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송제일교회 정대운 목사의 갈라디아서 강해 19 "믿음이 온 후 율법아래 있지 않다는 의미"(갈 3:25~29) 설교 중 일부입니다.
1. 그 누구도 율법을 사랑할 수 없다.
2. 이것이 율법인 것이다.
--> 아래의 설교가 청교도 개혁주의 율법관이 맞나요? 성도들에게 이렇게 설교하는 것이 타당한가요?
* 학교, 선생님에 대한 인식, 율법에 대한 인식.. 결국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이러할 거 같은데요. 율법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니깐요.
1. 그 누구도 율법을 사랑할 수 없다.
그러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말씀으로 죄가 더욱더 죄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더 큽니다. 죄가 이렇게 큰지는 몰랐는데 이렇게 큰 죄를 우리 하나님이 도말해 주신다니? 우리 하나님이 도말해 주신다니?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하는 것은 뭐의 역할이에요? 율법의 역할이었잖아요. 나를 그만큼 낮은 곳으로 끌고 가니까
그러나 그 누구도 율법을 사랑할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 율법을 우리는 혼내니깐요. 혼내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의 대명사가 누굴까요? 율법의 대명사는 모세예요. 모세가 이야기할 때 많은 백성들이 모세한테 “I love you~ 모세”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모세 사랑해요? 안 해요. 그들은 돌을 들어서 모세를 죽일려고 그랬어요. 모세가 율법을 선포할 때 그들은 듣기 싫어 가지고 모세를 죽일라고 그랬다고요. 율법을 선포하면 다 듣기 싫어요. 그러나 율법은 필수적입니다.
저희가.. 여기서 초등교사 나오잖아요. 교사는 전부 다 율법주의라고 보면 되는 거예요. 교사들은 율법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교사는 율법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아이가 어릴 때 학교에 간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최소한 내 자유가 억압된다는 뜻이에요. 딱 그 시간에 앉아 있어야 되고, 빠지면 안 되고, 지각하면 안 되고, 떠들면 벌 받고, 그걸 딱 율법으로 지금 아이들이 외적인 외적인 억압을 받고 있는게 학교입니다.
그것을 지도하고 있는게 선생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선생을 좋아할 리가 없어요. 왜? 자기를 어렵게 하는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 선생이 그렇게 율법을 강조하고 그들을 억압한다고 해서 그들이 선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그들에게 율법적 요소로 강제적으로 교육시키는 것은 이 아이가 장차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필수 조건입니다. 선생의 역할은 필수적 조건이지만 그 선생을 아이들은 사랑할 수가 없는 거예요.
2. 이게 바로 율법인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영화를 보면서 너무 은혜를 받았던 영화가 뭐냐면요...친구라는 영화 보면요. 그 유호성 담임 선생님이 뭐라고 합니까?
뺨데기를 딱 잡고 “니 아버지 뭐하니노? 니 아버지 뭐하니노?” 그러면서 담임 선생님 아유 오늘 더운 날이네요. 오늘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서 이호성 담임 선생님이 뭐라고 합니까? 빤데기를 딱 잡고 “니 아버지 뭐하시노? 니 아버지 뭐하시노?” 그러면서 시계를 풀잖아요. 이건 진짜 제대로 된 고증입니다. 우리 선생님들 다~~ 시계 풀었어요.
이놈의 새끼 봐라. 이놈의 새끼 봐라. 어금니 께물어... 이건 항상 했습니다. 그리고 어금니 깨물고 뺨을 막 때리는 거예요. 3대 4대씩. 그러다가 너무 기분이 나빠... 어쩔 때는 맞을 만했을 때 맞을 때도 있고 어쩔 때는 억울하게 맞을 때도 있거든요. 억울하게 맞으면 어떻습니까? 이러고... 들어가거든요. 그럼 이리 와. 이리 와 또 때려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그다음에 시작~ “감사합니다.” 이러고 나오죠. 그렇잖아요?
그게 율법이에요.
왜? 내 마음에는 감사가 하나도 없거든요. 그런데 율법은 내 외면을 억압하고 외면을 고통 주니까.... 율법은 “감사합니다.” 그리고 와야 돼요. 그리고 돌아와서는 그 선생에 대해서 어금니를 갈죠. 그 인간이 그 인간이...
그것처럼 이 율법은 이런 역할로 여러분을 호되게, 호되게~ 고통 주고 또 짜증을 내면 벌을 주고.. 그래서 우리는 그 율법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와야 돼요.
이게 바로 율법인 것입니다.
* 하나님의 교회에 바른 설교가 선포되길 간절히 소망하며....
첫댓글 시편에 보면 율법에 대한 사랑이 쉴 새 없이 나오는데, 시편 찬송은 왜 부를까요?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시 119:163).
맞습니다…….