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五色令人目盲,
(일부러 일삼은) 오색五色은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일부러 일삼아) 멀게 만들도록 하고,
五色, 可以養人之目. 而一, 向耽溺, 則令人目盲. 醫書亦曰, 玩好器服, 致蠱瘵之疾.
(본래 저절로 그러한) “오색五色”은 “사람”의 “눈”을 기를 수 있다. 그러나 (“오색”이) 한결같이 (“사람”이 일부러 일삼아) 바라고 즐기며 빠지는 바가 되면,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일부러 일삼아) 멀게 만들도록 하게 된다.” 의서醫書는 따라서 일컬었다. “음식과 의복을 (일부러 일삼아) 즐기고 좋아하게 되면, 복통과 폐병에 이르게 된다.”
五音令人耳聾,
(일부러 일삼은) 오음五音은 사람으로 하여금 귀를 (일부러 일삼아) 멀게 만들도록 하며,
五音, 可以養人之耳. 而一向好樂, 則令人耳聾. 耳聾, 謂聽, 不聰也.
(본래 저절로 그러한) “오음五音”은 “사람”의 “귀”를 기를 수 있다. 그러나 (“오음”이) 한결같이 (“사람”이 일부러 일삼아) 바라고 좋아하며 즐기는 바가 되면, “사람으로 하여금 귀를 (일부러 일삼아) 멀게 만들도록 하게 된다.” “이롱耳聾”은 이른바 들어보지만 (또렷하고 뚜렷하게) 듣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又按, 五音, 指俗樂之淫哇. 雖以下文五味推之, 亦可知其然. 盖老子之道, 欲以本始之無. 而主宰末終之有. 則如羲軒之荒樂雲門, 乃樂之本始, 雖老子, 豈可曰令人耳聾耶?
짐작컨대, (노자가 일컬은) “오음五音”은 (일부러 일삼은) 세상의 소리로서, (저절로 그러한 자연의 소리를) 벗어나고 어긋나는 소리를 가리킨다. 이른바, 다음 문장의 “오미五味”로써 그것을 미루어 보면, 또한 그것이 그러한 바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른바, 노자가 일컫는 도(道; 自然)는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이지만, 근원이자 시작점인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 無爲)’으로써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이다. 이른바,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이지만,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의) 말단이자 끝점인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有; 有爲)’을 주재하는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이다. 따라서 (“오음”이 아주 먼 옛날) 복희씨伏羲氏가 만든 악곡樂曲인 황악荒樂이나 헌원씨軒轅氏가 지은 음악인 운문雲門과 같은, 근원이자 시작점인 소리라면, 이른바 노자가 어찌 “(오음이) 사람으로 하여금 귀를 (일부러 일삼아) 멀게 만들도록 하는 바”라고 일컬었겠는가?
五味令人口爽,
(일부러 일삼은) 오미五味는 사람으로 하여금 입맛을 (일부러 일삼아) 망가뜨리게 하며,
爽, 失也. 言失其口味也. 五味, 可以養人之口. 而一向嗜悅, 則令人傷胃. 以至於口味之失也. 醫書, 亦濃厚之味, 傷人脾胃.
“상爽”은 (일부러 일삼아) 망가뜨린다는 말이다. 이른바, 그 (본래 저절로 그러한) “입맛”을 (일부러 일삼아) 망가뜨린다는 뜻이다. (본래 저절로 그러한) “오미五味”는 “사람”의 “입맛”을 기를 수 있다. 그러나 (“오미”가) 한결같이 (“사람”이 일부러 일삼아) 바라고 즐기며 기뻐하는 바가 되면, “사람”으로 하여금 위胃를 (일부러 일삼아) 망가뜨리게 한다. 따라서 (“사람”의) “입맛”이 망가뜨려지는 데 이르게 된다. 의서醫書는 따라서 일컬었다. “(일부러 일삼은 오미에 의해 일부러 일삼아) 우거지고 두터워진 입맛은 사람의 지라와 위胃를 망가뜨린다.”
馳騁田獵令人心發狂.
(일부러 일삼아) 말을 치달아 뒤쫓는 일과 사냥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일부러 일삼아) 미쳐서 날뛰는 바를 일으키게 한다.
四時蒐稱, 可以節人之勞佚. 而一向馳逐, 則令人蕩佚倡狂也.
(본래 저절로 그러한) 사계절과 (“말을 치달아 뒤쫓는 일”이나) 사냥하는 일이 (서로) 알맞게 되면, “사람”의 수고로움이나 편안함이 (사계절과 서로) 알맞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말을 치달아 뒤쫓는 일”과 “사냥하는 일”이) 한결같이 (“사람”이 일부러 일삼아) 바라고 “치달으며” 뒤쫓는 바가 되면,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한 바를 (일부러 일삼아) 쓸어버리게 하고, “미쳐서 날뛰는 바”를 (일부러 일삼아) 불러들이게 한다.
難得之貨令人行妨. 行, 去聲.
(일부러 일삼지 않으면)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양修養을 (일부러 일삼아) 어그러뜨리게 한다. 행行은 거성(去聲; 4聲)의 행行이다.
貨財, 可以資人之日用. 而一向貪得, 則令人妨害行實也.
(본래 저절로 그러한) 재화는 “사람”이 일용할 자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재화”가 “사람”이) 한결같이 (일부러 일삼아) 바라고 더듬어 찾으며 얻는 바가 되면, “사람”으로 하여금 일삼음의 열매(實; 修養)를 (일부러 일삼아) 어그러뜨리게 하고 망가뜨리게 한다.
是以聖人爲腹, 不爲目, 去彼取此. 爲, 幷去聲.
따라서 성인은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으며, 저것을 떠나보내고, 이것을 취한다. 위복爲服의 위爲, 불위목不爲目의 위爲는 모두 거성(去聲; 4聲)의 위爲이다.
服, 卽精氣神之, 以無制有也. 目, 卽上文五者之, 以有爲有也. 彼, 以目言. 此, 以服言. 總結上文.
“배服”는 이른바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면밀한 바(精; 性·自然), 기(氣; 陰陽·太極·無極), 신령스러운 바(神; 明·自然)를 비유하는 말이자,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으로써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有’을 다스리는 모양과 모습을 비유하는 말이다. “눈目”은 이른바 앞 문장의 (일부러 일삼은 “오색五色”, “오음五音”, “오미五味”, 일부러 일삼아 “말을 치달아 뒤쫓는 일과 사냥하는 일馳騁田獵”, 일부러 일삼지 않으면 “얻기 어려운 재화難得之貨”) 5가지를 비유하는 말이자,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有’으로써 (일삼는 바가) ‘있음有’을 일삼는 모양과 모습을 비유하는 말이다. “저것彼”은 따라서 “눈目”을 일컫는다. “이것此”은 따라서 “배服”를 일컫는다. (요컨대, 이 문장은) 앞 문장을 총결하는 문장이다.
右第十二章.
여기까지가 제12장에 대한 풀이이다.
첫댓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탓입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갑자기 찾아온 것 같습니다.
환절기, 건강 유의하세요.
평안하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