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교사수업코칭연구소 선생님들과 진행했던 예술감성연수에서 '공간'을 주제로 강의를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공간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관악구의 동네 책방을 투어하는 하루 동안의 연수였습니다. 저는 연수를 통해 '공간'의 관점으로 세상과 가르침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교사로 살아 갈수록 더욱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교사가 열정을 가지고 홀로 공부하고 타인과 대화하며 준비한 시간은 좋은 가르침을 낳습니다. 좋은 가르침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이들보다 교사의 삶의 어디엔가는 흔적이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그것을 아이들과 나누고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삶. 그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관점의 눈이 열리다는 것은 교사로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연수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습니다.
공간은 우리가 감각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과 구체적이지 않고 관념적인 추상적 공간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리적 공간은 자연 공간, 건축 공간, 도시 공간, 가상 공간 같은 것들이 있고, 추상적인 공간에는 심리 공간, 정신적 공간, 마음 공간, 인지 공간, 사회적 공간, 감정적 공간... 사실 저도 정확한 용어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게 공간은 다양한 맥락에서 해석되고,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물리적 공간과 추상적인 공간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그 관계에 대해 말합니다. 교육학자 파커 파머는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에서 "혼잡한 버스 안에서 숨쉬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러나 탁 트인 들판에서는 우리 자신 역시 탁 트이게 된다. 생각과 감정들이 생겨나며, 숨어 있던 지식이 밖으로 나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공간에서는 몰랐던 나의 생각과 감정도 드러나고, 새로운 것들도 알게 됩니다. 그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기도 하고, 이를 통해 나에게 있는 새로운 면도 발견하게 되죠. 그리고 그 순간들은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하고요.
공간의 정의를 찾아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빈 곳'입니다. 비어있기 때문에 그곳에는 무엇이든 담길 수 있습니다. 채우지 않아 빈 곳을 남겨두고, 사이를 만들어 두어야 공간이 생깁니다. 같은 맥락으로 김대균 건축가는 '공간은 관대하다' 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 무엇이 담길 수 있는 곳은 모두 공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환경과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쉼'을 떠올릴 때는 어떤 곳에서 지낼 것인지를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눈을 시원케하는 자연 앞에서는 우리의 마음도 평온해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교사는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공간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있는 학교를, 또 교실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죠.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물리적인 공간을 혁신하거나 개선할 수는 없지만, 일상의 작은 공간 이라도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이 열립니다.
배움의 공동체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소통하고, 교사가 모든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쉽도록 교실의 책상을 일제히 칠판을 보는 배치가 아닌 ㄷ자 모양으로 배치합니다. 서클활동을 할 때에는 책상 없이 둥글게 의자들을 놓고 앉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서로를 볼 수 있게 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센터피스(중앙에 놓는 장식물)을 두고 활동을 합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다보면, 책상을 재배치한다거나, 소품 하나를 둔다거나, 조명 하나를 바꾸는 작은 시도들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아이들에게 새로움을 줄 수 있고, 배움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실제 수업에서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내용 속으로 초대할 수도 있어요. 연극적인 요소를 수업에 주는 거죠. 연극이란 실제가 아닌 무대를 보며, 무대가 실제라고 가정하고 보는 것이잖아요. 저는 국어수업시간에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이들에게 주인공이 걸었던 밤길을 실제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교실에 커튼을 치고, PPT에는 달 사진을 띄우고, 숲속에서 들리는 음악을 깔고, 분위기를 잡고서는 나지막히 소설에 나오는 멋진 풍경을 낭독해주었습니다. 교실이라는 현실공간을 넘어 소설의 공간으로 함께 들어가는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조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 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게로 흘러간다. 앞장 선 허생원의 이야기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