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몸치의 댄스일기54 (역시 왈츠는 잘해!)
(2006. 12. 4. 월)
어제 일요일에 남산의 H호텔에서 내가 다니던 학원의 송년 댄스파티에 참석했다.
우려했던 징크스가 이번에도 해당될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내 마음속에서 결심을 했기에 그렇게 되었다.
징크스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징크스를 만들고, 그렇게 되도록 일이 벌어지는 게 참으로 묘하다.
그건 그렇고,
이번 파티에서 계획되었던 왈츠와 탱고 시범은 무사히 잘 끝났다.
시범이 있기 전에 잠깐 해보니까, 왈츠는 그런대로 되는 것 같았는데...
탱고가 중간에 루틴이 생각이 안 나고 버벅거려져서 당황했다.
제너널 타임을 이용해서 함께 시범보일 숙녀분과 몇 번 해보았더니 다시 기억이 살아났다.
역시 댄스는 경력이 중요한 것 같았다.
예전에 초보시절에는 베이직 코스를 시범 보일 때도 연습 때는 잘 되다가도 막상 시범을 보이려고 대중 앞에 서면 얼어서 떨리고 쫄았는데... 글구 눈앞이 하얗다가 캄캄했다가 음악도 전혀 안들리고...
이번 시범에는 그런 현상은 없었다.
시작하기 전에 걱정을 했는데... 본 시범에 들어가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음악조차도 잘 들려서 콧노래를 흥얼거려가면서...
내 맘껏 즐기면서 자신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해치웠다.
언제나 시범을 보이고 나면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그렇질 않았다.
나의 모던댄스는 이제 공식적으로 마지막이라는 그 생각이 나를 울적하게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시범 보일 때 이상한 자극을 주었다.
더욱 자신감 있고 과감하게 할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시범이니까,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니까 하는 그 마음이 그렇게 나의 오기를 자극했다.
참으로 왈츠는 시원하고 그리고 우아하게 황홀하고 감미롭게 파워풀하게 잘 되었다.
춤이 되는 날은 첫 스타트부터 매끄럽게 되는 것 같았다.
첫 내추럴턴을 들어가는데 내가 밀고 들어가는 대로 숙녀분은 잘 받아넘겼다.
이어서 쭈욱 끌고 올라가는 대로 함께 따라 올라와 주었다.
맘껏 밀고 한없이 올라가고 싶었다.
이 순간 머리위로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희열감을 한 번 맛보고 연속되는 러닝스핀턴에서도 짜릿한 스핀감을 느끼고...
연달아 몰아 부친 체어에서는 스프링처럼 내려앉았다가 튀어 오르는 쿠션감에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시작되어서 왈츠는 별무리 없이 특별히 잘못되었다는 부분 없이 전체적으로 끝나고...
나와 함께 했던 왈츠 파트너께서도 정말 좋았다며 활짝 웃음 띈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펴 보였다.
나도 만족스러워서 좋았다. 함께 해주신 숙녀분께 수고했다고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잠시 뒤에 진행된 탱고는 약간의 불만과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루틴 헤매지 않고 마무리 한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시범이 끝나니까... 마음이 개운하고 여유가 생겼다.
아무래도 시범을 마치기 전에는 약간의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껏 얼굴이 익은 숙녀분들에게 접대와 인사차원에서 열심히 왈츠와 탱고, 폭스트롯 등 모던 음악이 나오면 쉬지 않고 봉사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종목을 달리해서... 초보분들은 베이직으로 이끌어 나갔고...
함께 공부한 상급반 숙녀분들과는 시범 때 보인 왈츠와 탱고를 바레이션으로 제너널 타임을 즐겼다.
붐비는 파티장에서 제너널 타임에 왈츠와 탱고를 바레이션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게 나 자신이 좀 발전했구나 하는 뿌듯함이 들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복잡하고 휙휙 돌아가는 상급 루틴을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이 부딪치고 진로가 방해받아서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그런데도 중간 중간 멈춰가면서도 깨지지 않고 돌 수 있었다는 게 대견스러웠다.
자이브와 룸바도 실전에서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서 해보았다.
순서 정도는 배웠지만 매번 할 엄두가 안 나서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는데.
자이브가 잘 안되었다. 순서가 잘 생각나지 않아서 버벅대다가 박자도 놓치고...
의외로 룸바는 그런대로 되었다. 음악은 잘 안 맞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룸바는 되니까 왈츠를 잡아준 숙녀분들이 적극적으로 잡아주며 나의 용기를 돋워 주었다.
이번 파티에서 룸바를 처음으로 해보았다.
자신이 생기는 것 같았다. 자이브도 처음으로 시도해보았지만...
룸바가 더 잘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 자이브와 룸바 같은 라틴 댄스를 익혀서 즐기고
왈츠같은 모던 댄스는 좀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왈츠 음악이 나왔을 때 나하고는 안 해보았던 상급반 숙녀분과 왈츠를 잡았다.
우리가 시범 보였던 상급 루틴이었는데...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도 잘 소화해내었 숙녀분도 잘 받아 주었다.
음악이 끝나갈 때 오버스웨이로 한껏 몸을 펴서 마지막을 마무리 짓고 여운을 남겼는데...
이 분이 오버스웨이 동작에서 일어서면서 혼자말로 하는 말이 내 귀에 들렸다.
"역시 청노루님은 왈츠는 정말 잘 해...!"
숙녀분을 에스코트해서 제 자리로 모셔다 드리면서...
내 귓가에 맴도는 그 소리가 내 몸을 전율시켰다. 그리고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그 한 마디에 접으려고 했던 왈츠를 못 접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다니던 곳은 마주치면 내 마음을 몹시 불편하게 하는 사람 때문에, 이제 다른 연습장소가 물색되면 여전히 모던댄스는 나가야 될 것 같았다.
댓글
눈동자206.12.04 11:41 첫댓글
멋진 댄스파티의 우아함과 황홀함이 그림을 본 듯합니다. 왈츠를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청노루님의 모션은 우상입니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멋진 모습 열공하셔요. 글속에서도 댄스의 경지와 오르가즘을 느낍니다. 좋은 글 멋진 모습 자주 보여 주시길 기대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요.
보라매06.12.04 11:52
왈츠 시범 성공적!! 노력의 댓가 겠지요 축하합니다!!
겨울나그네06.12.04 12:25
아 나도 언제쯤이나 왈츠를 잘 할 수 있을꺼나?? 부럽습니다요...ㅎㅎ
실크로~드06.12.04 20:42
그럼 이제 청노루님이 자주 이용하던 연습장에서는 만나기 힘들겠군요.
밍아06.12.05 09:55
노루님 ㅉㅉㅉㅉㅉ~~~~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에효~~~ 거저거저 시간이 쥐약^^입지요. 천하 없어도 여섯 달은 지나야 맘이 편안해 진다니까요. ㅎㅎ 앞으로 오 개월만 맘고생하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