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걸핏하면 삐치는 성격이다. 아내가 나에게 이 옷 입어라 저 옷 입어라 이것 손대지 마라 저것 손대지 마라 하고 잔소리하는데 그때마다 반발하거나, 거부하면 더 괴로워지니 대부분 고분고분 따르려 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경우에 따라서 약 30초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빈정 상한 상태가 된다. 또한 친구들과 카톡방에서도 내가 뭔가 의미를 담아서 말을 했는데 아무도 대응하지 않고 무관심당하거나 어떤 녀석이 대놓고 반박하면 마음속으로 상당히 빈정이 상한다. 그러면 두 달 반 정도 그 카톡방에 나도 아무 말도 안 함으로써 소심한 복수를 실행한다.
‘기분이 상했다’, ‘삐쳤다’, ‘토라졌다’, 전라도 사투리로는 ‘꼴았다’ 등의 표현은 비슷한 의미이지만, 거기에 비교적 최근에 TV 등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빈정 상했다’는 표현이 표준어는 아니지만 ‘감정이 약간 치사하게 상했다’는 뉘앙스를 잘 나타내주는 것 같다. 나의 이모(*주의: 李 某가 아님)는 어린 시절 잘 삐쳤던 나의 그런 모습에 대해 내가 ‘팩하는’ 성질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내 딴에 그런 나의 성격적 좀스러움을 개선하기 위해서 나름 남몰래 애도 써보지만 그다지 실질적인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편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 비교적 너그러운 편이며, 나의 잘못에 대해 지적하면 쉽게 즉석에서 인정하는 편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래도록 꽁하거나 꿍하지 않는다.
경기민요의 대가인 김영임 명창의 주 레파토리인 「태평가」의 가사의 앞부분과 후렴구는 이렇다.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바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나 좋다
짜증이 난 상태는 마음이 불편한 상태이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 상태이다. 성화가 바친 상태는 스트레스 지수가 몹시 높아진 상태이다.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그런 상태들이 우리의 마음과 몸의 건강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될수록 마음속에 그런 것들을 덜 품고 평정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러나 살다보면 자주 감정적 평정 상태가 깨어지고 흔들리게 된다. 아니, 평소에 그런 평정 상태가 거의 불가능하다. 모든 경우에 세상일이 나의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우울하고 불행해진다. 그래서 아예 마음속에 뜻을 품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도 해보지만 그건 더욱 불가능하다. 그게 소위 도 닦는 행위이고 마음의 수양이다. 절의 스님들은 그런 수양을 업으로 삼는다. 결가부좌라는, 무릎 관절에 매우 해롭다는 자세를 취하고 앉아서 몇 시간이고 뜻의 내용물들—짜증, 걱정, 욕망, 두려움, 화, 괴로움—을 녹여내거나 닦아내려고 필사의 노력을 한다고 한다. 그와 같은 마음 수양에 있어서 목사님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또한 누구도 거기에서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뜻이 늘 샘물처럼 솟아난다. 그래서 인생 말년에는 짜증도 성화도 걱정도 다 버리고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소리만 들으면서 오로지 자신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을 태평스럽게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난망한 꿈이다. 나는 그냥 내 생긴 목자[目眥](어떤 것을 볼 때의 눈의 모양)대로 살련다.
첫댓글 나이가 들면서 사람마다 가진 결을 알아봐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요새는 ' 아 !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면서 혼자 킥킥 웃기도 하고 그럽니다. 너무 잘 하려 애쓰는 게 오히려 해롭다는 생각도 들고요. ㅎ
호미 님의 소심한 복수를 받지 않기 위해 댓글을 열심히 달겠습니다. ㅎㅎㅎ
우리 글쓰기 방에서도 삐치신 것은 아니지요?
첨에는 호미님 글이 더 자주 올라온 것 같아서 좋았는데 요즘은 조금 뜸해진 것 같아서요 ㅎㅎ
아닌가? 제가 일일이 날자를 체크해 본 것은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