from the general to the particular (or from cause to effect)
deductive reasoning, synthesis
반대어 : induction(귀납법)
- 개별적인 사실들로부터 일반적인 진리를 유추한다.
연역법 : 원인에서 결과로, 즉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귀납법 : 결과로부터 원인을 유추해 낸다. 역으로 올라간다.
These are perhaps the two most popular views of history today.
이것들은 아마 지금 가장 인기있는 2개(신비주의와 회의주의)의 견해들이다.
But I shall unhesitatingly reject both of them.
그러나 나는 주저없이 그 둘 모두 거부할 것이다.
This leaves us with that odd, but suggestive, phrase 'a constructive outlook over the past'.
이런 상황에서 약간 이상한 듯하지만 제안적인 듯싶은 ‘과거에 대한 건설적인 전망’이라는 표현이 남겨진다.
Having no way of knowing what was in Professor Powicke's mind when he used the phrase,
그 표현을 사용했을 때 포윅 교수의 진의를 알 길이 없기 때문에
I shall attempt to read my own interpretation into it.
나는 내 나름의 방식대로 해석을 시도해 보려한다.
Like the ancient civilizations of Asia,
아시아의 과거 문명과 같이
the classical civilization of Greece and Rome was basically unhistorical.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적인 문명들은 기본적으로 비역사적이었다.
As we have already seen, Herodotus as the father of history had few children;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역사의 아버지인 헤르도투스 조차도 거의 제자들이 없었다.
and the writers of classical antiquity were on the whole as little concerned with the future as with the past.
고전적인 고대사가들은 대체로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해서도 거의 관심이 없었다.
Thucydides believed that nothing significant had happened in time before the events which he described
투키디데스는 거의 중요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었다. 그가 기술했던 사건들 전에는
, and that nothing significant was likely to happen thereafter.
그리고 그 이후에도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일어날 것 같지 않다고 믿었다.
Lucretius deduced man's indifference to the future from his indifference to the past:
루크레티우스는 과거에 대한 무관심으로부터 미래에 대한 무관심을 유추했다.
Consider how that past ages of eternal time before our birth were no concern of ours.
생각해 보라. 우리의 출생전에 영원한 과거의 시대들은 우리들에게 별 관심없었음을.
이것은 아마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역사 견해 2개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주저 없이 그들 둘 다 부정한다. 이 둘을 부정하고 보면 우리에게 약간은 이상하지만 약간은 제안적인 ‘과거에 대한 건설적인 전망’이라는 표현이 남는다. 그 표현을 사용할 했었던 포윅 교수의 마음은 알기 어렵지만 나는 그 표현에 내 나름의 해석을 해 보고자 시도할 것이다. 고대 아시아의 문명들과 같이 그리스나 로마의 고전적인 문명은 기본적으로 비역사적이었다. 우리가 이미 살펴 봤듯이 역사의 아버지라는 헤로도투스는 거의 후계자를 거의 갖지 않았다. 그리고 고전적인 고대 역사가들은 대체로 과거만큼이나 미래에 대해서도 거의 관심을 쏱지 않았다. 투키디데스는 그가 사건들을 기록하기 전에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중요한 것은 일어 날 것같지 않다고 했다. Lucretius는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무관심을 과거에 대한 무관심으로 유추했다.
첫댓글 카는 1장 마지막에서 '역사는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 사실과의 대화'라 말한적 있다. 난 오히려 5장에서 얘기한 '역사는 과거 사실과 미래의 진보적인 목표와의 대화라고 말하는 편이 더 맞는지도 모른다. 그 연결고리는 현재의 역사가이고. 영화 '히든 피겨스'는 감독이 과거 NASA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블랙 라이브즈 매터'라는 미래 진보적 가치와 연결시킨 것이리라. 이런 면에서 영화 감독도 역사가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