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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수필쓰기의 이론
저- 정진권
출- 학지사
독정-2019. 9. 29
· 겨울이 되어 외투를 입는 것은 기쁜 일이다. 봄이 되어 외투를 벗는 것은 더 기쁜 일이다
-조춘, 피천득
· 수선 너는 고향이 어디냐? 지난 밤 자리에 누우며 속삭였다.
“내 고향은 멀어요. 이렇게 추운 데는 아니에요. 하늘이 비취같고 따스한 햇볕이 입김처럼 서리고, 물이 거울처럼 우리를 쳐다본면서 찰락찰락 흘러가는 데에요. 부얼도 날아오는 데에요.”
“너는 이제라도 고향에 가고 싶으냐?“
“네, 네. 나는 정말 이렇게 춥고, 새 쇠리도 없고 새파란 하늘도 없는 이런 방 속에서 필 줄은 몰랐어요.”
“하늘이 보고 싶으냐?”
“네, 따스한 하늘 말에요.”
“새 소리가 듣고 싶으냐?”
“네, 물소리, 부얼 소리도요.”
“그럼 왜 이런 방에서 피었니?”
“그건 내 운명이야요. 물과 기온만 맞으면 아무데서나 피어야하는 것이 내 슬픈 운명이야요. 나는 저녁마다 혼자 울기도 했어요.”
나는 슬펐습니다.
-수선, 이태준
<사실과 허구>
H는 시를 쓴다는 청년, 서울 와서 먼 친척댁에 붙어 살면서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냈다. 오후 늦게 친구 하숙집을 찾아간 나는 역시 그 하숙살이 친구에레 놀러왔다는 H를 거기서 만나게 되었다.
해가 저물가 그가 기식하는 친천댁에서 친구 하숙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꽤나 살림이 넉넉하다는 그 친천댁과 내 친구의 하숙과는 동리가 맞 붙은 가까운 거리였아. 하숙집 아가씨에게서 전갈을 듣자 H는 사뭇 귀차놓다는 듯이 자리를 일어서며
“가서 또 밥이나 먹어줄까.”한다. 일 년 열두 달 식비 한푼 내지 않는 주제에 전화까지 걸어온 식사 기별에 밥이나 먹어 줄까라니. 나는 순간 주먹으로 한 대 후려갈기고 싶도록 ㄱ드가 미워졌다.
-밥이나 먹어 줄까, 김소운-
이 글 자체만으로는 이 것이 사실 기록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다. 지은이는 다행이도 다음과 같은 술회를 남겼다.
‘내 글에도 허구가 얼굴을 내밀 때가 있다. 그 예가 이 글이다. 주인공 H는 일본 청년이다. 하숙살이하는 그의 친구도 역시 일본인이다. 주먹으로 한 대 후려갈기고 싶었다. 이 대문도 픽션(허구)이었다. 실제로는 그와 같이 나오는 길에 나는 지금의 을지로 3가 큰길에서 주먹으로 한 대 후려갈겼다. 어느 여성지가 “증오를 느낀 순간”을 쓰라 해서 이런 글을 썼지만 H를 일본인이라 밝히면 사연은 복잡해지고 글의 초점은 흐려저 버린다. 그래서 그런 사족을 붙여쑈고 그 식객이 사는 그 일본인 집은 사실 친척도 아무것도 아닌 그저 아는 이의 가정이었다. 그러나 허구는 “우유리 그릇 너머로 왜곡된 가상을 통해 진실을 발굴”하려는 그런 예술성과는 상관 없다. 다만 증오의 순간이라는 주어진 과제에다 글의 초점을 두었기에 불필요한 가지들을 추려 버렸다는 하나의 예을 들어 보았다.
-사실과 허구 사이, 김소윤-
실제로 있을 법하게, 그럴싸하게 받아들여지게 그럴싸함을 개연성이라 한다. 개연성이 바로 허구의 생명이다. 허구의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실(체험)을 수정한 예다. 수필은 자기 고백이라 하지만 수필을 쓰는 입장에서 쓰는 사람의 신념을 존중해야지 자기의 신념을 강요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 사람이 귀가 가려우면 새끼손가락으로 후비는 일이 있는데, 결코 점잖은 모양은 못 된다. 그러가 흔히 하는 일이니 용서하기 바란다. 갑자기 귀가 몹시 가렵기로 무의식중에 그렇게 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손가락 끝이 그 가려운 데까지 닿지 않아 퍽 짜증스러웠다.
(중략)
그러다가 나는 문득 내 새끼손가락을 생각했다. 가려운 데까지 닿지 않는다고 타박 받은 손가락이다. 그리고 성냥개비를 생각했다. 한참 시원할 때 요절해서 심히 욕을 먹은 성냥개비다. 나는 그때, 내가 그들을 타박하고 욕한 것이 정당했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 쉬운 점 하나늘 잊고 있었다. 손가락이나 성냥개비는 결코 귀를 후비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귀를 후비며, 정진권-
* 손가락으로, 성냥개비로, 귀후비개로 귀를 후빈 일은 서로 다른 날에 따로 체험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1인칭 시점>
· 이모는 중공군이 남하하던 겨울에 시집을 갔다. 고향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피란집을 둘러멘 채 잠시 마당에 모여 관솔불을 밝혀 둔 가운데 입던 옷 그대로 냉수 소반을 앞에 놓고 머리를 올렸다. 신랑은 신부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전쟁터로 떠나고...
전쟁도 신랑도 세월도 자신의 운명마저도 원망할 줄 모른 열아홉의 착한 처녀는 성황당 고갯길을 오려다보며 끝내 돌아오지 않는 신랑을 기다리며 나날을 보냈다. 나는 그때부터 달맞이꽃을 보면 설움이 고인다.
-달맞이꽃, 변해명-
*작가가 글 속의 나가 되어 그(이모) 이야기와 나(자기) 이야기를 함께 하는 시점이다. 그의 외면만 있지만 독자는 그 내면(한과 고독으로 싸인)을 어림할 수 있고, 1인칭 시점으로 된 이 글 뒷부분은 ‘나’의 외면은 물론 내면까지도 직접 볼 수 있다.
<3인칭 시점>
3인칭 시점은 수필에서 휘귀하지만 무시할 수 없고 충분히 활용할 가치 있는 시점이다.
시골 어느 국민하교에서 화재가 나서 교사가 온토 다 타버렸다. 그 진상을 하고 학교 교장과 화재 당일 숙직 교사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교장과 교사는 징계위원회에 나와 각각 소견을 진술아하게 되었다.
먼저 숙직교사가 들어왔다. 서른도 안된 새파란 청년이었다. 침착하게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모든 잘못은 저에게 있습니다. 다라서 제가 모든 책임을 지고 물라가겠습니다. 바라옵건에,. 일생을 교욱에 바치신 교장 선생임께 이 일로 불행을 겪는 일이 없도록 관용해 주십시오. 그 분은 내년이 정년입니다 .명예롭게 물러가혀야 할 우리의 큰 스승입니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나갔다. 다음엔 노교장이 들어왔다. 역시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다음 같은 말을 첨가했다.
“제가 감독을 소홀이 해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났으니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그런미 이 일로 해서 한 젊은 교사자 다치는 일이 없도록 선처해 주십시오. 저는 어차피 물러갈 사람이지만, 그는 전도가 양양한 청년 교사입니다.부탁합니다. 이 노교사의 간절한 부탁이오니 져버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교장도 조용히 나갔다
-어떤 교장과 교사, 정진권-
작가가 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 내면이 드러나지 않지만 독자는 그들의 말로 내면을 어림해 볼 수 있다.
· 시방 내 눈앞의 세 송이 나팔꽃은 아침 이슬을 머금고 싱싱하다. 그러나 이 아침이 다 못 가서 시들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씨가 얹고 나면 나팔꽃이 보여 주는 극에 막이 내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내 마음은 나팔꽃 아닌 또 무엇을 추구하고 있겠지. 마음은 영원히 뻗어가는 나팔꽃이다.
-나팔꽃, 김동석-
· 서울은 재미나 도시다.
골동품 같은 집이 있다. 남의 담장에 기댔을망정 쓰레기통 옆에 놓였을망정 아담한 차림새로 구중궁궐 부럽잖게 꾸밀 대로 꾸미기도 했다. 추녀 끝에는 방울 같은 새를 앉히고 납작한 완자창도 달았다. 쌍희자를 아로새긴 세렴도 늘였다.
이 집에는 떡국도 팔고 진짜 냉면도 있다. 맛 좋은 개장국도 한다. 노동자 빈민은 물론, 한다하는 신사도 출입을 한다. 이 집에는 계급의 구별도 없다. 땅바닥에는 검둥이라는 놈이 행여 동쪽의 뼈다귀나 한 개 던져 줄까 하고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기다리고 있다.
이래 봬도 하루 수입이 물경 만 원을 넘기는 것은 누워 떡 먹기다.
더구나 이 집의 재미난 것은 주추 대신 도롱태를 네 귀에다 단 것이다. 아무 때나 이옹할 수 있다. 순경 나으리가 야단을 치는 날이면 당장에라도 훨훨 몰아갈 수 있다.
주인 부처는 진종일 영감 그린 종이를 모으기에 눈코 뜰 새 없다가 도시의 소음이 황혼과 함께 스러진 뒤 참새 보금자리 같은 이 집 속에서 신화 같은 이야기를 도란거디라가 고요히 꿈나라고 들어가고 만다. 재민(災民)들은 이렇게 가지각색으로 살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법이란 별의 별 재주가 다 있어
-이동 음식점, 김용준-
<단어의 갈래-구체어와 추상어>
매운 바람이 유리창을 덜컹거리는 밤, 큰방에 불빛이 환했다. 몇 시나 되었을까?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텔레비전을 켜 놓고 주무시나 해서 가만히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어머님은 장롱에서 아버님 내의며 양말을 꺼내서 만지작거리며 속삭이는 거였다.
“이보우, 영감, 추워서 어쩌지요? 얇은 명주옷 입고... 천당에 도착했거들랑 얼른 날 데리러 오슈.”
-당신의 봄, 반숙자-
*매운(미각맛) , 덜컹거리는(청각), 불빛(시각), 추워서 (촉각) 이런 단어가 구에치다. 수필이란 단어는 추상어다.
<내용어와 구조어(형식어)>
구름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곧 비가 내렸다.
밑줄친 부분은 내용어, 아닌 부분은 구조어(형식어)
① 오늘 결석생이 3명이다.-사실만 전달
②오늘 결석생이 3명나 된다.-많다는 뜻을 함축
③오늘 결석생이 3명밖에 안 된다.-적다는 뜻을 함축
<단어의 지시적 용법과 함축적 용법)>
옷이 날개다. -옷이라는 단어는 이런 지시적 의미 외에 가령 ‘마음’이나 ‘삶’같은 의미를 첨가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덧붙인 주관적 의미를 함축적 의미라 하고 단어를 이런 의미로 쓰는 것을 단어의 함축적 용법이라 한다.
·판잣집 유리 딱지에 아이들 ㅇ러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춰라.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초토의 시, 1,3연 ,구상-
전쟁으로 초토화된 폐허 새로운 희망 같은 개나라가 같은 말을 첨가할 수 있고
‘세상살이의 괴로움에 지친 마음 또는 삶에 생기를 불어넣겠다는 뜻을 첨가해 볼 수 있다. 함축적 용법은 단어나 구절 문장에 나타나고 한 면 전체가 함축적인 경우(우화)도 있다.
· 짧은 순간이었지만 가슴 속이 대나무 속처럼 텅 비어 버린 듯했다. 수도관처럼 뚫린 가슴 속을 알레스카에서 불어온 바람이 관통을 하고 지나간 듯 서늘함을 느꼈다.
맷힌 한을 풀어 내면 이런 기분일까? 남이 살세라 꽁꽁 뭉쳐 놓았던 매듭들이 어느 새 스르르 뚤려 버린 시원함을 맛보았다.
-북소리에 갈채를, 정선모-
<소주제문과 뒷받침 문장>
나는 멸치 국물에 말아 낸 칼국수를 좋아한다. 애호박을 썰어 넣고 ‘끓인 수제비국도 즐겨 먹는다. 풋고추를 다져 넣은 부침개의 맛은 또 어떤가? 완두콩을 드문드문 놓고 쪄 낸 밀개떡도 군침을 돌게 한다.
*여기까지는 소주제문(화제문)이다.
나는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밀가루 음식을 좋아한다.
이 문장이 들어가야 뒷받침 문장이 됭더 소주제문의 뜻이 명료해진다.
우리 이장님은 몸져 누운 김씨에게 쌀가마를 보내고 마을 청년들의 단합대회에도 금일봉을 주셨다. 우리 동장님은 이처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분이다.
*여기서 마을 청년들은 어려운 이웃이 아니기 때문에 삭제하거나 별도의 문단으로 나누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재능을 축복할 만한 자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재주 부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경쟁심에 뿌리를 둔 시기심의 발동도 있다 그것만도 아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에게 흔히 볼 수 있는 교만이 역겨울 수도 있다. 재주만 비상하고 인덕 없으면 교활하게 되기 쉽다는 사실도 계산에 넣어야 할 것이다.
뛰어난 재능이란 활인에도 쓰이고 살인에도 쓰이는 명검과도 같은 것일까? 조물주는 가끔 명검을 악한의 손아귀에 쥐어 주는 실수를 한다.
-재능, 김태길-
·집은 동물적 인간이 인간적 인간으로, 자연적 동물이 문화적 동물로 창조적 변화를 일으키는 모체다.
-집에 대하여, 박이문-
·나는 으레 생선의 가운데 토막 중에서 등 부분의 살코기만 먹었다. 할아버지가 가시 없는 부분을 뚝 떼어 내 밥에 올려놓으시곤 했고 나는 당당히 그 부분만 먹을 권리가 있는 것이라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멀컹멀컹 하고 재미없는 배 부분을 드시거나 뼈를 씹어 자시었다. 그 부분이 맛있는 부분이라고 대답하셨던 기억이 난다(중략)
나는 얼마 있다가 손주를 보면 생선의 살코기를 덜렁 떼어다가 그놈의 밥 위에 올려놓게 될 것이며, 그놈의 아비인 우리 아이들은 배때기와 가시의 맛을 그제서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쇠고기를 구워도 빨간 살은 제 아이들이 먹고, 저희들은 기름기가 섞인 조각을 먹을 줄 알 것이며, 갈비는 제 아이들이 대충대충 뜯다 버린 뼈를 갉아 먹으며 이게 정말로 맛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자반을 먹으며, 유병석-
· 통통밸 뱃전에 손을 내밀면 물이 손에 닿는다. 바닷물이 어찌나 맑고 파란지 같은 바닷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데. 해조 사이로 크고 작은 고기들이 유유히 행렬을 지어 노닐고 있다. 나도 고기가 되어 함께 노닐고 싶은 동심에 젖는다. 산길을 덮은 풀을 헤치며 오르다보니 산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름은 입체적이다.
-울릉도, 서정범-
· 길가에서 방망이를 깍아파는 할배한테 방망이를 흥정하는데 안 깍아줘도 기다려 사려는데 할배는 차시간이 급하다고 그냥 달라해도 계속 방망이를 깍고 있다.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쟃옥한다고 밥이 된자?”
하면서 오히려 아단이다. 살 사람이 ㅈ봏다는데 무얼 더 깎나며 시간이 없다. 해도 다른데 가 사라 안 판다며 계속 깎기에 기다리다 사오며 돌아보니 노인다워 보니는 옆 모습, 부드러운 눈매와 흰수염에 화났던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직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방망이 깎던 노인, 윤오영-
·가족을 식구라 하였다. 먹는 입의 수가 야단이었다. 아침 인사는 ‘진지 잡수셨습니까?’였다ㅣ 굶었느냐 먹었느냐가 날마다의 커다란 문제였다. 우리말 가운데 먹는 일과 관련된 관용어가 그렇게도 많은 까닭이 여기 있다. 옷에 풀 먹인다고 한다. 욕을 얻어먹고, 눈칫밥도 먹는다고 한다. 감사(도지사)도 헤먹었다고 한다. 안 먹는 것이 없다. 온천하가 먹자판이었다.
-가시라고 가랑비가 됐구려, 김진악
· 우리, 돌이네 뜰에 한 번 가 볼까요? “삐약삐약”
저 감나무 밑 좀 보세요. 노란 병아리들이 엄마에게 말을 배우네요. 참 재미있어 보이지요?
“지지워지, 지지워지.”
아, 저건 처마 밑 안져요? 아기 제비들이 엄마하고 소릴ㄹ 맞추어 시를 외는군요, 참 신나는 모양이지요?
“째재재짹. 째재재짹.”
돌이네 뜰에는 서로 다른 소리듶이 함께 들립니다 그러나 어는 한 소리도 다른 소리를 방해핮비 않습니다. 늘 평화롭습니다.
-돌이네 뜰, 정진권-
·버스 터미널에 가니 대기라도 해 놓은 듯한 버스에 좌석이 반도 더 비어 있다.
<상념의 순서에 따른 구성>
①안타까운 꽃
도라지꽃은 늘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코스모스나 들국화처럼 무리지어 피는 법이 없다. 양지바륹 언덕에서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하늘하늘 몸을 흔드는 것을 보면 안쓰러워 보듬어주고 싶다. (중략)
④ 나는 도라지꽃에서 어렸을 때 담임선생님을 본다. 어느 초가을,, 선생님은 우리에게 책을 읽히신 후 창가에 서 계셨다. 읽기는 몇 번이나 되풀이 되다가 나중에는 제풀에 끝나버렸다. 우리와는 아무 상관 없는 표정으로 그렇게 서서 먼 하늘만 보셨다. 하늘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아 위태로웠다. 그 가을이 다 가기도 전에 선생님은 결국 우리 곁은 떠났다. 파란하늘로 빨려들어가기라도 한 듯. 그때 선생님은 흰 저고리에 도라지꽃 치마를 받쳐 입고 계셨다.
-도라지꽃, 손광성-
*상념의 순서에 따른 도라지꽃 구성은 ①안타까운 꽃-②슬픈꽃(무덤가에 있을 때)-③저승의 꽃-④도라지꽃색 치마를 입었던 선생님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한 연상이 다른 연상을 부를 때 자연스럽지 않으면 안 된다.
구성의 한 방법 예:
<어느 부자 父子>-정진권
① 자, 한 잔 들게나. 요즈음 소주는 당초에 싱거워서. 원.
자네도 아다시피 내 나이 이제 예순여덟일세. 내일 모레면 일흔이여. 언제 갈지도 모른 목숨, 내게 무슨 욕심이 있겠나? 그런데 섭하단 말이여. 자네도 아다시피 내가 절 어떻게 키웠는데...자네 아니면 이런 이야길 또 어디 가 하겠는가?
음 됏네, 자 들게나.
팔밭뙈기 몇 마지기로 일곱 남매를 길렀다면 알아볼 만하지 않는가? 내가 먹을 걸 재대로 먹었겠는가. 입을 걸 제대로 입었겠는가? 그렇게 키웠어. 그런 중에도 맏이라고 중학교까지 보냈네. 그런데 다니기 싫다고 그만두지 않았는가? 그래도 그나마 배웠으니 버스 운전이라도 해먹고 있지. 흥.
내가 왜 이 얘길 하는고 화니, 너무 섭해서 그러네. 작년에 제 막내동생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 가는 것은 멀건히 보고 있더니, 지난 봄에 졸업한 제 자식은 대학엘 보내데. 어째 제 동생 귀한 줄은 모르고 제 자식 귀한 줄만 아는
가 말일세.
여기 있네. 안주 좀 더 시킬까?
지난 겨울 이야기도 우습지. 하룻저녁 떡 보니 털바지 하나를 사왔어. 난 제 어미 건줄 알았어. 헌데 제 식구 거더란 말일세. 그래, 그 엄동설한에 누가 털바지를 입어야 하겠는가? 속이 확 뒤집혀. 그래도 며늘아이가 사람은 사람이지. 난 괜찮으니 어머니나 입으시라고 가져다 주어서 그럭저럭 추운 줄 모르고 지나더군
어허 좀 오르네
내일 모래면 일흔이여.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어련히 가겠는가? 어쩌자고 날 이렇게 들뽁아? 내가 배곯고 헐벗ㄹ으며ㅓ 절 키울 때 이 설움 받을 줄은 참 꿈에도 몰랐네. 남의 맏이가 되었으면 응당 부모 공경하고 동생들 뒤치다꺼리 해야지. 이게 무슨 소리여?
② 자, 한 잔 들게나. 요즈음 소주는 좀 싱거워서.
내 나이 벌써 마흔다섯일세. 입은 많고 돈은 없고, 거기다 아버지까지 저러시니 정말이지 죽을 지경일세. 자네 아니면 이런 이야길 또 어디 가 하겠는가?
음 됏네, 자 들게나.
난 중학교 2학녅 중퇴일세. 애 중퇴를 했는지 아나? 도시락 한번 싸가지고 간 일이 없네. 수업료 한번 제때에 내 본 일도 물론 없고 책? 책값 안 냈는데 책이 어디 있는가? 학교 가는 게 안지라 지옥에 가는 것 그만두었네. 그래서 공부에 한이 맺혔어. 난 어떻게든지 동생들과 내 자식만은 학교엘 보내겠다고 결심을 했지, 그래서 세 동생이 차례로 고동학교를 졸업하고, 또 지난 봄에는 내 큰녀석이 나왔지. 그런데 이 녀석이 나도 모르게 대학시험을 모더니 등록금 면제라. 허허허. 요즈음은 아르바이튼가를 해서 한 십만 원씩 버는 모양인데. 그 중에서 한 삼만 원은 할아버지 용돈으로 드린다는군.
그런데도 아버지는…. 지난 봄일세. 술이 잔뜩 취하셔서는ㄴ, 내 큰녀석 보고 하시는 말씀이, 넌 돈맣은 애비 만나서 대학교 다니니 좋겠다. 이러시더란 말일세.
여기 있네. 안주 좀 더 시킬까?
지난 겨울 일일세. 아내가 토큰을 팔러 다니지 않나? 그래 밖에서 달 떠는 게 안 됐다 싶어서 털바지 하날 사다 주었는데. 그랬더니 또 어째 늙은인 모르고 절은 것만 아느냐. 이러셔.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습니까 했더니, 오냐 털바지 한자라도 얻어 입으려면 길가에 ㄴ자가 토큰이라도 팔아라 이겨냐 하시더란 말일세. 한 벌 서 달 돈은 없고, 하는 수 없이 아내가 어먼질 갖다 드리더군. 우리 같으면, 아니다 밖에서 떠난 사람이 입어야지 이게 무슨 소리냐 하고 사양도 할 것 같은데 허허허(중략)
어허 좀 오르네
지난 사십 년을 뒤돌아보면 난 내 삶이라는 것이 없었어. 내 한 입 먹으려고만 했다면야. 허허허. 나는 종이라네. 이젠 지쳤어. 내 큰녀석, 그녀석만은 제 인생을 살게 하고 싶은데, 그런데 내가 지금 그녀석의 아르바이트 삮을 빼앗아 쓰다시피 하고 있으니…..
봄이 오면 비둘기 목털에 윤이 나고, 봄이 오면 젊은이는 가난을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스물여섯 된 무급 조교는 약혼을 한다. 종달새는ㄴ 조금 먹고도 창공을 솟아오르리니, 모두들 햇빛 속에 고생을 잊어보자. 말아 두었던 화폭을 펴 나가듯이 하루하루가 봄을 전개시키려는 이때- 조춘, 피천득
<갑사甲寺로 가는 길>이상보 :기행수필
·선덕여왕 원년, 당승 상원대사가 동학사에 와서 움막 치고 기거하며 수도할 때 뇌성벽력에 범이 타나나 아가리를 벌려 보니 목 안에 인골이 목에 걸려있어 빼주었는데 나중에 범이 처녀를 물고와 주고 갔다. 대사는 기절한 처녀를 회생시키니 경상도 상주읍 김화공의 딸이라 봄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데려갔더니 김 쳐녀는 대사의 불심에 감화 받아 연모의 정이 골수에 박혀 부부의 예를 갖추어 달라 애원하지만 생명ㄹ의 은인으로 의남매의 인연을 맺어 함께 계룡산으로 돌아와 김화공의 정재로 청량사를 새로 짓고 암자를 따로 마련하여 평생 남매의 정으로 지내다 서방 정토로 떠났다. 두 사람이 입적한 뒤 사리탑으로 세운 것이 남매탑이요. 상ㄹ주에도 똑같은 탑이 세워졌다.
지순한 사랑도 끝이 없어 탑신에 손을 얹으니 천년 뒤에 오히려 뜨거운 열기가 스며드는구나! 얼음장같이 차야했던 대덕의 부등심과 백설인양 순결한 처자의 발원력, 비록 금수라 할지라도 결초심을 잃지 않는 산중호걸의 기연이 한데 조화를 이루어 지나는 등산객의 심금을 붙잡으니, 나도 여기 며칠 동안이라도 머무르고 싶다. -
·대체로 작수들이 홀수보다 점잖은 느낌을 준다. 1,3,5,7은 어딘지 모나고 뚝뚝하지만, 2,4,6,8 등은 부드럽고 우호적인 느낌이다. 무엇이든 똑같은 것 두을 나란히 놓으면 미적인 느낌이 있기도 하려니와 짝꿍끼리 맞아 들어가는 것이 뭔지 예로틱한 안정감을 주는 건지도 모른다.
1은 계산에 어려움을 하나도 주지 않기 때문에 쉽고 고분고분하다. 다른 수를 제 편으로 끌어오지 못하고 다른 수에 끌려 다니기 때문에 순한 막둥이같이 수동적이다. 2도 계산에서 말썽을 부리지 않기 때문에 역시 순하고 호감이 간다. 세상에는 쌍이 되어 있는 것이 많아서 이 숫자야말로 조화와 협동의 맛을 풍긴다. 3에 이르면 성질이 판연히 달라진다. 삼각형의 날카로운 느낌이 방출된다. 다른 수ㄹ에 더해 주거나 떼어내 오기가 약간 힘들기 때문에 ㅇ아칼진 성질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유니크한 멋이 있어 세련된 아름다움과 귀족 같은 품위를 풍긴다.
숫자 중에서 가장 탄탄하고 믿음직스러운 얼굴이 4이다. 네 기둥으로 서 있는 안정감이 있고 모든 형태 지붕에서 가장 안정되고 편리한 사각형의 표정이다. 구성으로도 조화의 2를 두 번이나 가지니 균형감의 왕자이다.
축구 선수같이 동작이 빠르고 밤알갈이 야무지면서 친구같이 다정한 것이 5다. 사람의 손가락이 다섯이니까 5는 10 다음으로 수를 묶는 단위다. 작은 수들이 5로 얼른 뭉쳐지는데가 5에서 쉽게 풀어져 나온다, 5자신이 다른 수와 쉽게 합성이 되며 다른 수에서 쉽게 떨어져 나오는 독립성과 활동성을 갖는다, 능동적으로 다른 수에 작용을 걸어 묶어 주고 넘겨주니 계산을 하다가 5만 보면 호감이 간다. 구구단 외기에서도 5단을 거저먹기니 정이 안 갈 수 없다. 6은 화려한 장식과 매끄러운 모습으로 교향곡 같이 성장한 난며들이 춤을 추는 무도회와 같은 호화로움이다. 7은 가장 쌀쌀하고 깔끄럽고 뚝뚝하다. 조잡하고 배타적이고 반항적이까지 하다. 그보다 한둘이 더 많은 8이나 9는 손쉬운 1이나 2와 관계 지어 쉽게 넘어가는데 7은 잘 떨어져 나오지 않는 3을 떼어다가 붙여야 가까스로 넘어가기 때문에 이분자의 합성으로서 시끄러운 불협화음을 울린다. 가시가 수없이 돋아있는 숫자다.
10은 가장 큰 수이지만 딱 묶어 한옆으론 내놓을 수 있어 끝맺음의 개운함이 있다. 마치 1과도 같이 단출한 느낌이면서 갈증에 냉수같이 시원하다. 1과 9. 2와 8, 7과 3. 4와 6은 닮았고 5는 10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