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입학식에 가다 / 곽주현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떴다. 아직 밖이 어둑한데 웬일인가 싶다. 거실로 나와 보니 두 손주가 벌써 일어나 장난치며 깔깔거리고 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었다. 메고 갈 가방도 챙겨서 소파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개학일이다.
손자는 초등학교에 입학이고 손녀는 2학년이 된다. 며칠 전에 광주로 이사 와서 오늘이 첫 등교다. 아파트를 나와 보니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만물을 일깨우는 봄비지만 하도 자주 내려서 달갑지 않은데 아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우산을 쓴 긴 행렬이 이어진다. 좁다란 길에 사람은 안 보이고 마치 크고 작은 우산이 행진하는 것 같다. 입학식에 참석하려는 학부모들도 많아 우산이 서로 엉키고 꾀나 소란스럽다. 그 틈에도 손녀는 ‘다른 사람 다치지 않게 우산 조심해라, 오른쪽으로 걸어라.’ 하며 동생을 계속 챙긴다. 그래도 미덥지 않은지 자기 것은 접고 동생 것을 함께 쓰더니 손을 꼭 잡고 걸어간다. 뒤따라가던 할머니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쿡쿡거리며 내 옆구리를 찌른다. 나도 따라 웃는다. 녀석들의 뒷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사람이 붐비지 않는다면 두 놈을 돌려 세우고 꼭 안아주고 싶다. 겨우 한 살 터울인데 저렇게 수말스럽다(‘의젓하다’의 전라도 방언).
아이 아빠가 연가를 내고 입학식에 데리고 간다고 우리네는 푹 쉬라고 했다. 그래도 꼭 참석하고 싶어서 뒤따라왔다. 작년에 손녀 입학식에 가지 않고 광주로 올라와 버렸던 게 못내 아쉬워 했기에 꼭 같이하고 싶었다. 또 이런 행사 날이 아니면 학교에 들어갈 기회가 없다. 무안 남악에서 손녀가 일년을 다녔지만 한 번도 학교 울타리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없었다. 아이들의 안전때문이란다. 이해는 가지만 삭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입학식이 열리는 강당으로 갔다. 입구에 반 편성표가 있다. 8 학급이나 된다. 올해 입학생이 없는 초등학교가 157곳이나 된다는데 여기는 이렇게 과밀화되고 있다. 1학년 3반이고 6번이다. 생년 월일을 보니 손주가 제일 늦둥이다. 생일이 12월 27일이니 1월생과는 1년 차이가 난다. 살며시 걱정이 인다. ‘잘 따라갈 수 있으려나?’ 하고. 정해진 자리에 앉더니 우리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V) 자를 그리고 손을 높이 올려 흔들어 보이기도 한다. ‘걱정 안 해도 되겠네.’하고 말하니 아내가 빙긋이 웃는다.
식이 끝나고 담임을 따라 교실로 간다. 나는 슬쩍 선생님 얼굴을 쳐다봤다. 웃는 인상이고 편안해 보인다. 어쩌다가 관상쟁이 할아버지가 되었다. 손자가 남자 선생님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여덟 개 반 모두 여자다. 교실 맨 앞줄에 손자의 이름표가 붙어 있다. 일단 만족스럽다.
담임이 이런저런 안내를 하기에 얼른 2학년 손녀 교실을 찾아갔다. 전학을 방학 동안에 했지만 반 배정을 개학 날 해준다고 해서 궁금했는데 2반이 되었다. 27번으로 맨 끝 번호다. 학생 수도 많다. 자리도 맨 끝줄 출입문 옆이다. 기분이 좀 그렇다. 현직에 있을 때 가끔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앞줄에 앉혀 달라고 요구해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처지가 바뀌니 내가 이렇게 변하다니…. 내 원 참. 반 편성이 끝난 후에 전학이 되었나 보다라고 이해했다. 손녀가 눈치채지 않게 살펴보고 있는데 쉬는 시간이 되자 필통을 꺼내서 만지고 있다. 금세 아이들이 주위로 모여든다. 자기 아빠가 사준 만능 필통을 자랑하고 있다. 스위치를 누를 때마다 연필, 지우개, 자, 칼 등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가 열린다. 처음 본 물건인지 아이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손녀는 상기된 표정으로 기능을 설명하고 열어 보라고 밀어준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얼른 나오더니 “할아버지, 나는 잘하고 있어. 빨리 지원이한테 가봐.” 라고 말하고는 금방 교실로 들어간다. 전학을 왔기에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 어쩌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다시 1학년 교실로 왔다. 아이 아빠가 사뭇 상기된 표정이다. 이유가 있었다. 선생님이 학용품 준비를 설명하면서 필통은 꼭 천으로 된 지갑 모양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지원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아빠가 사준 플라스틱은 안되냐고 묻더란다. 그것은 공부하다가 책상에서 떨어지면 소리가 크게 나서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니 집에서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그렇게 하겠다며 앉더란다. 애가 그렇게 질문할 줄은 몰랐다며 만면이 웃음이 번진다. ‘그러니까 네 아들이 똑똑하다 그 말이구먼.’하고 속으로만 말했다. 부모들은 내 아이의 이런 작은 변화에도 기대감이 높게 솟구친다.
올해 손주 셋이 입학을 했다. 큰아들 쪽은 중학교, 막내아들 네는 초등학교 그리고 위의 손자다. 그냥 있을 수 없어 그들에게 축하금을 주느라 주머니가 몽땅 털렸다. 그래도 오지고 기쁘다.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라는 축원도 잊지 않는다.
비가 그친 대지에 봄 햇살이 쏟아진다. 손주들의 머리 위에 더 맑고 밝게 쏟아져 내린다. 내일은 서울 손자들을 응원하러 가야겠다.
첫댓글 주머니가 몽땅 털렸다. 그래도 오지고 기쁘다. 하하하! 손자들이 힘이 나겠어요. 멋지십니다.
힘은 나지만 그 만큼 투자(?)를 해야 합니다.
손자의 입학을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손자 사랑이 철철 넘치십니다. 손자들이 너무 대견하고 사랑스럽네요. 든든하시겠어요.
사랑이라는 말을 손주들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하하하. 축하금 버시려면 열심히 글 쓰셔서 상금 받아야겠어요. 손주님 입학을 축하합니다.
글쎄요. 그런날이 올까요?
오지고 기쁜 그 일, 축하드립니다.
아마 선생님 닮았으면 내리쬐는 햇볕 받으며 다들 잘 해내리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관상까지 보는 할아버지 마음에 웃으며 읽었습니다.
그러게 되드라고요.
선생님 글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한 3월입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글 쓰려고 더 노력해야 겠네요.
아이들이 결국 선생님 곁으로 이사왔군요.
앞으로 손주들 이야기 읽을 생각하니 제가 더 신납니다.
우리 학교 입학식에도 아이들 수보다 더 학부모님이 오셨더라고요.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도 보였는데 그냥 지나쳤네요.
인사라도 나눌 걸. 이제서야 후회가 됩니다.
입학식이 끝나고 도서실을 지나다가 그곳 교장 선생님을 만났어요.
들어가 살펴봐도 괜찮냐고 묻기만 했습니다. 웬지 말 붙이기 어렵데요.
@곽주현 그러게요.
그 마음 헤아려 제가 먼저 인사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선생님 글로 또 배웁니다.
선생님 글 읽으면 언제나 인자함이 읽혀서 마음이 푸근해지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집니다.
제가 마치 입학식에 가 있는 듯 풍경이 보이게 잘 쓰셨습니다.
곽 선생님 존경합니다.
고맙고 한편 부끄럽습니다. 선생님의 건강이 걱정됩니다.
읽는 내내 따뜻한 미소가 지어지는 글입니다. 등장하는 인물들마다 그 모습이 다 그려집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렇게 받아 주시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