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부활주일 설교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마태복음 28:1~10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부활주일입니다. 우리가 해마다 부활주일을 맞이하기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잘 알지만, 오늘은 부활의 아침에 있었던 일을 살피면서 그 속에서 중요한 영적 교훈과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가장 먼저 짚고 갈 것은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의미적인 부활, 교훈적인 부활이 중요하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런 속임수에 마음을 뺏기면 안 됩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믿음의 근거로 삼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참에 우리 함께 믿음을 고백해 봅시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이 역사적인 사실로 믿습니까?” 아멘.
1. 사랑이 두려움을 이겼다
오늘 첫 번째로 나눌 말씀은 사랑이 두려움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금요일 오후에 예수님을 장사하고 나자 곧 안식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음력을 사용하므로 달이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가 하루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토요일이 아니라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입니다. 안식일에는 물건을 살 수가 없어서 토요일 저녁에 여인들이 향품을 사다 놓고 일요일 새벽을 기다렸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 야보고의 모친 마리아, 살로메(마가복음), 요안나(누가복음), 또 다른 여인(누가복음)이 무덤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여인들이 새벽 미명에 출발했는데 무덤에 도착했을 때쯤 해가 돋았습니다.
새벽에 산으로 올라간 그 여인들은 두려움이 없었을까요? 여인들은 유대인에게 잡혀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무덤 돌을 어떻게 굴려내는가 하는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무덤 문은 장정 5명이 힘을 모아야 옮길 수 있는 돌이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어떻게 하여 이렇게 담대했을까요? 요한복음 20:19을 보면 남자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잠그고 있었는데 말이죠. 때로 여자는 남자보다 강합니다. 여자가 강한 이유는 힘이 세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기에 여인을 강합니다. 여자들은 남자보다 충성스럽고 더 헌신적입니다. 다섯 명의 여인들은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여러분은 어떠세요? 여러분은 사랑으로 두려움을 이기시나요? 아니면 두려움 때문에 사랑과 믿음과 헌신을 버리시나요? 우리는 때로 그만 사랑하고 싶고, 그만 헌신하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전날 밤에 큰 두려움이 있었지만 사랑 때문에 이겼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면 우리도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란 죽을까 봐 생기는 것인데 우리는 부활을 소망하기에 죽음의 공포를 이길 수 있습니다.
Repeat: 예수님 사랑하다가/ 죽을까 봐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으로 두려움을 이기게 하소서.
2. 무덤은 비어 있었다
오늘 두 번째로 나눌 이야기는 무덤은 비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장례식은 바리새인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했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준비한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돌을 파서 만든 무덤에 가족들을 차례대로 장사하는데 요셉은 부자라서 자기를 위해 새 무덤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께 바친 것입니다.
예수님이 묻힌 무덤이 새 무덤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무덤이 다른 사람을 장사한 적이 없는 새 무덤이었기에 무덤 문을 열었을 때 빈 무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까지 세밀하게 준비하고 예언하셨습니다.
(사 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요 19: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3. 예수님 부활이 내 부활
오늘 세 번째로 나눌 말씀은 예수님 부활이 내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빛나는 옷을 입은 두 청년이 돌을 굴러내고 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2절, 눅 24:4). 그 모습을 보고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이 기절해 버렸습니다(4절).
마태복음 27:66을 보면 빌라도 대제사장의 이름으로 무덤을 인봉하고 경비경을 세워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권세자의 이름으로 무덤을 인봉(印封)한다고 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어찌 막는단 말입니까?
헛되이 지키네. 예수 내 구주. 헛되이 봉하네. 예수 내 주.
여인들이 무덤에 갔을 때 천사들이 돌문을 열어놓고 있었습니다(눅 24:2).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천사들이 무덤 문을 연 것은 예수님이 나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무덤을 열었을 때 이미 예수님은 무덤 속에 없었습니다. 천사들이 무덤을 연 것은 그 속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무덤 문으로 걸어 나오셨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문을 열어드려야 나올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만질 수도 있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데 물체도 통과하시는 신비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도 이런 신비한 몸을 입게 될 줄 믿습니다.
(고전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여러분은 반드시 주의 능력으로 죽음을 이기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나면 모든 죽은 자가 일제히 부활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죽음이 절망이 아닙니다.
(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천사들을 세계 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 얻은 성도들을 모으리. 나팔 불 때 나의 이름(*3)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4. 보고 믿는 것이 아니다
네 번째로 드릴 말씀은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보고 믿겠다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말입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무덤이 열린 것과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두 천사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증언했습니다(6절). 여인들은 무덤이 빈 것을 보고 천사의 말을 들도 제자들에게 그 말을 전하려고 달려갔습니다(8절).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보고서 믿는 것이 아니라 듣고 믿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자신이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믿어야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요 1:1). 그리고 말씀이신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세상 만물을 만드셨습니다(요 1:3).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사람들은 눈으로 본 것만 믿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천국을 봤느냐, 예수님이 부활하는 것을 봤느냐고 따집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자꾸만 보았느냐고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은 생각이 있어?” “당신은 부모님을 사랑하나?”
“생각 좀 보여줘. 사랑 좀 보여줘.”
사람의 생각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영혼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안 보이지만 그 남자 혹은 그 여자가 날 사랑한다는 말을 믿고 결혼해서 일평생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이 공간에 가득 찬 전파도 보이지 않습니다.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선에도 전류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쉬지 않고 숨 쉬는 공기가 보이지 않지만 안 보이는 산소 덕분에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믿는 증거는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믿는 것을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면서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하였습니다(7절). 그래서 여인들은 이 소식을 전하려고 달려갔습니다(8절).
왜 부활 소식을 빨리 전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믿기 힘든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부활 소식을 전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온 인류를 살릴 놀라운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면 반드시 무슨 반응이 있습니다. 믿겠다고 하든지 반발하든지 반응이 있습니다. 그 반응에 여러분이 대답할 말을 알려드리겠습니다.
5. 경비병 신자의 간증
마지막으로 나눌 말씀은 경비병 출신 신자들의 간증입니다.
천사의 모습을 보고 기절했던 경비병들이 깨어나서 보니까 무서운 모습의 천사도 이미 사라졌는데 무덤은 열려있고 자기들이 지켜야 했던 예수님의 시신은 없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그들은 이제 큰 벌을 받게 생겼습니다. 어쨌던 빨리 보고해야겠다 싶어서 대제사장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보고를 받은 대제사장의 반응은 매우 뜻밖입니다. 그들은 경비병에게 벌을 주는 대신 오히려 돈을 주었습니다. 그것도 많이 주었습니다(12절).
그리고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우리가 졸 때 제자들이 예수 시신을 도둑질하여 갔다고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줄 아십니까?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선생님이 모든 반 아이들에게 손들고 눈감으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에 한 아이가 옆 친구 눈 떴다고 일러바쳤습니다. 그때 내가 말했습니다. “니는 우째 알았노?” 그러자 선생님 말했습니다. “맞다. 니는 우째 알았노?” 선생님도 처음에는 일러주는 아이도 눈을 떴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나 봅니다. 이렇게 똑똑한 내가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다면 경비병에게 물었을 것입니다. “너희들이 졸았다면서 훔쳐 가는 것은 우째 봤노?”
그런데 여러분, 대제사장이 경비병에게 돈을 주며 거짓말 하라고 시킨 것을 마태가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 말을 전한 사람은 바로 경비병들입니다. 천사의 모습을 본 것도 경비병들입니다. 2절은 경비병들이 기절하기 전에 본 내용입니다. 경비병은 누구보다 확실한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마태는 경비병 출신 신자들의 간증을 듣고 이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예수님이 부활하는 것을 누가 보았느냐고 하면 기죽지 말고 경비병들이 보았다고 알려주세요. 그들은 번개 같은 형상으로 흰옷을 입은 천사가 와서 무덤의 돌을 굴러내는 장면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돈을 받고 거짓말을 했지만 결국 회개하고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습니다. 지금 승천하신 예수님은 잠시 후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영원한 새 나라에서 살게 하실 것을 믿고 모든 죄와 유혹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