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65ㅡ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사소)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양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넘실 넘실 밀려왔다. 두 해전 코로나를 겪는 통에 양 선생님을 갑자기 보내고도 누구랑 만나 그리움을 나누지 못했다. 그래서 이 년이 지난 지금에야 양 선생님의 옛 남자친구에게 불현듯 전화를 걸었다. 양 선생님이 떠나신 후, 두 해를 꼬박 앓으셨다는 김 선생님. 김샘은 누워서 무의미한 호흡만 할 바에야 차라리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했더란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들을 낳고 집을 나가버려서, 눈도 채 뜨지 못하는 어린 것들을 먹여야 돼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대나무를 쪼개기 시작했더란다. 하나둘 하다보니 결국 장에 내다 팔 정도로 많아지더란다.
양 선생님이 생전에 얼마나 순수했는지, 해남 집 뒤꼍이며 화장실 기둥이며 시구를 써 놓으셨던 것을 함께 떠올렸다. 김 선생님이 만드신 커다랗게 창, 그 안에 나무며 풀꽃이며 사시사철 풍경이 눈가득 들어오는 부엌을 회상했다. 20여 년 전, 두 분이 같이하시기 위해 6만 원에 촌집을 빌리셨던 얘기며, 버린 냉장고를 가져와 신발장으로 쓰셨던 것을 나는 기억했다. 버린 장롱을 주워와 멋지게 아트를 하셨던 두 분. 거기선 고양이고 토끼고 강아지고 평화롭게 같이 살았었다. 십여년 전, 양샘은 내게 손바닥만한 닭 종이 공책에 페이지마다 꽃잎을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붙여 보내주셨다. 빈 곳을 내 꿈으로 채우라고 손수 묶어 편지와 함께 보내셨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 결혼은 하지 말고 연애만 하고 살라고 했었다. 양샘이 보내주셨던 노트며 초란 얘기며, 아직도 보물처럼 아껴먹고 있는 간장 얘기를 하고 나니 이제 좀 후련해진다.
두 분은 언제고, 누구고, 무슨 이유인지 묻지 않고 원하면 며칠이고 머물 수 있는 쉼터를 꿈꾸셨고, 만드셨었다. 어느 젊은 날 찾아간 그 곳에서, 낮에는 함께 밭일이나 노동을 하고, 밤에는 같이 부뚜막 앞에서 고요하게 불꽃을 하염없이 들여다봤지. 어느날은 마당에서 별 총총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와 꿈과 삶에 대해 얘기했었지. 그러다보면 파랗게 동이 터오기도 했었다. 그날 새벽, 아랫집에선 아기 돼지가 태어났었다. 키위 한 알에는 칠 팔백 개의 씨앗이 있고, 키위 씨앗하나가 한 그루 나무가 되고, 그 나무는 이천팔 백 개의 열매를 맺는다는 씨앗의 기적을 얘기하셨었지. 양샘과는 몇 해에 한 번씩 이렇게 불현듯 연락을 했다. 내가 중년이 돼고 양샘은 노년이 돼서 도시에서 여고생처럼 다시 만나기도 했다. 양샘과 이대 아트 하우스 모모에서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 도리스 되리 감독] 영화를 보기 위해 함께 뛰어갔던 그 거리의 숨가쁨, 세상은 여전히 신비롭고 기적이라는 양 선생님의 쟁쟁한 웃음소리, 황토 흙이 묻은 까슬한 열무를 밭에서 금방 뽑아와 끓여주셨던 구수한 된장국 냄새, 발갛게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너무도 아름다운 석양 노을. 아쉽고 그리운 것은 모든 게 씨앗으로 남았구나!
첫댓글 그분이 사소님 마음에도 씨앗 하나 남기셨군요.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많은데, 어떻게 이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랑 후에 남은 씨앗은 사랑으로 꽃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