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결속을 다지고 사제 간의 정을 나눌 기회를 가지고자 1박 2일 사제동행 우정 캠프와 전주일기를 기획하였다.
담임 선생님들은 머리를 맞대고 장소 선정과 프로그램 운영에 대해, 그리고 예산 사용계획에 대해 고민을 하였다.
하여 아래와 같이 그 계획을 세웠다.
장소는 전주로, 주 내용은 문화 체험이다.
현재 학교가 시골에 있어 평소에 다양한 문화를 접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가까운 도시 전주로 나가 문화 체험의 기회를 주고자 하였다.
첫날 저녁부터 둘째 날 오전까지는 나와 김효* 선생님이 둘째 날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방미* 선생님이 학생들과 함께하신다.
학생들은 신이 났는지 출발할 때부터 들떠 있다.
일단 선생님들의 차량으로 전주로 이동하여 영화의 거리 옆 라마다 호텔에 짐을 푼 후 시내로 나간다.
영화의 거리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공간으로 다양한 볼거리가 많다.
4월 말 5월 초에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린다고 하니 한 번 더 방문하고 싶다.
꼬르륵거리는 배고픈 배를 주려 잡고 학생들이 겹살이를 먹고 싶다고 하여 가까운 고깃집으로 향한다.
뜨거운 불판에 다양한 고기(삼겹살, 목살, 항정살 등등)를 쉴 새 없이 굽는다.
역시 한창때의 청소년들이라 어마어마하게 먹는다.
행여 밥 먹는 패턴이 끊어질세라 선생님들은 쉴 새 없이 고기를 구워 학생들 앞접시에 덜어준다.
아이들은 이게 고마웠는지 “잘 먹겠습니다.”를 연발한다.
그래 어서어서 먹그라...
학생들 입에 들어가는 고기를 보면 마냥 흐뭇하다.
내 자식들 같다.
더는 도저히 못 먹겠다는 학생들의 대답에 식당을 나온다.
배부른 배를 소화시키고자 이번엔 볼링장으로 고고씽.
선생님 한 분씩을 포함하여 팀을 두 팀으로 나눈다.
학생들은 볼링을 처음 쳐본다고들 하였지만.
평소 갈고닦은 운동 실력 때문인지 공을 가운데로 잘도 굴린다.
뭐 없다.
그냥 잘 굴려서 많이 쓰러트리면 된다.
핀이 넘어가는 소리에 기분이 좋은지 환호성을 지르고 하이 파이브를 해댄다.
교실에서는 힘이 없던 학생들이 밖에 나오면 힘이 넘치는 것은 왜일까?
기분 좋게 볼링장을 나와 이번엔 극장으로 향한다.
양준* 학생의 강력한 추천으로 ‘앵커’라는 영화를 보았다.
코로나로 인한 것인지 다행히 사람이 우리뿐이다.
그 넓은 극장을 우리가 다 쓴다.
거리두기 한다고 다들 멀찍이 떨어져 아주 편안하게(?) 영화를 본다.
초반에는 약간 무서운 부분이 나와서 그런지 남학생들이 무섭다고 깜짝깜짝 놀란다.
귀여운 것들... 뭐시 무섭다고...
근데 무서운 장면이 나오니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영화는 뒷부분에서 무언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참 심오하고 어려운 영화이긴 했지만, 학생들은 그래도 재미있었는지 표정이 밝다.
무서운 부분이 나올 때, 쫄았다고 서로를 놀리고 있다.
나오니 밖엔 사람이 거의 없다.
시간을 보니 11시다.
다들 집으로 돌아갔나 보다.
주말 저녁인데도 요즘엔 코로나 때문인지 거리가 한산하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 루미나에리 불빛이 너무 예뻐 모두 모여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첫날은 마무리되고 피곤한 육신을 이끌고 숙소로(전주 라마다 호텔) 들어간다.
학생들 방에서 사제 간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가진다.
간식을 시켜놓고 학교생활에 대해, 진로에 대해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이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이 시간은 주로 학생들이 이야기한다.
이런 시간들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선생님이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해줄 수는 있지.
그게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한참 나누며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오늘은 학생들도 나도 행복하게 잘 자겠지?
오래간만에 참 피곤하다.
눈을 감자마자 쿨쿨이다...
여기서부터는 둘째 날, 방미옥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더위가 몰려오는 토요일 아침.
아이들을 만나러 일찍 서둘러 갔는데 애들은 잠에서 못 깨어나 밑에서 기다렸다.
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기다리다가 오수행 차표를 미리 예매했다.
놀라운 사실.
이제는 좌석, 차 시간이 없다.
그냥 표만 예매하면 차를 어느 것이든 탈 수 있다.
그만큼 이용객이 적다는 의미인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코로나 19전에는 시간이 명시되어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춰야했는데...
애들을 만나 애들에게 아침으로 편의점에서 먹고 싶은 것을 먹게 한다기에.
영어 선생님과 같이 이동했다.
하지만 식당을 보더니 편의점이 아닌 식당에서 부대찌개를 먹는단다.
든든하게 밥으로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드디어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애들이 별로 안 좋아할 것을 알지만 최명희의 무덤이 있는 '혼불 문학 공원'으로 출발했다.
전주 시내에서 이뤄지는 전주일기는 이동 거리가 가까워서 참 좋다.
9시 30분쯤 공원은 참으로 청명했다.
새소리도 나고...
어린이 회관 옆에 있는 공원은 철로 된 계단으로 시작하여 싫은 기색이 있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흔들리는 계단에 애들은 즐거워한다.
연초록이 하늘을 가려 아침 햇볕은 군데군데만 비칠 정도로 비치니 초록이 가득하다.
길지 않은 공원을 내려가 소설가 최명희 씨의 묘소를 참배하고 주변의 야생화를 탐색하다가 혼불 문장 의자에 새긴 글귀를 돌아가면서 읽어보았다.
시간의 더께가 앉아 흐려진 글씨를 애써 읽어내려는 모습에서, 그 노력을 읽어낼 수 있어 참 좋은 시간이었다.
초록을 뒤로하고 동물원으로 서둘렀다.
2년간 닫혀 있던 동물원이 개장하여 어린이들로 가득할 것을 예상하니 조금 서두르게 되었다.
역시.
밀린다.
동물원 가는 길은 헬륨 풍선이 격하게 맞이한다.
누구도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가득한 풍선.
우리는 지나쳤다.
애들은 아무도 탐을 내는 아이가 없었다.
동물원 안에 들어서니 튤립이 한창이라 형형색색으로 반긴다.
우리 학교 튤립은 아직도 필 기색이 없는데, 너무 대조적이다.
처음 간 곳은 흑고니가 있는 곳, 이어서 애조 불곰, 원숭이, 침팬지 등등을 만났다.
아이들에게 주었던 미션-공부하고 관찰하고 싶은 동물을 더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하기-을 위해(정한 동물은 코끼리, 사자, 미어캣, 아메리카 들소) 돌면서 못 본 곳을 다시 더터서 사자, 미어캣, 아메리카 들소를 관찰했다.
사자는 의외의 포즈(쩍벌사자)로 잠을 자고 있어서 우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어서 간 드림랜드.
보자마자 시시해서 탈 것도 없다더니 바이킹-회전그네-귀신의 집 순으로 경험하고 동물원을 나섰다.
점심은 전주의 맛집 '금암면옥'.
한창 바쁜 시간이 지나간 1시 넘어서 가니 빨리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세계 책의 날은 맞아서 간 '전주일기'의 하이라이트 시립도서관과 동네 책방을 향해 나섰다.
전주시립도서관(금암본관)은 이번에 리모델링을 해서 개관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애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휴일이었지만 시험 기간이 곧 닥쳐서인지 중고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많았다.
어린이실에서 그림책도 읽고 옥상 테라스에서 전주 시내 전경도 보고, 사진도 찍고, 책은 빌리지는 못하고 보고만 나왔다.
가까운 곳에 있는 동네 책방 '잘 익은 언어들'에 데리고 가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게 했다.
상민이는 '파타고니아'라는 꽤 두꺼운 책을 자랑스럽게 들고 오고, 상길이는 이수지 작가의 비닐에 싸인 그림책을 들고 온다.
오~ 애들의 책을 고른 안목이 높다.
준수, 진훈이는 '불편한 편의점'을 샀다.
친절한 책방지기님의 엽서선물도 받고.
서둘렀지만 역시 영화관람 시간에 쫓기게 되었다.
전주 독립영화관은 전주의 자랑이다.
오늘은 전주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다닌 것 같다.
오늘 볼 영화는 '태어나길 잘했어'다.
전주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라는 것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사춘기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라서 고른 영화다.
시간에 겨우 맞춰서 들어간 극장.
이곳은 참으로 쾌적하다.
광고도 없고 음식물 냄새도 없어서 좋다.
다음 달에 있을 국제 영화제 준비로 왔다 갔다 하는 스텝들의 모습도 보여서 영화제 할 때 다시 와도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영화는 좋았는데 어제 늦게 자서 잠이 온다는 애들을 더 깨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영화는 나만 감동적으로 보았던 것으로 하고 애들에게는 간단히 줄거리를 얘기해주었다.
간간이 보았던 아이는 오늘 갔던 동물원의 드림랜드가 나왔다면서 얘기한다.
아이들에게 우리 고장의 아름다움과 자랑거리를 가슴에 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끝나고 17시 53분 차를 타기 위해 또 부지런히 움직였다.
오수에 도착해서 마을버스까지 잘 타고 집에 무사히 들어갔다는 한 아이의 카톡으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열하일기'를 읽고 계획한 '전주일기'는 이렇게 우리의 추억 노트에 아로새긴다.
#시골중학교 #임실지사중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