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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 附諺解 (學民文化社) | |||||||
1. 元
第 一 冊 | p.01 周易大全 凡例 | 1. 元
第 一 冊 | p.189 易傳序 * | ||||
p.13 周易大全 目錄 | p.199 易序 | ||||||
p.19 卷首 引用先儒姓氏 | p.203 上下篇義 | ||||||
p. 29 易 本 義 圖 | p.29 | 河圖之圖 | p.213 五贊 | ||||
p.30 | 洛書之圖 | p.231 筮儀 | |||||
p.65 | 伏羲八卦 次序之圖 | p.243 周易上經 | |||||
p.71 | 伏羲八卦 方位之圖 | 卷一 | p.247 | 1. 乾 | |||
p.82 | 伏羲六十四卦次序之圖 | 卷二 | p.273~p.430 | 2. 坤 3. 屯 | |||
p.91 | 伏羲六十四卦方位之圖 | 卷三 | p.461~p.512 | 4. 蒙 5. 需 6. 訟 | |||
p.117 | 文王八卦次序之圖 | 卷四 | p.541 p.567 p.596 | 7. 師 8. 比 9. 小畜 | |||
p.120 | 文王八卦方位之圖 | ||||||
p.133 | 卦變圖 | ||||||
p.147 易說綱領 |
三易重組
1. 易傳序(역전서; 周易을 說明하는 序文, 程頤정이)
易變易也隨時變易以從道也
易은 變易也니 隨時變易以從道也라
易은 變하여 바뀌는 것이니 때에 따라 變하여 바뀌어 道理를 따르는 것이다.
郭忠孝議易傳序曰易即道也又何從道或以為問程子曰人随時變易為何為從道也 |
郭忠孝의 <議易傳序>에 曰하기를 ‘易이 即 道이다.’라 하거늘, 또 무엇이 從道인 것입니까? 或이 問으로서 삼으니, 程子曰 "人이 随時變易을 何로 삼고 從으로 삼음이 道인 것이다. |
* 郭忠孝(미상~1,128年) : 北宋 河南 사람. 字는 立之이고, 號는 겸산(兼山)이다. 곽규(郭逵)의 아들이다. 정이(程頤)에게 『易』과 『中庸』을 배웠다. 人道의 지정(至正)을 미루어 천하국가에 이용하는 것이 中庸의 요점이라 보았으며, 中庸을 실제상의 體用 관계로 보아 致用之學을 강조했다. 『周易』도 깊이 연구하여, 易이 바로 道라고 역설했다. 易學思想은 순희(淳熙) 연간에 편찬된 『대역수언(大易粹言)』에 정호(程顥)와 程頤, 장재(張載), 양시(楊時), 유초(游酢), 곽옹(郭雍) 등의 설과 함께 실려 있다. 著書에 『中庸說』과 『겸산역해(兼山易解)』, 『易書』, 『사학연원론(四學淵源論)』 등이 있다. |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이회문화사) |
○楊廸問有道又有易何如曰此語全未是更將傳序詳思當自通矣變易而後合道易字與道字不相似也 |
楊廸(양적, 나아갈 적)이 問하기를 有道이고 또 有易임은 何如인 것입니까? 曰 "此語는 全히 다시 傳序를 將하고 詳思하여야 當히 自通이라는 것이 아니라, 變易 而後에 合道인 것이니, 易字와 道字는 不相似인 것이다. |
○朱子曰随時變易以從道主卦爻而言然天理人事皆在其中今以乾卦潛見飛躍觀之其流行而至易者易也其定理之當然者道也故明道亦曰其體則謂之易其理則謂之道而伊川又謂變易而後合道易字與道字不相似也又云人随時變易為何為從道也此皆可以見其意矣易中无一卦一爻不具此理所以沿流而可以求其源也 |
朱子曰 “ ‘随時變易以從道’는 卦爻에 主하여 言한 것이나, 그러나 天理人事가 모두 在其中인 것이다. 今에 乾卦의 潛, 見, 飛, 躍(약)으로서 觀之일지면 그 ‘流行而至易’者가 易인 것이고, 그 ‘定理之當然’者가 道인 것이다. 故로 明道께서 또한 曰하시길 ‘그 體에서는 則 謂之하기를 易이라 하고, 그 理에서는 則 謂之하기를 道라 한다.’라 하였고, 그리고 伊川께서 또 謂하시길 ‘變易 而後에 合道이니, 易字與道字는 不相似이다.’라 하고 또 云하시길 ‘人이 随時變易으로 為何為從함이 道이다.’ 라 하였으니, 此에서 모두 可히 그 意를 見할 수 있는 것이다. 易中에는 一卦一爻마다에 此理를 具하지 않음이 없으니, 沿流(연류)하여 可히 그 源을 求해볼 수 있는 所以인 것이다.” |
○易變易也随時變易以從道正謂伊川這般說話難曉盖他把這書硬定做人事之書他說聖人做這書只為世間人事本有許多變様所以做這書出来 |
易은 變易인 것이다. ‘随時變易以從道’란 正히 伊川의 這般의 說話는 難曉이라 謂할 수 있겠다. 대개 他는 這書를 把하고서 人事위한 書로 硬定한 것이니, 他는 聖人께서 這書를 做하심은 다만 世間人事에 本으로 許多한 變様으로 有함을 위하여 這書가 出来하게 된 所以임에 說한 것이다. |
○范氏念徳曰易也時也道也皆一也自其流行不息而言之則謂之易自其推遷无常而言之則謂之時而其所以然之理則謂之道 |
范氏念徳曰 "易也, 時也, 道也는 모두 一인 것이다. 그 流行不息으로부터 하여 言之일지면 則 謂之易이라 하고, 그 推遷无常으로부터하여 言之일지면 則 謂之時라 하며, 그 所以然의 理로부터는 則 謂之道라 한다.“ |
○臨川吳氏曰凡隂陽變易道理便在其中元不相離直以道字解易字則不可而易之所以為易者道也又曰時之為時莫備於易程子謂之随時變易以從道夫子傳六十四彖獨於十二卦發其凡而贊其時與時義時用之大一卦一時則六十四時不同也一爻一時則三百八十四時不同也始於乾之乾終於未濟之未濟則四千九十六時各有所值引而伸觸類而長時之百千萬變无窮而吾之所以時其時者則一而已 |
臨川吳氏曰 "凡의 隂陽에는 變易의 道理가 문득 在其中인 것이니, 元으로 不相離인 것이다. 直으로 道字로서 易字를 解해서는 則 不可하니, 易이 易되는 所以인 것은 道인 것이다.“ 又曰 "時가 時됨은 절대로 易에 備해 있음는 것이 아니다. 程子께서는 謂之하시길 ‘随時變易以從道’이라 하셨던 것이고, 夫子께서 六十四彖을 傳하심에 獨으로 十二卦로만 그 凡을 發하시고서 그 時를 時義와 時用의 大함과 더불어 贊하셨던 것이다. 一卦에 一時일지면 則 六十四時가 不同인 것이고, 一爻에 一時일지면 則 三百八十四時가 不同이니, 乾之乾에서 始하여 未濟之未濟에 終일지면 則 四千九十六時인 것이다. 各 值引하는 바로 하여 觸類마다에 伸하고 長함이 有일지면, 時는 百千萬變의 无窮이어도 吾가 그 時로 時할 수 있는 所以인 것은 則 一(하나)일 뿐인 것이다.“ |
其爲書也廣大悉備將以順性命之理通幽明之故盡事物之情而示開物成務之道也聖人之憂患後世可謂至矣去古雖遠遺經尙存然而前儒失意以傳言後學誦言而忘味自秦而下蓋无傳矣予生千載之後悼斯文之凐晦將俾後人沿流而求源此傳所以作也
其爲書也廣大悉備하여 將以順性命之理하며 通幽明之故하며 盡事物之情하여 而示開物成務之道也니 聖人之憂患後世 可謂至矣신저 去古雖遠이나 遺經尙存이라 然而前儒는 失意以傳言하고 後學은 誦言而忘味하니 自秦而下로 蓋无傳矣라 予生千載之後하여 悼斯文之湮晦하여 將俾後人으로 沿流而求源케하니 此傳所以作也라
그것을 책으로 만든 것(周易)은 廣大하고 모두 갖추어져 있어 將次 本性의 理致에 順應하고 어둡고 밝은 世上의 原因에 通達하며 事物의 實情을 다하여 物件을 열어주고 일을 이루는 道理를 보여주니 聖人이 後世를 근심하심이 至極하다고 이를 만하다. 지나간 옛날은 비록 멀지만 남아있는 經典은 아직 保存되어 있다. 그러나 지난날의 선비는 뜻은 잃고 말만 傳하여 뒤에 배우는 사람이 말만 외우고 참 意味를 잃었으니 秦(진)나라로부터 以來로는 傳함이 없었다. 나는 千載=千年 後에 태어나서 이 글이 빠뜨리고 湮晦(인회, 잠기고 어두움)됨에 가린 것을 슬퍼하여 將次 後世 사람들로 하여금(俾비=使사) 흐름을 거슬러(沿연) 올라 根源을 찾게 하였으니 이것이 <易傳>(周易의 說明)을 짓게 된 까닭이다.
程子曰自孔子贊易之後更無人㑹讀易先儒不見於書者有則不可知見於書者皆未盡如王輔嗣韓康伯只以老荘解之是何道理某於易傳殺曽下工夫如學者見問儘有可商量書則未欲出之也 |
程子曰 "孔子께서 贊易之後로부터는 다시 人이 讀易으로 㑹함은 無하였다. 先儒 중에 書에 見하지 못하였던 者가 有하였는지에는 則 不可知이나, 書에 見하였던 者들은 모두 未盡하였으니, 마치 王輔嗣와 韓康伯과 같은 경우는 다만 老荘으로서 그것을 解之하였으니, 是가 어찌 道理이리오? 某가 易傳에 있어서 매우(殺) 일찍이 下工夫하였으니, 마치 學者가 見問하여 모두 可히 書를 商量함이 有한듯 하였지만 則 아직 그것을 出之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
○某於易傳已自成書但逐旋脩補期以七十其書可出韓退之嘆聰明不及於前時道徳日負於初心然某於易傳後来所改者无㡬不知如何故更期以十年之功看如何 |
某가 易傳에 있어서 이미 自로 成書이었으나, 다만 逐旋脩補의 期를 七과 十으로 함에 그 書가 可히 出할 수 있었다. 韓退之의 嘆聰明이라도 前時에 不及하였으니, 道徳이 日로 初心보다 負하였어도 그러나 某가 易傳의 後来에 改하였던 바의 것은 无하였다. 거의 如何에 不知하였기 때문에, 故로 다시 期를 十年之功으로서 하고서야 如何인가에 看할 수가 있었다. |
○張閎中問易傳不傳曰易傳未傳自量精力未衰尚覬有少進爾然亦不必直待身後覺老耄則傳矣書雖未出學未嘗不傳也第患无受之者爾 |
張閎中이 易傳을 傳하지 않음에 問컨대, 曰 "易傳을 傳하지 않음은 精力이 아직 衰하지 않음을 自量하여, 오히려 少進이라도 有하기를 바랬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直으로 身을 待한 後에 老耄(노모, 늙이 모)를 覺하고서야 則 傳하려함은 아닌 것이다. 書가 비록 未出이어도, 學에 일찍이 傳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그러나(第, 접속사) 受之者가 无할 것이 患할 뿐이로다.“ |
○和靖尹氏曰伊川先生踐履盡易其作傳只是因而寫成熟讀玩味即可見矣 |
和靖尹氏曰 "伊川先生께서는 踐履로 盡易하셨으니, 그 作傳하심에 다만 이렇게 因하여 寫하고 熟讀玩味를 成일지면, 即 可히 見할 수 있을 것이다.“ |
○夀安張氏曰伊川易傳成書已久學者莫得傳授其後寝疾始以授尹焞 |
夀安張氏曰 "伊川의 易傳이 成書함은 이미 久하였으나, 學者들이 아무도 傳授를 得하지 못하였다가, 그 後 寝疾에서야 비로소 尹焞에게 授하게 되었다.“ |
○上蔡謝氏曰伊川以易傳示門人曰只說得七分後人更湏自體究 |
上蔡謝氏曰 "伊川께서 易傳으로서 示門人하시며 曰하시길 ‘다만 說得에 七分한 後에는 人이 다시 반드시 自로 體究하여야 할 것이다.’라 하였다.“ |
易有聖人之道四焉以言者尙其辭以動者尙其變以制器者尙其象以卜筮者尙其占吉凶消長之理進退存亡之道備於辭推辭考卦可以知變象與占在其中矣君子居則觀其象而玩其辭動則觀其變而玩其占得於辭不遠其意者有矣未有不得於辭而能通其意者也至微者理也至著者象也體用一源顯微无間觀會通以行其典禮則辭无所不備
易有聖人之道四焉하니 以言者尙其辭하고 以動者尙其變하고 以制器者尙其象하고 以卜筮者尙其占하니 吉凶消長之理와 進退存亡之道 備於辭하니 推辭考卦하면 可以知變이니 象與占은 在其中矣라 君子居則觀其象而玩其辭하고 動則觀其變而玩其占하나니 得於辭요 不達其意者는 有矣어니와 未有不得於辭而能通其意者也라 至微者는 理也요 至著者는 象也니 體用一源이요 顯微无間이니 觀會通하여 以行其典禮하면 則辭无所不備라
周易에는 聖人의 道가 넷이 있으니, 易으로써 말하는 者는 그 글(辭)을 崇尙하고, 易으로써 行動하는 者는 그 變化를 崇尙하고, 易으로써 그릇을 만드는 者는 그 形象을 崇尙하고, 易으로써 占치는 者는 그 占을 崇尙하나니 吉하고 凶하며 줄어들고 자라나는 理致와 나아가고 물러나며 存在하고 없어지는 道理가 글에 갖추어져 있으니 글을 미루어 보고 卦를 考察해 보면 變化를 알 수 있고 形象과 占은 그 가운데 들어있다.
君子가 居處할 때에는 그(周易의) 形象을 觀察하고 글을 살펴보며, 움직일 때에는 그 變化를 觀察하고 그 占을 吟味하나니 글에서 얻더라도 그 뜻을 通達하지 못한 者가 있거니와, 글에서 얻지 못하면서 그 뜻을 通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至極히 隱微(은미)한 것은 理致이고, 至極히 드러난 것은 形象이니 實體와 應用이 한 根源이요, 드러남과 隱微함이 間隔이 없다. 모이고 通함을 보아서 그 典例(模範的 行動)를 行하면 글에 갖추지 않은 바가 없다.
尹焞問至微者理也至著者象也體用一源顯微无間莫太露天機否程子曰如此分明說破猶自人不解悟 |
尹焞이 問컨대 ‘至微者理也 至著者象也 體用一源 顯微无間’은 아마도 太露(드러날 로)의 天機인 것입니다. 否입니까?‘ 程子曰 "如此로 分明히 說破일지라도 오히려 自로 人이 解悟치 못하는도다.“ |
○朱子曰至微者理也至著者象也體用一源顯微无間盖自理而言則即體而用在其中所謂一源也自象而言則即顯而微不能外所謂无間也又曰體用一源者以至微之理言之則冲漠无联而萬象昭然已具也顯微无間者以至著之象言之則即事即物而此理无乎不在也言理則先體而後用盖舉體而用之理已具是所以為一源也言事則先顯而後微盖即事而理之體可見是所以為无間也 |
朱子曰 " ‘至微者理也 至著者象也 體用一源 顯微无間’에, 대개 理로부터 言일지면 則 體로 即함에 用이 在其中인 것이니 所謂 ‘一源’인 것이고, 象으로부터 言일지면 則 顯에 即하여도 微가 能히 外할 수 없는 것이니 所謂 ‘无間’인 것이다. 又曰 "體用一源者를 至微之理로서 言之일지면 則 冲漠(깊고 고요함: 넓을 막)의 无联일지라도 萬象이 昭然히 이미 具해져 있는 것이고, 顯微无間者를 至著之象으로서 言之일지면 則 即事即物일지라도 此理가 不在함이 없는 것이다. 理로 言일지면 則 先體인 而後에 用인 것이니, 대개 舉體일지면 用之理가 이미 具인 것으로, 是가 一源이 되는 所以인 것이다. 事로 言일지면 則 先顯인 而後에 微인 것이니, 대개 即事일지면 理之體를 可見인 것으로, 是가 无間이 되는 所以인 것이다.“ |
○至微者理也至著者象也體用一源顯微无間觀㑹通以行其典禮則辭无所不備此是一箇理一箇象一箇辭然欲理㑹理與象又湏就辭上理㑹辭上所載皆觀㑹通以行其典禮之事凡於事物湏就其聚處理㑹尋得一箇通路行去若不尋得一箇通路只驀地行去則必有礙典禮只是常事㑹是事之合聚交加難分别處如庖丁解牛雖是奏刀騞然莫不中節若至那難處便著些氣力方得通 |
‘至微者理也 至著者象也 體用一源 顯微无間 觀㑹通 以行其典禮 則辭无所不備’의 此는 이렇게 一箇의 理이고, 一箇의 象이고, 一箇의 辭인 것이다. 그러나 理와 象에 理㑹하고자 함에는 또한 반드시 辭上에 就하여 理㑹하여야 하니, 辭上에 載하는 바가 모두 ‘觀㑹通以行其典禮’의 事인 것이다. 凡의 事物에는 반드시 그 聚處로 就하여 理㑹하고 一箇의 通路를 尋得하여 行去하여야하지, 만일 一箇의 通路를 尋得치 못하고 다만 驀地(곧장 달릴 맥: 갑자기)로 行去일지면 則 반드시 有礙인 것이다. 典禮는 다만 이렇게 常事이다. 㑹는 이렇게 事之合聚인 것으로, 交加가 難한 分别處이다. 마치 庖丁이 解牛에 비록 이렇게 奏刀의 騞然(획연. 백정의 칼 쓰는 소리 획)함에 中節치 않음이 없음과 같이, 萬一 那 難處에 至하여 문득 些(사)의 氣力을 著일지라도 바야흐로 得通인 것이다. |
○汪瑞明說沈元用嘗問尹和靖易傳何處是切要處尹云體用一源顯微无間此是最切要處嘗舉似李先生先生曰尹說固好然雖看得六十四卦三百八十四爻都有下落處方始說得此話若學者未曽子細理㑹便與他如此說豈不誤也 |
汪瑞明이 沈元用에게 說컨대, 일찍이 尹和靖께 問하기를 ‘易傳에 何處가 이렇게 切要의 處인 것입니까?’라 하니, 尹云하기를 ‘體用一源 顯微无間의 此가 이렇게 最로 切要의 處인 것이다.’라 하였다. 일찍이 李先生과 恰似함을 舉할 수 있으니, 先生께서 曰하시길 ‘尹說이 固히 好이다. 그러나 비록 六十四卦와 三百八十四爻가 모두 下落處(행방)를 有하고 있음에 看得이라야 바야흐로 비로소 此話을 說得할 수 있나니, 萬一 學者가 일찍 子細히 理㑹치 않고서 문득 與他의 如此로 說일지면 어찌 誤함이 아니겠는가? |
○臨川吳氏曰至微之理者體也然體之至微而用之至著者已同時而有非是先有體而後有用也故曰一源至顯之象而與至微之理相合為一更无間别非是顯生於微也故曰无間 |
臨川吳氏曰 "至微之理者는 體인 것이다. 그러나 體之至微이어도 用之至著者가 이미 同時로 하여 有인 것이지, 이렇게 先으로 有體인 而後에 有用은 아니기 때문에 故로 一源이라 曰한 것이다. 至顯之象이어도 至微之理와 더불어 서로 合으로 一이 되어 다시 无間别인 것이지, 이렇게 顯이 微에서 生함은 아니기 때문에 故로 无間이라 曰한 것이다.“ |
故善學者求言必自近易於近者非知言者也
故로 善學者는 求言을 必自近하나니 易於近者는 非知言者也라
그러므로 잘 배우는 者는 말을 求함에 반드시 가까운 데서부터 하니 가까운 것을 쉽게(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者는 말(眞理)을 아는 者가 아니다.
朱子曰求言必自近易於近者非知言者也此伊川喫力為人處 |
朱子曰 “求言은 반드시 近으로부터 하여야 하나, ‘易於近者는 知言者가 아닌 것이다.’라는 此는 伊川께서 喫力으로 人을 위한 處인 것이다.” |
予所傳者辭也由辭以得其意則在乎人焉有宋元符二年己卯正月庚申河南程頤正叔序
予所傳者는 辭也니 由辭以得其意는 則在乎人焉이니라 有宋元符二年己卯正月庚申에 河南程頤正叔은 序하노라
내가 說明하는 것은 (周易의) 글이니 글로 因하여 그 뜻을 아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宋나라 元符 2年(1,099) 己卯 正月 庚申日에 河南의 程頤 正叔은 쓰노라.
和靖尹氏曰先生平生用意惟在易傳求先生之學者觀此足矣語録之類出於學者所記所見有淺深故所記有工拙盖未能无失也甞謂祁寛曰汝與其讀他書不若專讀易與其看伊川雜說不若專看伊川易傳易之為書經四聖人乃成皆聖人粹言垂訓後世者也 |
和靖尹氏曰 "先生의 平生用意는 오직 易傳에 在인 것이니, 先生之學을 求하는 者는 此에 觀일지면 足인 것이다. 語録之類는 學者가 記한 바에서 出하였으나, 見하는 바에 淺深으로 有하였기 때문에 故로 記하는 바에 工拙(공졸, 졸렬할 졸)함이 有하여 대개 能히 无失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일찍이 祁寛에게 謂하여 曰하기를 ‘汝는 그 他書를 讀하는 것보다 專으로 讀易함만 못하고, 그 伊川의 雜說을 看함보다 專으로 伊川의 易傳을 看함만 못하다.’라 하였으니, 易之為書는 四聖人께서 이내 成신 것을 經할 수 있으니, 모두 聖人의 粹言으로 後世에 垂訓하신 것이다. |
伊川作易傳意欲傳後者皆極至之言又曰某日讀伊川易傳一卦近来甚覺有與心相契融㑹處又曰學者湏要自得至如伊川易傳吾輩讀時言下㑹解與伊川何異只是不似伊川自得者也自得者更不待思只恁胸中流出 |
伊川께서 易傳을 作하신 意는 後에 傳하고자 한 것으로, 모두 極至之言인 것이다. 又曰 "某日에 伊川의 易傳을 讀함에, 一卦마다 近来에 甚覺하여 心과 더불어 相契의 融㑹處가 有하였다. 又曰 "學者는 반듯 自得이 至하기를 要하여야 한다. 마치 伊川의 易傳에 吾輩(오배, 우리)들이 讀한 時의 言下之㑹解와 같은 경우는 伊川과 더불어 무엇이 異한 것인가? 다만 이렇게 伊川의 自得者와 恰似하지 않을 뿐인 것이다. 自得者는 다시 思를 待하지 않아도, 다만 恁의 胸中에서 流出인 것이다.“ |
○朱子曰伊川先生晚年所見甚實更无一句懸空說底語今觀易傳可見何甞有一句不着實 |
朱子曰 "伊川先生의 晚年에 見하신 바가 甚實이어서, 다시 一句의 懸空說底語도 无하였으니, 今에 易傳을 觀일지면 可見이거늘, 어찌 일찍이 一句라도 着實치 않음이 有하였으리오?“ |
○伊川晚年文字如易傳直是盛得水住 |
伊川의 晚年文字는 마치 易傳이 直으로 이렇게 水住를 盛得임과 같은 것이다. |
○易傳不看本文亦自成一書 |
易傳은 本文을 不看이더라도 또한 自로 一書를 成인 것이다. |
○詩書畧看訓詁解釋文義令通而已却只玩味本文其道理只在本文下面小字儘說如何㑹過得他若易傳却可脫去本文程子此書平淡地慢慢委曲說得更无餘藴不是那㪣磕逼迊出底義理平鋪地放在面前只如此等行文亦自難學如其他峭拔雄健之文却可做若易傳淡底文字如何可及 |
詩書에는 畧(략)=略(략)으로 訓詁의 解釋을 看일지면 文義에 通하게 할 수 있을지나, 도리어 다만 本文을 玩味일지면 그 道理는 다만 本文에 在인 것이고, 下面의 小字는 如何로 㑹過이어야 得他일 것인가에 儘說인 것이다. 마치 易傳과 같은 경우에는 도리어 可히 本文을 脫去이어도, 程子의 此書는 平淡의 地로 慢慢(만만, 천천히)이 委曲에 說得하여 다시 餘藴(여온, 쌓을 온)이 无인 것이다. 那 㪣磕(고개, 두드릴 고, 부딛치는 소리 개)와 逼迊(핍잡, 두루 잡)으로 出底義理가 아니라, 平鋪(평포)의 地가 面前에 放在인 것이나, 다만 如此等의 行文(글을 지음)은 또한 自로 難學인 것이다. 마치 그 他의 峭拔의 雄健한 文과 같은 것은 도리어 可히 做할 수 있지만, 마치 易傳의 淡底文字와 같은 것에 如何로 可히 及할 수 있으리오? |
* 迊(잡)=帀(잡)=匝(잡)=迎(영) 동자(同字). * 峭拔초발: 문체가 웅장함: 가파를 초, 뽑을 발. |
○易傳明白无難看處但此是先生以天下許多道理散入六十四卦三百八十四爻之中將作易看即无意味湏將来作事看即句句字字有用處耳 |
易傳은 明白히 難看의 處가 无인 것이다. 다만 此는 이렇게 先生께서 天下의 許多한 道理를 六十四卦와 三百八十四爻之中으로 散入하여 놓으신 것이다. 作易으로 將하여 看일지면 即 无意味일지나, 반드시 將来의 作事로 看일지면 即 句句字字마다 用處가 有일 뿐인 것이다. |
○問易傳大槩將三百八十四爻做人說恐通未盡否曰也是即是不可装定做人說看占得如何有就事言者有以位言者以吉凶言之則為事以終始言之則為時以髙下言之則為位随所作而看皆通繫辭云不可為典要唯變所適豈可装定做人說 |
問컨대, 易傳은 大槩 三百八十四爻를 將하고서 人을 위하여 說하였던 것은 通에 未盡일까에 恐한 것입니다. 否입니까? 曰 "또한 이렇게(是) 이와 같이(即是) 人을 위해서 說한 것이라 装定(장정)하여서는 不可한 것이다. 占得이 如何인가에 看일지면, 事에 就하여 言한 것도 有이고, 位로서 言한 것도 有이다. 吉凶으로서 言之일지면 則 事가 되고, 終始로서 言之일지면 則 時가 되며, 髙下로서 言之일지면 則 位가 되기도 하니, 作한 바로 随하여 看일지면 모두 通인 것이다. 繫辭(下第八章)云하길 ‘典要로 삼아서는 不可하니, 오직 適하는 것마다 變함이다.’라 하였으니, 어찌 可히 人을 위한 說이라 装定할 수 있겠는가?“ |
○易傳難看其用意精密道理平正更无抑揚若能看得有味則其人亦大段知義理矣盖易中說理是預先說下箇未曽有底事故乍看甚難 |
易傳은 難看인 것이다. 그 用意가 精密하고 道理가 平正하여, 다시 抑揚함이 无인 것이다. 만일 能히 看得하여 有味일지면, 則 그 人은 또한 大段의 知義理인 것이다. 대개 易中의 說理는 이렇게 預로 下箇의 아직 일찍이 有하지 않은 事에 先說이기 때문에, 故로 乍(사)로 看함이라도 甚難인 것이다. |
○問看易傳曰此書難看湏經歴世故多識盡人情物理方看得入盖此書平淡所說之事皆是見今所未甞有者如言事君處及處事變患難處今皆未甞當著可知讀時无味盖他說得闊逺未有底事預包載在此學者湏讀詩書他經自有箇見處及曽經歴過前件此等事方可以讀之得其无味之味盖其間義理闊多伊川所自發與經文又似隔一重皮膜所以看者无箇貫穿處 |
易傳을 看함에 問합니다. 曰 "此書는 難看이니, 반드시 世故를 經歴하여 多識하고 人情과 物理에 盡이라야 바야흐로 入함을 看得할 수 있는 것이다. 대개 此書에 平淡으로 說하고 있는 바의 事들은 모두 이렇게 今에 아직 일찍이 有하지 않은 것을 見한 것이니, 마치 事君處와 事變患難處에 處함을 言한 경우와 같이 今에 모두 일찍이 當著치 않음이더라도 可知인 것이다. 讀時에 无味함은 대개 他의 說得이 闊逺으로 未有底事를 預包하여 載로 在此이기 때문이다. 學者는 반드시 詩書와 他經을 讀하여 自로 箇의 見處를 有하고, 일찍이 前件의 此等事를 經歴으로 過함에 及하여야 바야흐로 可히 讀之하여 그 无味之味를 得할 수 있는 것이다. 대개 그 間의 義理가 闊多하니, 伊川께서 自發하신 바는 經文과 더불어 또한 흡사 一重의 皮膜으로 隔인듯하니, 看해야하는 所以인 것은 箇 貫穿의 處를 无하여야 한다.“ |
○易傳湏先讀他書理㑹得義理了方有入路見其精密處盖其所言義理極妙初學者未曽使著不識其味都无啟發如遺書之類人看著却有啟發處非是易傳不好是不合使未當看者看湏是已知理義者得此便可磨礲入細此書與學者非是啟發工夫乃磨礲工夫 |
易傳에는 반드시 他書에 先讀하여 理㑹로 義理를 得了이어야, 바야흐로 入路를 有하여 그 精密의 處를 見할 수 있는 것이다. 대개 그 言하고 있는 바의 義理는 極히 妙하여 初學者가 일찍이 著하게 할 수 없으며, 그 味를 不識이면 모두 啟發함이 无인 것이다. 마치 遺書之類와 같은 경우는 人이 看著일지면 도리어 啟發의 處를 有할 수 있으니, 이렇게 易傳이 不好함인 것이 아니라, 이렇게 不合이면 아직 當看할 수 없게 할 뿐인 것이다. 看에는 반드시 이렇게 이미 理義에 知한 것으로 得此일지면, 문득 可히 磨礲(갈롱, 갈고 닦아서)하여 細에 入할 수 있는 것이다. 此書는 學者와 더불어 이렇게 啟發의 工夫가 아니라, 이내 磨礲의 工夫인 것이다. |
○呂伯恭謂易傳理到語精平易的當立言无毫髪遺恨此乃名言 |
呂伯恭(宋, 呂祖謙)이 謂하길 “易傳은 理가 語精에 到하고, 平易的當의 立言은 毫髪의 遺恨도 无하니, 此는 이내 名言인 것이다.”라 하였다. |
○伯恭多勸人看易傳一禁禁定更不得疑著局定學者只得守定此箇義理固是好但縁此使學者不自長意智何縁㑹有聦明 |
伯恭은 多로 人이 易傳에 看할 것을 勸하였다. 한결같이 禁을 禁해서 定해지면 다시 疑著할 수 없는 것이다. 局이 定해짐에 學者는 다만 守定을 得하여야 하니, 此 箇의 義理가 固히 이렇게 好인 것이나 다만 此에 縁하여야 하는 것이다. 學者로 하여금 自로 意와 智를 長케 하지 못할지면, 무엇을 縁㑹하여 聦明함을 有할 수 있겠는가? |
○伊川言理甚備象數却欠在 |
伊川께서의 言理에는 甚備(심비, 준비를 단단히 하다)이나, 象數에서는 도리어 欠在(흠재)이다. |
○易傳義理精字數足无一毫欠闕只是於本義不相合易本是卜筮之書程先生只說得一理又曰某本義只是卜筮大綱若義理充實遍滿離不得程夫子書也 |
易傳의 義理는 精字가 數足이어서 一毫의 欠闕이라도 无이나, 다만 이렇게 本義와는 不相合인 것이다. 易은 本으로 이렇게 卜筮之書이나, 程先生께서는 다만 一理로 說得하신 것이다 又曰 "某의 本義는 다만 이렇게 卜筮의 大綱인 것이나, 마치 義理의 充實과 遍滿과 같은 것에는 程夫子의 書에 離해서는 不得인 것이다. |
○書易傳後曰易之為書更三聖人而制作不同若包犧氏之象文王之辭皆依卜筮以為教而其法則異至於孔子之贊則又一以義理為教而不專於卜筮也是豈其故相反哉俗之淳漓既異故其所以為教為法不得不異而道則未甞不同也然自秦漢以来考象辭者泥於術數而不得其弘通簡易之法論義理者淪於空寂而不適乎仁義中正之歸 |
易傳을 書한 後에 曰하기를‘易의 書됨은 다시 三의 聖人이었으나 制作함에는 不同이었으니, 마치 包犧氏之象과 文王之辭와 같은 것은 모두 卜筮에 依하여 教를 삼았으나, 그 法함에 있어서는 則 異인 것이었다. 孔子之贊에 至해서는 則 또 한결같이 義理로서 教를 삼아 卜筮로만 專하게 하지 않으셨으니, 이렇게 어찌 그 故가 相反일 수 있는 것인가? 俗의 淳漓가 이윽고 異하였기 때문에, 故로 그 教를 삼고 法을 삼음에 異하지 않을 수 없었던 所以인 것이나, 그러나 道에 있어서는 則 일찍이 同하지 않음이 없었다.’라 하였다. 그러나 秦漢으로부터 以来로 象辭를 考하는 者들은 術數로만 泥하여 그 簡易之法에 弘通할 수가 없었고, 義理를 論하는 者들은 空寂에 淪하여 仁義의 中正之歸에 適하지를 못하였다. |
* 淳漓순리: ① 진한 술과 연한 술(醇醨) ② 두꺼움과 얇음 ③ 후함과 박함. (순박할 순, 엷을 리) |
求其因時立教以承三聖不同於法而同於道者則惟伊川先生程氏之書而已後之君子誠能日取其一卦若一爻者熟復而深玩之如已有疑將決於筮而得之者虚心端意推之於事而反之於身以求其所以處此之實則於吉凶消長之理進退存亡之道將无所求而不得邇之事父逺之事君亦无處而不當矣 |
그 時로 因함을 求하여 立教함으로서 三聖께서 法에서 不同함과 道에서 同함을 承한 者는 則 오직 伊川先生의 程氏之書(易傳)일 뿐이었다. 後之君子가 誠으로 能히 日로 그 一卦를 取하여 마치 一爻者마다 熟復하고 深玩之일지면, 마치 이미 有疑일지라도 將차 筮에서 決하여 그것을 得之일 수 있을 것이다. 虚心端意로 事에 推之하고 身에 反之함으로서 그 此之實로 處할 수 있는 所以를 求일지면, 則 吉凶消長之理와 進退存亡之道에서 將차 求함에 不得하는 바가 无하게 될 것이고, 邇之하게는 事父와 逺之하게는 事君에 있어서 또한 處마다에 不當함이 없게 될 것이다. |
○東萊呂氏曰伊川先生遺言見於世者獨易傳為成書傳摹浸舛失其本真學者病之某舊所蔵本出尹和靖先生家摽注皆和靖親筆近復得新安朱元晦新訂讐挍精甚遂合尹氏朱氏書與一二同志叅合其同異兩存之以待知者 |
東萊呂氏曰 "伊川先生의 遺言이 世에 見하였던 것은 獨으로 易傳으로 成함이 되었다. 書를 傳摹(전모, 베낄 모)함에 浸으로 그 本真을 舛失(천실, 어그러질 천)이었더니, 學者들이 그것을 病之로 여겼다. 某가 舊에 蔵했던 바의 本을 尹和靖先生家에 出하니 摽注마다에 모두 和靖께서 親筆로 하셨고, 近에 다시 新安 朱元晦(朱子)를 得하니 新으로 讐(대답)를 訂(정, 바로잡다)하고 精에 挍(견주다)하기를 甚하였건대, 드디어 尹氏와 朱氏書를 合하여 一二의 同志를 함께하고 그 同異를 叅合(참)하여 兩으로 存之하고서 知者를 待하였다.“ |
○臨川吳氏曰上古聖人作卦象以先天而其體備於八八作蓍數以前民而其用衍於七七八八之象本於一而一无體七七之數始於一而一不用合卦與蓍是之謂易中古聖人體卦用蓍繫之彖繫之爻其辭雖為占設然擬議所言理无不貫推而行之占云乎哉秦漢而下泥術數者陋演辭義者泛而易道晦矣 |
臨川吳氏曰 "上古의 聖人께서 卦象을 作하심은 先天으로서 하였고, 그 體는 八에다 備해 놓았다. 八은 蓍數를 作함으로서 前民케 하였고, 그 用은 七七에 衍하였다. 八八之象은 一에서 本이나 一은 无體인 것이고, 七七之數는 一에서 始하였으니 一은 不用인 것이니, 卦와 蓍를 合하여 이것을 謂하여 易이라 한다. 中古의 聖人께서 體卦用蓍하여 繫之彖繫之爻하였으니, 그 辭가 비록 占을 위하여 設한 것이나 그러나 擬議로 言한 바의 理는 貫치 못함이 无인 것이니, 推而行之할 수 있거늘 占이라고만 云할 수 있겠는가? 秦漢 而下로 術數로만 泥한 者는 陋하고, 辭義로만 演(펼칠연)한 者는 泛하였으니, 易道가 晦하게 되었다. |
至邵子極深卦象蓍數之原而易之道大明夫子以来一人而已而於文王周公之辭有未暇及也若程子之傳則因文王周公之辭以發其真知實踐之理推之為修齊治平之用宜與三古聖人之易而為四非可以傳註論也 |
邵子께서 卦象과 蓍數(시수)의 原을 極深함에 至해서야 易之道가 大明하였으니, 夫子 以来로 一人 뿐이었다. 그러나 文王周公之辭에 있어서 아직 及할 겨를이 없음이 有함에는, 마치 程子之傳과 같은 것은 則 文王周公之辭로 因하여 그 真知와 實踐의 理를 發함으로서 推之하여 修齊治平之用宜로 삼을 수 있게 되었으니, 三古의 聖人之易과 더불어 四가 되거늘, 可히 傳註로서만 論할 수 있겠는가? |
* 程頤(정이, 1,033~1,107年): 中國 宋나라 道學의 代表的인 學者의 한 사람이다. 兄인 明道(명도) 程顥(정호)와 더불어 性理學과 陽明學 源流의 한 사람이다. 字는 正叔(정숙). 兄인 明道보다 1年 늦게 河南(하남, 現在의 허난성에 속함)에서 出生하여 伊川先生(이천선생)으로 呼稱되었다. |
出處 "Google, cafe.daum.net/human-inquiry, <韓國學中央硏究院 藏書閣>, <위키백과>, |
易傳序 (단산학당) |
황창연 신부님의 '삶 껴안기' 북콘서트 |
심수봉 백만송이 장미 |
***** 2019.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