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미세먼지와 황사 때문에 힘들었는데 다행스럽게도 토요일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이렇게 반가운 적이 없다.
주중에 출퇴근을 제외하고는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도 못 열고 아파트에 갇혀 지냈는데 그게 힘들어 주말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날씨가 조금 춥긴 했으나, 비 덕분에 미세먼지가 없어 기분 좋게 대음집으로 향한다.
도착하여 보일러를 트니 집안에 온기가 서서히 돈다.
역시 집은 비면 안 되나 보다.
사람이 살아야 집도 산다.
집에 도착하여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그러면서 혼잣말을 한다.
‘집아~ 일주일간 별일 없이 잘 지냈니?’
바람이 많이 불어 그런지 걸어놓은 액자들이 다 날아가 있다.
날아간 액자의 제자리를 다시 찾아준다.
그러다 잠금장치를 하고 다니는 뒷문에 나 있는 구멍을 발견했다.
옛날 한지문이 예뻐서 그대로 두고 사용하고 있는데 그 한지문에 구멍이 나 있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재미로 손가락을 넣어 구멍을 뚫은 건지 잘 모르겠으나 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미리 가져간 시트지를 잘라 붙여 바람이 들어오는 길을 막는다.
바람뿐 아니라 벌레들도 들어오지 못하겠지?
오래된 집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손볼 데가 자주 생긴다.
하얀 바탕에 파란색 시트지라 조금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몬드리안의 작품인 것도 같다.
아이고~ 몬드리안님 감히 제가 비슷하다고 해서 죄송합니다. ㅠ,.ㅠ
마당 한쪽에 심어놓은 상추가 먹기 좋게 자라있다.
장모님이 근처에 사시는데 시간 나실 때 한 번씩 오시어 집도 봐주시고 텃밭에 이것저것 심어주신다.
실은 우리가 지내는 이곳 아랫마을이 아내의 고향이다.
그곳에 지금까지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이 지내신다.
이 집을 구하게 된 연유도 실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우연히 처가에 와서 동네 산책을 하던 중 “윗마을도 가볼까?”라는 아내의 제안에 이 동네의 이 집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 집을 보고 바로 근처 부동산에 전화했고 그래서 이 집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참 우연 같은 필연이다.
그때 아내가 산책하러 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이 집을 어찌 만날 수 있었을까?
상추가 어느새 파릇파릇한 그 잎을 곧추세우고 있다.
아주 작은 구역에 심은 상추가 이렇게 풍성하다니 역시 장모님의 손길이다.
장모님의 손길이 닿으면 식물이 잘 자란다.
다년간의 노하우와 지혜다.
농사에 전문가이시다.
게다가 약 같은 비도 내렸으니 얼마나 무럭무럭 자라나려고 힘을 냈을까?
아내와 나는 앉아서 상추를 솎아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참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이런 순간들을 기억하겠지?
어느새 상추가 한 보따리다.
우리 일주일 식량으로는 충분하다.
요즘 마트에 가면 채소가 상당히 비싸던데 돈 굳었다.
‘여기가 마트네 그려.’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아내와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여기에 음악이 빠지지 않는 건 당근.
잔잔한 음악에 따뜻한 커피.
여기만 오면 이 두 가지는 항상이다.
이 집에 주말마다 오는 가장 큰 이유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것처럼 좋은 것이 없다.
조금 쌀랑하여 잠바를 껴입고 말없이 저 멀리 운무가 낀 지리산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