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강 대한불교조계종의 불자는 무엇을 알고 실천해야 하나
오늘 강의의 주제는 대한불교조계종 종파에 대한 설명이다. 그래서 슬라이드마다 리포팅할것은 많지 않았고
다만 몇가지 알고 싶은것에 대하여는 두산백과나 기타 등등에서 차용해 왔다.
시인 박선영과 같이 걷는 길 | 고려시대의 불교문화 - Daum 카페
종파정리 키워드 등 종합하여 정리해놓은것으로 불교문화에 대하여 알고 싶다면 위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대한불교조계종은 대한불교종단협의회에 가입된 27개 불교 종단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종단이다. 조계종의 종지(宗旨)는 석가모니의 자각각타(自覺覺他)·각행원만(覺行圓滿)한 깨달음을 근본 교리로 받들며,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소의경전(所依經典)은 『금강경』과 『전등법어(傳燈法語)』이나 기타 경전의 연구나 염불과 주문(呪文) 등에 대해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
현재 직제는 조계종 종단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종정(宗正)을 비롯하여 감찰원·총무원·원로회의·중앙종회 등으로 편성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총무원장이 종단의 종정(宗政) 전반을 관할하는 총무원장 중심 체제이다. 또한 총무원 산하에 25개 본산 제도가 확립되어 있으며 총본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에 자리한 조계사이다.
변천
조계종은 원래 신라 때부터 내려온 구산선문(九山禪門)을 고려시대에 통합한 것이다. 당시 대각국사 의천이 수립한 천태종이 종세(宗勢)를 날로 확장해나가자, 이러한 상황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선종(禪宗)이 자극을 받아 만든 것이 조계종이다. ‘조계(曹溪)’라는 낱말의 어원은 중국 선종 6조인 혜능(慧能)의 별호에서 유래하였다.
이후 지눌(知訥), 백운(白雲), 태고(太古)가 종풍(宗風)을 크게 떨쳤다. 여러 선종의 종파 가운데 조계종만이 그 법맥을 오랫동안 유지해 오다가 1407년(태종 7)에 이르러 천태종과 총남종을 아울러 선종으로 고치고, 화엄종·자은종·중신종·시흥종을 합하여 교종이라 하면서 조계종의 명칭은 사라졌다.
그 뒤 조선의 억불 숭유 정책에 따라 한국 불교가 오랜 침체기를 맞았으나,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유명한 서산대사 휴정 및 그 제자에 의해 조계종의 정신을 이은 선(禪) 중심의 불교가 계속 이어졌다. 1941년에는 또 다시 교종(敎宗)을 합해서 오늘날의 단일 종단인 조계종을 만들었다. 이때 혜능선사가 거처하였던 조계산 이름을 빌려 조계종이라 명명하고, 태고국사(太古國師)를 종조(宗祖)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계종 [曹溪宗]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반론
숭유억불에 대하여
고려말에 불교의 타락으로 인하여 고려가 망하면서 역성혁명으로 조선이라는 나라가 유교를 바탕으로 세워진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하여 조선이 숭유억불이라는 정책을 펼쳤다고 하는데 억불이라는 주장을 할려면 조선에서는 불교를 완전히 탄압하고
불교를 없애야한다.
그러나 불교의 수를 19개(?) 남겨놓고 나머지를 없애기는 했지만 궁궐안에 절을 지어놓고 부처님을 모셨고
오히려 태조때에는 불사를 크게 일으켜 원각사를 세우기도 하였다.
즉, 원각사는 조선시대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조계종 본사로 세웠졌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이런데 어떻게 억불이라고 할 수 있겠나?
또한 역사 전문 학술지 (역사비평) 제123호에서 '조선 건국 다시보기-불교, 유불교체의 파고를 넘다'를 기획으로 다뤘는데
숭유억불은 식민사관의 산물이고 숭유억불 인식은 1910년대에 고착되었다고 한다.
즉 태생이 당대가 아닌 후대의 인식이라는 것이다.
전문학술지의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숭유억불이라는 말 자체는 틀렸다는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번 강의에서 금강스님도 숭유억불정책이라고 설명을 하셨는데 그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선종과 교종 (이곳의 블로그를 참조하면 좋을것 같아서 가져옴)
즉, 긴글을 쓰기 싫다는 나의 본심
불교 경전의 이해 본성의 직관 깨달음 방법에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보우국사
보우(普愚:)는 고려말 고승으로 불교개혁에 힘쓴 승려이다. 호는 태고(太古) · 보허(普虛)이며, 속성은 홍씨(洪氏)이고 시호는 원증(圓證)이다.
태고(太古) 또는 태고국사(太古國師)라 불린다.
고려말에 고려는 원나라에 재침략받고 이어 그 지배하에 들어가는 사회상 불안에 따른 불교단의 타락과 오랫동안 쌓여온 기복 불교(祈福 佛敎)의 폐단은 마침내 고려 사회에 배불의 싹을 마련하고 있었다.한편 원나라의 쇠퇴는 공민왕에게 정치상 자주성을 되찾을 기회를 주어 복고 정치를 과감히 수행해 갔다.
보우는 구산의 통합을 시도하여 그 과제를 조선 대(代)에 넘겨주었다.
공민왕이 훗날 요승으로 기록되는 신돈을 기용하여 실정한 탓에 배불의 기운이 비등하였고 고려는 멸망의 길을 걸었다.
실천과제
1. 종조 도의국사, 중흥조 보조국사오ㅘ 태고 보우국사 등 큰 스님의 가름침을 되새기고자 그 분들의 수행지를 순례해 본다.
2. 재적 사찰을 기반으로 대한불교조계종 불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실천한다.
> 재적 사찰이 생겼다. 하지만 불자로서 어떤 권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의무에 대하여는 법회에도 참석하고 뭐라뭐라
하셨는데 난 사람이 많이 모이는곳에 가는것이 싫다.
왜냐하면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올해 회사 송년회를 마치고 3-4일을 공황증상으로 엄청 고생했다.
하루에 3번씩 약을 복용하며 자기전 약은 한주먹은 되는듯(과장하여) 하루하루 버티며 살고 있는데...
참고로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 하는 숭유억불에서 그렇다면 유교란 무엇인가? 라는것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시인 박선영과 같이 걷는 길 | 동양의 유교사상(한.중.일)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